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1996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30년의 수련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저항에 부딪히더라도 저는 늘 사부님과 법을 믿었습니다.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사존의 자비로운 보살핌과 수련생들의 묵묵한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자료를 전하고 만들고 배포하다
중국공산당(중공)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현지에는 경문도 없었고 진상자료도 없었습니다. 저는 시내에 아는 수련생이 있었기에 걸어서 4리를 가 현에 도착한 뒤 다시 차를 타고 5~6리를 가 시내에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우리집 형편은 비교적 어려워 집 앞뒤 뜰에 채소를 조금 심어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때때로 자녀들이 돈을 조금 주어도 저는 아까워서 조금도 쓰지 못하고 모두 남겨뒀다가 자료를 가지러 가는 교통비로 썼습니다. 매주 한 차례씩 다녀와야 했으며 자료를 가져온 뒤에는 다시 걸어서 현과 주변 몇 리, 어떤 곳은 십여 리 떨어진 시골의 수련생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자녀들은 제가 너무 힘들게 다니는 것을 보고 삼륜 자전거 한 대를 사줬습니다. 수련생이 어느 날 진상자료가 필요하다고 정해 놓으면 날씨가 어떻든 저는 비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자료를 가져다줬습니다. 이렇게 2년을 견지한 뒤 시내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돈도 없으신데 이렇게 오가며 자료를 가져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제 당신이 사는 현(縣)에도 자료를 만드는 곳이 있으니 돌아가서 그곳에서 가져가세요.” 저는 자료를 가져오고 배달하는 일을 또 7년 동안 했으며 삼륜 자전거마저 낡아서 더는 탈 수 없게 됐습니다.
2008년 수련생이 비용을 내 기계와 설비를 사줬고 우리집에 자료점을 세워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웠습니다. 진상자료를 다 만든 뒤에는 제가 다시 수련생들 집까지 가져다줬으며 저 자신도 밖에 나가 진상자료를 배포하며 사람을 구했습니다.
저는 자료를 배달할 때면 정말 기운이 나고 힘이 솟았습니다. 여름에는 더운 줄 몰랐고 겨울에는 추운 줄 몰랐으며 비가 오는 날에도 비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0여 도까지 내려갔는데 이런 날씨에는 솜신발이 충분히 두껍지 않으면 발이 얼 정도였습니다. 한 수련생이 보니 제가 신고 있던 신발은 밑창이 떨어지려 했고 발가락까지 드러나 있었는데도 저는 여전히 삼륜 자전거를 밟으며 밖으로 자료를 배달하고 있었습니다. 돌아온 뒤 수련생이 발이 시리지 않으냐고 묻자 저는 “전혀 차갑지 않았어요. 제 발은 따뜻하기만 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솜신발을 보니 정말 발가락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돌봐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료점은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줄곧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저는 이제 92세가 됐고 삼륜 자전거도 두 대나 탔습니다.
2. 모두 사부님께서 해주시는 것이니 저는 마음만 쓰면 됩니다
저는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를 몇 년 다니지 못했고 조금 알던 글자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배우고 자료를 인쇄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제가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법은 여러 차례 기적을 보여줬고 저는 이를 통해 깊이 체득했습니다. ‘모두 사부님께서 해주시는 것이니 나는 마음만 쓰면 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 신기한 컴퓨터
컴퓨터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꾸 기억하지 못하고 계속 잊어버렸습니다. 수련생은 농담으로 “자꾸 잊어버리시니 아예 ‘늘 깜빡’이라고 이름을 붙여드려야겠네요”라고 했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가르치는 것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저는 병음도 몰랐고 대소문자는 더욱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까스로 무작정 외워 비밀번호를 기억해 컴퓨터를 켤 수 있게 되자 수련생은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수련생이 돌아와 제가 컴퓨터를 얼마나 배웠는지 보며 “컴퓨터를 한번 켜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동수님을 보니 또 잊어버렸네요”라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혼자 집에 계실 때 어떻게 켜셨는지 그대로 해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수련생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저는 키보드에서 이것도 눌러보고 저것도 눌러봤는데 컴퓨터가 켜졌습니다. 수련생이 “누른 게 다 틀렸는데 어떻게 컴퓨터가 켜진 거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동수님이 가고 나니 또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누르면서 사부님께 컴퓨터를 켤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켜졌어요”라고 했습니다.
2) 모두 사부님께서 해주시는 것
그날 수련생이 무척 애를 써가며 하나하나 손수 가르쳐줘서 제가 겨우 인쇄하는 법을 배우자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러 돌아왔는데 마침 제가 인쇄하고 있었고 인쇄된 결과물도 아주 좋았습니다. 수련생은 컴퓨터에서 제가 인쇄 설정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다가 설정 화면에는 ‘홀수 페이지만’으로 돼 있는데 실제로 인쇄돼 나오는 것은 짝수 페이지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생은 저를 한번 보고 짝수 페이지를 인쇄하고 있는 프린터를 한번 보더니 다시 컴퓨터 화면에 ‘홀수 페이지만’으로 설정된 것을 보며 어리둥절해했습니다. 제가 설정해 놓은 내용을 모두 인쇄하고 나자 수련생이 “인쇄 설정을 어떻게 하시는지 한번 보여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직접 조작해 보여줬습니다. 저는 인쇄 부수만 선택한 다음 ‘인쇄’를 눌렀고 다음 면을 인쇄할 때는 한쪽 면이 인쇄된 종이를 뒤집어 다시 인쇄 부수를 선택하고 ‘인쇄’를 누르면 됐습니다. 저는 줄곧 이렇게 설정해 인쇄했으며 인쇄된 것은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수련생은 놀라며 “정말 사부님께서 해주시는 거네요!”라고 했습니다.
