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현 공안분국 경찰 왕샤오밍(王曉明)은 공안 업무에 30년간 종사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행동하고 처신했다는 이유로, 그는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를 여러 차례 받았다. 두 차례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혹독한 고문을 당해 생명이 위독해졌고, 2021년 부당하게 해고된 후 길고 긴 억울함 호소와 고소를 시작하며 협박과 다방면의 압박을 견뎠다. 2026년 6월 15일, 왕샤오밍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58세였다.
6월 15일 왕샤오밍이 세상을 떠난 날부터 6월 17일 발인까지 하늘에서는 계속 비가 내렸는데, 가랑비에서 보통 비, 큰비로 이어지다가 6월 17일 오후 4시가 돼서야 빗줄기가 멈췄다. 신빈 융링 묘지 인근 일부 지역에서는 새벽 2~3시에 눈발이 날려 주행 중인 차량의 앞 유리를 때리기도 했다.
1. 성실한 좋은 경찰: 진선인을 기준으로 삼은 직업윤리
왕샤오밍은 건강상의 이유로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이후 마음이 넓어지고 낙관적이며 선을 지향하게 됐다. 그는 아부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으며, 부정한 길을 가지 않고 오직 착실하게 일하며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다. 융링 파출소에서 일할 때, 민원을 보러 온 한 시민은 “저는 그가 당직일 때 와서 일 처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태도가 좋고 항상 웃는 얼굴이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는 공정하고 공평하게 사건을 처리해 민원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한 민원인은 사건 처리가 불공평하다며 소장에게 따지러 갔을 때 “당신들이 모두 왕샤오밍처럼 일하고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단속한다면, 제가 여기 와서 따질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관광지 파출소로 전근 간 후, 직원 가족의 무료입장이 관례처럼 돼 있었지만 왕샤오밍의 가족이 관광을 오면 그는 고집스럽게 자기 돈을 내고 표를 샀다. 동료가 “연공하더니 바보가 됐나? 이 돈을 굳이 쓸 필요 있어?”라며 비아냥거렸지만, 그는 시종일관 ‘진선인’으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했다.
왕샤오밍은 연말 고과 성적에서 오랫동안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가 융링 파출소에서 맡은 컴퓨터 작업은 여러 차례 성(省)과 시(市) 검열에서 호평을 받았다. 수련한다는 이유로 공안국에서는 여러 차례 그의 부서를 이동시켰지만, 그는 어느 자리로 발령받든 원망 없이 묵묵히 일하며 직분을 다했다.
1999년 봄, 그는 신빈현 공안국을 대표해 시 공안국 경연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푸순시 전체 공안국 자질 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이처럼 덕과 재능을 겸비한 훌륭한 경찰관은 신빈현 공안분국 간부들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져 ‘부적격 공무원’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해고를 당했으니, 그 황당함이 극에 달했다.
2. 첫 번째 강제노동 처분: 푸순 노동수용소의 혹독한 고문으로 생명이 위독해지다
2001년 9월, 누군가가 왕샤오밍이 다른 사람에게 대법서적을 보여줬다고 악의적으로 신고해, 그는 부당하게 구류된 후 푸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노동수용소에서 그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가, 경찰 장융펑(姜永峰, 당시 푸순 노동수용소에서 파룬궁수련자 감금을 전담하던 남성팀 대장) 등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 푸순 3병원으로 보내져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다. 이후 왕샤오밍을 밤낮으로 철침대에 수갑을 채워 묶어놓고, 경찰 우웨이(吳偉, 당시 푸순 노동수용소 파룬궁수련자 감금 전담 대대 대대장)가 매일 한 차례씩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숟가락으로 강제로 입을 벌리고 튜브를 구강에서 위까지 찔러넣었다. 매번 강제 주입을 할 때마다 왕샤오밍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쳐, 옆에서 누르고 있던 사람조차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였다.
