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을 지켜준 이웃 부부

—위기 속에서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한 좋은 사람들

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중공 악당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박해한 20여 년 동안, 나와 가족은 대법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에게 여러 차례 납치돼 박해받았고, 친정 식구들은 심지어 수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나와 가족이 파룬따파 수련을 굳게 지키며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보호와 일깨움 덕분이고, 마음씨 착한 친척과 친구들이 다년간 베풀어 준 도움과 격려 덕분이다.

1. 대법서적을 지켜준 이웃 부부

2002년 초, 날씨가 몹시 춥고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중공 악당의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매우 심각했다. 남편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다가 노동수용소에 불법 감금됐다. 나는 한 살이 넘은 딸을 데리고 동쪽에 있던 우리집에서 서쪽 시댁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 대법서적을 잘 보호하기 위해 책을 잘 싸서 위층 이웃 언니 집에 맡겼다. 이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알게 된 지 반년밖에 안 됐지만 오빠와 언니 부부의 인품이 좋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우리집에 일어난 일을 안 이후, 대법서적을 맡기고 싶다는 내 부탁을 듣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뜻 승낙하며 말했다. “동생, 안심해. 우리가 꼭 잘 보관해 둘게!”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흘렀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목이 메어 말했다. “언니, 고마워. 정말 너무 고마워!”

세월이 흘러 2010년 말, 나는 다시 동쪽 우리집으로 이사 왔다. 며칠 후 어느 날 아침,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언니였다. 언니는 품에 보따리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 “동생, 돌아왔구나. 이거 네 물건이야.” 나는 첫눈에 내 대법서적 보따리임을 알아봤다. 정말 놀랍고도 기뻤다. 놀라운 것은 거의 10년이 다 돼가는데 언니가 약속을 지켰다는 점이었고, 기쁜 것은 대법서적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책장은 약간 누렇게 변하고 제본용 철심은 녹슬었지만 책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나는 기뻐서 언니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다시 이사 온 이후, 나는 줄곧 기회를 찾아 오빠와 언니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고 싶어, 날을 잡아 일부러 그들 집에 가려 했다. 어느 날 오후 4~5시쯤, 언니가 우리집에 놀러 와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새 날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언니는 여전히 갈 기색이 없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차! 내 깨달음이 이렇다니. 오늘 언니가 진상을 들으러 먼저 찾아온 거잖아!’

나는 화제를 돌려, 우선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언니가 이토록 오랫동안 용감하게 대법서적을 보호하는 책임을 져준 것에 다시금 감사드리며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나는 또 언니에게 수년간 대법 진상을 똑바로 알려주지 않은 것을 사과했다. 그러고는 나와 어머니가 대법 수련에 들어선 이후 몸과 마음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와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6년, 병이 깊었던 어머니는 대법 수련 후 질병이 사라지고 새 삶을 얻었다. 나는 10대 때부터 고질적인 피부병을 앓아 일 년 중 세 계절은 병이 도졌다. 온몸이 심하게 가려워 피투성이가 되도록 긁었고 온종일 꽁꽁 싸매고 다녔다. 수년간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어 20대 때는 거의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그러다 전환점을 맞아 대법을 수련한 이후 30년 동안 한 번도 재발하지 않고 완전히 나았다. 대법 사부님께서 내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것이다. 언니는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또 10여 년간 우리 온 가족이 당한 박해 상황을 들려주었다. 중공이 조작한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말했고,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의 장기적출을 자행한 범죄를 알렸다. 나는 중공이 파룬따파를 모함하고 박해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으며 도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공은 우리 중국인들을 자신과 하나로 묶어 당, 단, 대에 가입할 때 생명을 당에 바치겠다고 선서하게 했으니, 우리가 가입했던 당, 단, 대에서 탈퇴해야만 인류의 재난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고 가명으로 해도 된다고 알려줬다. 언니는 듣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삼퇴에 동의했다. 나는 언니가 오빠에게도 말해주길 바라며 대답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언니는 흔쾌히 대답했다. 이때 벌써 밤 7시가 넘어 언니가 일어나려 하기에, 나는 얼른 진상 호신부(護身符) 두 개를 꺼내 주며 평소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평안을 지킬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언니는 기뻐하며 연신 말했다. “고마워!”

이튿날 계단을 내려갈 때 마침 언니와 마주쳤는데, 언니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남편도 대답했어. 삼퇴에 동의했어!” 나는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 잘됐네. 이제 안심이야.” 또 며칠 지나 길에서 오빠를 만났는데 오빠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신부를 늘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 넣어뒀어. 어딜 가든 가지고 다녀.” 나는 참지 못하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최고야!” 오빠는 환하게 웃었다.

2. 외삼촌과 외숙모가 유랑하던 어머니를 받아주다

1999년 ‘7·20’, 중공의 박해가 먹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으며 밀려왔고, 본래 따뜻했던 가정은 그들의 박해로 산산조각 났으며, 마을의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어쩔 수 없이 ‘수련 포기 보증서’를 썼다. 어머니는 단호히 쓰지 않으며 평생 대법을 굳게 수련하겠다고 다짐하셨다. 이때부터 우리집은 중공의 감시 대상이 됐다. 어머니는 경찰에게 잡혀 파출소로 끌려가 쇠창살에 묶인 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셨다. 이어서 경찰은 어머니를 구류소에 가뒀다. 어머니는 구류소에서 나온 이후 또 ‘전향반’에 갇히셨다. 어머니는 온갖 시련 앞에서도 시종일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대법에 대한 마음은 반석처럼 굳건했다. 경찰은 사흘이 멀다 하고 우리집에 와서 공갈 협박하며 돈을 뜯어냈고, 심지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이닥쳤다. 아버지는 충직하고 정직한 분이라 이런 두려운 나날을 견디지 못해 온종일 술을 드시고 밥도 드시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파출소에서 또 잡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조용히 살며 더는 고통받지 않게 하려고 어쩔 수 없이 유랑의 길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급히 집을 나서느라 돈 한 푼 없었고 입을 옷도 없었다. 집을 떠난 이후 어디로 갈 수 있었을까? 어머니가 박해받은 이후 친척들은 진상을 몰라 잇따라 질책하고 원망했으며, 연루될까 두려워 모두 피하기 바빴다. 어머니는 사촌 오빠 부부(내 외삼촌과 외숙모)를 떠올리셨다. 예전에 외숙모와 어머니의 사이는 친자매보다 좋았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외삼촌 집에 의탁하러 가셨다.

