병마에 시달리던 은퇴 교사의 환골탈태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76세인 여성 대법제자이자 은퇴한 교사로, 1997년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의 병이 깨끗이 사라졌고 건강한 사람이 됐습니다. 그 후 30년간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 번 맞지 않았으며, 사상 경지 또한 수련에 따라 제고됐습니다. 무슨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사심 없이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게 됐는데, 이는 모두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해서 얻은 것입니다.

대법을 수련해 환골탈태했고, 대법 안에서 닦아낸 자비심으로 중생들도 대법 안에서 혜택을 얻고 구원받게 하려 합니다.

아래에 수련 전후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드려, 더 많은 분이 진상을 알고 대법의 훌륭함을 알게 하려 합니다.

1. 수련 전, 병마에 시달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

40여 세에 몸에 여러 질병이 나타났고, 특히 허리디스크 때문에 걸을 수 없어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고, 한 가지 자세를 1분도 유지할 수 없어 왼쪽 다리를 치켜들고 침대 위를 기어 다녀야만 했으며, 멈추면 다리가 부어오르고 아팠습니다. 이리저리 뒹굴며 밤낮으로 침대에서 시달리다 보니 정말 견딜 수가 없었고, 울어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큰 바늘을 가져와 다리 전체를 찔러주었는데, 찔릴 때의 고통이 다리가 붓고 아픈 것보다 오히려 견디기가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증상은 다시 그대로였으며, 그로 인해 남편도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고 밤 사이에 몇 번이나 일어나 바늘로 찔러주었습니다. 남편은 한숨을 쉬며 “이걸 어쩌면 좋을까!”라고 탄식했습니다.

출근도 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의사와 약을 구하러 다녔으며, 의사를 집으로 모셔와 마사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아 무당을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후 사촌 동생이 시내로 데려가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며 아주 유명한 병원을 찾아주었고, 물리치료와 마사지, 매선 요법 등을 받았지만,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사촌 동생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사촌 동생에게까지 번거로움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집을 부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으로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니 집에 가서 죽어버리자, 고통은 받을 만큼 받았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둘째 아들이 문 앞에 서서 맞이해주었는데, 당시 겨우 십 대였던 가엾은 아이를 보자 자살하려던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죽으면 아이는 어쩌지? 큰아들은 군대에 가서 내 상황을 몰라. 내가 침대에 누워 있더라도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있으면 그래도 온전한 가정이지.’ 그래서 마당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하늘을 향해 우리집을 구해달라고, 다리만 낫게 해주신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빌었습니다.

몇 달간의 병마를 정말 견딜 수 없어 집에 있던 전 재산인 800위안을 가지고 조카가 운전하는 삼륜차를 타고 남편과 함께 현(縣) 병원에 다리를 절단하러 갔습니다. 다리를 포기하고 더는 그 고통을 겪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지금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수술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이미 얼굴이 눈물범벅이 됐습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고 땅을 쳐도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살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70대였던 어머니는 매일 곁을 지키며 울었고, 고모도 애를 태웠지만 방법이 없어 그저 가족들에게 방법을 찾아보라고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사촌 오빠가 스자좡에 제 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차에 태우고 갔습니다. 의사는 척추를 만져보더니 4, 5, 6번 척추가 모두 썩었다며, 자신이 본 환자 중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7일에 한 번씩 치료를 받아야 하고 총 40번을 받아야 하지만,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과 저는 7일에 한 번씩 들어가는 차비와 치료비 때문에 시름에 잠겼습니다. 진료를 받자니 두 사람 수중에 돈이 없었고, 받지 않자니 겨우 40대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 정말 진퇴양난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속수무책일 때 생명을 구하는 복음이 들려왔습니다. 사촌 올케가 “파룬궁을 연공해 봐요! 파룬궁이 병을 치료할 수 있고 돈도 받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연공하고 있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복음을 듣자마자 ‘죽을 운명이 아니면 살길이 있어, 나도 꼭 연공해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수련 후 환골탈태해 어디서나 남을 위하는 사람이 되다

뜻밖에도 연공장은 바로 앞집이었습니다. 평소 화장실에 갈 때 몇 번이나 무릎을 꿇어야 했는데, 신기하게도 처음 연공장에 갈 때는 50~60미터 거리를 한 번도 무릎을 꿇지 않고 도착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무척 기뻤습니다.

