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중국사회에 미친 심층적 영향(1999~2025)을 보며
글/ 정옌(鄭岩)
[명혜망]
서문
1999년 이후, 중공(중국공산당)의 파룬궁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는 이미 26년간 지속됐다. 이 박해의 영향은 수억 명의 파룬궁수련자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국사회의 운영, 가치 판단 및 도덕 심리 구조에 깊이 침투했다. 중공 관영 매체, 민간 매체 플랫폼(명혜망 등), 해외 탐사 보도(캐나다 인권 변호사 등)가 장기간 축적한 자료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정치 운동이 아니라 사회 도덕의 최저선을 지속적으로 개조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10년 문혁(문화대혁명)이 중국인과 중국 전통문화 사이의 유대를 끊어놓았다면, 26년간 이어진 파룬궁에 대한 정치적 박해는 중국인의 전통 가치관과 도덕 이념에 치명상을 입혔다. 다시 말해 중국사회 안정을 지탱하는 초석을 더욱 철저히 파괴한 것이다.
1. 도덕 가치 체계가 사회의 안정을 결정하며, 진선인(眞·善·忍)은 모든 바른 도덕 가치를 포괄한다
공자(孔子)는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라고 말했다. 이는 도덕으로 국가를 다스리면 통치자가 도덕을 수양하고 덕정(德政)을 베풀기만 해도, 강제나 엄한 형벌 없이 백성과 제후들이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도덕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구심력이자 안정시키는 힘이며, 사회가 오랫동안 평안하게 유지되는 근본이다.
맹자(孟子)는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의 혁명은 하늘의 뜻에 따르고 사람의 마음에 응한 것(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이라고 했다. 이 고사가 말해주는 것은 국가의 흥망이 무력의 강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에게 덕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덕을 잃은 자는 반드시 민심을 잃어 사회 동란이나 망국을 초래하고, 덕이 있는 자는 비록 처음에는 약소하더라도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결국 사회 안정과 장기적인 평안을 가져온다.
‘사기(史記)·주본기(周本紀)’의 기록에 따르면 주문왕(周文王)은 덕이 성대해 천하를 셋으로 나눈 것 중 그 둘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 역사적 고사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도덕의 감화력이 자연스럽게 많은 민중을 진심으로 승복하게 하며, 시간이 지나면 사회가 저절로 안정과 통일로 나아간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왕조든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었지만, 어느 왕조에서나 도덕은 가장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사회 안정의 힘이었다. 그러나 중공은 어떻게 했는가? 그들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도를 배반하며 파룬궁을 탄압했다.
파룬궁과 도덕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파룬궁은 불가(佛家) 수련에 기초한 우주 대법(大法)으로,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 이 세 글자에는 우주의 모든 바른 도덕 가치 이념이 포함돼 있다. 믿기 어려운 독자는 조용히 앉아 깊이 생각해보라.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천주교의 경전이 모두 진선인과 통하고 있으며, 모두 진선인의 광대하고 원융(圓融)한 경계 안에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이 진심으로 배우기만 하면 기초가 어떠하든 건강과 도덕 양면에서 현저한 향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중공은 하늘이 중국에 내려준 진선인이라는 고덕(高德) 대법을 뼈에 사무치게 증오하며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하겠다”고 했다. 소멸할 수 있었는가? 역사상 정신(正信)을 박해한 자들은 예외 없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명백하게도 27년째 접어드는 잔혹한 박해를 겪으면서도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으며, 중국도 포함된다. 이러한 사실은 중공이 아무리 돈과 사람이 많아도 완전히 가릴 수 없다.
아래에서는 명혜망 등 매체 보도 중 구체적인 사례를 결합해, 이 박해가 중국사회의 도덕 수준에 끼친 체계적인 영향을 얕게나마 분석해보고자 한다.
2.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중국사회 도덕 수준에 끼친 체계적인 영향
중화 5천 년 문명이 다져온 도덕 전통은 이미 10년 문혁의 재난을 겪으며 만신창이가 됐다. 1989년 ‘6·4’(천안문 사태)는 얼마나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다시 타오르던 사회적 양심을 포기하고 돈벌이에 뛰어들게 했는가? 1999년의 파룬궁 박해 정치 운동은 이미 훼손된 중국인의 도덕 체계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2026년 중국사회의 도덕 현황은 5천 년 역사의 긴 강물 속 그 어떤 예법이 무너진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쁘다. 2025년 위멍룽(于朦朧), 차오런량(喬任梁)의 참사 사건이 깊이 파헤쳐지고 폭로돼 수천만 젊은이들의 배척을 받은 연예계만 봐도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영유아, 초중고생, 30세 이하의 건강한 사람이 수시로 실종되고 ‘인광(人礦·인간 광물)’으로 취급돼 살해당하는 사건이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다.
