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랴오닝성 링하이시의 천리민(陳麗敏)이 푸신시를 떠난 이후, 그가 가져온 난법(亂法)의 영향과 정체(整體)를 분열시킨 후환은 수년간 깨끗이 제거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도 천리민의 추종자들[청(程) 모 수련자를 필두로 함]은 법공부가 깊지 않고 이성적이지 못한 수련자를 끊임없이 끌어들여, 천리민의 난법 언사를 푸신시에 지속적으로 유포하며 법을 파괴하는 작용을 수년간 멈추지 않고 있다. 천리민의 난법 언론[집착심을 선해(善解)한다, 명리정을 선해한다 등등]이 푸신시에서 여전히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명혜망에 보도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차 상술하지는 않겠다. 다만 수련자들이 경계를 늦춰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법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왜인가? 오직 법을 스승으로 삼고 법공부와 마음 수련을 터득해야만 화안금정(火眼金睛)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화안금정이 있어야만 백골정(白骨精)이 미녀나 노인 혹은 아이의 형상으로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백골정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만약 백골정이 서른여섯 가지 변신술을 쓰는데 당신에게 화안금정이 없다면, 나타날 때마다 반해서 요괴 동굴로 잡혀 들어가기를 서른여섯 번 반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오(邪悟)한 사람, 중국공산당(중공) 스파이, 자심생마(自心生魔)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작용이 바로 마의 작용이자 요괴의 작용이 아니겠는가?
다음은 푸신시에 퍼져 있는, 법에서 명백히 벗어난 또 다른 언설들이다. 시초인 왕청우(王成武)에게는 일정 범위 내에서 그를 결사적으로 옹호하는 추종자들이 있으며, 이제 막 그 세력권에 끌려 들어온, 법리가 불분명한 수련자들도 대세를 따라 그의 강연을 들으며 그에게 시장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관련 수련자들과 여러 차례 교류하고 엄정한 조사를 거쳐 반복적으로 확인했으며, 최종적으로 그의 법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 일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교류’ 명목을 내걸고 강연 조직
왕청우는 정해진 시간에 고정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주 4회 소규모 강연 외에도, 푸신시 각지를 다니며 현지 수련자를 조직해 소위 ‘교류회’를 열고 있다. 매번 교류할 때 전혀 법을 스승으로 삼아 법에서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혼자서만 말하며 하고 싶은 대로 떠드는 식인데 그 내용은 모두 그의 개인적인 인식일 뿐이다. 듣고 있던 수련자가 어떤 문제에 대해 그와 다른 견해를 보이면 왕청우는 현장에서 즉시 안색을 바꾸며, 나중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반복적으로 찾아와 ‘당신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겠다’라며 괴롭힌다. 이러한 ‘교류’를 빌미로 한 강연은 형식과 내용 모두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빈번한 교류는 방대한 법공부 시간과 중생구도 시간을 허비하게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회의 목적이 서로 촉진하고 함께 제고하며 서로 간의 차이를 찾고 부족함을 보기 위함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러나 강연자의 자세는 고압적으로 남을 지도하며, 자신을 대법제자의 수련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지도자로 간주해 완전히 자신을 대법 위에 놓았다.
왕청우의 말은 수련의 실질을 모르고 마음속에 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동적이다. 그래서 그의 ‘강의’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저 사람은 얼마나 높이 수련했길래 깨달음이 저렇게 좋을까’라며 감탄하곤 한다. 그의 추종자들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끌어들여 강연을 듣게 할 때 “어서 가서 저분이 하는 말을 들어봐. 우리끼리 수년간 공부해도 제고되지 않던 게 저분 말을 들으니 단번에 제고되더라”라며 떠드는데, 이것이 어찌 수련자의 상태라 하겠는가? 마음이 설레고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상태가 잘못됐음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며 법에 비추어 자신을 바로잡을 줄 모른다. 이는 수련의 문에도 들어서지 못했다고밖에 할 수 없으니 위험하지 않겠는가?
이 일에 열중하며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생각해보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법은 박대정심하고 무한한 내포가 있는데, 당신이 수년간 공부해도 제고되지 않던 것이 소위 어느 수련자의 말을 듣고 단번에 제고됐단 말인가? 그가 사부님보다 더 높다는 말인가? 왕청우 본인도 사람들이 자신을 추앙하는 것을 매우 즐기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법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이것이 자심생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섭지 않은가?
