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20년,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나를 일깨워주셔서 나는 진정으로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40대 중후반의 나이였지만 집안의 외동딸이라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라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 데 익숙했다. 집안일은 내게 매우 힘든 일이었고 사람을 돌볼 줄 몰랐다. 수련 전의 나는 매우 이기적이었고 남을 위해 베풀 줄 몰랐으며 감사할 줄도 몰랐고 책임이라는 두 글자는 말할 것도 없이 전통에서 벗어난 사람이었다.
최근 1년 동안 가정 환경에 변화가 생겼다. 시부모님은 70여 세이신데 그 전해에 겪은 우환으로 많은 것을 감당하셨다. 먼저 남편이 사고를 당했고 이후 또 가정 경제의 위기를 겪었다. 이런 고난들은 시부모님에게는 모두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시부모님의 건강은 날로 나빠졌다. 시어머니는 점점 야위어 가며 몸에 통증을 느끼시더니 결국 말기 암 판정을 받으셨다. 시아버지는 오래된 지병 환자로 눈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러 휠체어에 의지해 걷기조차 힘드셨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베풀고 내 능력이 닿는 사랑으로 시부모님의 마음을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사를 해 시부모님과 함께 살며 시부모님의 일상생활을 돌보았다.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며 내가 시부모님이 진상을 알도록 돕고 행동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증명해야 함을 알았기에 나는 반드시 잘 해내야 했다.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매일 나는 팽이처럼 쉴 새 없이 돌아야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할 수 없어서 처음에는 나도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다. 일상적인 집안일, 삼시 세끼 장보기와 밥하기, 매일 이것저것 가져오라는 호통을 감당하며 수시로 두 분을 모시고 병원에 가거나 입원시켜야 했다. 수련의 길은 매우 험난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일념을 굳게 세웠다. 나는 수련하고 있으며 사부님께서는 내가 넘지 못할 고비를 안배하지 않으실 것이다.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그것이 내가 닦아내야 할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의 집착임을 알았고 내면의 용량도 조금씩 커져갔다. 법에서도 이 모든 것이 나의 심성을 높이고 업력을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그 속에서 나는 자신의 많은 집착을 찾았고 자신의 행동이 법과 어긋나는 부분을 보게 됐다. 이때 나는 시부모님께서 내게 착실한 수련과 성장의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렸다.
시부모님이 그동안 지내온 방식은 이러했다. 시어머니는 늘 분주하게 움직이셨고 시아버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셨다. 시아버지는 억지가 셌으며 모든 일에 일일이 간섭하고 어떻게 할지 지시하셨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지시를 따르며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고 요리를 아주 잘하셨다. 시아버지는 먹는 것에 요구가 높아 끼니마다 좋은 것을 드셔야 했고 옷차림에도 신경을 쓰셨다. 게다가 시아버지는 건강이 줄곧 좋지 않아 30년 넘게 계속 약을 복용하셨다. 시부모님은 평범한 직장인 가정이라 딱히 모아둔 돈도 없었다.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여러 마찰과 갈등이 생겨났다. 나는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마음이 자꾸 솟구쳐 시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시어머니를 대신해 억울해했다. 처음에 나는 아직 분주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를 늘 지치게 만들었고 법공부도 따라가지 못해 속으로 기분이 언짢았다. 발정념 시간에도 나를 불러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나는 몹시 화가 났다. 항상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내가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버님을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어쩜 저렇게 감사할 줄 모를까?! 나는 며느리인데도 이렇게 대우해 드리는 건 내가 수련인이기 때문이 아닌가? 왜 대법에 감사할 줄 모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가?’ 이렇게 나는 대법을 구실로 삼으며 이 교활한 질투심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나는 줄곧 시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시아버지의 언행을 못마땅해했고 남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했으며 분별없이 온갖 나쁜 습관을 지닌 것을 못마땅해했다.
