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다

글/ 샌프란시스코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운 좋게도 어릴 때부터 법을 얻었습니다. 다른 어린 대법제자들과 달리 부모님은 수련하지 않으셨고, 저는 초등학교 때 외삼촌 수련생을 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어릴 때 늘 제게 수련 환경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일반인이셨기에 명혜망에서 어린 대법제자들의 교류를 보며 그들이 대법제자 가정에서 태어난 것을 무척 부러워했습니다. 부모님께 왜 수련하지 않으시냐고 몇 번 여쭤본 적도 있는데, 그때마다 아직 일반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등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법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때로는 공부량이 매우 적어 정말 정진했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줄곧 보살펴주셔서 대법을 떠나지 않게 해주셨고, 다채롭고 온갖 유혹으로 가득한 일반인 사회에 휩쓸려 빗나가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부모님은 비록 수련하지 않으셨지만, 전반적으로 대법을 인정하고 지지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 속에서 대학 학업을 마쳤습니다.

진정으로 정진하며 수련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 와서 박사과정을 밟은 이후였습니다.

1. 학업과 업무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살아온 지난 긴 시간 동안 학업이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환경이 곧 제 수련장이었고, 좋은 성적과 사업에 대한 추구가 제 큰 집착심 중 하나였습니다. 아래에 이 집착심을 끊임없이 제거해 간 몇 가지 체득을 나누고자 합니다.

3년 전 미국에 와서 박사과정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기간 제 수련 상태와 학업 상태는 모두 매우 안 좋았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지도교수를 찾는 큰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학과 제도상 모든 학생에게 지도교수 배정을 보장할 수 없었기에, 지도교수를 찾지 못하면 퇴학당할 수도 있는 가혹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괴롭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제야 대법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출국한 것은 좋은 수련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어째서 해외에 와서 오히려 속인 일에 깊이 빠져 자신을 단체 수련 환경에 녹여내야 한다는 것을 잊었을까?’ 그래서 미국에 온 지 두 달 가까이 됐을 때 마침내 현지 수련생들에게 연락해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습니다.

대규모 단체 법공부 모임 장소가 비교적 멀어 차편으로 1~2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대규모 법공부에 참가한 후 어머니께 이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한 번 다녀오는 데 4~5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아신 어머니는 “거기에 가는 사람들은 젊은이는 별로 없고 다 나이 든 사람들뿐이지?”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입니다. 저와 나이가 같은 수련생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또 그런 일에 시간을 쓰지 말고 학업에 시간을 쏟으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어머니는 여태껏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요구한 적 없이 그저 푹 쉬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라고만 하셨는데, 법공부와 비교하니 뜻밖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천하의 사람들이 북적이며 모여드는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해서고, 분주히 오가는 것도 모두 이익을 위해서다(天下熙熙皆爲利來, 天下攘攘皆爲利往)’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절실히 체득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괜찮은 지도교수마다 학생들로 넘쳐났지만, 대규모 법공부 모임에서는 젊은이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반인 눈에는 이익을 도모할 수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았기에 일반인의 기준으로 가늠해서는 안 됐습니다. 생명에게 대법을 얻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소중하고 영원한 것이지만, 일반인은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업이 아무리 바빠도 저는 소규모 및 대규모 법공부에 꾸준히 참가했습니다.

첫 학기 기말고사 때 제 심성에 대한 한 차례 고비가 나타났습니다. 어떤 과목은 집에서 치르는데, 정해진 하루 중 임의의 두 시간 동안 접속해 시험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험 일주일 전,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학우 A를 만났는데 그와 또 다른 학우 B가 만든 ‘시험 팀’에 합류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먼저 B의 계정으로 로그인해 시험지를 본 후 A와 B가 함께 문제를 풀고 둘이 같이 도출해 낸 답을 제출한 뒤, 완전히 정답을 얻고 나면 A가 다시 자기 계정으로 로그인해 답을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A는 제게도 합류하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당시 그다지 응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제게 위험이나 손실이 전혀 없고 이득만 있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미국 대학 시험에 감독관은 없지만 ‘아너 코드(honor code, 감독관 없이 학생 스스로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미국 대학생 중에 사실 부정행위를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그 자리에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도 한 명 있었습니다. 친구는 이 과목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A의 생각에 동의하며, 누가 봐도 이득뿐인 일에 제가 망설이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이 일을 진지하게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지도교수를 찾는 압박이 컸기에, 시험 복습을 하지 않는다면 A처럼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중간고사를 잘 보지 못해 기말고사에 대한 부담이 더 컸습니다. 온갖 이익의 유혹 속에 한때 무척 흔들렸습니다. 다행히 수련인의 정념이 결국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의 첫 글자가 바로 진(眞)인데, 이렇게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면 어느 한 점이라도 진(眞)을 해낸 것인가? 이것이 수련인이 해야 할 일인가?’ 그래서 한 가지 생각을 확고히 했습니다. 사부님 말씀을 듣고 진을 해내리라, 나 혼자 힘으로 시험을 치르리라, 설령 시험을 아주 못 보더라도, 설령 복습이 연구 시간을 많이 잡아먹더라도 다 받아들이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과목 기말고사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점수를 본 순간 이 일을 올바르게 해냈다는 것을 알았고, 이는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후 현재의 지도교수도 찾았고 동시에 첫 번째 연구 작업도 마쳤습니다.

