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서 연공을 견지하고 정법위 서기에게 진상을 알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7년 10월 어느 날, 저는 석탄 판매 때문에 친구와 친구 직장의 기술자를 초청해 탄광을 돌아보러 갔습니다. 도중에 그들이 파룬궁 이야기를 했고 저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돌아온 후 그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는데 친구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왜 술을 안 마셔?”라고 묻자 그는 가슴에 달린 배지를 가리키며 “나는 파룬궁을 수련해서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셔”라고 말했습니다. 배지를 한번 보니 마음이 떨렸습니다. ‘이런 건 본 적이 없는데 너무나 불가사의해! 이 도형이 어떻게 이렇게 배열될 수 있지!’ 즉시 한 가지 소원이 나왔습니다. ‘나도 파룬궁을 배워야겠어!’

이튿날 아침 일찍 친구 직장으로 그를 찾아갔지만, 3일 내내 가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은 학교 캠퍼스 내에 있었는데, 어느 날 파룬궁 홍보물을 보고 주소대로 한 교실을 찾아가니 그곳에 많은 사람이 앉아 각자 책을 한 권씩 들고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누가 제게 책을 한 권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한 사람이 “오늘은 안 가져왔어요”라고 했습니다. 옆에 있던 한 청년이 “저한테 있어요. 저를 따라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곧장 그를 따라 학생 기숙사로 가니 그가 책 몇 권을 주었습니다. 그중에는 ‘전법륜(轉法輪)’, ‘전법륜 2(轉法輪 卷二)’, ‘정진요지(精進要旨)’가 있었습니다. 저는 보물을 얻은 듯 기뻐하며 책을 품에 안고 집으로 달려가 즉시 전법륜을 펼쳐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후에 시작해 연속으로 밤이 새도록 보았는데, 다 읽은 후에는 마음이 아주 벅차올랐고 세상의 색깔이 변한 것 같았습니다. 즉시 시 한 수를 썼습니다. ‘만고에 인연 있어 불법(佛法)을 얻으니, 일세(一世)에 무심(無心)하게 본원(本源)으로 돌아가네.’

저는 일찍 퇴직하고 자영업을 하고 있어서 1998년 일 년간 법공부와 연공을 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매일 전법륜 3강을 읽을 수 있었고 법에 대해 깊은 인식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나면 단체 연공과 법을 알리는 활동에 참가했고, 집에서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틀어 인연 있는 사람이 법공부를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1. 풍운이 돌변해도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다

1999년 ‘7·20’ 이후 공개된 장소에서 파룬궁 연공 음악을 틀어놓는 사람을 더는 볼 수 없게 됐고, 모든 사람이 밖에서 연공할 수 없게 됐습니다. 나중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밖으로 나가서 연공하고 법을 실증하며 박해를 반대해야 해.’ 저는 9월부터 밖으로 나가 기존의 교내 연공장에서 연공을 했고 혼자서 다섯 가지 공법을 전부 연마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걸로는 안 돼, 좀 더 멀리 가야겠어.’ 그래서 과거 시내에 있던 비교적 큰 단체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날 아침 막 가부좌하고 앉자 아주 강렬하게 파룬(法輪)이 회전하는 소리가 들렸고, 마치 큰 기계가 돌아가는 굉음 같았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대략 20~30분 연공했을 때 “누가 여기서 연공하라고 했어? 얼른 가!”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순찰 경찰이었습니다. 저는 일어나 광장으로 가서 연공을 했습니다.

광장에는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저는 광장의 중앙에서 연공을 했습니다. 약 두 달 후인 12월 5일 아침, 제가 제5장 공법을 연공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공을 연마하는 거예요?” 눈을 떠보니 아침 운동을 하던 사람들 무리가 제 주위에 있었습니다. 저는 법을 알리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말했습니다. “파룬궁입니다.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는 효과가 좋습니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국가에서 연공하지 못하게 하는데, 어째서 아직도 연공해요?” 제가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을 말하고 국가와 사회에 수많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는데 왜 연공하지 못하게 합니까? 파룬궁에 대한 국가의 조치는 잘못된 겁니다.” 그때 한 노인이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 사람을 붙잡아, 가게 하지 마! 연공하지 말라는데 당신은 아직도 연공해! 뻔히 알면서 범죄를 저질러! 공안국에 신고해.”(그 사람이 구 공안국장의 아버지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빨리 가요, 빨리 가.” 두 사람이 다가와 제 팔을 잡았고, 저는 양팔을 떨쳐 그들을 뿌리치며 말했습니다. “당신네 공안국에서 오라고 하세요.” 잠시 후 공안국에서 사람이 왔고, 공안국에 갔을 때 경찰이 제게 ‘보증서’를 쓰라고 했지만 저는 쓰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저를 구치소로 보내 불법 감금했습니다.

