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이 파탄 나기까지, 랴오닝 두궈밍 박해로 세상 떠나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遼寧)성 링위안(凌源)시 두궈밍(杜國明)과 아들 두웨이펑(杜衛峰)은 모두 두 차례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을 당하며 온갖 고문을 겪었다. 아들 두웨이펑은 한창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으나, 노동수용소에서 ‘전향’을 강요받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폐인이 됐으며, 지금까지도 정신병원에 있고 생활을 스스로 돌보지 못한다. 아내 허구이화(何桂華)는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괴롭히는 것을 견디고, 부자의 안전을 걱정하며 매일 두려움 속에 살다가 2002년 10월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궈밍 역시 노동수용소의 고문으로 정신이 몽롱해졌고, 수년간 혼자 외롭게 살다가 2026년 9월 셋방에서 숨을 거뒀다.

두궈밍의 집은 랴오닝성 링위안시 톄시(鐵西) 2가(街)에 있으며, 아들 두웨이펑과 함께 링위안 강철회사 직원이다. 아내 허구이화는 선량하고 온화해 평소 집에서 빨래하고 밥을 지으며, 집 앞에는 채소밭을 가꾸고 집 뒤에는 농작물을 심고 닭과 오리를 키웠다. 그녀의 유능함과 근검절약 덕분에 작은 살림은 평온하고 행복했으며, 온 가족이 화목하게 살았다. 1993년 하반기, 허구이화는 하혈을 자주 했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으며 신체와 정신이 갈수록 쇠약해져 이 원래 행복했던 가정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온 가족이 속수무책일 때, 즉 1994년 정월 초아흐렛날, 두궈밍이 퇴근하고 돌아와 그녀에게 말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사부님께서 우리 링강(凌鋼)에 강의하러 오신대. 철강 공장 노동조합 간부가 이미 베이징으로 대사님을 모시러 갔으니, 그때 우리 온 가족이 다 가보자. 듣자 하니 이 공법이 아주 좋대.” 이렇게 온 가족이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구이화의 병증은 치료하지 않고도 나았고, 집안은 다시 예전의 평온함과 즐거움을 되찾았으며 행복한 생활이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江澤民) 정치깡패 집단이 광분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일으키면서, 두궈밍 가족은 수많은 파룬궁수련자와 마찬가지로 온갖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두궈밍 부자는 단지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반복해서 박해를 당했다.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 파출소,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의 불법 인원들이 수시로 집에 들이닥쳐 괴롭힘, 가택수색, 납치, 금전 갈취, 가혹 행위 등을 저질렀다. 2001년 부자는 또 링위안 공안국에 의해 시다잉쯔(西大營子) 노동수용소에 나란히 보내져 감금돼 박해당했다.

두웨이펑, 고문으로 정신 이상이 되다

두궈밍의 아들 두웨이펑은 차오양(朝陽)시 시다잉쯔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받는 동안 전기 충격, 벌서기 등 각종 고문을 당하며 거대한 정신적 압박을 견뎠다. 본래 키가 크지 않았던 그는 박해로 뼈만 앙상하게 남아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약해졌다. 한번은 두웨이펑과 다른 파룬궁수련자들이 강제로 원외로 노동하러 나갔는데, 무슨 이유인지 감옥경찰이 갑자기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나뭇가지가 비 오듯 “탁, 탁, 탁” 그의 몸을 내리쳤고, 지나가던 몇몇 행인은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어 승합차에서 내려 다가가 제지했다. “당신들 왜 이렇게 아이를 때리는 거요? 능력 있으면 힘센 사람한테나 쓰시오! 그는 단지 아이일 뿐인데…” 뭇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자 경찰은 그제야 손을 거뒀다.

이렇게 작고 마른 두웨이펑은 경찰봉의 위협 속에 매일 고된 육체노동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괴롭힘까지 당했다. 강제로 세뇌당하고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받았으며, 그렇지 않으면 어떤 징벌과 박해를 받을지 몰라 하루 종일 조마조마한 생활을 했다. 장기적인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고문 속에서 두웨이펑은 우울증을 앓게 됐고 병세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수용소 측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두웨이펑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지 1년도 안 돼, 공안국은 그의 병세가 호전된 것을 보고 다시 그를 강제로 납치해 노동수용소에 감금하고 계속 박해했다. 이번에는 더욱 잔혹했다. 노동수용소 부소장 진위청(金玉成)의 사주하에, 4대대 대대장 치융순(戚永順)은 중대장 톈슈산(田樹山)에게 지시해 두웨이펑에게 전기 고문을 가하며 전향을 강요했다. 톈슈산은 두웨이펑을 교실에 가두고 오후 내내 간헐적으로 4시간 넘게 전기 충격을 가했으며, 이후 밤 12시까지 강제로 벌을 세우고, 다시 두웨이펑을 교실로 끌고 가 계속 전기 충격을 가했다.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져 깊이 잠든 사람들을 깨웠고, 사람들은 모두 톈슈산의 인면수심을 통렬하게 욕했다.