수련인으로서 고비는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올해 초, 여름방학 인턴십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시작 시기가 너무 늦어 대부분 회사의 인턴 채용은 이미 끝난 상태였습니다. 이때 중국의 한 B 회사가 떠올랐습니다. 그전까지는 미국에 있는 중국 회사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제품이 중국공산당(중공)을 위해 서비스되어 중공이 언론을 검열하고 중국인들을 세뇌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B 회사는 재력이 막강했고 최근 2년간 제공하는 대우가 매우 좋았습니다. 당장 인턴십을 구하지 못하는 곤경과 이익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잠깐 인턴을 하는 것쯤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을 외삼촌과 교류했더니 외삼촌은 찬성하지 않으시며 제가 중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어려울 거라고 하셨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미국 회사가 대우를 조금 덜 주더라도 상관없다고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것은 제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과 사업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할 기회이자, 중대한 시비와 개인의 이익 앞에서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 회사에 지원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 후 미국의 한 대기업 인턴 기회를 발견하고, 지도교수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먼저 AI에게 초안 수정을 맡겼습니다. AI는 제 어투가 너무 ‘절박하다(desperate)’, 즉 몹시 강하게 추구하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순간 마음이 움직였고 이것이 사부님의 일깨움임을 깨달았습니다. 안으로 찾기 시작해, 제게 이른바 좋은 앞날을 추구하는 매우 강한 명리심(名利心,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고, 주변 학우들이 모두 좋은 회사의 인턴 기회를 가진 것을 보며 질투심과 쟁투심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 뉴욕 지역에서 션윈 홍보에 참여해 매주 거의 이틀을 쇼핑몰에 가서 티켓을 판매했는데, 마음속에 션윈 홍보가 제 시간을 빼앗는다는 생각이 숨어 있었으니 이는 사심이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하며 자신의 일사일념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직장을 찾고 높은 월급을 받으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배척하고 그것이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부정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더욱 순수해졌으며, 초조함이 싹 가시면서 심지어 때로는 까닭 없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제 처지도 거의 곧바로 바뀌었습니다. 한 선배가 자기 회사에서 인턴을 채용 중인데 제 전공과 딱 맞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그녀는 십중팔구 채용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이 회사에 가서 인턴을 했고 여름방학에 베이 지역으로 왔습니다. 인턴 기간 훌륭한 지도를 받아 수확이 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돌이켜보니 사실 모든 것이 사부님의 안배였습니다. 예전의 그 미국 대기업은 저를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의 기술을 지도하는 교수는 다름 아닌 중국의 한 첨단 기술 회사 S의 창업자였습니다. S 회사는 중공에 안면 인식 기술과 서비스를 전문으로 제공해 적잖은 사람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하시어 그들 무리와 얽히지 않게 해주신 것입니다. B 회사에 대해서는 나중에야 알았는데, 현재 그들은 미국 팀을 감축하고 무게 중심을 중국으로 되돌리고 있어 그곳에 갔다면 소외되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동료들은 이에 대해 “이것은 지정학적으로 줄서기 문제”라고 평가했습니다. 저는 사실 대법이 일찌감치 제게 해답을 주셨으며, 대법의 편에 서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바르게 줄을 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줄곧 고심하며 안배해주시고 제자를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 밖으로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하고 서약을 이행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각지 설법13-2015년 뉴욕법회 설법)

