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수련생을 도울 때의 작은 인식과 체득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어떤 수련생이 난을 만났을 때, 특히 ‘병업(病業)’ 상태가 나타났을 때 수련생들이 함께 모여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며 교류하고 서로 격려하면 수련생이 난을 빨리 넘길 수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수련생들끼리 서로 일깨워주고 도와주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자신의 관념을 수련생에게 함부로 강요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수련생을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선 우리는 그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대법(大法)이며, 또한 그가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대법조차 그를 변화시킬 수 없는데 우리에게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또 어떤 경우는 수련생 자신이 법공부를 통해 자신의 집착을 찾고 인식해 법의 힘에 기대어 난관을 넘긴 것인데, 자신이 도와준 결과라고 여기며 대법의 작용을 소홀히 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저의 인식과 체득을 이야기해 보려 하니,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1. 수련생을 돕는 것은 수련생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해, 현지 전 보도원 책임자였던 A 수련생의 몸에 심각한 병업 상태가 나타나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호흡을 유지했습니다. 심지어 ‘610’과 경찰까지 놀라 A를 ‘관심’ 갖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현지 코디네이터는 A가 난에서 벗어나면 그 영향이 클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수련생들을 조직해 매일 3교대로 24시간 내내 번갈아 가며 A의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게 했습니다. 저도 몇 번 갔었고 사부님의 설법이 담긴 노트북도 가져다주며, 모두들 A가 이 병업 생사 고비를 넘기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에 A는 너무 시끄럽다며 수련생들이 자기 방에서 법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에서 법공부와 발정념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보낸 사부님 설법 영상도 A는 보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래 법공부 팀의 한 노년 B 수련생이 ‘뇌졸중 반신불수’에 걸렸습니다. 처음에 B의 가족은 수련생들이 집에 오는 것을 원치 않았으나 나중에 진상을 알린 후 가족들은 수련생이 와서 B를 돌보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매주 한 번 그녀의 집에 가서 함께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매번 법공부와 교류를 할 때마다 그녀는 감격해 울었고, 자신도 법공부와 연공을 많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났지만 B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져, 원래는 계단을 내려갈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내려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그녀를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에게 들어보니, B는 법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고 연공도 꾸준히 하지 못했으며 그녀의 서랍에는 각종 치료제와 건강보조식품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종종 “대법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고 감옥까지 다녀왔는데 왜 이럴 수 있지?”라고 원망했다고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큰 장애다. 그 자신마저 이지적이지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도 그것은 역시 헛되게 한 것과 같다. 발정념은 외면에 있는 것을 청리할 수는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청리하지 못한다.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는 그의 일념(一念)에서 오고, 그가 가지려 하는가, 가지려 하지 않는가에 달렸다. 이런 상황은 내가 보건대 마음속에 꼭 집착하는 매듭이 있다. 정말로 능력이 안 된다면 당신이 가서 도와 줄 수 있는데 이것은 문제가 없다.”

제가 겪은 여러 사례를 통해 보건대, 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완전히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은 단지 서로 일깨워주는 작용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법 안에서 어떻게 깨닫고 대법에 따라 어떻게 행할 것인지는 결국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도와주려 해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2. 수련생을 도울 때는 사람 마음이 아닌 정념이 필요하다

어느 날 깊은 밤, C 수련생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다리가 너무 아파 잠도 잘 수 없다며 우리에게 와달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어떻게 할지 물었습니다. 저는 “한밤중에 어떻게 가, 그녀에게 잠이 오지 않으면 법공부와 발정념을 하고 계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해요. 내일 다시 가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저와 아내가 C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소파에 웅크린 채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에요?”라고 묻자 그녀는 “좌골신경통이 또 도졌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는 말을 끊으며 “무슨 좌골신경통이에요, 사부님께서 벌써 병근을 다 없애주셨잖아요. 그건 당신이 스스로 생각한 거예요, 가상이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와 아내는 법리상에서 그녀와 교류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제 아내에게 차를 끓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 집에 왔는데 어떻게 손님한테 차를 끓이라고 해요, 당신이 차를 끓여 내오는 게 맞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절뚝거리며 우리를 위해 차를 끓여왔습니다. 밥할 시간이 되자 아내가 저보고 밥을 하라고 했지만, 저는 “매일 내가 한 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이 사람(C)이 한 밥을 먹어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또 천천히 일어나 절뚝거리며 밥을 지으러 갔고, 저와 아내도 함께 도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떠날 때 그녀는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차를 기다리며 저는 수련생에게 “당신 지금 아무렇지도 않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도 놀라며 “발이 완전히 다 나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사람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자 사부님께서 이 업력을 없애주신 거예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는 건 바로 연공인이잖아요!”

