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자 남편이 참혹한 교통사고에서 살아 돌아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24년 5월 어느 날 남편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직접 차를 운전해 직장(퇴직 후 재고용) 기술 세미나에 참석하러 가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교통경찰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와서야 우리는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듣기로는 110, 120, 119 세 종류의 차가 차례로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남편의 승용차는 충돌 후 불이 붙어 완전히 폐차됐고 현장은 무척 끔찍했다. 120 구급차가 남편을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을 때 그는 이미 완전히 혼수상태였다. 왼팔은 거의 절단될 지경이었고 위팔의 아주 긴 구간은 뼈와 피부와 살이 완전히 으스러져 결손된 상태였다. 개방성 손상으로 출혈량도 많았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10여 명의 의사가 그를 둘러싸고 살펴보고 있었으며 나는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이 모두 자리를 떠났다. 그때 한 의사가 다가와 나에게 그의 가족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내라고 답했다. 의사는 와서 한번 보라고 말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남편 앞으로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꼭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사부님께서 당신을 구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그를 향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반복해서 외웠다. 나는 사부님께서 바로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에 무척 침착했으며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이때 나이가 지긋한 주임의사가 와서 남편을 응급 처치하려고 준비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의사들은 회진 후 대부분 그를 살릴 가망이 없다고 보고 응급 처치를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내 잠재의식 속에서 이 의사는 사부님께서 안배해 보내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혈 등 응급 처치를 받은 후 병원의 한 담당 의사가 아들에게 말했다. “왼팔은 절단해야 하고 오른쪽 눈은 실명할 것입니다. 이 병원은 조건이 다소 열악하고 기술력과 의료 조건 등이 매우 제한적이라 성(省)내의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는 길에 최소 한 시간은 걸리고 위험 부담이 커서 걱정입니다.” 아들과 직장(나와 남편은 같은 직장이었다) 상사는 모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나는 단호하게 바로 병원을 옮기겠다며 내가 구급차에 동승해서 돌보겠다고 말했다.

구급차에 오른 나는 한 손으로 남편의 발을 붙잡고 끊임없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다. 가는 길은 매우 순조로웠다. 직장 상사와 고향 출신 동료 한 명이 미리 병원 측과 연락해 둔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가 응급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거의 5시간에 걸친 응급 수술 내내 나는 수술실을 향해 계속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다.

남편은 수술 후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은 매일 오후 한 번 20분 동안만 가족 면회가 허용됐다. 나는 처음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진선인(眞·善·忍)’ 호신부(護身符) 목걸이를 남편의 목에 걸어줬다. 의사의 허락을 얻은 후에는 ‘보도(普度)’와 ‘제세(濟世)’가 담긴 대법 음악 MP3를 소리 내어 틀어 남편의 베개 밑에 놓아뒀다. 면회할 때마다 충전이 다 된 MP3로 교체했다. 이튿날 아들이 면회했을 때 중환자실 주임의사는 아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아버지가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깨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셋째 날 밤 10시가 넘어서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오직 사부님만이 그를 구하실 수 있다며 제발 그를 구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님께서 내게 일깨움을 주셨다. 그의 주의식이 사고 현장에서 육신을 떠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고 당시 현장이 무척 끔찍했으니 그가 얼마나 놀랐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사부님의 일깨움을 깨닫고 즉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 뜻을 전했다. 아들은 곧바로 차를 몰고 며느리, 그리고 며느리 아버지와 함께 사고 지점으로 달려갔다. 아들과 며느리는 그곳에서 큰 소리로 “아빠 우리와 함께 집으로 가요!”라고 외쳤다. 나는 며느리 아버지에게 남편의 이름을 부르게 했고 나도 마음속으로 그 방향을 향해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아들을 따라 병원 중환자실로 돌아가 쉬라고 외쳤다. 이 과정을 거친 후 나흘째 오후 면회를 갔을 때 남편의 얼굴에 뚜렷하게 생기가 도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주의식이 이미 육신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흘째 오전, 나는 아들과 함께 사건을 담당한 교통경찰 책임자를 찾아가 사고 차량에서 신분증 등 물건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차가 완전히 폐차된 것을 보았다. 나는 개인 물품 몇 가지를 찾았고 막 떠나려던 참이었는데 아들이 갑자기 차량 뒷부분에 금속 막대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쪽 끝은 들쭉날쭉하고 날카로운 흉기 같았다. 아들이 교통경찰에게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교통경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이고! 이건 그 차(현지의 대형 청소차)의 보호대인데 부딪혀 떨어져 나간 이 보호대가 아버님 차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서 다시 아버님 왼팔을 관통한 후 차 뒷부분에 떨어진 겁니다. 정말이지 1초 차이로 벌어진 일입니다.”