올해 2월, 저는 처음으로 션윈 오프라인 홍보에 참여해 쇼핑몰에서 티켓을 팔았습니다. 한번은 티켓을 팔러 가기 전날, 뉴저지에 폭설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협조인 수련생에게 내일 가는지 물었더니, 다음 날 아침 날씨를 보고 외출할 때 눈이 오지 않으면 가라고 했습니다. 전날 밤 일기예보를 여러 번 확인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할 예상 시간이 계속 뒤로 미뤄졌습니다. 다음 날 외출하려 할 때 보니 날이 흐려 있었고, 눈 내리는 시간은 오후 2시로 늦춰져 있었습니다(저희는 정오부터 6시까지 티켓 판매였습니다). 그래서 가려고 준비하며 협조인 수련생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은 당초 배정된 다른 두 수련생이 가지 않기로 해서 오늘은 저 혼자뿐이라고 알려왔습니다. 그 말을 보자마자 가기 싫어졌고 협조인에게 말했더니, 협조인은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이 일이 중국에서 일어났다면 나는 갈까 안 갈까?’ 중국 대법제자들은 종종 열악한 자연조건뿐만 아니라 잔혹한 탄압에도 직면해야 합니다. 저는 해외에 와서 자유로운 환경을 누리는데 설마 안일함만 추구하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예전에 수련생들에게서 해외 대법제자가 중국 제자만큼 정진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산당 당문화(黨文化)를 피해 일을 극단적으로 처리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당장 밖의 날씨는 확실히 괜찮았고 단지 흐릴 뿐 외출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기회를 시험 삼아 이런 날씨에 쇼핑몰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고, 정말 아무도 없다면 다음번을 위한 경험으로 삼자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결국 쇼핑몰에 가기로 했습니다.

쇼핑몰에 도착해 보니 사람은 보통 일요일보다 적었지만 평소 금요일 인원수와 맞먹어 상상했던 것만큼 적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다른 수련생 한 분도 오셨고, 그 덕에 자신감이 크게 치솟았습니다. 한 백인 부부가 갓 태어난 어린 딸을 데리고 저희 카운터 앞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게 션윈 티켓값이 너무 비싸다고 말하자, 경험 풍부한 수련생이 그들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누었고 결국 이 부부가 기쁘게 표를 사도록 이끌었습니다. 제 두 눈으로 직접 표가 팔리는 것을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가 폭설 경보 때문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정말 이 부부를 놓쳤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해주심을 알았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션윈 티켓을 파는 과정은 행각과 매우 흡사하여, 수많은 사람의 거절과 무시에 직면하고 심지어 일부 주류 언론의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더없이 좋은 수련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는 최대한 선의로 중생을 대하며 미소를 지은 채 션윈을 소개하는 전단을 건넸고, 상대방이 안 좋은 반응을 보이는지는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는 수많은 따스함도 있었는데, 션윈을 본 많은 이가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주었습니다. 중생이 구원받은 후 명백해진 일면을 보았고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뻤습니다.

주변 친구들을 션윈 관람에 초대한 경험을 더 나누겠습니다. 재작년에 처음 공연을 보았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고 션윈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당시 ‘학우와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션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이 되어 공연을 2~3개월 앞두고 룸메이트들을 무척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들은 모두 중국인이었고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린 적이 있었는데, 그중 룸메이트 A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지만 룸메이트 B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들이 제게 다른 속셈이 있다고 여길까 봐 무척 망설였습니다. 시간이 훌쩍 지나 공연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안 돼, 더는 미루지 말고 말해야 해. 그녀들이 올해 석사 졸업을 하면 내게는 정말 기회가 없어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용기를 내어 그녀들에게 션윈 관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A는 듣자마자 예매 페이지를 열어보더니 좌석이 거의 다 매진된 것을 보고 제게 “왜 진작 말 안 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웃음이 났으며 그동안의 우려가 전부 사람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낸 장애물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뉴욕 회차에는 아직 표가 많아서 그녀와 뉴욕 공연 표를 예매했습니다.

A는 평소 매우 검소해 늘 불필요한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B는 소비를 좋아해 평소 외식을 나가면 으레 몇백 달러부터 썼습니다. 결과적으로 B는 션윈 티켓값을 보고 너무 비싸다고 하며 결국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A는 오히려 표가 비싸지 않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실 A가 삼퇴를 하여 이 생명이 구원받았기에 명백해진 일면에서 비로소 션윈의 소중함을 안 것이었습니다.