또한 여러 법공부 팀에서 특별히 그를 초청해 ‘모두의 제고를 돕는’ 교류를 가졌다. 왕청우는 팀에 와서 함께 법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법공부 시간을 자신의 일언당(一言堂, 한 사람의 말만 있는 방)으로 만들었다. 이후 사람들은 팀에 모여도 법공부는 하지 않고 오로지 왕청우 한 사람의 말만 듣게 됐다. 나중에 왕청우가 오지 않자 그 법공부 팀은 아예 법공부를 하지 않게 됐고 서서히 해산됐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 형식인 팀 법공부가 왕청우에 의해 이렇게 파괴됐다. 게다가 이런 일은 단편적인 사례가 아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맹격일장(猛擊一掌)’에서 명확히 말씀하셨다. 모두 여러 번 읽어보며 이 일에 대조해 보고 자신의 심성을 거울에 비추어 보길 바란다.
2. ‘사부님 영접’을 고취하며 수련자의 집착을 확대
약 2~3년 전 왕청우는 ‘사부님께서 돌아오신다’라는 꿈을 꾸고는 이를 사부님의 일깨움이라고 여겼다. 즉시 그는 이 일을 매우 중요한 일로 간주해 수련자들 사이에 유포하며 ‘대법제자를 대표해 푸신시에 오시는 사부님을 영접해야 한다’라고 했다. 왕청우는 자신을 ‘대법 책임자’, ‘수련자 책임자’로 임명했다. 사부님을 영접하는 일은 중대사라며 이를 위해 큰 전시장을 빌리고 전담 팀을 꾸려 항목을 하나 만들어야 하며, 준비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연락해 올 것이고 그때 자금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자칭 ‘대법 책임자’인 그가 자금과 인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해 이 일에 대해 여러 차례 ‘교류’했다. 소위 교류라는 것은 모두 그의 말만 듣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검은 물질로 타인을 오염시키는 행위였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른 수련자들도 참여하도록 널리 알리게 했으며, 책임자에 관한 사부님의 일부 설법을 인쇄해 자신이 바로 대법의 책임자임을 증명하려 했다. 얼마나 가소로운 논리인가. 참되게 수련하는 사람, 대법을 진정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간파할 수 있다. 이 일은 수련이나 중생구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듣건대 한번은 이 일에 대해 교류할 때 창문에 원형 이미지가 나타났는데, 이는 참여자들을 더욱 흥분하게 했으며 사부님의 일깨움이자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다는 증거라고 믿게 했다. 모두가 ‘일깨움’이 무엇인지 잊었단 말인가? 어떤 일로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고 ‘내가 맞아, 내가 맞아, 내가 바로 맞아’라고 하는 것이 대법에서 가르친 것인가?
이런 일들로 인해 한동안 관련 인원들은 동분서주하고 마음이 들떠 전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잘할 수 없었다. 결국 일부 수련자들이 그의 언행이 갈수록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경계심을 일으켜 더는 그를 따르지 않게 되면서 흐지부지 끝났다.
3. 법 외우기 형식을 이용해 대법 수련 형식을 개변
듣건대 왕청우는 일찍이 한 속인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글자의 필획을 분해하는 방법을 고안해 한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나중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포기했는데, 그 후 꿈에 누군가 공부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왕청우는 3년 동안 법공부를 하지 않고 오로지 이것만 연구했으며, 여러 차례 ‘강연’에서 수련자들에게 이를 보급하려 했다. 수련자들이 이 방법을 배워서 글자를 분해하는 방식으로 법공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너무 복잡해서 널리 퍼지지는 않았으나(주의할 점은 그가 가르치지 않아서나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보급되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일부 수련자들은 이를 배워 글자 필획을 분해하는 방식으로 법공부와 법 외우기를 하고 있다.
4. 황당한 사설(邪說)을 지어냄 “문제 발생 시 공기둥을 보라”
왕청우는 틈만 나면 수련자들에게 “공기둥(功柱)을 보라”고 가르친다. 한 수련자가 사악에게 소위 ‘수감 통지’를 받고 왕청우에게 어떡하냐고 묻자 왕청우는 그녀에게 “공기둥을 보세요”라고 답했다. 연공할 때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수련자에게도 왕청우는 “공기둥을 보세요”라고 가르쳤다. 안 보이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억지로라도 보면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다고 했다. 구세력의 박해를 ‘공기둥 보기’를 통해 타파한다니, 이것이 법에서 나온 것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안으로 찾아 자신을 제고하지 않고, 어떤 방법을 써서 지름길을 가려 한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마도(魔道)의 사술(邪術)과 나쁜 것들이 당신을 통제해 수련을 망치게 할 것이다. 수련은 이렇게 엄숙한 것이다.
5. ‘발정념’ 개념을 도용해 딴판으로 만듦
사존께서는 특별히 경문을 쓰시어 대법제자에게 발정념의 구결과 요령을 알려주셨다. 그러나 왕청우는 딴판으로 만들어 추종자들에게 한 세트의 설법을 가르치고 일이 생기면 자신의 요구대로 발하게 했다.
