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7일 만에, 헤이룽장 파룬궁수련자 위유 억울하게 세상 떠나

[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치타이허(七臺河)시 파룬궁수련자 위유(于有)는 부당하게 3년형을 선고받고 타이라이(泰來) 감옥에 감금됐다. 2026년 8월 21일, 그가 가족에 의해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의식이 불분명했고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가족이 그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하려 했으나 병원 측은 그가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했다. 출소한 지 단 7일 만인 8월 28일, 위유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64세였다.

하지만 출소하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위유의 건강 상태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2026년 7월 21일, 위유의 남동생이 타이라이 감옥으로 면회를 갔다. 당시 위유는 신체가 건강했고 정신 상태가 양호했다. 남동생이 생활비를 좀 넣어주겠다고 하자 위유는 “필요 없어. 한 달만 있으면 나는 돌아가잖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남동생은 집에 돌아온 후 그를 위해 4천 위안을 입금했다. 위유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이 감옥에 가서 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을 때, 감옥 측은 이 돈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파룬궁 수련 후 건강 되찾아

위유[위유(于友)로도 불림]는 원래 치타이허시 베이싱(北興) 농장의 직원이었다. 일찍이 그는 오랜 기간 각종 질병에 시달려 심신이 지쳐 있었다. 그때 그는 속으로 ‘침술이든, 병원이든, 귀신을 믿든 어떤 방법이라도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다 믿겠다’라고 생각했다.

1996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위유는 건강을 회복했고 이로부터 많은 혜택을 얻었다.

하지만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 전 우두머리 장쩌민이 파룬궁 집단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발동했다.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위유는 여러 차례 납치, 구류당했다. 2008년 5월, 그는 경찰에게 납치돼 구타와 자백 강요를 당한 후 부당하게 6년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그는 모진 구타, 뒷수갑, 전기충격, 노예 노동, 독방 감금 등 다양한 가혹행위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많은 고문을 당해 등과 허리에 만성 통증이 생겼고 거동이 불편해졌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납치돼 부당하게 6년형 선고받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야에, 현지에서는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탄압을 가중했다. 치타이허시 베이싱 공안분국 국장 장전(張震)은 공개적으로 “파룬궁은 감시의 눈길을 떼선 안 돼”라고 말했다.

5월 30일 오후, 경찰 자오잉광(趙熒光), 왕궈성(王國生) 등 5명이 위유의 집에 난입해 그를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가택수색을 했다. 그는 양손이 뒤로 수갑 채워지고 머리가 싸인 채 훙싱룽(紅興隆) 구치소로 보내졌다.

구치소 내에서 위유는 35일 동안 뒷수갑이 채워지고 30kg에 달하는 족쇄를 찼다. 이 기간에 종아리가 심하게 헐었고 밥도 남이 먹여줘야 했으며 화장실에 갈 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한번은 자오잉광과 정치위원 장춘화(張春華)가 위유를 심문하러 왔는데, 장춘화가 떠나자 자오잉광은 갑자기 권총을 꺼내 위유의 왼쪽 관자놀이에 겨누며 “내가 총으로 널 쏴 죽이고, 네가 내 총을 빼앗으려 했다는 가짜 현장을 만들면 어떨 것 같아?”라고 위협했다.

위유는 “제가 이곳에 들어온 첫날부터 살아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오잉광은 플라스틱 통을 그의 머리 위에 씌우고 쇠통 손잡이로 반복해서 세게 내리쳤다. 위유는 머리에 통을 뒤집어쓴 채 밤새도록 두들겨 맞았는데, 그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감금 기간에 장춘화도 여러 차례 위유를 구타해 그의 치아를 부러뜨렸다.

오랜 기간 구타와 자백 강요를 당한 후, 위유는 부당하게 6년형을 선고받고 2009년 1월 자무쓰(佳木斯) 감옥으로 끌려갔다.