왕샤오밍은 음식물 강제 주입 후 매번 한바탕 경련을 일으켰고, 경찰 우웨이는 사람들에게 왕샤오밍을 부축해 한동안 걷게 했다. 이렇게 며칠 동안 연속으로 강제 주입을 했지만, 왕샤오밍은 여전히 물과 음식물을 끊고 항의했다. 단식 9일째 오후, 왕샤오밍은 강제 주입 후 침대에 누워 전신 경련을 심하게 일으켰다. 우웨이는 침대 가에 앉아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뺨을 때리며 “나는 지옥의 악귀다. 내가 너를 손봐주겠다!”라며 끊임없이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었다. 이후 구두를 벗어 왕샤오밍의 얼굴을 때렸고, 왕샤오밍에게 노동수용소 수감자 복장을 입으라고 강요했으며, 자신의 찻물을 마시라고 강압했다. 왕샤오밍이 마시지 않자 그는 찻물을 왕샤오밍의 머리에 부었다. 우웨이는 이렇게 거의 1시간 동안 고함을 치다가 가버렸다.
당일 밤 왕샤오밍은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다음 날 노동수용소는 가족에게 500여 위안의 응급처치 비용을 지불하라고 강요했다.
이후 그는 엄격 관리반으로 보내져 계속 박해를 받았고, 단식 10여 일 만에야 무조건 석방됐다.
3. 두 번째 강제노동 처분: 구타당하고 끌려다니며 100여 일간 단식
2002년 5월 13일, 푸순시 공안국 경찰들이 갑자기 융링 파출소에 들이닥쳐 왕샤오밍을 보자마자 마구 때리기 시작했고, 2층에서 1층까지 때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게 한 후 그를 납치했다.
이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들이 그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했지만, 악당들이 아무리 광분해도 왕샤오밍의 수련하는 마음은 반석처럼 굳건했다. 610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우자바오쯔 노동수용소에 2년형 강제노동 처분을 내렸다.
왕샤오밍은 부당한 강제노동에 항의해 단식하며 강제노동 처분 취소를 요구했다. 하지만 중공 악당의 파룬궁 박해는 애초에 법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 왕샤오밍이 감방에서 100여 일 동안 단식했지만, 그에 대한 강제노동 처분에 근거가 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왕샤오밍의 몸에는 옴이 가득 났고, 매일 감방 안에서 잠도 자지 못한 채 잔혹한 박해와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었다. 장기간의 음식물 강제 주입으로 인해 몸에 종기가 났고, 한쪽 귀에는 종기로 구멍이 뚫려 소리를 듣지 못했다.
4. 뤄타이산좡 세뇌반으로 납치되다
왕샤오밍은 노동수용소에서 나온 뒤 다시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가 일했고, 2005년 봄에는 융링 허투아라성 관광지로 발령받아 근무했다.
2005년 10월 14일, 왕샤오밍은 관광지에서 일하던 중 신빈현 공안국과 푸순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의 모의하에 비밀리에 납치돼 푸순 뤄타이산좡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그가 협조를 거부하며 차에서 내리지 않자, 우웨이는 여러 명의 ‘동반 교육자’를 데리고 억지로 왕샤오밍을 들어 차에서 내리게 한 뒤 3층으로 들고 올라갔다. 왕샤오밍은 박해에 반대해 단식 9일 만에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 후 무조건 석방됐다.
신빈현 공안국은 뒤이어 그를 부당하게 해고하려 했으나, 합법적인 근거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8년 파출소 대규모 훈련 때, 왕샤오밍이 훈련을 매우 훌륭하게 조직해 성 공안청은 검열 후 전 성에 보급해야 한다고 했다. 현 공안국 대회에서 국장은 그를 공개적으로 표창하며 “왕샤오밍은 파룬궁을 수련하지만, 일을 잘하면 저는 그를 표창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모든 경찰이 열렬히 박수를 쳤다.