자비롭고 상서로운 마당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인자한 표정의 연공인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환영하며 손을 이끌어 자리를 찾아 앉게 해주었고, 저는 그들의 선행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들이 연공할 때 옆에서 지켜보며 감히 일어나지 못했는데, 연공을 잘하지 못해 체면을 구길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혼자 연공을 했는데, 며칠 안 돼 다리가 붓고 아픈 느낌이 점점 줄어들었고, 잠시 서서 연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에는 수련생들과 함께 끝까지 연공할 수 있었습니다. 연공이 끝난 후 바닥에는 젖은 발자국 두 개가 선명하게 나타났고, 발자국 위에는 콩알만 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모여 구경하며 “다리가 다 나았네요, 한기를 모두 배출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다리는 정말 다 나아서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다른 병들도 어느새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내게 일어나니 몹시 감격해 거리에 나가 ‘내가 파룬궁을 연공한 지 며칠 만에 다리가 다 나았어요, 모두 와서 파룬궁을 연공해 보세요!’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가족 모두 기뻐하며 웃었고, 집안에 다시 웃음꽃이 피었으며, 가족들은 다시 제가 지은 밥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낫지 않던 병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나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자신을 잘 수련하고 자비심을 닦아내며 남을 배려하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완성하며 실제 행동으로 사부님께 보답하려 합니다. 아래에 몇 가지 사례만 들겠습니다.

1) 아주 크고 좋은 오토바이를 날려 보내다

그것은 대법을 수련한 지 대략 반년쯤 됐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집은 벌을 쳐서 꿀을 파는데, 한번은 요금소에 670위안어치의 꿀을 팔았습니다. 남편은 돈을 받은 후 세어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돈을 세어보니 액수가 맞지 않았고 5700위안이나 더 많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안 후, 가장 먼저 정당하지 못한 재물을 탐해서는 안 되며,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5700위안이 적지 않은 돈이었으니 회계 담당이 그토록 많은 돈이 비는 것을 발견했다면 얼마나 애가 탔겠습니까! 어쩌면 그 일로 밥줄이 끊겼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에게 당장 돈을 돌려주라고 했지만, 남편은 “날이 저물어 사람들이 퇴근했을 테니, 내일 아침 일찍 돌려줄게”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주 일찍 남편을 깨워 돈을 돌려주게 했습니다.

그 일은 현지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고 “그들이 감사 인사를 하던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연공인은 그저 공덕을 쌓을 뿐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카는 그 소식을 듣고 화를 내며 “아주 좋은 큰 오토바이가 날아갔네요, 그들이 스스로 준 것이지 외숙모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장부에 남긴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으면 잃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늘의 이치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습니다.

2) ‘천안문 분신자살’은 가짜니 믿지 마세요

장쩌민, 중공 깡패 집단은 대법을 박해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해 냈습니다. 그것을 보자마자 ‘이건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집마다 TV가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중독됐겠습니까! 어쩌면 좋을까요? 수련생들이 모두 가족의 감시를 받고 있어 접촉할 수도 없고 진상 자료도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의 중독을 풀어줄 수 있을까요?

침대에 누워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을지 궁리하다가 어느새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꿀벌 한 마리가 날개로 오른쪽 눈가를 쳐서 저를 깨웠습니다. 즉시 일어나 살펴보니, 웬 꿀벌이었을까요? 방 안이 이렇게 어두운데 말입니다! 사부님께서 다급하셔서 이런 방법으로 저를 깨우셨고, 서둘러 일어나 사람을 구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공책과 먹지를 가져와 반으로 찢은 뒤 간단하게 몇 가지를 적었는데, 제목은 ‘천안문 분신자살은 조작이다’였습니다. 첫째, 경찰이 소화기를 짊어지고 순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둘째, 기도가 절개돼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셋째, 옷이 불에 탔는데 머리카락은 손상되지 않았다. 넷째, 화상은 붕대로 감을 수 없다. 다섯째는 지금 기억나지 않습니다. 맨 아래에는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지 반드시 명확히 분별해 해를 입지 말라’라고 적었습니다.