아들은 교통경찰에게서 사고 현장 사진 몇 장을 보았고 이어서 나와 아들은 함께 사고 현장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봤다. 사고 지점이 마침 내리막길이었음을 발견했다. 당시 남편이 의식을 잃은 후 차는 통제력을 상실했고 오른쪽 화단을 들이받았다. 화단도 차를 막지 못해 차는 다시 화단 위의 나무 한 그루를 들이받고 나서야 멈춰 섰으며 그 후 차량에 저절로 불이 붙었다. 이번 교통사고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심각한 교통사고를 두고 의사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남편이 살아날 희망이 거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매우 자신이 있었고 사부님께서 반드시 그를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레째 오후 면회를 갔을 때 남편이 깨어난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당시에 이렇게 큰 경사를 왜 의사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의아했다. 알고 보니 중환자실 주임은 그가 정말로 깨어났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회광반조(回光返照, 죽기 직전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현상)’ 현상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주임의사는 아들에게 기뻐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중에 중환자실 주임은 그가 정말로 깨어난 것을 보고 불가사의하게 여겼다. 그는 우리 직장 상사와 아들 앞에서 이렇게 생명력이 강할 줄은 몰랐다며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한동안 머문 후 나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21일 후 남편은 응급과 일반 병실로 옮겼다. 병실을 옮길 때 중환자실 진단서에는 1 두개내 손상(중증), 2 미만성 축삭 손상, 3 오른쪽 눈 수정체 탈구 등 모두 10여 군데의 손상이 적혀 있었다. 미만성 축삭 손상은 뇌손상 중에서도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것으로 다수가 식물인간이 된다. 어떤 상황이든 나는 사부님께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일반 병실로 온 후 우리 가족은 매일 24시간 그를 곁에서 돌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려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왼팔을 절단하지 않게 해달라고 나는 사부님께 보호를 청했다. 나는 사부님께 그는 팔을 절단할 수 없고 그의 손은 연공할 때 써야 하니 사부님께서 보호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 병원의 정형외과 주임의사도 절단하지 않고 보존 치료를 하는 데 동의했지만 상처가 워낙 커서 치료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했다.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감염될 수 있고 상처에 조금이라도(세포 하나라도) 감염이 있으면 최종 내고정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4차례 괴사조직 제거 수술을 한 후 의사는 세균 배양 검사 결과 여전히 감염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더 이상 괴사조직 제거 수술을 하지 않겠다,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어떤 기적이든 일어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생각을 한 후 이튿날 정형외과 의사가 아들을 찾아와 면담을 요청해 나와 아들 모두 갔다. 그는 외과 주임의사가 곧바로 피부 이식 수술을 하려고 한다며 외과 의사도 불러 이 방안에 동의하는지 우리에게 물었다. 이 방안이 마침 내 생각과 일치했기에 나는 즉시 아들에게 이 방안을 택하게 했다. 하지만 이 수술은 난도가 꽤 높았다. 환자의 왼팔에서 가장 가까운 등 부위에서 피부와 살을 떼어내 왼팔의 제거된 위치에 올려놓아야 했고 게다가 혈관과 세포 신경 등을 모두 잘 연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님 법신께서 의사를 지도해 수술을 해달라고 청할 수밖에 없었다. 외과 의사의 수술 과정은 무척 성공적이었지만 혈관과 신경이 제대로 연결됐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했다. 며칠 후 의사는 이번 피부 이식 수술이 아주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사들은 모두 흥분해 사진을 찍어 서로 돌려보고 관련 상사에게 이 좋은 소식을 보고했다.