신주(神州) 대지의 전통 도덕은 신(神)에게서 온 것인데, 사람이 신을 배반하면 자신의 근본을 배반하는 것과 같은데 사회가 어떻게 안정될 수 있겠는가? 순박한 민풍은 헛된 꿈이 됐고, 중국인을 기다리는 것은 전 국민의 도덕 타락과 전 국민의 재앙뿐이다.
1) 구체적 사례로 보는 도덕의 변이
(1) 거짓말의 전 국민화: 언론과 교육의 도덕 상실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으로 중공 중앙정법위 부서기 뤄간(羅幹)은 먼저 파룬궁을 ‘사교(邪敎, 사이비교)’로 내정한 뒤 각 급 공안에 파룬궁에 대한 비밀 조사를 지시했다. 1999년 이후 중공 관영 매체의 파룬궁 보도는 고도로 일치했으며, 계속해서 성격 규정(定性)을 먼저 하고 결론을 먼저 내리는 방식으로 정치적 비판과 형사 탄압을 전개했다.
2001년 연출된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수많은 경찰이 왜 소화기를 메고 순찰했는지, 주요 당사자의 온몸은 까맣게 탔는데 왜 머리카락과 플라스틱 스프라이트 병은 멀쩡한지 등 수많은 허점에 대해 당국은 해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 국내 언론은 24시간 내에 기사를 내고 성격을 규정해 전 세계에 방송했으며, 이를 박해 합법화의 핵심 서사로 삼아 전국적으로 학습과 태도 표명을 강제했고 심지어 초중고 교과서에까지 실었다.
그러나 이후 해외 매체, 학자 및 파룬궁 관련 플랫폼(명혜망 포함)은 화면의 디테일, 인물 신원, 의학 상식 등에 대해 대량의 의문을 제기했다. 사람들이 이 의문들을 접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의 사실은 이미 성립됐다.
‘주류 언론은 중공의 요구에 따라 중대 공공 사건에서 검증 책임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포기하고, 오직 당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복무한다.’
이런 행태는 26년을 거치며 중국사회 전반에서 진상이 더 이상 뉴스 도덕의 핵심이 아니게 만들었다. 당을 따르고 ‘정확한 입장’을 방송하는 것이 사실을 말하고 도의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해졌다. 청소년들은 교실과 매체에서 “목적 달성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당하다”라는 단일 서사를 반복적으로 주입받았고, 은연중에 이런 잘못된 인식과 습관이 형성됐다. 26년이 지난 지금, 사회의 거짓말에 대한 도덕적 민감도와 정의감은 심각하게 약화됐다.
(2) 전 사회적 의료 도덕의 붕괴: 사람을 살리는 것에서 살인 협조로
명혜망은 장기간 다수의 파룬궁수련자가 구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 있는 동안 학대를 당하면서도 정상적인 치료를 박탈당했고, 심지어 용도를 알리지 않은 채 강제 신체검사와 채혈을 당했다고 폭로해왔다.
이런 보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몇 가지 역할이 있다. 용도를 묻지 않고 ‘규정대로’ 처리하는 의사, 양심을 거론하지 않고 지시를 수행하는 간호사, ‘상부의 요구’를 도덕적 면책 사유로 삼는 관리자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도덕적 영향은 단지 개체 생명에 대한 상해에 그치지 않고 전체 업계 도덕에 대한 침식이다. ‘생명을 구하고 부상자를 치료한다(救死扶傷)’는 원칙이 당성(黨性), 돈, 정치적 임무에 양보해야 할 때 의료 전문성의 도덕적 기반은 흔들리게 된다. 백의의 천사는 백의의 악마가 되어 살인하고 장기를 적출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천리를 거스르는 짓에 대한 두려움마저 잃어버렸다.
그제 ‘인광’으로 취급돼 살해당한 것은 비밀리에 감금된 수많은 파룬궁수련자였고, 어제 ‘인광’으로 살해당한 것은 학교에서 기숙하던 고등학생 후신위(胡鑫宇)였으며, 샹야(湘雅)병원의 생체 장기적출 진상을 폭로하려다 투신 자살로 위장된 의로운 의사 뤄솨이위(羅帥宇)였다. 그렇다면 오늘과 내일은 누구인가? 도덕적 최저선이 없는 사회는 악마의 세상과 다를 바 없다.
(3) 사회의 냉담화: 모두가 위험을 느끼는 도덕적 위축
폭력과 피비린내 앞에서 사회가 냉담함에 익숙해지면 악은 거침없이 횡행한다.