먹지를 대고 쓰기 시작해 총 몇 시간을 썼습니다. 새벽 3시가 돼 직접 풀을 쑤어 마을 전봇대에 붙이러 갔습니다.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아 밤길을 걷지 못했지만, 오늘 중생을 구하려 하니 두려운 물질이 사라져 마치 대낮에 길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벽보를 붙이면서 속으로 ‘중생들이여, 이 작은 벽보를 보고 반드시 진상을 알기 바랍니다. 대법은 바르고, 사부님께서 자비로우시어 사람을 구하러 오셨으니 부디 거짓말을 믿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3) 저한테 편지를 써주셨죠?

우리 학군에는 40대 간부가 한 명 있었습니다. 한번은 시장에서 그를 만났는데 걷는 것이 불편해 보여 “다리가 왜 그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뇌졸중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병을 얻기는 쉬워도 병을 없애기는 정말 어렵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알려주었고, 동시에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도와주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몸이 그렇게 된 것을 보니 몹시 동정심이 일었고, 집에 돌아와 대법 진상을 자세히 알리는 편지를 써서 보내 그가 진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했습니다.

몇 년 후, 마을 시장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가 차를 몰고 물건을 팔러 왔는데, 얼굴에 홍조가 가득하고 걷는 것도 정상인과 같았으며, 지난번에 보았을 때와는 완전히 딴사람 같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어떻게 건강이 이렇게 잘 회복됐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써주신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고, 그 말씀을 아주 굳게 믿었습니다. 저도 늘 그 아홉 글자를 외웠더니 몸이 하루가 다르게 변했고, 일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집에 있는 헛간도 제가 직접 허물고 다시 지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는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사부님께서 당신을 구해주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4) 저는 감옥경찰을 구할 겁니다

2001년, 저는 우리 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습니다. 처음 며칠은 기분이 좋지 않아 집에 편지를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후 하루 종일 앉아서 할 일도 없이 지내느니 여기서 일하는 감옥경찰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 역시 사부님의 가족이며 구원받아야 할 생명이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의 동창이 저를 보러 왔길래 “집에 편지를 한 통 쓰려고 하는데 밖으로 전해줄 수 있겠어?”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할 수는 있지만 소장님한테 보여줘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속으로 ‘마침 내 뜻과 딱 맞아, 그들이 모두 읽어보는 것이야말로 좋은 일이지, 누구든 읽는 사람은 진상을 알게 될 테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련 후 가정, 사회, 직장 등 어디서든 늘 좋은 사람으로 행동했던 일들을 적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시아버지를 선하게 대했습니다. 80대 노인인 시아버지를 위해 식사를 배려하고 곳곳에서 시아버지를 생각하며 최대한 요구를 만족시켜 드렸고, 드시고 싶어 하는 것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해드렸습니다. 며느리가 아이를 돌볼 때면 퇴근 후 제가 교대해 주었고 생활 면에서 며느리를 아주 잘 챙겨주었습니다. 큰아들이 오토바이를 잃어버렸을 때는 재물로 액땜을 한 것이라고 타일렀으며, 또 5000여 위안을 주면서 다시 한 대를 사게 했습니다. 교사 시절에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배려해 아들의 옷을 가져다 입혔습니다. 이웃들은 일 년 내내 우리집에 열쇠를 맡겨두었습니다. 제가 쓴 내용을 보고 누가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감옥경찰들이 그것을 본다면 대법제자가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었고, 어쩌면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않을뿐더러 대법 편에 서서 구원받는 생명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근 30년의 수련 이야기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매사에 모든 일에서 남을 위하고 선하게 대한 것이며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수련인은 먼저 진(眞)을 해내야만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을 믿기만 한다면 운명이 바뀌고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할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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