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난성 통신원) 후난성 샹탄(湘潭)시 77세 파룬궁수련자 후둥샤(胡東霞)는 여러 차례 중국공산당(중공) 직원에게 박해당해 부당한 가택수색, 구류를 당하고 마약중독치료소, 구치소, 세뇌반, 감옥, 노동수용소에 감금됐다. 그녀는 세 번의 부당한 형을 선고받았고, 노동수용소와 감옥에서 참혹한 고문을 당해 불구가 됐으며 2026년 2월 21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후둥샤는 샹탄 망간광산 기전처의 은퇴한 직원이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그녀는 오랫동안 중병에 시달렸다. 심장병, 심부전, 신장 문제 등이 끊이지 않았고 혈색소가 가장 낮을 때는 4.5g에 불과했으며, 꼬박 25년간 불면증에 시달려 거의 ‘20여 년간 약을 달고 사는 약골’이 됐다.
1996년 9월, 그녀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신체 상태에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가 나타났다. 다년간의 고질병이 치료하지 않고도 저절로 나았으며, 온몸에 병이 없어 가벼워졌고 활기가 넘치며 정정하고 힘이 넘치게 됐다.
여러 차례 납치 감금돼 부당한 1년 반 형을 선고받아
2000년 3월 30일, 후둥샤는 샹탄시에서 치안 구류 15일을 당했는데, 이른바 사건 담당자는 샹탄 망간광산 공안처 경찰 천러핑(陳樂平), 인젠쥔(尹建軍)이었다. 6월 23일, 후둥샤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샹탄 베이징 주재 사무소에 의해 부당하게 현금 508위안과 철도 경찰 체포비 명목으로 현금 200위안을 갈취당했다. 담당자는 망간광산 공안처장 슝정판(熊正凡) 등이었다.
7월 14일부터 24일까지 이른바 ‘민감한 날’이라며 후둥샤는 10일 더 연장돼 감금됐다.
2000년 10월 17일부터 2002년 4월 16일까지, 후둥샤는 1년 반의 부당한 형을 선고받았으나 재판 연기로 감옥에 보내지지 않고 계속 샹탄시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됐다. 담당자는 샹탄 망간광산 공안처 장멍옌(張孟炎) 등이었다.
샹탄 망간광산의 한 경찰 책임자는 후둥샤에게 “당신이 매춘을 하면 내가 안 잡겠지만, 파룬궁을 수련하면 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3년 5월 28일, 후둥샤는 납치돼 부당한 치안 구류 15일을 당했다. 담당자는 샹탄 망간광산 공안처 샤오웨이스(肖偉仕), 청리커(程利科)였다. 6월 10일, 후둥샤는 납치돼 샹탄시 구치소에 40일간 부당하게 감금됐다. 담당자는 샹탄 망간광산 공안처 샤오웨이스, 청리커였다.
부당한 강제노동으로 참혹한 박해를 당하고 대퇴골이 골절되도록 구타당해
2004년 4월 19일 저녁 식사 전, 후둥샤는 집에서 다시 악인에게 납치당하고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이후 샹탄시 구치소에 37일간 감금됐다가 부당한 2년의 강제노동을 선고받고 후난성 주저우(株洲) 바이마룽(白馬垅) 여자 노동수용소에 갇혔다. 담당자는 샹탄 망간광산 공안처 리정화(李正華), 류쓰칭(柳四淸)이었다. 후난성 주저우 바이마룽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후둥샤는 거열형(오마분시) 고문을 당했고, 악도들에게 대퇴골이 골절되도록 구타당했다.
2004년 12월 14일 아침 7시, 악인들이 매일 파룬궁수련자를 제멋대로 박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후둥샤는 노동수용소 중간의 긴 복도에서 있는 힘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고, 각 감방의 사람들이 모두 들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노동수용소 안의 ‘민관(民管)’으로부터 박해를 초래했다. 민관은 이곳의 일상 업무를 책임지는 4명의 마약 중독자로, 그녀들은 간웨이훙(甘衛紅), 펑윈(馮雲), 후징(胡靜), 자오추이췬(趙翠群)이었다. 이 4명은 모두 덩치가 컸는데, 즉시 후둥샤를 잡동사니 방으로 밀어 넣었다. 먼저 넓은 테이프로 그녀의 입을 머리와 함께 4~5바퀴 묶자 후둥샤는 바로 호흡 곤란을 느꼈다. 4명은 그녀를 거꾸로 눕힌 후 손과 다리를 잡아당겨 거열형 동작을 취하게 한 다음, 그녀의 몸을 구부려 눌러 얼굴이 발에 닿도록 꺾어 눌렀다. 그런 다음 얼굴을 왼쪽 다리에 닿게 하고 다시 오른쪽 다리에 닿게 강하게 꺾어 눌렀으며, 두 다리를 벌리고 먼저 왼쪽 다리, 그 다음 오른쪽 다리를 반복해서 꺾어 눌렀다. 간웨이훙은 후둥샤의 왼쪽 다리 위에 앉아 쉴 새 없이 들썩이며 악독하게 웃으며 계속 짓눌렀다.
