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고문 겪은 허베이성 여성, 국가배상 신청 및 책임자 고소

[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허베이성 줘저우(涿州)시 파룬궁수련자 저우쑤훙(周淑紅)은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일으킨 이래, 잇따라 부당하게 강제노동 1년, 세뇌반(줘저우시 난마촌 법제교육기지) 감금 박해를 3개월 넘게 당했고, 노동수용소와 세뇌반에서 체벌, 구타, 큰 나무에 수갑 채우기, 고무봉으로 때리기, 몽둥이로 내리치기, 얼리기,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 수면 박탈 등 다양한 혹독한 고문을 겪었다.

신앙의 자유는 헌법이 공민에게 부여한 기본 권리이자 박탈할 수 없는 천부인권이다. 파룬궁(法輪功)은 사람에게 선을 지향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기에 본래 아무런 잘못이 없다. 저우쑤훙은 법에 따라 관련 부서에 국가배상을 신청하고, 그녀가 세뇌, 강제노동을 당하고 심각한 심신 피폐를 겪게 한 책임자를 추궁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은 저우쑤훙의 자술이다.

1. 수련 전 질병에 시달렸으나 수련 후 심신에 큰 변화 생겨

저는 올해 68세로 줘저우시 바이츠간(百尺竿)향 량허(兩河)촌 사람입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저는 심장병, 췌장염, 림프절염, 기관지염, 폐렴, 관절통, 두통, 손떨림, 전신 부종 등 다양한 질병을 앓았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심장병으로, 작은 소리만 들어도 발작해 밥도 지을 수 없었고 손이 떨려 밥그릇을 자주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두통이 시작되면 저는 자주 벽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1998년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을 한 첫날 두통이 사라졌고 걸을 때 몸이 가벼웠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질병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친척과 친구, 이웃들이 제 몸의 거대한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20~30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엄격하게 ‘진선인’ 기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했고 동서 및 시누이와의 은원을 모두 풀었으며 이웃과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2.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가 부당하게 구류돼

1999년 7월 중공의 우두머리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2000년 4월 20일 저는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한마디 하려고 베이징(北京) 청원사무실에 갔습니다. 현지 베이징 주재 사무소가 저를 데리고 돌아와 공안국으로 보내 15일 동안 부당하게 구류했습니다. 이 기간에 가택수색을 당해 모든 가구와 녹음기 등 물품을 빼앗겼습니다.

3. 세뇌반 박해: 나무에 수갑 채워지고 체벌, 집단 구타, 고무봉 구타, 몽둥이로 맞기, 얼리기,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 수면 박탈 등 생명 위독해져

2002년 9월 집을 짓고 있을 때 바이츠간향 사법소장 쑤둥(蘇東)이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 및 향 파출소 등 6~7명의 경찰을 이끌고 제 팔다리를 끌어당기며 강제로 차에 납치했습니다. 차 안에는 다른 파룬궁수련자도 있었고 그들은 우리를 난마(南馬) 세뇌반(법제교육기지라고 불림)으로 보냈습니다. 당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주임은 리밍(李明)이었고 세뇌반 주임은 가오쉐페이(高學飛), 부주임은 두융루(杜勇祿)였습니다.

1) 큰 나무에 묶인 채 수갑 채워지고, 뺨 맞기, 주먹질과 발길질, 고무봉 구타, 말아 쥔 책으로 얼굴 맞기, 나무 몽둥이로 거세게 맞아 기절해

세뇌반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세뇌반 주임 가오쉐페이에게 큰 나무에 3시간 동안 수갑이 채워졌고, 잠잘 때면 매일 양손이 침대에 수갑 채워져 몸을 뒤집을 수 없었습니다.

5~6일 후 폭력배 자오인주(趙銀玖)가 저를 회의실로 불렀고 류솽(劉爽), 펑야쥐안(彭亞娟), 왕레이(王雷), 자오인주가 저를 강제 전향시키려 뺨을 때렸습니다. 그들은 파룬궁수련자에게 매우 가혹하게 요구해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으며, 앉거나 설 때 모두 군인 자세를 취하게 했습니다. 가래를 뱉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을 포함해 무슨 일이든 지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때로는 오래 앉아 있다가 동작이 규범에 맞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욕설을 듣고 매를 맞았습니다.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남자 조력자에게 안에서 끌려 나왔습니다.

한 번은 류솽, 왕레이, 펑야쥐안, 구젠포(古建坡), 왕구이쥔(王貴軍), 가오쉐페이 여러 명이 함께 저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으며, 고무봉으로 때리고 책을 말아 얼굴을 후려쳐 저를 바닥에 주저앉게 만들었습니다. 가오쉐페이가 나무 몽둥이로 제 머리를 세게 내리쳐 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습니다. 저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맞았고 엉덩이는 1인치(약 3cm)나 부어올라 짙은 보라색을 띠었습니다. 다음 날 또 강제로 일어나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2) 얼리기, 심한 구타, 재차 기절, 기어서 화장실 가