자무쓰 감옥에서 가혹행위 당해

자무쓰 감옥 훈련대 기간에 위유는 강제 노예 노동을 강요당했는데, 식당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젓가락을 비닐 포장지에 넣는 일이었다. 감옥경찰은 그에게 매일 7천 쌍의 젓가락을 완성하라는 임무를 규정했고, 완성하지 못하면 강제 연장 노동을 해야 했다.

감옥 내 생활 조건은 극도로 가혹했다. 수감자들은 반드시 쭈그리고 앉아 2~3분 안에 밥을 먹어야 했고, 다 먹지 못해도 더 이상 먹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수감자는 화장실에 갈 때 일제히 이동해야 했으며 매번 주어지는 시간은 3분뿐이었다.

2009년 5월, 1구역 중대장 쑤자펑(蘇佳峰), 1감구역 간사 장레이(張磊)는 여러 차례 위유에게 이른바 ‘전향 자료’, 즉 파룬궁 신앙을 포기한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거절당하자 그들은 수감자 장펑(張峰)을 사주해 1중대 로비에서 위유의 뺨을 연속해서 때리게 했다. 그 후 수감자 린진펑(林金峰), 쑨화룬(孫華倫), 장펑 등이 번갈아 가며 그를 구타했다.

이와 동시에 위유는 또 자주 한밤중에 강제로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입당했다.

2009년 6월 어느 날 오후, 쑤자펑, 장레이는 위유에게 파룬궁을 비방하는 글을 암송하라고 핍박했다. 위유가 거절하자 쑤자펑, 장레이 및 그들의 사주를 받은 수감자 쑨화룬, 장펑, 린진펑에게 다시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다.

이 박해로 위유의 척추뼈가 다치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골절됐다. 린진펑은 또 가죽 벨트로 그의 얼굴을 세게 내리쳐 오른쪽 턱 아래가 찢어져 2cm가 넘는 상처가 나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전신 여러 곳에 멍이 들고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온몸을 경련할 정도로 맞았다.

이후로 위유는 장기간 등과 허리의 통증에 시달려 거동이 불편해졌다.

부당하게 수배돼, 노부친 두려움 속에 세상을 떠나

2013년 9월 29일, 위유는 6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자무쓰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다시 가전제품 수리 일을 시작했다. 2016년 4월, 어머니가 돈을 내 시장에 10제곱미터짜리 작은 가게를 빌려 그가 장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수년간 쌓아온 기술과 입소문 덕분에 장사는 점차 번창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후인 2016년 5월 8일 어머니의 날에, 위유는 다시 치타이허시 수치(戍企) 공안분국과 베이싱 분국 경찰에게 납치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부국장 가오성(高勝)은 런젠창(任健强)을 사주해 위유의 양손을 뒤로 비틀게 한 뒤, 손가락을 하나씩 펴서 지장을 찍게 했다. 부국장 장위성(張雨生)은 사람들을 데리고 그의 수리점을 폐쇄하고 모든 가전제품과 부품에 봉인을 붙인 뒤 실어 갔으며, 그의 주거지와 부모님 집에 대해 부당한 수색을 진행했다.

당시 위유의 아버지는 뇌졸중을 앓고 있어 행동과 언어 모두 불편했다. 경찰은 그런데도 집 안 곳곳을 뒤지고 계속 심문하고 괴롭혀 노인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주었다.

당일, 치타이허시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지대 정치위원이며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책임자인 비수칭(畢樹慶)의 지휘하에 현지에서 총 17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납치됐는데, 그중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이후 여러 명의 수련자가 모함받아 기소됐고, 결국 탄펑윈(譚鳳雲), 위구이화(于桂華), 우쉬수(吳旭姝), 장구이룽(張桂榮), 리바오화(李保華), 왕징(王晶), 자오춘양(趙春陽), 장란쥔(張蘭君), 왕위안쥐(王元菊) 등 9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부당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위유는 치타이허 구치소에 40여 일간 감금됐다. 그동안 그의 건강 상태는 급격히 악화돼 자주 어지러움, 머리 팽창, 양다리 무기력, 호흡곤란을 겪었다. 혈압이 220~230mmHg에 달했고, 나중에는 혈압계 바늘이 끝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구치소는 책임을 질까 두려워 결국 가족에게 통지해 그를 데려가게 했다.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체포와 괴롭힘은 가정에도 엄청난 압력을 가져왔다. 아내는 결국 이혼을 선택하고 고향을 떠나 외지로 돈을 벌러 나갔다. 몸이 조금 회복된 후, 위유는 아내를 찾는 길에 올랐다.