2. 구치소에서 연공하고 정법위 서기에게 진상을 알리다

이튿날 아침 일찍 제가 감방에서 나와 감옥 안 마당에서 연공을 하자 재소자 몇 명이 다가와 저를 때렸습니다. 때리는 걸 멈추면 제가 다시 이어서 연공했고 그들이 또 와서 때렸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자 제가 다시 연공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후로 세 감방을 옮겨 다녔고 모두 자유롭게 연공할 환경을 개척했습니다. 기억하기로 2000년 여름 어느 날, 70~80명이 있는 한 감방에서 점심 식사 후 재소자들이 방으로 돌아가 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감방 마당으로 젊은 경찰이 들어오더니 한 재소자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고 다가가 뺨을 두 대 때리고 소리쳤습니다. “무릎 꿇어!” 그 재소자는 즉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침 문밖에서 누군가가 그 경찰을 부르며 잠깐 나오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무릎 꿇은 재소자에게 말했습니다. “너 꼼짝 말고 기다려, 금방 돌아와서 손봐 줄 테니까!” 말을 마치고 나갔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일어나세요. 괜찮아요! 여기는 제가 연공하는 곳이에요.” 그 사람은 일어나서 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가부좌하고 연공을 했습니다. 잠시 후 그 경찰이 왔는데, 그 재소자는 보이지 않고 제가 가부좌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놀라며 “이게 무슨 일이야?”라고 했습니다. 많은 재소자가 말했습니다. “파룬궁이 연공하고 있는 겁니다.” 그가 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너 일어나, 일어나!” 저는 일어섰고 그와 거리는 1미터도 안 됐습니다. 그가 제 얼굴을 가리키며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연공을 불허한다! 너 다시 연공하면 내가 볼 때마다 때릴 거야!” 저는 그를 보고 한번 웃으며 말했습니다. “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앉아서 가부좌하고 제5장 공법의 모든 동작을 완전하게 한번 시연한 다음 결인(結印)을 했습니다. 감방 안의 모든 사람이 긴장하며 경찰을 보았습니다. 경찰은 그곳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족히 3~5분은 지났을까,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감방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감방 안의 모든 사람이 제게 몰려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습니다. “파룬궁, 대단해요!”

한번은 TV에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내용이 방송되자 담당 경찰이 감방의 재소자를 모두 집합시켜 줄을 세우고 훈시하며 면전에서 파룬궁을 모함했습니다. 저는 즉시 반박했습니다. “TV 내용은 모함입니다. 파룬궁을 비방하는 겁니다! 파룬궁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후 그 경찰은 저를 사무실로 불러 뒤로 수갑을 채웠고(3일 후에야 앞으로 채웠는데 총 72일간 찼음), 당시 저는 선포했습니다. “저는 항의합니다! 저는 단식하겠습니다!”(원래 저는 단식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24일간 단식했습니다. 구치소 식사는 사실 아주 형편없어서 끼니마다 작은 찐빵 하나와 기름기가 거의 없는 채소국뿐이었습니다. 단식 후 저는 몸이 많이 여위었습니다. 결국 구치소를 나올 때 저는 피골이 상접하게 말랐습니다.

저는 구치소에서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연공과 전법륜 암기를 견지했습니다. 한번 또 한번 외우며 1년 넘는 시간 동안 100여 번을 외웠습니다. 외우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사부님께서 여러 방식으로 저를 깨우치고 독촉해주셨습니다.

2000년 하반기 어느 날, 경찰이 저를 큰 회의실로 데려갔습니다. 안에는 한 무리의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자칭 시(市), 구(區)의 정법위원회 간부라고 했습니다. 저는 탁자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았는데, 양옆에 경찰이 한 명씩 서 있었고 앞쪽에는 두 사람이 비디오카메라를 메고 있었습니다. 그 모양을 보니 저를 전향시키러 온 것 같았습니다. 자칭 시 정법위 서기라는 사람이 친한 척을 하면서 자기 동생 아무개가 저와 같은 직장에 다녔다며 물었습니다. “그를 알아요?” 저는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화제를 돌려 말했습니다.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국가에서 파룬궁을 금지했어요. 당신이 여기 있은 시간도 짧지 않아서 우리가 당신을 보러 왔어요. 파룬궁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어요.” 저는 좋다며 가슴을 펴고 말을 막 하려는데 갑자기 목이 말라 옆에 있는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물 한 잔 주세요. 목이 마릅니다.”