입원한 병원은 우리집에서 매우 멀어 왕복 차로 거의 4시간이 걸렸다. 나는 여동생(수련생)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우리 자매는 매일 교대로 당직을 섰다. 나는 밤에 병간호를 하고 낮에는 집으로 돌아갔으며 집에 돌아온 후 연공을 하고 법공부를 했으며 남편을 위해 맛있는 반찬을 준비했다. 기회가 있을 때는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당시 남편의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나는 매일 잠을 무척 적게 잤지만 우리는 세 가지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고 정신 상태도 모두 아주 좋았다.

또 20여 일이 지난 후 나는 병원 측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들은 집으로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아빠를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모셔 고압산소 재활 치료를 받게 하고 싶어 했다. 나도 아들의 요구에 동의했다. 이제 집과 가까워지니 우리는 조금 한결 수월해진 느낌이 들었다. 재활병원에서 그는 매일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경건히 외우고 매일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다. 그의 몸은 기적처럼 회복돼 바닥을 딛고 걸을 수 있게 됐고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도 갈 수 있게 됐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이 병문안을 왔을 때 다들 큰 충격을 받으며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복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도 기회를 빌려 직장 동료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경건히 외우는 것의 신기한 효과를 이야기했다. 이 일을 통해 직장의 적지 않은 동료가 파룬궁에 대해 비교적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됐다. 업무를 시작한 후 계속 남편에게서 기술 지도를 받아온 젊은 핵심 기술자 한 명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보통 여성이 아니시네요! 그 짧은 시간에 아주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 속에서 이렇게 신기한 치료 회복 효과를 얻으시다니요. 보아하니 그 시절(내가 3차례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을 당했던 기간을 가리킴)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저버리지 않고 지켰던 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이었네요!”

거의 1년에 걸친 여러 차례의 수술 치료와 재활 치료를 거치며 그는 전후로 10차례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는데 매 수술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떨어질 수 없었다. 병원의 원래 진단에 따르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깨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의 사고 능력은 완전히 정상이고 기억력도 나쁘지 않다. 팔은 절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눈은 실명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다. 지금 그는 매일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듣고 나와 함께 30분이나 한 시간씩 연공을 한다. 연공 동작이 다소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몸 상태 회복은 그야말로 비약적이다. 지금 매일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으니 그의 회복 결과는 그야말로 기적이다!

아들은 대법 사부님께서 아버지를 구해주셨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잘 안다. 그래서 아들은 과일을 사서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려 감사를 표했다! 남편도 집에 돌아온 후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려 감사를 표했다! 우리 직장에는 기술 인재가 많고 보통 다 고급 지식인들인데 많은 사람이 중공 거짓말의 세뇌를 아주 깊게 받았다. 남편 몸의 신기한 회복을 통해 예전에 진상을 몰랐던 일부 사람도 진상을 기꺼이 들으려 했고 나를 보는 눈빛과 낯빛 모두 칭찬과 존중으로 변했다.

병원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같은 병실 환자와 가족에게 진상 알리는 것을 잊은 적이 없다. 2차 눈 수술을 마친 그날 밤 남편은 잠들지 못했다. 수술 요건상 반듯이 눕지 못하고 엎드려서만 자야 했기에 밤새 침대에서 뒤척이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일어났을 때 나는 같은 병실 환자와 가족에게 어젯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들은 우리는 괜찮다며 당신이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으니 정말 수양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의 일언일행을 보며 마음속 깊이 파룬따파가 좋다고 인정했다! 의사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는 무척 적었지만 기회만 있으면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부님의 은혜는 정말 큽니다! 은혜로운 사부님께 머리 조아려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6/51076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8/6/510763.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