명혜망에는 수많은 사례가 기록돼 있다. 수련자가 납치될 때 이웃들은 그가 선량하고 법을 잘 지키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문을 닫거나 피하고, 심지어 지목에 협조하는 길을 택했다. 이런 행위가 반드시 악의에서 나온 것은 아니며 공포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덕적 차원에서 볼 때, 도덕 원칙을 포기한 전제하에 ‘이성적 자기보호’가 보편화됐다는 것은 동정이 위험한 행위가 되고, 선량하게 남을 돕는 것이 갈취당하거나 법정에 서게 될 일이 되며, 도덕적 선택이 점차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축소됐음을 의미한다. “결별서를 쓰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게 하겠다!”
전체 사회가 이런 심리 구조로 훈련되면 공공 도덕은 더 이상 공유 가치가 아니라 개인의 부담이 된다. 심지어 많은 의사, 간호사, 교사, 변호사의 마음속에서 ‘도덕’과 ‘양심’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사람은 개미나 늑대가 아니다. 도덕과 양심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이 아니라, 개개인과 지역 사회, 나아가 전체 사회가 견고하고 안전하게 유지되는 데 관계된 초석이다.
2) 대량의 보도에서 귀납한 도덕 추세
(1) ‘정치적 올바름’이 ‘도덕적 올바름’을 대체
20여 년간의 언론 자료를 종합하면 하나의 명확한 추세를 귀납할 수 있다. 어떤 행위가 정당한지 여부는 그것이 선량하고 합법적이며 비폭력적인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와 당의 명령에 부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보도에서 파룬궁수련자는 가족 구성원, 우수 직원, 준법 시민으로 묘사되지만, 이런 도덕적 품성과 사회적 역할은 당의 정치적 성격 규정 앞에서 모두 효력을 잃는다. 이는 사회에 강렬한 신호를 보낸다. 도덕과 양심은 안전과 생존을 제공할 수 없으며, 당을 따라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어떠한가? 진선인 신앙을 지키는 파룬궁수련자들은 정치적 박해 속에서 겹겹이 상처를 입었지만, 당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미 당이 동포를 박해하는 도구가 되어 업보를 향해 가고 있다. 동트기 전의 어둠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2) 전 국민의 원칙 포기: 폭력의 일상화
명혜망이 장기간 폭로한 박해 사례를 보면 참여자 중 다수가 ‘극단적인 악인’이 아니라 평범한 경찰, 교도관, 지역사회 직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문제가 개별적인 도덕 타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공이 집권한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정상인에게 비도덕적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고 강요한다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정상인이 공포에서 시작해 점차 사고를 포기하고 양심을 포기하며, 자신과 타인의 비도덕적 행위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언론을 예로 들어보자. 관영 언론은 모든 종사자에게 고강도 교육을 실시해 그들이 당의 돈을 받고 당의 밥그릇을 들고 있으니, 일할 때는 양심, 공평, 정의를 뇌리에서 지우고 당이 말하라는 대로 말하고 쓰라는 대로 써야만 당이 준 밥값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당의 밥그릇은 누가 준 것인지, 당의 돈은 어디서 왔는지는 교육에서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생체 장기적출을 또 다른 예로 들어보자. 의료진의 명령 복종, 침묵을 통한 생존, ‘법은 많은 사람을 책망하지 않는다(法不責衆)’는 요행심리는 사회 도덕 퇴화의 전형적인 징표다.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달렸다(人命關天)’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오직 낮에 두툼한 지폐 뭉치를 얻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현재 생체 장기적출의 장기 공급원은 파룬궁수련자에서 전 국민, 심지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으로까지 확대됐다. 이것은 전 국민이 도덕적 최저선 수호를 포기한 후 전 국민이 직면하게 된 위험한 결과다.
(3) 교육의 역방향 시범 효과
속담에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낫다(言敎不如身敎)”라는 말이 있다. ‘진(眞)·선(善)·인(忍)’을 제창하고 실천하는 집단이 정부나 언론에 의해 장기간 악마화될 때, 사실상 사회에는 역방향 시범이 형성된다. 진실함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선량함은 자신을 지킬 수 없으며, 인내는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공의 끈질긴 파룬궁 박해는 중국인에게 공포에 기반한 가치관을 전달했다. 정의와 양심은 나와 무관하며, 진상과 양심을 지키는 것보다 돈, 권력, 색욕이 훨씬 실질적이라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과거의 ‘소뱀귀신(牛鬼蛇神)’처럼 거짓말에 의해 매도당하고 악의적인 비판을 받으며 심지어 노동수용소와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할 때, 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은 경고성 교육을 받게 된다. “도덕을 포기하라, 원칙을 논하지 마라, 선을 버리고 악을 취하라. 정글의 법칙, 적자생존이다.”
