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모든 전통 신앙에서 오만은 신께서 증오하는 것이다. 가톨릭의 7대 죄악 중 오만은 으뜸이며, 불가의 『화엄경』에서 말하는 삼중장(三重障)에서도 오만이 첫 번째다. 인간의 수많은 죄악은 모두 오만에서 시작되며, 이후 시기, 악독, 나태, 탐욕, 음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정교(正敎)는 오만의 죄악이 비길 데 없이 커서 천신(天神)조차 이에 해를 입는다고 여긴다. 사탄은 본래 하나님 앞에 있던 여섯 날개의 천사로, 계명성(루시퍼) 곧 아침의 아들이라 불리며 큰 영광을 누리던 존재였다. 그러나 사탄이 타락한 원인은 겸허함을 잃고 망령되이 자신을 높였으며, 이어 여호와를 배반하여 천사에서 마귀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오만은 인성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데바닷타는 석가모니불의 사촌 동생이다. 그는 본성이 오만했는데 출가 초기에는 진지하게 수행했으나, 나중에 갈수록 매우 오만해져 세존(석가모니불)의 자리를 대신하려 했다. 그는 거리에서 미친 코끼리를 풀어놓거나 산 위에서 큰 바위를 밀어 내려 세존을 해치려 꾀했다. 데바닷타는 출가한 지 12년이 지나도록 교만함은 사라지지 않고 흉악하고 잔혹함만 날로 커졌으며, 결국 층층의 검은 업력을 지어 최종적으로 지옥에 떨어졌다.
오만이 법공부 중에 나타나면 어떤 이는 몇 년 공부하고는 자신이 모르는 것이 없다고 느껴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자부한다. 이때부터 경서를 내려놓고 ‘보지 않아도 된다’는 둥 헛소리를 하며 심지어 함부로 정의를 내리기도 하는데, 원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표면의 글자만 볼 뿐 층층의 무진한 내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만이 진상 알리기 중에 나타나면 어떤 이는 몇 가지 일을 한 후 공로를 내세우며 오만해져 도처에 자신의 이름을 날린다. 어떤 이는 남의 추켜세움을 즐기고 강압적으로 명령을 내리며, 남의 말을 듣지 못하고 그 어떤 건의나 비판에 대해서도 궤변을 늘어놓으며 배척한다. 어떤 이는 병업 증상이 나타나면 자신이 수고가 많고 공이 높으니 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광기 어린 모습으로 사부님을 원망하다가 결국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난다.
오만이 교류 중에 나타나면 어떤 이는 자신을 뽐내며 과시하고 타인을 깎아내리며 원망한다. 어떤 이는 거만한 태도로 남을 무시하며, 어떤 이는 공을 가로채고 잘못을 떠넘기며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점차 이런 사람들 중 일부는 첩자가 되거나 병으로 사망하고, 일부는 반복적으로 박해를 받으며, 일부는 줄곧 착실하게 실질적인 일을 하는 대법제자에게 압력을 가하고 번거로움을 더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 결코 책임지지 않는다.
『현우경』에는 한 어린 사미(沙彌)가 노년 비구의 독경 소리가 개 짖는 소리 같다고 비웃었다가 즉시 맹렬히 참회했음에도 여전히 500생 동안 개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 노년 비구는 이미 나한을 성취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높게 여기고 남을 가볍게 보며 조롱하는 결과가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인의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우물 안 개구리 현상)’에서도 능력이 낮을수록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쉽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지며, 지식과 기술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더욱 겸손해진다고 본다.
자신이나 타인의 언행이 교만함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낮은 지능과 낮은 능력의 표현임을 생각해야 하며 제때 자신을 바로잡고 타인을 일깨워줘야 한다. 왜냐하면 아는 것이 적고 어설프게 알수록 스스로를 높게 여기고, 미미한 힘일 뿐임에도 하늘의 공을 탐하며, 마음이 좁을수록 자화자찬하고 어진 이를 시기하며 타인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집안의 추태’를 드러내고 무고한 사람까지 해치는 것이다.
불가(佛家)의 관점에서 나한은 무아(無我)이며 즉 자아의 오만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대법제자는 수련 중에서 더더욱 반드시 스스로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닦아 없애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겸허해야만 끊임없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만약 불법(佛法)이 광활한 대해라면 우리가 배운 것은 창해일속(滄海一粟)도 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중생이 하늘의 별과 같다면 우리가 구한 것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만약 각자(覺者)가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므로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배웠든 얼마나 했든 여전히 너무나 부족하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은 여호와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게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 많은 주의 백성을 재판할 수 있겠나이까?” 신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혜를 구하고 자기를 위하여 장수도 부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라.”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이후 천하의 왕들이 다 솔로몬 왕을 알현하여 신께서 솔로몬 왕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려 했다.
솔로몬 왕이 세상에 남긴 말이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이 존귀의 앞잡이니라.”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진정으로 수련하려면 명확히 알아야 한다. 교만은 변이되고 타락하는 시작이며 멸망으로 향하는 시초다. 조금이라도 자부심이 생기거나 공로를 내세우고 남의 선생 노릇을 하려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오만을 경계하고 마성(魔性)을 억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이 팽창하고 마성이 범람해 곧 위험이 닥친다.
[수련생 사이의 이성(理性)적인 교류는 통상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서의 인식일 뿐이며, 선의의 교류로 함께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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