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70세이고 1998년에 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체득한 바가 매우 많으며,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가정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수련 과정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이 공법은 정말 좋아! 당신 열심히 수련해”
법을 얻기 전 저는 몸이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저혈압, 뇌 혈액 공급 부족, 류머티즘 통증이 있었고, 가장 심각한 것은 신장병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소변을 보지 못해 약물 완화에만 의존해야 했고, 의사는 이대로 가면 요독증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 저는 다행히 법을 얻었고, 제가 법공부하고 연공한 지 한 달도 안 돼 저는 자연스럽게 소변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몸의 부기도 빠졌고, 이어서 모든 병증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저는 온종일 얼굴에 웃음기를 띠었고, 남편은 “이 공법은 정말 좋아! 당신 열심히 수련해!”라고 말했습니다.
2. 모든 사람이 보게 해야 해
1999년에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남편은 비록 걱정했지만 한 번도 수련하지 말라는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제 병이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져온 진상 자료를 그는 다 읽었고, 전부 동의했으며, ‘명혜주간(明慧週刊)’, ‘정견주간(正見週刊)’을 포함해 다 읽었습니다. 이 자료들을 다 읽고 나서, 그는 모든 사람이 보게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9평 공산당’(한글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발표된 후, 그는 책 전체를 진지하게 한 번 다 읽고는 “이 책은 공산당의 추악한 본질을 전부 폭로했어! 너무 사실적으로 썼어! 정말 훌륭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 악당의 모든 조직(당, 단, 대)에서 탈퇴한다는 성명까지 썼습니다.
가끔 저희 부부가 저녁에 외출할 때, 저는 진상 자료를 챙겨 가면서 길을 걷는 동안 배포했는데, 그도 반대하지 않았고 그저 환경을 잘 살피고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상 자료가 바로 광범위한 민중에게 중공 악당과 장쩌민(江澤民)이 왜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하는지, 파룬궁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더 많은 사람이 빨리 진상을 알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3. 정이 무거워 제약을 받다
박해 초기, 저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단지 감성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고덕대법(高德大法)이며 사부님께서 제 목숨을 구해주셨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기에, 저는 전 세계 대법제자와 마찬가지로 마땅히 나서서 사부님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알려야 했습니다. 빠르게 진상을 전파해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주 수련생들과 함께 대면적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시골에 가서 집집마다 다니며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으며, 음성 전화로 진상을 전하고, 전화로 직접 사람들과 대화하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중공 악당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심해짐에 따라, 남편은 많은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것을 보고 제가 하는 이런 일들에 대해 매우 걱정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편에 대한 정이 아직 아주 무거웠고, 그가 걱정할까 봐 두려워 더는 당당하게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피해 다니고 속이며, 수련인과 대법, 자신, 그리고 가정과의 관계를 바르게 놓지 못했습니다.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지 못했고, 남편이 저와 함께 박해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바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오히려 그를 배제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점점 더 마음을 놓지 못했고, 저에 대한 제약도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2016년 연말, 저는 몇몇 수련생과 시골에 진상 달력을 배포하러 갔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모함으로 현지 파출소에 납치됐습니다. 그리고 시(市)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에 의해 시 공안국으로 넘겨졌다가 시 구류소에 감금됐습니다. 남편은 몹시 걱정하며 사방으로 사람을 찾아 저를 구해 냈고, 이 때문에 저에 대한 제약은 더 심해졌습니다. 혼자 외출하지도 못하게 하고, 수련생과 접촉하지도 못하게 했으며, 수련생이 찾아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수련생에게서 대법서적과 컴퓨터를 가져오려 해도 그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제가 박해받는 것을 구실로 저를 통제하려고 함을 알았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므로 반드시 법공부해야 하고,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순종하지 않았고, 대법서적은 반드시 봐야 하며 컴퓨터도 꼭 써야 하니 반드시 가져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이러한 말들을 단호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쟁투심이 아주 강했고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사악이 부부의 정을 이용해 저를 박해하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그가 저를 교란하고 제약하는 것으로만 여겨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저를 내쫓았습니다. 전에도 저를 쫓아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격렬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그 사람들(수련생들을 말함)을 오게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한 명이라도 오면 다 쫓아낼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척 억울해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 마지노선이에요. 지금은 전화로 연락할 수 없어서 일이 있으면 우리집으로 와야 해요.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떠나겠어요!” 말을 마치고 저는 몸을 돌려 나갔고, 30여 분 만에 셋집을 구했습니다. 돌아와서 짐을 챙길 때 그는 여전히 아주 강경하게 “꾸물거리지 마, 내가 당신을 붙잡을 줄 알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매정하게 굴었습니다. 저는 짐을 다 챙겨 떠날 때 그에게 열쇠를 던지며 말했습니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 당신이 날 쫓아낸 거예요. 당신은 누구에게든 당신이 날 쫓아냈다고 말해야 해요.”