5. 공안분국, 수차례 왕샤오밍 해고 시도 미수
2009년부터 신빈현 공안국 기율검사위원회는 수차례 왕샤오밍을 해고하려 시도했고, 심지어 그의 전자책을 빼앗고 인사국에 서류를 보내기도 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2021년 무렵, 공안국 간부들은 소위 ‘정치적 실적’을 챙기기 위해 번갈아 가며 압력을 가해 사직서를 쓰도록 강요했고, 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료를 ‘파룬궁 홍보 자료’로 모함하며 푸순 국보 지대를 동원해 박해에 개입시켰다.
왕샤오밍은 시종일관 선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실을 깨닫게 했다.
6. 벼랑 끝에서 살아나다: 중병으로 위독해진 후 수련으로 건강 회복
2018년 3~4월 무렵, 왕샤오밍은 구치소로 발령받아 근무하게 됐다. 왕샤오밍은 야간 당직을 서는 동안 다리부터 몸 위쪽으로 붓기 시작해 배까지 부어올랐고, 심장이 너무 아파 잠을 자지 못한 채 밤낮으로 고통받았다. 하지만 왕샤오밍은 단 하루도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후 왕샤오밍은 몸이 심하게 부어 출근할 수 없게 되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병원 측에서 모두 치료해주지 않았고, 선양(瀋陽) 의대로 이송됐으나 그곳에서도 치료를 거부당했다. 나중에 군 병원 한 곳에 반 달 동안 입원한 후 몸의 부기가 가라앉아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병원 진단은 심각한 울혈성 심부전증과 확장성 심근병증, 심장 내 혈전이었으며, 눈도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고, 다시 심부전으로 인한 전신 부종이 나타났다. 왕샤오밍은 선양 군 병원에 입원했다. 몸의 부기가 가라앉은 후 의사는 “3~5개월 뒤에 몸이 다시 부어오를 테니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귀가 후 왕샤오밍은 매일 꾸준히 ‘전법륜(轉法輪)’ 책을 보고 파룬궁의 5장 공법을 연공했다. 나중에 또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사물이 겹쳐 보이는 증상이 나타났지만, 왕샤오밍은 여전히 법공부와 연공을 했으며 이 병들은 모두 나았다.
2018년 12월, 왕샤오밍의 몸이 다시 붓기 시작했지만 왕샤오밍은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20일 만에 완치됐고, 심각했던 심부전증도 나았으며 심장에 조금의 통증도 없어졌다. 이후 그는 요붕증 증상도 나타났지만, 이 역시 파룬궁 서적을 읽으며 결국 다 나았다.
그는 파룬따파가 자신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음을 깊이 알고 있었다.
7. 부당 해고 후 꾸준히 억울함을 호소하고 고소하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다
2021년 7월 31일, 왕샤오밍은 신빈현 공안국에 의해 부당하게 해고됐다. 그는 각급 부서에 실명으로 호소문과 고소장을 내며 파룬궁 수련이 합법적임을 지적했는데, 관련된 부서는 현, 시, 성에서 중앙의 여러 기관에 이르기까지 포함됐다.
그는 정보 공개를 신청하고 행정 심판과 행정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인사 관리는 비공개’, ‘접수 범위에 해당하지 않음’ 등의 이유로 회피당했다.
2023년 3월, 푸순 중급법원에서 재판이 열렸으나 신빈현 공안국은 출석하지 않았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원심을 유지했다. 왕샤오밍의 억울함 호소와 고소 여정의 자세한 내용은 명혜망 보도 ‘신앙으로 부당 해고 당해, 왕샤오밍 푸순 중급법원까지 고소 이어가’를 참조하기 바란다.
장기간의 호소, 고소, 압박과 정신적 시련은 왕샤오밍의 몸과 마음에 거대한 부담을 안겼다. 2026년 6월 15일, 그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8. 랴오닝성 박해 현황 배경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025년 랴오닝성에서 최소 16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박해로 사망하거나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최소 77명이 부당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최소 368명이 납치되고 276명이 괴롭힘을 당했다. 경찰이 갈취한 금액은 17만 4205위안에 달했고, 법원이 갈취한 벌금은 49만 위안이었다.
왕샤오밍의 비극은 이러한 체계적인 박해의 축소판이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24/5135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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