90대가 넘은 노년 D 수련생은 자신에게 노인성 ‘질환’이 나타났다며 뇌 위축증에 걸린 것 같다고 의심했습니다. 제가 그녀를 보러 갔을 때,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자신에게 나타난 증상을 저에게 설명하려 했습니다. 저는 “원래 좋은 일인데 어떻게 그것을 노인성 질환으로 보십니까? 이것은 사람의 관념입니다. 수련인이 어떻게 편안하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약간의 고비와 난이 없다면 어떻게 제고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법공부하셨죠? 발정념하셨죠?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일도 하셨죠? 다 하셨다면 법 안에서 수련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대법제자이시고 사부님의 제자이신데 또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그제야 수련생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수련생이 난을 만났을 때, 특히 병업 고비에 부딪혔을 때, 어떤 수련생들은 상대방의 동정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상황을 유독 심각하게 말하기 좋아합니다. 사실 이것은 속인의 사유입니다. 속담에 ‘병은 널리 알려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속인은 병에 걸리면 여기저기 말하기 좋아하는데, 첫째는 다른 사람의 동정을 얻고 싶어서이고, 둘째는 좋은 치료법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련인으로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며, 수련이라면 응당 그것을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는 것으로 대해야 합니다. 법공부를 통해 안으로 자신의 집착을 찾고, 동시에 발정념을 해 자신을 청리하며 구세력이 강요한 교란을 제거해야 합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심성이 제고된 것을 보시고 다른 공간에서 이 ‘업(業)’을 없애주십니다. 그러므로 수련생들끼리 교류할 때는 정념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고 법의 입장에서 법을 인식해야지, 사람의 마음이나 사람의 생각을 써서는 안 됩니다.

3. 수련생을 도울 때 자신의 관념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수련생이 절차탁마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대법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인식, 자신이 어떻게 깨달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단지 층차가 다르고 인식이 다를 뿐이며[대법을 떠나 사오(邪悟)한 일부 사오자들 제외], 또는 일을 할 때 고려한 점이 전면적이냐 국한적이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악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 문제에 부딪히면 덮어놓고 비판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인식이나 명혜망에 나온 일부 수련생의 방식을 근거로 삼아 수련생의 방식을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당신의 인식은 법에 있지 않다’, ‘당신의 방식은 틀렸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한다’ 등입니다. 때로는 수련생에게 강요한 의견이 수련생에게 아주 큰 정신적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어느 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E 수련생이 우리집에 와서 한 가지 일을 말했습니다. E가 감옥에서 나온 후 퇴직금을 깎이자 수련생들은 모두 법에 호소해 고소하라고 했고, 대법제자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E의 생각은 법적 소송의 형태가 아니라, 관련 기관에 가서 진상을 알려 이 일을 해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제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 왔던 것입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간단해요?” 저는 말했습니다. “네! 수련에는 본보기가 없고 수련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니, 어떤 길을 갈지는 모두 당신 자신이 결정하는 겁니다.”

얼마 전, 감옥에서 나온 일부 수련생들이 모여 사악을 폭로하는 일을 하면서, 명혜망에 어떤 글이 실렸으니 이것이 일종의 정법(正法)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련생이 각기 다른 사람의 마음을 품고 참여했는데, 어떤 사람은 사람이 많아 덩달아 참여했고, 어떤 사람은 억지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사악에게 빈틈을 보여 수십 명의 수련생이 납치돼 10여 명의 수련생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대법과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데 아주 큰 교란과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대법 일을 할 때 반드시 법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고,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해야 하며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특히 수련생을 억지로 끌어들여 이것저것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교훈은 이미 아주 뼈저린 것입니다.