한번은 내가 시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시장에 갔다. 시아버지는 휠체어에서 배를 드러낸 채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체리 더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게 물어보셨다. “이게 뭐냐?” 나는 체리라고 대답했다. 시아버지가 대뜸 집어 입에 넣으시길래 나는 급히 말했다. “아버님, 아직 사지 않았으니 드시면 안 돼요.” 시아버지는 나를 흘겨보며 화난 투로 말씀하셨다. “뭐가 무서워, 내가 맛 좀 보면 안 되냐? 맛보고 맛있으면 살 거다!” 나는 급히 판매원에게 해명했다. “죄송합니다. 이따가 같이 계산할게요.” 시아버지는 입안에서 한참을 씹으시더니 퉤퉤 하며 체리 씨를 꽤 멀리 떨어진 바닥에 뱉으셨다. 나는 무척 난처해서 얼른 가서 씨를 주웠다. 시아버지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나를 다그치셨다. “너 뭐 하냐?!” 나는 말했다. “아휴 아버님, 바닥에 뱉으시면 안 돼요. 제가 주워서 이따가 버릴게요.” 시아버지는 대뜸 화를 내시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너랑 나오니까 너무 창피하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내 마음속 말을 저렇게 내뱉으실까?!’ 이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속으로 시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기고 못마땅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왜 아버님을 이해하지 못할까? 아버님의 이런 모습은 모두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의 나쁜 습관일 뿐이고, 무지 속에서 잘못된 것을 옳다고 여겨왔을 뿐이니 아버님도 참 가여운 분이 아닌가.’
이 일로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았다. 이것은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억울하고 부당하다 여기며, ‘나 같은 사람을 당신들이 어디서 찾겠느냐’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잘하는데 아버님은 왜 나를 배려하지 않으실까’ 하고 말이다. 평소 집에서 나를 불러 일을 시킬 때 나는 왜 화가 났을까? 그것은 내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었다. 내 시간이 소중했고 나는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는 신성한 일을 한다고 여겼는데, 이는 결국 ‘나’라는 글자에서 출발한 것이며 사심이었다. 갈등을 만나면 밖을 향해 보며 남의 잘못을 생각하고 억울해하고 부당하다 여겼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좋기만 하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누가 당신에게 제고할 기회를 주겠는가? 내가 틀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명백한 일면과도 소통하며 시아버지께 감사드렸다.
일상생활에서 시부모님은 나의 거울이었고, 내 안의 집착과 잘못된 관념을 보게 해주셨다. 예를 들어, 시아버지가 늘 시어머니에게 삼시 세끼 무엇을 먹을지를 포함해 자신이 말한 대로 하라고 강요하시는 것을 보았다. 시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으로 시어머니를 바꾸려 하셨고 시어머니는 매우 반감을 느끼면서도 감히 내색하지 못한 채 작은 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은 후에는 결국 맞춰서 따르셨다. 그래서 나는 시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아내를 배려하셔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시어머니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 있다고 말씀드리려 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매우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아무도 나를 간섭할 수 없어!” 나는 이 일에서 반성했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위치에 서서 사람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가졌고, 자신이 시아버지보다 낫다고 여기는 자만심이 있었던 것이다. 시아버지가 나를 나무라실 때 나는 늘 몇 마디 변명하고 싶었는데, 이는 쟁투심이었다. 시아버지가 늘 트집 잡기를 좋아하시니, 나는 나 자신을 해명하고 싶었고 듣기 좋은 말을 듣고 싶었으며 모든 사람이 나를 좋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시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자신을 고집하며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보게 하셔서 나를 일깨워 주셨고 내가 착실히 수련하게 하셨다.
시아버지는 또한 내가 잘못하고 있을 때마다 항상 나를 일깨워 주셨다. 예를 들어 내가 안일하고 게을러져서 힘들다 여겨 일찍 쉬려 할 때면 그랬다. 시아버지는 어김없이 한밤중에 나를 불러 배가 고프니 밥을 달라고 하셨고, 새벽 2시가 넘어서도 내게 먹을 것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셨다. 또 한번은 한밤중에 대변을 바지와 바닥에 온통 묻혀놓으셨는데, 시어머니가 힘겹게 버티며 화장실에서 바지를 벗겨 빨면서 괴로워서 울기 직전이면서도 시아버지에게 나를 부르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고 대변이 묻은 바지를 빨고 바닥을 닦았다. 시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안해하셨고 내게 해명하셨다. “너를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시어머니를 위로하며 말했다. “이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에요. 저를 안쓰러워하지 마세요. 어머님 몸도 이러신데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얼른 가서 쉬세요.”