A와 션윈을 관람하는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녁 7시 회차였는데, 우리는 이미 뉴욕을 하루 종일 돌아다녔기에 A는 후반부에 졸기 시작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녀는 노래와 춤은 훌륭하지만 신과 말세의 재난에 관련된 내용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특히 가사 중의 ‘무신론, 진화론은 거짓말’이라는 대목은 중국에서 자란 사람에게 충격이 커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시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올해 또 다른 친구를 션윈 관람에 초대할 때는 작년의 ‘교훈’을 거울삼아 의식적으로 션윈에 박해 반대 내용이 있고, 중국 고대 문화가 신전(神傳) 문화라 신에 관한 내용도 많다고 알려주며 미리 ‘예방주사’를 놓았고, 친구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작년 상황을 감안해 특별히 사람이 정신이 맑은 시간인 오후 2시로 예매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몹시 실망스럽게도 이 친구 역시 관람하며 졸았고, 관람 후 제가 삼퇴를 권했지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2년 연속 친구와 공연을 본 경험은 제게 커다란 좌절과 의문을 안겨주어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션윈을 대하는 태도가 충분히 엄숙하고 공경스럽지 못했음을 발견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관람할 때는 처음 볼 때의 전율과 경이로운 느낌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 자신부터 최고의 상태로 션윈을 맞이하지 않았고, 심지어 잠재의식 속에 늘 일반인이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볼까, 재미없어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머릿속이 사람의 관념과 걱정으로 가득 찼으니, 그때의 저는 일반인으로 변해버린 게 아닙니까? 저의 관념은 친구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들이 더 잘 구원받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션윈을 대하는 태도가 충분히 엄숙하고 공경스러워야 비로소 일반인이 진정으로 션윈을 보며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베이 지역에서 두 차례 서명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아래에 몇 가지 체득을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 서명은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척 쑥스러워서 ‘예전에 션윈 티켓을 팔 땐 그래도 카운터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려줬는데, 여긴 주차장에서 사람을 붙잡아야 하니 너무 부끄럽다’라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첫발을 내딛지 못했습니다. 이때 동행한 80대 노년 수련생이 이미 사람을 찾아 서명을 받는 것을 보고 큰 격려를 받았으며 동시에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노년 수련생은 저렇게 심혈을 기울이는데 젊은 내가 우물쭈물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가가서 일반인과 어떻게 말문을 트는지 배운 뒤 직접 서명을 받으러 나섰습니다. 첫 번째 사람에게 서명을 받고 나니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대개 조금만 설명해도 흔쾌히 서명해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게 분별심이 있음을 발견했는데, 마주치는 중국인들이 늘 표정이 냉담하고 눈길을 피하며 심지어 일행과 함께 몇 마디 비웃기도 해서, 저는 중국인에게 서명을 받기를 꺼리며 외국인만 찾았습니다.

한 젊은 여성이 있었는데, 멀리서 볼 때는 유럽인인 줄 알았으나 가까이 다가가서야 중국인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돌아서기가 민망해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즉시 서명에 동의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멀리서 그녀가 중국인임을 알아보고 서명을 부탁하지 않았다면 이 생명은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구도한다는 것은 바로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라, 고르는 것은 慈悲(츠뻬이)가 아니다.”(각지 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저는 안으로 찾아 자신이 사람 구하는 일을 일반인의 임무 완수로 여기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똑같이 100명에게 물었을 때 서명하려는 외국인이 중국인보다 더 많으니 더 많이 서명을 받을 수 있고,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르는 것이자 자비심이 없는 체현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샌프란시스코에 서명을 받으러 갔을 때, 저는 중생을 대할 때 분별심을 갖지 말자고 시시각각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기이한 옷차림을 한 소녀가 있었는데 겉보기에 현대의 변이된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자비롭고 상서로운 마음가짐으로 다가가 서명에 관해 말해주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즉각 서명했습니다. 우리의 수련 상태가 진상 알리는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매번 서명을 받을 때마다 시간이 촉박해 제 말을 끝까지 들을 기회가 없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이들 중생을 보며 매번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고, 어떤 중생에게는 한 번 놓치면 영원히 놓치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회와 접촉할 기회이자 중생의 진실한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라 청년 대법제자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맺음말

과거를 돌아보니, 제가 대법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줄곧 비틀거리고 때로는 정말 정진하지 못한 채 일반인과 섞여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저처럼 못난 제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6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8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22/5135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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