한동안 지난 후 그들은 번갈아 가며 저를 전향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저를 불러서 계속 수련할지 말지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키가 1.9미터 정도 되는 천구이팅(陳貴婷)(이후 610 주임 역임)이라는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잘 생각해 봐. 내 손이 이렇게 큰 거 보이지? 쟤네들하고는 달라, 난 엄청 세게 때린다고.” 제가 전향을 거부하자 그들은 또 저를 심하게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무봉으로 때리는 자도 있었고 얼굴을 때리거나 발로 세게 차는 자도 있었습니다. 4~5명이 한꺼번에 저를 때려 저는 기절해버렸습니다. 그들이 의사를 불렀는데 혈압을 재보니 180이었고, 저에게 주사를 놓은 뒤 방으로 메고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 저를 심하게 구타했고 때로는 하루에 두 번 때리거나 큰 나무에 수갑을 채웠습니다(새벽 2시까지). 이로 인해 두 다리로 걸을 수 없어서 기어서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들은 변태적인 방법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한겨울에 맨발로 바닥을 왔다 갔다 하게 했고, 집에서 신발을 보내왔지만 신지 못하게 했습니다. 강제로 저에게 대법을 비방하는 비디오를 보게 했고 류솽은 소리를 최대로 켰습니다. 제가 스피커 옆에 있었기 때문에 진동으로 심장병이 도져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계속 토했습니다. 저는 단식을 시작해 박해에 항거했습니다. 저를 빈사 상태로 박해한 뒤인 2003년 새해 첫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향 정부, 촌위원회와 가족에게 통지했고 그들이 함께 저를 업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간 후 남편이 매일 한 숟가락씩 밥을 먹여주어서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세뇌반에 있는 동안 부모님은 딸에 대한 지나친 그리움으로 두 분 다 병석에 누우셨습니다. 제가 세뇌반에서 돌아오자 부모님은 저를 보고 소리 내어 통곡하셨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시던 연세 많은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한 발짝도 저를 떠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키운 딸이 다른 사람에게 맞아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된 것을 보시고는 마음을 칼로 에는 듯 슬퍼하셨고, 20여 일 후 노부는 비통함 속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이 악당들이 극력 가담한 탓에 줘저우 세뇌반에서 7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박해로 사망했습니다. 왕원돤(王文端), 위궈루(于國祿), 싱슈친(星秀芹), 량슈(梁秀), 량옌쥔(梁彥軍), 왕구이란(王桂蘭), 장롄밍(張連明)입니다. 바오딩(保定) 지역 25개 시·현의 전향하지 않은 모든 파룬궁수련자가 난마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받았으며, 그들의 박해 수단은 너무나도 참혹해 사람의 머리카락이 쭈뼛해질 정도였습니다. 세뇌반 주임 가오쉐페이는 이렇게 호언장담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여긴 감옥이 아니야. 하지만 감옥에서 감히 못 쓰는 수단을 우린 쓸 수 있지. 죽으면 담장 너머로 던져버리거나 구덩이를 파서 널 묻어버릴 거야.” 2002년 겨울, 눈이 몇 번 내렸을 때 많은 수련자가 단식하며 박해에 항의하다가 눈밭에 여러 차례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발과 양말조차 신지 못했고 수갑이 채워진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이 얼어붙어 눈사람이 됐습니다. 파룬궁수련자 싱슈친은 바로 이렇게 고문당해 사망했습니다. 세뇌반 직원 류솽, 펑야쥐안은 20세 정도였지만 사람을 칠 때 유독 악랄했습니다. 한 번은 밤 12시가 넘어서 모두 단체로 줄을 서서 화장실에 가는데, 갑자기 류솽과 펑야쥐안이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들고 감시실에서 나와 수도관으로 가서 씻고 있었습니다. 60대의 늙은 수련자가 류솽과 펑야쥐안 이 두 악도에게 맞아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것이었습니다.

4. 노동수용소 박해: 구타와 욕설, 수면 박탈, 화장실 사용 금지, 목욕 금지,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

2010년 6월 13일 바이츠간향 파출소의 왕시쥔(王喜軍)이 줘저우 공안국 경찰 10여 명을 이끌고 다시 저희 집에서 저를 납치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강제로 경찰차에 태우고 아들의 컴퓨터와 대법서적을 수색해 빼앗아 갔습니다. 다음 날 국보 대대 양위강(楊玉剛) 등이 저를 스자좡(石家莊) 여자 노동수용소로 보내 부당하게 1년간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저를 강제로 전향시키는 기간에 저는 단식으로 박해에 항거했고 경찰은 죄수들을 사주해 제 팔다리를 침대에 수갑 채우게 했습니다. 노동수용소 대장 뤼야친(呂亞勤)과 마(馬) 씨 성을 가진 의사가 저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습니다. 저는 죄수들에게 맞고 욕을 먹었으며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며 목욕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박해를 받았습니다.

강제노동 기간이 만료돼 집에 돌아왔을 때, 오랜 기간의 육체적, 정신적 이중 고문으로 제 몸은 수척해졌고 호흡이 곤란했으며 온몸에 기운이 없었습니다.

맺음말: 참혹한 박해의 이면은 신앙 자유에 대한 짓밟음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며 도덕성을 높인 것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지만 중공과 장쩌민 집단은 국법을 무시하고 천리를 무시해 저의 몸과 마음이 심각하게 망가지게 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파룬궁수련자가 박해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고 장애를 입었으며 심지어 생체 장기적출을 당했습니다. 수많은 가정이 산산조각 났고 수많은 아이가 부모가 모두 투옥돼 집 없는 신세가 됐으며, 수많은 노인이 자녀가 박해받아 부양할 사람이 없게 됐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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