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저는 한 대도시에 오게 됐고, 그곳에서 NTD TV를 설치할 줄 아는 두 분의 수련생을 만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기술이 미숙했고 대부분 아파트 단지였으며, 위성 안테나도 큰 편이어서 설치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루에 2~3개만 설치할 수 있었고, 어떤 날은 하나도 설치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안테나는 꼭대기 층 옥상에 설치해야 했기에 입구를 찾고 계단을 오르내려 옥상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당시 큰형님 수련생은 이미 60세가 넘은 연세였지만 손발이 민첩하고 일 처리가 깔끔했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큰형님이 혼자서 신호를 잡았습니다. 그는 인내심이 강해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고, 때로는 안테나를 고정한 뒤 조금씩 옮기고, 고주파 헤드(LNB)를 상하좌우로 계속 돌리며 한참 공을 들여야만 신호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옥상은 설치를 못 하게 해서 철제 거치대를 용접해 안테나를 받쳐 창문 밖에 설치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저와 둘째 형님 수련생이 안테나를 설치할 곳을 찾지 못해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큰형님은 늘 방법이 있었고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둘째 형님 말로는 “그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집주인조차 설치할 곳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큰형님은 곧 적절한 위치를 찾아 안테나를 설치했습니다. 집에 있던 일반인 가족들도 손뼉을 치며 감탄했습니다. 안테나 설치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었습니다. 몇 층, 십여 층, 심지어 수십 층의 건물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두려웠지만, 큰형님은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미리 준비한 안전벨트를 허리에 매고, 밧줄 다른 쪽 끝을 창문 철제 난간에 묶은 뒤 내려가서, 매우 좁고 짧은 외부 난간에 발을 디디고 드릴로 구멍을 뚫어 설치했습니다.
어느 집은 건물 밖 난간이 매우 작아 창문에서 사람 키만큼 떨어져 있었고, 안테나를 설치한 뒤에는 한 사람이 서 있을 자리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도저히 설치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큰형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렸습니다. 저는 건물의 다른 창문에서 밧줄을 잡고 그의 허리를 지탱해줬습니다. 설치가 끝난 뒤 저는 그가 어떻게 다시 올라올지 걱정했습니다. 올라오려면 안테나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한 손으로 창틀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한쪽 다리를 천천히 들어 올려 창턱에 발을 올린 뒤, 우리에게 그의 다리와 손을 잡아 끌어 올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탄복했습니다.
한번은 옥상에 올라갔는데 그 옥상은 경사진 형태였습니다. 둘째 형님은 큰형님 뒤를 따라가며 겁을 먹고 조심조심 걸었지만, 큰형님은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일이 끝난 뒤 둘째 형님은 “큰형님이 앞에서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저 혼자서는 절대 못 갔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3년간 협력한 뒤 각자의 길로 헤어졌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이 두 분의 기술 수련생을 만나게 해주셨고, 기술적인 지도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련생들은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일을 만나면 침착하고 냉정했으며, 조급해하지 않았고, 아무리 많이 질문해도 싫증 내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의 정념정행(正念正行)과 안정된 마음가짐은 저에게 큰 격려와 용기를 줬습니다. 이 3년간의 단련은 이후 제가 NTD TV를 설치하는 데 튼튼한 기초가 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저는 두 명의 수련생과 협력하여 NTD TV 설치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지역에서 인근 지역으로 확장해 나갔으며, 몇 km에서 십여 km, 수십 km, 수백 km까지 다녔습니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혹서든 혹한이든, 중생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우리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나섰습니다.
한번은 어떤 수련생의 집에 설치하러 갔는데, 아무리 해도 신호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수련생의 남편이 집 안에 악령인 마오쩌둥 초상을 두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치워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화를 내며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작업을 멈추고 인내심 있게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결국 그는 동의하여 초상을 치웠고 그 즉시 신호가 잡혔습니다. 우리가 떠날 때 그는 여전히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길에서 우리를 만나 사과하며 꼭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날은 정말 여러분이 싫어서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간 뒤에 아내 몰래 TV를 봤습니다. 내용이 정말 좋고, 매우 이치에 맞았습니다. 볼수록 점점 더 이해가 됐고 공산당이 잘못된 것이지 파룬궁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저도 대법을 수련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들은 바로는, 그의 아내가 중국공산당(중공) 경찰에게 납치됐을 때 그는 앞장서서 이치로 강력히 항의했다고 합니다.
또 한번은 속인 한 분의 집에 설치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몹시 망설이는 모습이었기에 저희는 곧바로 무료 설치임을 설명해 드렸고, 그는 기뻐하며 동의했습니다. 이후 TV를 본 그는 기쁘고 흥분한 표정으로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좋네요. 파룬궁이 이런 것이었군요! 반평생을 헛살았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아내가 뇌졸중으로 고생했는데 TV를 보고 나았어요. 지금은 매일 손주를 등하교시켜 주고, 아이들 부모들에게도 TV에서 본 진상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 후 그는 저희를 데리고 다니며 친척과 친구들 집에도 NTD TV를 설치하도록 도와줬습니다.