다음 날 식사 시간에 두웨이펑은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지 못했다. 톈슈산은 두웨이펑에게 일어서라고 강요하고, 식당에서 대중이 보는 앞에서 두웨이펑의 이마를 찌르며 인격적인 모욕을 가했다. 또 하루의 박해를 거친 후 두웨이펑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다음 날(2월 25일) 아침 식사 때 필사적으로 항거하다 독방에 감금돼 박해당했다. 수갑과 아주 무거운 헬멧을 씌운 채 바닥에 고정된 상태로 한 달이 넘도록 방치됐다. 가장 잔인한 것은, 경찰이 두궈밍에게 짧은 5분의 면회 시간 동안 아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게 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육체적 이중 압박 속에서 두웨이펑은 정신이 붕괴돼 다시 정신병 증상을 보였다. 이렇게 한창 혈기 왕성한 청년이 이른바 ‘전향’으로 인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폐인이 됐다. 지금까지도 정신병원에 있으며, 생활을 스스로 돌보지 못한다.

허구이화, 비분강개 속에 세상을 떠나다

두궈밍의 아내 허구이화는 집에서 더욱 우울하게 지냈다.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괴롭히는 것을 견뎌야 했고 부자의 안전까지 걱정해야 했기에, 그 당시 그녀는 마치 오장육부가 텅 빈 듯한 느낌이었으며, 전에 없던 처량함과 고독함, 혈육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매일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지병이 재발해 자궁암 말기에 이르렀지만, 부자는 여전히 노동수용소에 감금돼 박해받고 있었다.

2002년, 허구이화는 이미 음식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매우 허약해져 말할 힘조차 없었다. 친정 식구들은 허구이화가 이렇게까지 병든 것을 보고, 차오양 노동수용소에 가서 두궈밍이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교섭 끝에 노동수용소는 두궈밍에게 7일간의 휴가를 줬다. 두궈밍이 돌아와 숨이 끊어질 듯한 아내를 보았을 때, 마음이 칼에 찔린 듯 아파 다가가 허구이화를 껴안았고,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두궈밍은 아내를 7일 동안 지켰고, 7일째 되던 날, 허구이화는 남편이 돌아가야 할 날임을 계산하고 아쉬운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이것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임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밤 11시, 그녀는 영원히 눈을 감았고 향년 57세였다.

두궈밍, 역시 고문으로 정신이 흐릿해지다

두궈밍 역시 두 차례 강제노동을 당했다[각각 훙산(紅山) 파출소 마르밍(馬日明)과 링허(凌河) 공안분국 진(金) 지도원의 손을 거쳤다]. 누적 4년에 달하며, 그 기간 차오양 노동수용소(부소장 진위청)와 푸신(阜新) 노동수용소[부소장 신훙순(辛紅順)]의 고문, 체벌, 초강도 노동 및 세뇌 박해를 당해, 그 처참한 모습은 지금까지도 차마 돌이켜볼 수 없다. 특히 2001년 6월 17일 오후, 푸신 노동수용소 부소장 신훙순, 관리과 과장 퉁차오(佟超), 교육과 궈(郭) 과장은 세 개의 전기봉을 손에 들고 두궈밍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는데, 세 개의 전기봉 전기가 다 닳을 때까지 그만두지 않았다. 시간이 30분이 넘도록 길어졌고, 방 안에는 ‘파박’거리는 전기 충격 소리, 폭행자의 변태적인 미친 웃음소리, 고문받는 자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 그리고 살갗이 타는 냄새가 가득 차, 그야말로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인간 지옥이었다.

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온 후 두궈밍 역시 정신이 몽롱해져 정상적인 이성적 사고를 잃었다. 수년간 그의 아들은 정신병원에 있었고 그는 혼자 외롭게 생활했다.

2026년 9월 어느 날, 이미 80대가 된 두궈밍은 셋방에서 사망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고, 이웃이 시체 썩는 냄새를 맡고서야 주민센터(街道)에 알려 장례를 치렀다.

이렇게 본래 행복하고 화목했던 세 식구의 가정이 중공 체제하에 국장을 머리에 쓴 ‘법 집행자’들에 의해 박해당해 가정이 파탄 났다. 그러나 그들은 외부에 대고 이것이 ‘봄바람이 비로 화하는’ 듯한 교육이라고 선전했는데, 이는 인간성 말살이자 법률 짓밟기다.

마을 주민 여러분! 허구이화, 허구이화 일가의 비극적인 일은 지난 수년간 중공이 파룬궁이라는 단체에 가한 박해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는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단지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박해일 뿐만 아니라 우리 중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피해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박해가 선악을 뒤섞고 흑백을 전도하여 사회 전체의 도덕을 타락시키고 곳곳에 천재지변과 인재를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공산 악당은 중화민족을 만길 낭떠러지로 끌어내렸습니다. 이 재난을 피하고 싶다면 오직 공산당의 거짓·악·투쟁의 사악한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고, 악당을 멀리하며 선량함을 선택해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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