나는 내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이 불러온 일이며, 일어난 일들은 바로 시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더럽다고 싫어하는 마음을 제거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시어머니의 행동 역시 내 안의 일을 할 때 능력 있는 체하고 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보게 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와 병목이 있는 법이기에, 무작정 조화로운 환경만을 바라며 남의 비위를 맞추고 능력 밖의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현대의 변이된 관념의 영향을 심하게 받아 항상 자신이 꽤 괜찮다고 여기며 매우 자만했다. 성격이 내성적이면서 체면을 중시해 일을 할 때 능력 있는 체하기를 좋아했고 진실하지 못했다. 결국 남에게 잘해주는 것도 모두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마음 때문이었음을 알게 됐다. 예전의 나는 거의 이것을 위해 살았다. 이랬던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이후, 대법의 법리에 씻기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 사심을 버리고 오로지 남을 위하는 사람이 되려 했다.
기억나는 것은 어느 날 점심때 도시락을 사러 갔는데 시간이 조금 늦어 남은 반찬이 많지 않았고 고기반찬은 겨우 1인분 정도 남아 있었다. 이때 뒤에서 한 쌍의 연인이 들어와 내 앞으로 비집고 들어오더니 남은 고기반찬을 모조리 담아 가버렸다.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탐탁지 않게 여겼을 것이고 겉으로 아무 말 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그들의 자질이 낮다고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러지 않았고 매우 평온했으며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들 먹어요. 꽤 피곤할 텐데 영양이 필요하겠죠. 나는 연공하는 사람이니 조금 덜 먹어도 괜찮아요. 나는 가지를 먹으면 돼요.’ 스스로도 내 마음의 첫 반응이 이럴 줄은 감히 상상도 못 했고, 원래의 나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그날 내가 먹은 가지는 내 평생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가지였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이지 너무너무 고소하고 맛있었다. 나는 이것이 내가 대법에 따라 행했고, 올바르게 행동했기에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격려임을 알았다.
밤이 깊고 고요해지면 분주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사람 마음으로 이런 나날이 언제 끝날지 감히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의 경제 상황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도 감히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는 나를 보살펴주시는 사부님이 계심을 알았고, 조금이라도 속인의 사고방식대로 생각한다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깊고 고요한 밤에 앉아 있으면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시간이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법을 읽기 시작했다. 읽다 보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이번 생에 다행히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들어선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사부님이 계신다는 것이 정말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꼈다.
나는 시어머니께 편지를 한 통 써서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시어머니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드렸으며, 시어머니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에 동의하셨다. 시어머니 역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운 덕분에 통증이 다소 완화되셨다. 나는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저는 생명에는 윤회가 있고 부귀영화와 은혜와 원한, 애정은 모두 한순간의 연기처럼 지나가는 것이며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일생 동안 좋은 일을 해서 쌓은 덕과 나쁜 일을 해서 초래한 업력은 생생세세 따라다닌다는 것을요. 저는 사람이 병에 걸리는 진짜 원인을 알게 됐고, 인생에서 겪는 고난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게 됐으며, 인생의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만약 지금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집안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제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지도 못했을 것이며, 부부 사이에는 정 외에도 은혜와 의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가족들을 위해 베풀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전의 저는 그저 제 이익만을 잣대로 삼았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저는 수련하는 사람이니,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대로 행해야 해요! 저는 효를 다하고 책임을 다할 것이며 보답을 바라지 않겠어요!”
이제 나는 가정의 시련을 지나왔고 법공부를 하고 수련하는 환경도 다시 마련됐다. 1년의 착실한 수련 과정 속에서, 매 걸음마다 대법의 인도가 있었고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반드시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의 말씀을 따르며,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고 거듭 다짐한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23/51243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8/23/51243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