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장시성 통신원) 장시성 주장시 파룬궁수련자 인위차이(殷育才)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각종 괴롭힘, 가택수색, 위협 등 박해를 당했다. 그는 여러 차례 불법 구류와 벌금 갈취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노동과 징역형을 선고받아 노동수용소와 감옥에서 무려 15년 동안이나 고초를 겪었다. 특히 장시성 위장 감옥에서 약물 고문을 당해 한때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중공의 장기적인 박해 속에서 인위차이는 2024년 92세를 일기로 끝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14년 1월 인위차이는 두창현 쉬부진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주먹으로 폭행을 당했다. 가족들이 두창현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를 찾아가 “우리 형님이 벌써 85세인데 아직도 가둬두고 풀어주지 않는 거요?!”라며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자 훙류 국보 대대장은 “곧 구속 승인이 날 거다! 95세라도 가둘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결국 인위차이는 징역 3년 2개월의 부당한 판결을 받고 감옥에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1932년에 태어난 인위차이는 장시성 주장시 두창현 인민은행, 두창현 공업국, 두창현 법원 형사재판정(재판장), 두창현 혈흡충병 예방소(소장) 등에서 근무했다. 1994년 예방소장에서 퇴직한 후 1996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심신이 매우 건강해졌다. 수련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열성적으로 자원봉사를 실천한 덕분에 그는 한때 주변 수련자들의 추천으로 두창현 파룬궁 보도소장을 맡기도 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하기 시작하자 인위차이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 여러 차례 베이징으로 청원을 갔다가 불법 구류와 구금을 당했다. 베이징과 주장 두창 구치소에서 6개월 넘게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인위차이는 2001년 초부터 2003년 말까지 주장시 노동수용소로 납치돼 3년간 불법적인 강제노동을 당했다. 당시 주장시 마자룽 노동수용소는 파룬궁수련자들을 강제로 전향시키기 위해 각종 고압적인 고문을 가하며 폭력적인 세뇌 박해를 자행했다. 그는 또한 오색등 제작, 수정시계 부품 조립 등 고강도 노역에 시달렸으며 끊임없는 정신적 학대와 인격 모독을 견뎌야 했다. 70대 고령이라 조기 석방될 수도 있었지만 노동수용소 측은 석방을 계속 미뤘고, 결국 그는 만 3년의 박해 기간을 모두 채우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2005년 1월 말 인위차이는 다시 납치됐고 이듬해 6월 불법적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위장 감옥에 수감된 그는 정체불명의 약물 고문을 당해 정신 이상 증세까지 보였다. 만기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을 당시 그는 감옥에서의 장기적인 폭행과 약물 학대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집에서 다시 파룬궁 수련을 이어가자 2년 만에 점차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두창현 혈흡충병 예방소의 새 지도부는 이전까지 지급되던 월 2천 위안의 퇴직금을 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1천여 위안의 최저 생활 보장 지원금마저 중단했다.
2014년 1월 13일 83세의 인위차이는 쉬부 지역에서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리다 현지 파출소장과 경찰 황지머우 등에게 납치돼 두창현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두창 법원은 5월 21일 오전 8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그에 대한 부당한 재판을 진행했다. 두창현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은 법을 제멋대로 짓밟으며 그가 무죄임을 알면서도 80대 고령의 선량한 인위차이에게 징역 3년 2개월을 선고했다.
2014년 6월 24일 인위차이는 강제로 장시 징더전 제3감옥에 압송돼 박해를 받았다. 한 달 후에는 다시 난창 감옥으로 옮겨졌다. 그는 난창 감옥 8대대에서 의류, 신발, 모자, 가방 등을 생산하는 고강도 노역에 투입됐다. 수감 중 20여 일간 가슴이 답답하고 사지에 힘이 빠지는 증상을 겪어 난창 감옥에서 창정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가족들은 그가 몸이 아픈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으며 면회 때마다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모습만 보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인위차이는 3년 2개월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2017년 3월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현지 공검법 인원들의 감시와 괴롭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수입원 없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결국 2024년 억울함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인위차이 노인이 당한 박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명혜망 기사 ‘장시 의료진 인셴핑 또 구금, 부친은 거듭 박해당해’, ‘전 장시 두창현 혈흡충병 예방소장 인위차이 억울한 옥살이’, ‘주장 두창현 법원 류추성·인위차이 부당 재판, 변호사 무죄 석방 요구’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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