중국의 아동은 어릴 때부터 붉은 세뇌 속에 잠겨 있다. 아이들은 미국을 증오하고 일본을 증오할 줄은 알지만, 중국인이 화(和)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모르며,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기본 함의는 더더욱 모른다. 초등학생들은 파룬궁이라는 말만 들어도 안색이 변하지만, 파룬궁이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며 질병 치유와 건강 증진, 도덕 향상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른다.
파룬궁 박해 25년 후, 중국에는 어떤 상황이 나타났는가? 몇 가지 예를 보자.
2006년 난징(南京)의 펑위(彭宇) 사건에서 판사가 한 말 “당신이 치지 않았는데 왜 치료비를 대납했는가”는 사람의 선념(善念)과 양심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
2011년 광둥(廣東)에서 샤오웨웨(小悅悅)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운전자들은 고의로 아이를 치고 뺑소니를 쳤고, 이후 18명의 행인이 지나갔지만 보고도 못 본 척했으며 아이의 생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행인들의 태도는 중국인의 도덕적 냉담함을 반영하며 사회 전체의 도덕 붕괴를 투영한다.
2024년 스위스에서 중국 유학생이 유아 3명을 흉기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가 재학 중인 대학에서 ‘대만 주권 강연’을 개최한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이 원인이었다. 호주에서는 중국 유학생이 백인 남자아이에게 뜨거운 커피를 끼얹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용의자의 중국인 친구는 그가 비자 거절 때문에 백인에게 분노를 표출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쑤저우(蘇州)와 선전(深圳)에서는 일본 아동을 대상으로 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미성년자의 악성 범죄도 갈수록 보편화되고 있다.
한 중국 언론인은 “그 배경 원인은 중공 정부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일종의 죄악적인 학살주의 교육을 배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1년 전 국민에게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가르친 것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공의 증오 교육은 극에 달했다. 냉담한 중국인의 눈에 증오와 살육은 마치 패스트푸드를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것처럼 평범한 일이 된 듯하다.
어릴 때부터 거짓말, 독기, 증오 속에 빠져 있던 사람은 자존감과 타인의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른다. 그들이 순리대로 순수하고 선량하며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己所不欲勿施於人)’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폭력성을 제거하고 두터운 도덕적 소양을 갖춰 중국사회를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 예의지국으로 건설할 수 있겠는가? 어렵다! 올바른 도덕적 인도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정말 너무나 어렵다.
3) 어떤 사회든 평화롭고 비폭력적이며 도덕 수련을 핵심으로 하는 집단을 장기간 탄압하면, 필연적으로 사회 전체의 도덕에 대한 신뢰와 실천 능력을 약화시킨다
1999~2025년, 중공은 국가 기구를 동원해 언론, 사법, 교육, 의료, 기층 관리 등 다중 시스템을 통해 파룬궁을 지속적으로 박해했고 전 사회의 협조를 요구했다. 그 결과 전 사회의 공공 도덕은 정치화됐고, 양심은 가장자리로 밀려났으며, 냉담함이 이성적인 선택이 됐고 거짓말은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 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사라진 것은 양심뿐만이 아니다. 충분히 ‘분홍색(친중공 성향)’이지 않거나 이치와 사실을 따지려 하는 중국인은 누구나 가장자리로 밀려날 수 있다. 아이는 학교에서 사라질 수 있고, 환자는 병원에서 사라질 수 있으며, 화장장의 시신도 바꿔치기 당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우연이 아니라 중공의 본성이 결정한 것이며, 중공 집권의 필연적인 결과다.
3. 맺음말
1999~2025년의 26년을 회고하며 언론 보도와 대량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볼 때, 중공의 파룬궁 박해는 수많은 선량한 개인에게 상처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중국사회의 도덕 생태계를 심각하게 변화시켰다. 그것은 사람들이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데 익숙해지게 했고, 거짓말을 강자의 능력으로 여기게 했으며, 권력 앞에서 도덕과 양심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사회의 진정한 위기는 바로 사람들이 신을 배반하고 거짓말에 익숙해지며 폭력과 공포를 ‘당연한 것’으로 말하는 데 있다.
사람 마음의 선악(善惡)은 신의 눈이 번개같이 지켜본다. 사회 도덕은 사람마다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사회 정의는 어떠한가? 국민이 공동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동트기 전의 어둠, 문혁이 끝나기 전의 광기처럼, 이 파룬궁 박해 정치 운동은 이미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최후의 도덕적 타락 속에서 중국인은 과거 문혁의 앞잡이들처럼 벼랑으로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이 닿는 대로 사회의 양심을 지지할 것인가? 결말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좋은 결말을 얻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1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21/50530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21/50530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