4. 수련생을 도울 때는 방식에 주의해야 한다

어떤 수련생들은 문제에 부딪히면 수련생에게 말하기를 좋아하며, 깨우침과 도움을 얻기를 바랍니다. 이런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함부로 수련생에게 결론을 내리거나 무엇을 긍정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처리가 적절하지 못하면 도리어 수련생에게 사상적 부담을 더해주게 됩니다.

수련에 비교적 정진하는 노년 F 수련생이 있는데, 매일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그녀의 생활 속에 녹여냈습니다. 하지만 F는 자기 몸에 무언가가 있어서 몸 안에서 계속 이리저리 움직인다고 수련생들에게 말해왔고, 이런 상황이 이미 3~4년이나 됐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그녀가 자심생마(自心生魔)가 되어 좋지 않은 것을 추구해서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F의 마음속은 아주 긴장했습니다. 어느 날, F는 저에게 또 이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 몸을 다 정화해주셨고 좋지 않은 것은 다 없애주셨는데, 지금 당신이 매일 꾸준히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고 있잖아요. 몸에 어떻게 좋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겠어요?”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본래 좋은 일인데 당신은 그것을 나쁜 일로 여기고 있어요. 신경 쓰지 말고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상태를 다 좋은 일로 여겨보세요, 게다가 그것은 확실히 좋은 일인데 어떻게 되는지 보세요. 수시로 이런 수련인의 마음가짐을 유지한다면 또 어떤 것이 당신을 교란할 수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그녀에게 두 마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일이어도 일로 여기지 않으면 일이 아니니 마음이 평온해지고, 일이 아닌데 일로 여기면 곧 일이 되어 마음이 번거로워집니다.” 나중에 F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저에게 “완전히 다 내려놓았더니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5. 수련생을 돕는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

저는 노년 G 수련생과 서로 협력해 진상 자료를 만들며 종종 그녀의 집에 가서 자료를 가져오곤 했습니다. 길이 멀어 왕복 1시간 넘게 걸렸고 때로는 갔을 때 그녀가 집에 없기도 했습니다. 연락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저는 G를 도와 명혜망 이메일을 만들어 주었는데, 만들자마자 그녀는 이메일 비밀번호를 다른 수련생에게 알려주었고, 다른 수련생이 이러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두 번째로 이메일을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 G는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저는 다시 비밀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녀에게 여러 번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습니다. 제가 물어보니 그녀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수련생들이 진상 지폐를 기다리고 있어서 제가 G의 집에 연달아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그녀는 집에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그녀가 고향에 간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또 이메일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녀가 갑자기 “왜 나한테 강요하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강요하는 건가요? 안전을 위해, 그리고 시간 낭비하지 않게 이메일을 사용하면 연락하기 얼마나 편하고 왔다 갔다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러고 나서 저는 원망심을 품고 떠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안으로 찾아보니 정말 제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생과 협력할 때 모두 제 의견만 고집했고 늘 제가 맞다고 여겼는데 사실 이런 마음은 이미 법에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수련생이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데 제가 기어코 수련생에게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은 수련생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후로 저는 더 이상 이메일 사용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G가 먼저 저에게 이메일 이야기를 꺼냈고 저는 네 번째로 이메일 비밀번호를 그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수련생들끼리 교류하는 중에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고 의견 차이와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딪힌 이런 문제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하라고 안배하신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집착심을 폭로해 내게 됩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빛나는 장점이 있고 상태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나타날 수 있으며 모두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수련생 사이에는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으며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므로 서로 포용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것은 사부가 당신들에게 서로 구조(救助)하게 하고, 서로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도하게 한 것인데, 이것은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는 것이다.”[험악(險惡)을 멀리하라] 이른바 수련생을 돕는다는 것은 서로 배우고 서로 일깨워주어 전체 승화와 전체 제고의 목적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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