4. 당당하게 수련하다
셋집에서 이틀 동안 짐을 정리하며, 저는 남편에 대한 정을 철저히 내려놓았고 그가 어떻게 나올까 두려워하지도 않게 됐습니다. 대법을 굳게 수련하려는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법공부 팀에 가서 법공부하려고 1층으로 내려와 자전거 보관소에 자전거를 가지러 갔습니다. 남편이 자전거 옆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고, 그도 저를 봤습니다. 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래도 다가가서 자전거를 꺼냈습니다. 그가 단번에 저를 잡아당기며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좋은 마음에서, 진심으로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또 박해받을까 봐 그랬던 거야. 하지만 방법이 틀렸지. 나를 용서해줘.” 당시 저는 아직 원망심이 가라앉지 않아서 고집스레 자전거를 끌고 가려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게 한 번만 기회를 줘, 우리 잘 얘기해 보자고.” 당시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게 변해 그는 마치 딴사람 같았습니다. 제가 구류소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는 줄곧 저를 제약했고, 제가 조금만 늦게 돌아와도 화를 내거나 낯빛을 구겼습니다. 그의 현재 이런 모습을 보니 남편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얼마나 오래 헤맸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분명 제게 잘하지 못한 부분이 있고, 제 사람 마음이 불러온 일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에 대한 정이 아주 무거워 평소에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 그가 알까 봐 늘 두려워했고, 그가 불쾌해할까 봐, 갈등이 생길까 봐 두려워하며 당당하게 처신하지 못해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반드시 법을 원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그를 따라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돌아갈 수는 있지만 몇 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 신앙을 누구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신의 신앙을 내가 여태껏 지지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기준이 있어요. 법을 실증하는 일은 제가 반드시 해야 하며, 당신이 이해하지를 못하더라도 막아서는 안 돼요. 제가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할 때, 언제 나가고 언제 들어오는지, 묻지 마세요. 제 월급은 제가 관리할 것이고, 수련생이 일이 있어 저를 찾아오면 당신은 반드시 수련생이 오게 해야 해요(저는 일부 수련생의 컴퓨터 시스템 설치와 간단한 유지 보수, 공유기 설정을 도와주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번에 다 동의하며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가 말했습니다. “나도 이제 생각이 정리됐어. 비록 당신을 위해서라지만 내가 당신을 바꿀 수도 없고, 당신이 하려는 일을 내가 막을 수도 없으니 차라리 관여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 그러면 모두가 즐거울 테니.” 저는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한바탕의 가정 풍파가 가라앉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수련인이므로 반드시 수련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저는 제 공간장(空間場)이 맑아지고 밝아졌음을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예전의 그런 억압과 곤혹스러움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대법제자로서 그토록 밝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습니다. 제가 자신을 바르게 놓자 사부님께서는 제가 확고한 정념(正念)이 있는 것을 보시고 모든 교란을 전부 제거해 주셨습니다.