3) 과부하로 작동한 프린터
제 프린터는 매주 진상자료를 200~300부씩 인쇄해야 했고 하루에 6시간 넘게 작동했습니다. 사람은 쉬어도 기계는 쉬지 않았습니다. 가끔 기계가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발정념을 하면 다시 잘 작동했습니다. 어느 날은 기계가 정말 움직이지 않아 수련생이 도와서 수리하러 가져갔습니다. 수리기사는 “이 브랜드 기계는 4만 장 정도 인쇄하면 더는 안 되는데 이 기계는 벌써 10만 장이나 인쇄했네요. 이게 무슨 기계죠?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수련생은 업무상 인쇄량이 아주 많다고 했습니다.
프린터를 수리해 가져온 뒤 소책자 다섯 권을 인쇄하자 밖으로 종이를 뱉어내기 시작했고 컴퓨터 화면에는 ‘용지를 넣어주십시오’라고 표시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계가 더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계를 향해 “너는 아직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으니 잘해야 해. 힘내서 일하자! 사명을 완수하고 우리 함께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사부님, 기계를 도와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사부님 감사합니다! 기계도 고마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계가 저절로 정상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이미 10만 4천 장을 인쇄했고 매일 소책자 열 권씩 인쇄하는데 아무런 이상도 없이 계속 인쇄할 수 있습니다.
4) 잉크를 잘못 넣은 뒤 나타난 신기한 현상
프린터에 잉크를 넣는 문제를 수련생은 제게 수없이 당부했습니다. “잘 살펴야 해요. 잉크가 떨어져서도 안 되고 잘못된 잉크를 넣어서도 안 돼요.”
어느 날 저를 가르쳐준 젊은 수련생이 제가 정상적으로 인쇄할 수 있는지 보러 우리집에 왔습니다. 프린터는 한창 인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인쇄된 글씨를 확인했는데 아주 선명했습니다. 그는 또 잉크통을 살펴보더니 “잉크통 하나가 완전히 비었는데 이러면 공기가 들어간 것 아닌가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기계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정상적으로 인쇄했으며 인쇄된 색상도 조금도 빠짐이 없었습니다. 이 젊은 수련생은 서둘러 프린터를 멈추고 잉크를 보충했습니다. 잉크를 다 넣은 뒤 다시 인쇄를 계속했습니다. 그는 잉크가 없을 때와 잉크를 보충한 뒤 인쇄된 중간 효과를 기다리며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예상했던 색 빠짐이나 기포로 인한 공백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젊은 수련생도 모두 사부님께서 해주신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또 한번은 제게 기술을 가르쳐준 수련생이 다시 왔습니다. 제가 여전히 인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인쇄 상태를 확인했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잉크통을 살펴보더니 놀라며 “빨간색 잉크통에 어떻게 파란색 잉크를 넣으셨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인쇄된 자료의 색상을 확인했는데 조금도 뒤섞이지 않았습니다. 컴퓨터 화면에 어떤 색으로 나오든 인쇄된 것도 그대로 그 색이었습니다. 수련생은 애를 써서 빨간색 잉크통을 깨끗이 씻어낸 뒤 빨간색 잉크를 넣고 조정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컬러 페이지를 인쇄해 보니 파란색 잉크를 넣었을 때 인쇄된 색상과 똑같았습니다.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법은 정말 너무나 신기합니다!
3. ‘두렵지 않아요, 사부님께서 도와주시니까요’, 병업 시련에서 벗어나다
저는 수련하기 전에 몸이 좋지 않아 늘 이런저런 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법 수련에 들어선 뒤로는 어떤 병도 없어졌습니다.
한번은 갑자기 코피가 났는데 화장지 두 롤을 써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본 수련생이 “연세도 이렇게 많으신데 피를 이렇게 많이 흘리시면 어떡해요. 사람 몸에 피가 얼마나 된다고요. 얼른 자녀들에게 연락해서 병원에 가보세요. 자녀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지 마시고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아요. 제게는 사부님이 계세요”라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끝내 자녀들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고집했고 자녀들은 저를 현 병원으로 데려가 전신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병도 없었습니다. 의사는 제 신분증을 보고 제가 90세가 넘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여기서는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빨리 시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시 병원에 가서 다시 전신 검사를 받고 MRI 검사까지 했지만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의사는 “아마 모세혈관이 터진 것 같습니다. 괜찮으니 집에 돌아가세요”라고 진단했습니다. 저는 원래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사부님이 계시는데 자녀들만 괜히 한바탕 고생하게 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하면서 저는 건강해졌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해나가고 있으며 자녀들에게 전혀 폐를 끼치지 않고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집 앞뒤 뜰에 심은 채소는 자녀들에게도 나눠주고 퇴직금이 남으면 자녀들이 돈이 부족할 때 제가 도와주기도 합니다. 다섯 자녀 모두 파룬따파는 좋다고 합니다.
지금 저는 이미 92세가 됐지만 여전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고 프린터로 사람을 구하는 자료도 인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한 면이며 대법 사부님의 위대함입니다! 앞으로 길이 아무리 길고 멀더라도 저는 반드시 바르게 잘 걸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17/51247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8/17/51247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