한번은 저희가 설치해 준 집의 노부부가 지식인이었고, 중공 악당의 당위원회 서기를 지낸 사람들이며 일정한 관직도 있었습니다. 수련생의 소개로 그 집에 위성 안테나를 설치해 줬는데, 그들은 방송을 본 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악당에게 속아왔구나!” 그들은 즉시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고 이탈리아에 있는 딸에게도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려 줬습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말했습니다. “이제야 중공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됐습니다. NTD TV는 우리에게 정신적 양식을 줬고, 진정한 인생을 찾게 해줬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악당의 거짓말을 믿지 않겠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NTD TV가 끊기면 우리의 정신적 양식도 끊기는 것이고, 그러면 삶이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 어르신은 장에 가거나, 거리를 다니거나, 마트에 갈 때마다 기회만 있으면 대법 진상을 알리고 중공의 죄악을 폭로하여 많은 사람의 의문을 풀어주고, 중공 악당의 본모습을 인식하게 했습니다.
그는 저희를 데리고 또 다른 한 어르신 집에 NTD TV를 설치했습니다. 그분 역시 고급 지식인이었습니다. 방송을 본 뒤 큰 감동을 받아 글을 써서 저희에게 명혜망에 보내 달라고 했고, 중공 악당 조직에서 탈퇴했으며, 여러 차례 저희를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그 노부부 역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희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식사는 반드시 자비로 해결하거나 직접 가져간다.
2. 자료점의 돈은 한 푼도 손대지 않는다.
3. 현지 수련생들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는다.
이를 안 일부 수련생들이 저희의 식사비로 쓰라며 돈을 줬지만 저희는 모두 자료점에 보관했습니다. 차량도 사적인 용도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수련생이 저희와 함께 설치하러 가다가 시장에 들르자고 했는데 저희는 거절했습니다. “차량 기름값은 자료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함부로 차를 쓰는 것은 대법 자원을 함부로 쓰는 것입니다.”
이 수년간 일반인에게 위성 안테나를 설치해 준 것은 모두 무료였습니다. 모금을 한 적도 없고, 모두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낸 돈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수련생이 1만 위안을 가져왔는데 저희는 너무 미안해서 받기 어려웠습니다. 수련생들도 모두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한 외지 수련생이 2만 위안을 가져왔는데 저희는 감히 받을 수 없어 여러 차례 사양했지만, 그 수련생은 끝까지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 수년간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큰 지지가 없었다면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돈을 자주 받고 물품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저희는 장부를 만들어 수시로 대조했습니다. 돈이 맞지 않으면 부족한 것은 저희가 보충하고, 남아도 밖으로 가져가지 않아 자금의 순수함을 보장했습니다.
어느 도시의 한 수련생이 저희 집에 와서 설치 항목에 대해 이야기했고, 자기 지역이나 인근 지역에서 함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말이 나오자마자 실행에 옮겨 현지 수련생들의 협조로 하루에 23가구를 설치하고 3개를 수리했습니다. 할 일이 끝이 없었습니다.
한 협조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오고 나서 우리 지역의 설치가 활발해졌습니다.” 수련생들도 NTD TV 설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후 저희는 서쪽과 서남쪽, 300km 이상 떨어진 지역으로도 갔고, 800km가 넘는 곳도 자주 다녔습니다. 장거리 운전은 매우 힘들었기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 차 안에서 식사를 하고 중간에 쉬지도 않았습니다.
서쪽으로 갈수록 신호가 약해져서 2m 대형 안테나를 구입해 설치했습니다. 산간 지역의 한 수련생 집에 설치를 마치고 떠날 때, 그 수련생은 계속 저희를 배웅했습니다. 여러 차례 돌아가시라고 했지만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감회에 젖어 말했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오셨는데, 오늘 한번 뵙는 게 전부일지도 몰라요. 앞으로 다시 못 뵐 수도 있잖아요.” 다른 산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여성 수련생 역시 끝까지 배웅하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배웅해야죠.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저희 둘은 1년 넘게 함께 협력하여 설치를 했습니다. 대략 계산해 보니 그 1년여 동안 약 800개 정도의 위성 안테나를 설치했습니다. 저희는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함께 협력하여 인터넷 셋톱박스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이 수련생이 기술과 기기를 제공하고 저는 보급을 맡았습니다.
이 수년간 저는 신분증이 없어 기차역에서 표를 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보호로 어려운 순간마다 암표상이 나타나 저를 태워 주거나 장거리 버스를 연결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1000km 떨어진 도시로 가서 이 항목을 수련생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일을 마친 뒤 돌아가려 했지만 큰 눈이 내려 수련생들이 말렸습니다. 저는 끝내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역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지만 암표상은 보이지 않아 그냥 역 창구로 갔습니다. 대부분 열차가 운행 중지였고, 마침 제가 가려는 도시로 가는 열차 한 대만 남아 있었습니다. 신분증이 없어 별도의 방에서 신원 확인을 받았고, 저는 조용히 정념을 발했습니다. 마침내 확인이 돼 증명서를 받아 들고 출발 직전의 열차로 달려갔습니다….
십여 년 동안 저희는 수많은 도시와 농촌, 크고 작은 마을과 산촌을 다녔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하나하나, 눈물 나게 하는 기적 하나하나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진상을 깨닫고 구원받은 세인들은 모두 사부님의 큰 은혜와 대법의 무한한 은덕에 감사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리며, 제가 오늘까지 평온히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큰 지지와 격려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24/5053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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