5. 괴롭힘에 정면으로 맞서다
사실 남편은 원래 인품이 아주 좋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제가 변하자 남편도 변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이 우리집에 올 때면 언제든 그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제가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다 이해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사악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면 그는 여전히 매우 두려워하고 걱정했습니다. 특히 이른바 ‘민감한 날’만 되면 파출소나 주민센터 직원이 전화를 걸거나 집으로 찾아와 괴롭혔기에 그는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한번은 파출소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신고를 당했다는 등 협박하는 말을 하며 제가 아직 수련하는지 묻고는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몹시 긴장해서 그것은 예전 일이고 지금은 수련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오자 그는 제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당신이 이미 파출소의 표적이 됐다고 몹시 화를 내며 불만스러운 말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동요하지 않고 그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함부로 제가 수련을 안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세요? 이것은 사부님을 배신하고 대법을 배신하는 거예요! 이는 수련인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에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내가 말한 거지 당신이 말한 게 아니잖아. 당신은 당신 방식대로 수련하면 되잖아.”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수련은 엄숙한 것이니 반드시 이 말을 바로잡아야 해요.” 그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바로잡겠다는 거야?”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제가 전화를 걸어서 그에게 수련을 안 할 수 없다고 반드시 말하겠어요.” 그는 “파출소 경찰들은 다 깡패들인데, 제 발로 찾아가서 박해받으려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전화번호를 주지 않고 전화도 걸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어느 파출소인지 물어보세요. 제가 직접 가서 분명히 말해야 해요. 결코 그 말이 남아있게 해선 안 돼요!” 즉시 그는 딴사람처럼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파출소입니까? 저희 남편에게 전화해서 제가 신고당했다고 하셨죠.” 구역 경찰이 말했습니다. “아아, 알았습니다. 지금 집에 계십니까?” 제가 “집에 있습니다”라고 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일단 전화로 말하지 말고, 제가 당신 집으로 갈 테니 그때 얘기하죠.” 제가 말했습니다. “오실 필요 없습니다. 바쁘실 텐데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는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는 내내 정념을 발하며 파출소에 도착했습니다. 구역 경찰을 만나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고, 그가 저를 방으로 안내해 자리에 앉자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온 것은 남편이 한 말은 전부 무효라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저를 대신해 결정할 수 없고, 저는 수련을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제게 먼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눈치를 주더니, 저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 앉힌 후 이 방에는 CCTV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몸의 변화부터 시작해, 대법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것, 장쩌민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천안문(天安門) 분신자살’이 조작된 것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그가 제 말을 끊더니, 자기가 먼저 한마디 하면 제가 다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만약 전 국민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면 경찰이 필요 없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삼퇴를 하셨나요?” 그는 “내가 어떤 사람 이야기를 할 텐데, 우리는 친구 사이죠. 그러면 당신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친구는 대법제자였습니다. 제가 “그럼 이미 탈퇴하셨군요?”라고 묻자 그는 웃었습니다. 떠날 때 그가 “누님, 앞으로 집에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다 해결해 줄게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마쳤습니다. 정말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안배해 놓으셨고, 이 모든 것은 제자의 심성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저는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말해주었고,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이 풀렸습니다. 이 일을 통해 남편은 아주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후 다시 이런 일을 겪을 때면 그는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혜롭게 대처했으며, 결코 불평하지 않고 제가 법공부와 연공을 하는 것을 더욱 지지했습니다.
6. “사부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저는 자주 집에서 그에게 정법 교류, 대법 음악, 1인 미디어 등의 내용을 틀어주었고 남편의 정념은 갈수록 강해졌습니다. 이후 경찰이나 주민센터 직원이 괴롭힐 때마다 저는 한 번도 피하지 않고 약속 시간을 정해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갈 때 남편은 자신이 먼저 함께 가겠다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가는 길에 제가 법 암기를 할 테니 들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홍음2-두려울 것 뭐냐)라고 하셨어요.” 그가 이어서 “당신이 대법제자가 가장 바르고 가장 밝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우리 당당하게 가자고”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정념을 품고 파출소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진상을 알릴 때 남편도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협조했습니다. 제가 사악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도 협조하지 않았고, 매번 우리가 주역이 돼 모든 것을 장악했으며, 마지막에는 모두 온화한 분위기로 끝났습니다. 이때부터 남편은 박해에 대한 그런 공포가 사라졌고 대법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더욱 커졌습니다.
남편은 서예를 좋아해 평소 글씨 쓰는 것을 즐깁니다. 제가 ‘전법륜(轉法輪)’을 필사할 때 그는 자주 와서 보며, 어떻게 해야 글씨를 바르고 예쁘게 쓸 수 있는지 저와 교류했습니다. 제가 “당신은 글씨를 그렇게 잘 쓰니 당신도 법을 베껴 써보는 게 어때요?”라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럼 나는 ‘홍음(洪吟)’을 베껴 쓸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6권의 ‘홍음’을 모두 베껴 썼습니다. 2025년 초부터 그는 자발적으로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는데, 매일 한 시간씩 읽으며 앞으로도 계속 읽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속인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아직 수련에 들어서지는 못했습니다.
남편은 위챗 단체방에서 많은 집의 초인종이 고장 나 아파트 관리소에 수리를 재촉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우리집 초인종은 고장 난 적이 없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거예요. 대법제자들이 와서 눌러야 하니까요!” 남편은 자주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사부님이 계셔서 참 좋아!”
원문발표: 2026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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