후둥샤는 생전에 명혜망에 투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시 꺾여 눌려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고 겉옷 바지 솔기도 눌려서 전부 터졌습니다. 당시 나는 55세였는데 그녀들에게 그렇게 고문당했으니 그 고통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신발 밑창을 꿰매는 굵은 쇠바늘을 가져와 내 손톱 밑을 찔렀습니다. 열 손가락은 심장과 연결되어 있어 두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는데, 그녀들은 더러운 검은 걸레로 내 피를 닦았습니다. 이 네 사람은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고문을 멈췄고 내 등을 세 번 걷어차며 ‘이게 1라운드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당시 시달리다가 기절했습니다. 12월의 겨울, 차가운 바닥에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때, 자오추이췬 등이 나를 끌어당겨 등에 업고 의무실로 갔습니다. 도중에 깨어났고 의무실에 도착하자 자오추이췬은 부러진 내 왼쪽 다리를 당기며 마구 주물러서 나는 아파서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엑스레이 검사를 요구했지만 런(任) 의사는 장비가 없다며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조금 처방해 줬습니다. 나는 약을 먹지 않았고 그 약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런 의사는 또 4명에게 내가 심장병과 고혈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점심때 나는 부러진 다리를 끌고 생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매일매일의 생활이 매우 힘들었는데, 대장은 내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전화도 걸지 말며 편지도 쓰지 못하게 명령했습니다.”
해를 넘겨 2005년 3월이 되어서야 후둥샤의 강력한 요구에 그들은 차를 몰고 그녀를 법의학 병원에 데려가 엑스레이를 찍게 했다.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다시 주저우 제2병원으로 데려가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판(范) 중대장이 줄곧 자리에 있었다. 당시 의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왔습니까?”라고 묻자 판 중대장은 “본인이 넘어진 겁니다”라고 말했다. 후둥샤는 즉시 정정하며 “내가 넘어진 게 아니라 4명의 마약 중독자에게 맞은 겁니다”라고 말했다. 결과가 나왔는데 왼쪽 대퇴골 골절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업무가 시작되자 노동수용소 안의 한 여자 감옥경찰이 후둥샤에게 이 모든 것이 노동수용소와 무관하다는 성명을 쓰라고 요구했다. 후둥샤는 “어째서 무관합니까, 분명히 여기서 4명의 마약 중독자에게 맞아서 부러진 것인데요”라고 말했다. 오후 3시가 넘어 대장 어우양슈(歐陽秀)는 후둥샤에게 병보석을 수속하라고 하면서, 고소하지 말라고 위협했고 그렇지 않으면 병보석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다.
후둥샤는 집으로 돌아온 후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연공을 시작했다. 일정 기간 법공부와 연공을 한 후 기적적으로 일어설 수 있었고 야외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걸을 때는 확연히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 후의 나날 동안 현지 정법위원회는 민감한 날만 되면 그녀를 괴롭혔고 평소에도 정법위원회가 안배한 불법 분자들에게 미행당했다.
또다시 부당한 5년형을 선고받고 강제로 주사 맞아
2007년 7월 31일 오전 7시경, 후둥샤는 차를 타고 외출하려다가 차에 타기도 전에 현지 위후(雨湖)구 허링(鶴嶺) 파출소 리정화 등 경찰에게 부당하게 체포됐다. 그들은 강제로 그녀 몸에서 집 열쇠를 빼앗았고, 동시에 경찰 10여 명을 불러 당시 후둥샤 집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가택수색을 했다. 사부님의 법상, 대법서적, MP3 등을 압수했고, 심지어 남편 면도기 충전기까지 빼앗아 갔다.
후둥샤는 샹탄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됐다. 가족이 여러 차례 옷가지를 전하며 면회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판결이 난 후에 이야기하자며 끝내 면회를 동의하지 않았다. 사건 담당 부서는 허링진 파출소[사건 담당자: 황이(黃譯), 샤오웨이스, 청리커 등]였다.
후둥샤는 샹탄시 위후구 법원에서 부당한 5년형을 선고받았고, 법원 재판장 웨이웨이(魏偉), 소송인 저우쌍(周桑), 2008년 1월 후난성 창사(長沙)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후난성 창사 여자감옥에서 5년의 억울한 형기 동안 후둥샤는 온갖 고문을 겪었다. 전기경찰봉에 감전되고 매일 벌을 섰으며, 심지어 하루에 23시간을 서 있게 하고 단 1시간만 자게 했으며,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는 등의 고문을 당했고, 심지어 5~6명에게 강제로 끌려가 독주사를 맞기도 했다.