그 후 현지 공안기관은 그에 대해 부당한 수배령을 내렸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장기간 집을 떠나 유랑해야 했다. 경찰은 자주 집에 찾아와 그의 행방을 캐물었고, 가족들도 주거지 주변에 낯선 사람들이 배회하거나 정체불명의 차량이 장시간 정차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웃에게 위유가 집에 돌아왔는지 묻는 사람도 계속 나타났다.

장기간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위유의 아버지는 건강이 날로 악화됐고 당뇨병까지 얻어 두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다. 2017년 6월 26일 병세가 위독해 병원에 입원해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7월 10일 두려움과 근심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다시 납치돼 3년형 선고받고, 3년 억울한 옥살이 후 세상을 떠나

위유는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 나중에 지시(雞西)시에 정착했다.

2023년 8월 23일, 그는 지시시 거처에서 다시 경찰에게 납치돼 치타이허시 구치소로 이송돼 감금됐다. 사건을 담당한 기관은 치타이허시 공안국 수치 분국 타오난(桃南) 파출소였고, 담당 경찰은 정이(鄭毅)였다.

그 후 위유는 부당하게 3년형을 선고받고 타이라이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의 구체적인 선고 시기와 감옥 안에서 겪은 일에 관해서는 현재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2026년 7월 21일, 그의 남동생이 면회했을 때 위유는 여전히 신체가 건강했고 정신이 양호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후인 8월 21일, 타이라이 감옥은 돌연 주민센터에 사람을 데려가라고 통보했다. 가족이 급히 도착해 알아보니, 감옥 측은 위유가 뇌출혈을 앓아 이미 의식이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책임을 질까 두려워, 주민센터 직원은 가족에게 보증서에 서명하게 한 뒤에야 그를 집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위유는 시종일관 의식이 불분명했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가족이 그를 병원에 보내 구급 치료를 받게 하려 했으나, 그에게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8월 28일, 위유는 세상을 떠났다.

현재 위유의 뇌출혈, 병사 등 상황은 모두 타이라이 감옥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가족은 그 어떤 완전한 병력 기록이나 진단 증명서 혹은 사망 근거를 얻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위유가 생전에 감옥 계좌에 예금한 4천 위안의 행방도 묘연하다. 가족이 여러 차례 물었으나 감옥 측은 지금까지 합리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목할 점은, 최근 몇 년 동안 타이라이 감옥에 감금된 다수의 파룬궁수련자에게 심각한 건강 문제가 발생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치치하얼시의 80대 파룬궁수련자 양리청(楊立成)은 2021년 부당하게 4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본래 2025년 9월 만기로 집에 돌아와야 했으나 2025년 8월 감옥에서 뇌출혈 증세가 나타난 뒤 세상을 떠났다.

하얼빈시 다오와이(道外)구 파룬궁수련자 가오커(高科)는 2023년 6월 납치돼 부당하게 4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타이라이 감옥에 감금된 후 오랫동안 고문을 당해 심각한 정신 이상을 겪었고 신체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결국 2026년 4월 무렵 세상을 떠났다.

위유는 7월 면회 때만 해도 신체가 건강했으나, 8월에 출소할 때는 이미 의식이 불분명했고 결국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원인, 감옥에서의 일들, 예금의 행방 등 문제는 지금까지도 많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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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발표: 2026년 10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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