수련자가 시련 중에 있을 때 왕청우는 그 수련자에게 발정념을 못 하게 했다(시련 중인 수련자 본인이 자신에게 발정념 하는 것도, 다른 수련자들이 발해주는 것도 금지함). 그는 소위 “선악이 함께 나온다”, “일념에서 선악이 나온다”라며 선한 것이 오면 악한 것도 오는데 발정념을 받는 사람이 견딜 수 있겠느냐는 등 대법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고 마음대로 왜곡해 해석했다.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이는 전형적인 대중을 미혹시키는 난법임을 즉시 알아볼 수 있다.
더 많은 사례가 있으나 일일이 상술하지 않겠다. 진정으로 수련하고자 한다면 법에 대조해 볼 때 일목요연하다. 착실하게 수련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사오자, 배경이 불분명한 자, 난법자, 자심생마한 자들이 부리는 온갖 수작에 빠져 번번이 함정에 떨어질 것이다.
왕청우 난법 사건이 장기간 지속되고 파급 범위가 넓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이 있다.
1)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
2) 추종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법이 아닌 사람을 배우고, 법이 아닌 사람을 보는 마음이 존재하기에 숭배 심리가 생기고 높은 층차와 지름길을 추구하며 수련의 고통을 겪으려 하지 않고 밖으로 추구한다. 우리 지역에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구세력은 왕청우 같은 사람을 우리 사이에 나타나게 한 것이다.
3) 정체적으로 정념이 부족하고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지 않는 문제가 존재해, 사도(邪道)를 걷는 사람들에게 장기간 시장을 제공했다.
모두 생각해보라. 불로소득을 원하고 고생하기 싫어하며 지름길만 찾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것이 대법에서 가르쳐주신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삼장법사(당승)도 평범한 인간의 육신과 눈을 가졌기에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 초기에 요괴를 동정하고 손오공의 선의의 권고를 듣지 않아 여러 번 요괴의 함정에 빠졌다. 지름길을 구하고 기이한 것을 내세우는 것은 예전에 많은 사람이 걸었던 굽은 길이다. 왜 남들이 이미 빠졌던 구덩이에 다시 빠지려 하는가? 빠지기는 쉽지만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당신의 결말은 어떠하겠는가?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는 것에 대해 모두 기억하는가? 사부님께서는 《북미 제1기 법회 설법》에서 “유의적으로 무엇을 깨달으려고 생각하면 보증하고 깨닫지 못한다. 당신은 이 책을 들고 오로지 보기만 하라. 구함이 없으므로 스스로 얻게 된다고 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미국동부법회 설법》에서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 집착심을, 비록 조금 남았다고 할지라도 남기지 말고 모두 제거해 버릴 것을 희망한다. 구하고자 하는 것이 없어야 저절로 얻게 마련이다. 당신들이 갖고자 하면 그것은 집착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에서 “당신들은 아는가? 마음속으로 원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 더군다나 원만에 이르고 싶어 하면서 아직도 정(情), 재물(財) 등에 집착하는 사람은 더욱 원만에 이를 수 없다. 구하고자 함이 없어야만 자연히 얻는다! 대법제자들이 오늘날 한 일체는 바로 역사가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으로서 당신은 당당하게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하도록 하라. 무엇이든 모두 그 속에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글자를 분해해 법공부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자신을 지도하고 법공부로 마음을 닦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수련은 착실하게 닦는 것이다. 당신이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집착심을 일깨워주시고, 법의 글자 하나하나 뒤에 있는 층층의 불도신(佛道神)들이 내포를 일깨워주실 것이다. 혹은 착실하게 법을 외울 때 집착심이 갈수록 옅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법을 외우는 수련자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체득이다.
당신이 딴판으로 만들어 ‘지름길’을 가려 할 때, 그 과정에는 이미 다른 사악한 생명이 당신에게 준 것들이 섞여 들어갔다! 하물며 법 외우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공공연히 대법의 수련 형식을 개변하는 것은 더욱이 난법이다.
왕청우의 이런 상황은 명백히 다른 공간 구세력의 난신(亂神)에게 조종당하는 것이다. 자신을 망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수련자들까지 삿된 길로 이끌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 누가 이를 따르며 자신을 망치려 하는가, 그것은 악한 자를 도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글에서 왕청우의 일부 행위를 폭로하는 것은 개인 공격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고립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주로 대법을 수호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푸신시에서 정법을 교란하고 수련자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지 못하게 방해하는 다른 공간의 난신과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조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다. 이 글이 현지의 모든 수련자에게 중시돼 많은 법공부와 법에서의 교류를 통해 난법 요소를 제거하고, 각자 자신을 바로잡아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해주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어 사부님을 따라 원만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30/50828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3/30/50828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