후둥샤는 생전에 명혜망에 투고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감구장 저우단(周殫)과 저우샤오란(周小蘭), 탕잉(唐影)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면서 덩(鄧) 교수에게 내 다리와 혈압 상태를 검사받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덩 교수는 여자감옥의 부감옥장으로 창사 중의학원을 졸업했는데, 그녀가 날 검사할 때 우리는 몇 마디 나누었습니다. 내가 남편의 아버지가 중의학원 1회 졸업생이고 현재 샹탄 망간광산 직원병원 원장이며, 어머니는 산부인과 의사라고 말했습니다. 저우단 등은 덩 교수에게 내 다리와 허리를 검사하게 한 후, 또 나더러 위층으로 올라가 ‘혈압강하제 주사’를 맞으라고 했습니다. 나는 끝까지 맞지 않겠다며 난간을 꽉 잡고 놓지 않았으나, 그녀들 5~6명이 내 손을 떼어냈고 나는 위층으로 끌려가 그녀들이 말한 ‘혈압강하제 주사’를 맞았습니다.”
[샹탄 파룬궁수련자 양순잉(楊舜英)은 부당한 3년 반 형을 선고받고 창사 여자감옥에서 독주사(일종의 붉은색 약물)를 맞은 후 2012년 12월 5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54세였다.]
또다시 여러 차례 납치 감금돼 부당한 3년형을 선고받아
2013년 5월 9일 오전, 샹탄시 위후 공안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와 허링 파출소 경찰, 그리고 광산구역(샹탄시 망간광산) 직원은 부당한 감옥 5년의 박해를 당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후둥샤를 납치했다. 이 무리는 그야말로 토비(土匪, 지방 도적떼)와 같았는데 문을 열지 않으면 문을 부수겠다고 소리쳤다. 부당하게 침입한 후 그녀의 집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후둥샤는 당일 저녁 시 위후 공안분국 국보 대대로 납치됐다가 5월 24일 구류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그녀를 납치한 직원은 황이, 청리커였다.
2014년 1월 15일 밤 10시 반경, 샹탄시 공안국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경찰이 샹탄 망간광산 파출소의 경찰 무리를 이끌고 후둥샤의 집에 들이닥쳐 부당한 가택수색을 했고, 후둥샤를 광산구역 허링 파출소로 납치해 부당한 심문을 했다. 새벽 1시경 시 법의학 병원으로 끌고 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혈압이 180까지 올랐고, 새벽 3시경 다시 시 중심 병원으로 끌고 가 재검사했는데 혈압이 또다시 200mmHg 이상으로 올랐다.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후둥샤를 진탕완(金塘灣) 구류소로 납치했다. 구류소에서 받기를 거부하자 경찰은 다시 광산구역 허링 파출소로 압송했다. 후둥샤가 단식하며 항의하자 다음 날 낮 12시경 집에 돌아왔다.
2020년 8월 11일, 후둥샤는 창사 여자감옥에서 억울하게 5년형을 받았을 때 지급된 임금을 갑자기 환수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후둥샤는 불구의 몸을 이끌고 사회보장국과 정법위원회를 오가며 법에 따라 은퇴 연금을 받으려 했으나 끝내 주지 않았다.
2021년 2월, 후둥샤는 자신이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은퇴 연금을 삭감당한 일에 대해 각각 후난성 공안청, 샹탄시 정법위원회에 항소를 진행했다. 두 달 뒤인 4월 7일, 그녀는 현지 경찰에게 납치 및 가택수색을 당했다. 2022년 5월, 샹탄시 위후구 법원은 후둥샤에게 부당한 3년형을 선고했다.
후둥샤는 거주지 감시를 당했고, 중공 불법 직원들은 강제로 그녀의 스마트폰에 악당의 이른바 사회 교정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에 반드시 그 소프트웨어에서 출석 체크를 해야 했으며, 목적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함이었고, 그래야만 매달 1100위안의 은퇴 연금을 지급받도록 승인됐다.
후둥샤의 몸 상태는 갈수록 악화돼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걸을 때 비틀거렸다. 가족은 그녀를 돌볼 힘이 없어 2024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현지 양로원에 보냈다. 입원 후 그녀의 몸은 더 나빠져 침대에 마비돼 누운 채 스스로 생활할 수 없게 됐으며 2026년 2월 21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악당이 무수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면서 초래한 또 하나의 비극이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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