다행스럽게도 외삼촌과 외숙모는 거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따뜻하게 맞아주며 하루 세끼 따뜻한 밥과 국을 챙겨주셨다. 외숙모는 한 번도 귀찮아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고, 오히려 어머니에게 마음 푹 놓고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어느덧 20여 일이 지났고, 어머니는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떠나기로 하셨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줄곧 진심으로 만류하셨다. 어머니가 떠나실 때, 그분들은 어머니에게 돈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주셨고, 어머니가 무사히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세월이 훌쩍 흘러 20여 년이 지났고 어머니는 일찌감치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대법 진상을 똑바로 알리셨다. 지금 외삼촌과 외숙모는 비록 70대가 넘으셨지만 여전히 정신이 맑고 몸도 건강하시다.

3.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깨닫고 복을 받은 둘째 고모부

수년 동안 어머니는 이전의 앙금을 따지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던 친척들에게도 수차례 여러 기회를 찾아 진상을 알리셨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거나 핑계를 대며 피했다. 어머니는 낙심하지 않고 줄곧 자비와 선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셨다. 많은 친척이 대법 진상을 안 후 복을 받았다. 여기서는 둘째 고모부가 마오쩌둥 마귀 사진을 태워버리고 사령(邪靈)을 제거한 이후 복을 받은 신기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2025년 새해, 어머니는 또 둘째 고모 집에 가셨는데 문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여전히 마오쩌둥 마귀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셨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고모부에게 이 마오 사진 뒤에는 사령이 있으니 집에 걸어두면 좋지 않다며 떼어서 태워버리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고모부가 더 반대하지 않고 즉시 떼어 화로에 넣고 태우셨다. 어머니는 거듭 둘째 고모와 고모부에게 평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재난을 상서로움으로 바꾸고 위험을 평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당부하셨다.

한겨울이 다가왔고, 아버지 기일에 고모와 고모부가 모두 오셨다. 둘째 고모는 만나자마자 흥분해서 자기 집에 일어난 신기한 일을 이야기하셨다.

둘째 고모부는 미장이인데 올해 79세이시다. 젊은 시절 오랫동안 쪼그리고 일하느라 과로로 병을 얻어, 양다리에 하지정맥류가 생기고 무릎뼈가 변형돼 심할 때는 걷지도 못하셨으며,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서야 간신히 혼자 걸으실 수 있었다. 새해가 지난 어느 날 오후, 고모부는 틈이 나서 밥 지을 때 쓸 땔감을 주우러 산에 삼륜차를 타고 올라가셨다. 오후가 훌쩍 지나고 날이 점점 어두워졌는데도, 둘째 고모가 집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고모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애가 타서 안절부절못했다. 산에는 마른 나뭇가지가 널려 있어 땔감을 줍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둘째 고모는 고모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되어 이웃들에게 산에 가서 함께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웃들은 손전등을 들고 산에 올라가 찾으며 소리쳤고, 한참을 가서야 마침내 연이어 대답하는 고모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웃들이 소리를 따라 다가가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랐다. 나뭇가지가 가득 실린 채 옆으로 뒤집힌 삼륜차 밑에 고모부가 깔려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는 하필이면 수술을 두 번이나 한 다리를 덮치고 있었다. 시간상으로 미루어 볼 때, 다리가 차 밑에 깔린 지 적어도 두 시간은 넘은 상태였다. 땅은 축축하고 차가워 80세에 가까운 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이라도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게다가 다친 다리가 깔린 것이다! 이웃들은 얼른 차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누군가 부축하기도 전에 고모부는 스스로 일어섰고, 다리는 아프지도 저리지도 않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길에도 다른 사람의 부축을 마다하고 놀랍게도 스스로 몇 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너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고, 이웃들은 다들 말했다. “이 어르신은 정말 복도 많고 명도 기셔!”

둘째 고모가 이야기를 마치자 어머니는 고모에게, 고모부가 새해에 권고를 듣고 마오쩌둥 마귀 사진을 태워 사진 뒤의 사령을 없앴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다. 고모부가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었기에 사부님께서 그를 보호해주신 것이라고 하셨다. 이때 둘째 고모는 비로소 크게 깨닫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깊이 믿게 되셨다. 고모는 자신도 진상을 알려서 이 일을 고향 사람들에게 말해주어 그들이 모두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겠다고 하셨다.

둘째 고모의 변화는 나와 어머니를 무척 놀라게 했다. 고모는 과거에 절대적인 무신론자였고, 악당이 파룬궁을 모함하고 날조한 이후에는 누가 파룬궁이라는 세 글자만 꺼내도 밖으로 뛰어나가는 등 아무튼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오늘, 고모부가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고 복을 받은 신기한 경험을 직접 목격하시고는 진심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고모부를 구해주신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린 것이다! 둘째 고모 가족의 변화를 보며, 나와 어머니는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 진상을 똑바로 알려 사람을 구하는 데 더욱 큰 확신을 갖게 됐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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