그가 서기의 동의를 얻어 물 한 잔을 따라주었는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단숨에 들이키고 파룬궁이 10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해진 것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을 말하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진수(眞修) 제자는 법을 배운 후에 스스로 기준을 엄격히 지키고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이 됩니다. 각자 심신에 모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다른 간부 한 명(나중에 구 정법위 서기임을 알게 됨)이 “탁!” 하고 탁자를 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회개할 줄 모르는군. 당신이 이런 지경에 이르고도 여기서 파룬궁을 선전하다니, 얼른 이 기회에 회개서를 쓰고 집에 갈 생각은 안 하고, 언제까지 있을 거야? 설마 공산당이 당신들을 복권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거야?” 저는 듣고 나서 가볍게 탁자를 치며 말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파룬궁은 우주의 근본 대법이고 법을 전하는 건 사람을 제도하고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당파도 파룬궁에 대해 이른바 복권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공산당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다 벗겼다 하는 데 습관이 돼서 탄압하고 싶으면 탄압하고 복권하고 싶으면 복권합니다. 파룬궁의 옳고 그름이 공산당의 말에 달렸습니까?” 이 말을 듣자 시 정법위 서기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저었습니다. “데려가, 데려가!” 회의실 문을 나서는데 두 다리가 가벼웠고 걷는 것이 마치 구름을 밟는 것 같았으며 마음속에 특별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솟아올랐습니다.

3. 노동수용소에서 연공하다

2001년 1월 검찰원에서 제게 ‘불기소 처분서’ 한 장을 발급했습니다. 뜻밖에 이튿날 아침 공안국에서 저를 시 교외의 한 작은 호텔로 데려갔습니다. 두 사람이 저와 함께 지냈고 저는 평소대로 연공을 했습니다. 11일째 되던 날, 그들은 제게 불법 강제노동 2년 통지서를 주었고, 그날 저를 성(省) 남부의 한 노동수용소로 보냈습니다. 경찰이 인계 수속을 할 때, 노동수용소의 정치위원이 와서 물었습니다. “뭐 하는 사람이야?” 제가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노동수용을 하러 왔으니 법을 지켜야 하고, 당신들 파룬궁에게는 또 한 조항이 있는데 바로 연공을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저는 즉시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파룬궁수련생이지 노동수용 대상이 아닙니다. 저는 연공인(煉功人)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연공을 해야 합니다!” 저는 집훈대(단체훈련대)로 보내졌습니다. 집훈대에서는 마치 강적을 맞이하듯 즉시 사람을 배치해 저에 대한 감시를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제가 연공을 시작하자마자 재소자 몇 명이 저를 때렸습니다. 그들이 다 때린 후에 제가 말했습니다. “다 했나요? 다 때렸으면 저는 계속 연공하겠습니다.” 그들은 몇 번 반복한 후 더는 때리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성도(省都)에서 마약 중독자 한 무리가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은 생김새가 우락부락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성도에서 유명한 ‘귀견수(鬼見愁, 귀신도 보면 걱정한다는 뜻)’라고 했습니다. 그는 집훈대에서 훈련을 면제받는 특혜를 받아 낮에는 자고 밤에는 저를 감시했습니다. 그가 제게 직접 말했습니다. “우리는 전문적으로 당신 연공을 관리하는 사람이라 훈련에 참여하지 않아. 당신 절대 연공하지 마. 연공하면 우리가 당신을 때릴 거야. 저들(경찰)이 말하길 당신을 때려죽여도 법적 책임이 없고 헛되이 죽은 셈 친다고 했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밤에 평소대로 연공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제가 연공할 때 그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조용히 제가 연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연마하고 잠을 자러 갈 때까지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귀견수’가 다가와 제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정말 당신 파룬궁에 탄복했소. 정말 대단해요. 우리는 감히 당신을 때릴 수 없으니 우리 친구 합시다!”

몇 달 동안 노동수용소 간부들이 번갈아 가며 저를 찾아와 면담을 했는데, 매번 저는 파룬궁의 아름다움과 파룬궁이 사람을 구하러 왔음을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꽤 커서 많은 노동수용소 직원들이 문입구에 모여들어서 들었습니다. 제가 나오니 그들 중 어떤 이가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 정말 대단해요. 감히 큰 소리로 간부에게 도리를 말하다니.” 또 어떤 이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우리는 당신을 믿어요. 나가면 당신을 찾아가 함께하겠습니다.”

2001년 5월 어느 날, 모든 파룬궁수련생이 저희 성 북부의 한 노동수용소로 이송되게 됐습니다. 대형 버스 앞쪽에 경찰 10여 명이 앉았고 뒤쪽에 파룬궁수련생 10여 명이 앉았는데, 모두 연결된 수갑을 차고 있었지만 저 혼자만 따로 수갑을 차고 앞쪽에 앉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회의 한번 합시다. 저한테 중요한 체험이 있는데, 바로 이런 장소에서 우리가 연공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연공을 해야 사람들이 우리를 파룬궁으로 여기지, 연공하지 않으면 죄수로 취급합니다. 저는 지난 1년여 동안 매일 연공을 했는데 제고가 아주 빠르다고 느꼈고 아주 좋았습니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연공 환경은 우리가 직접 정념(正念)으로 개창해내는 겁니다.” 대부분 수련생이 동의했습니다.

그 노동수용소에 도착한 후 저는 혼자 엄격관리대에 배정됐지만 평소대로 연공을 했습니다. 나중에 밖으로 나가 공사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한번은 두 대(隊)가 합쳐져 대략 200여 명이 있었고 경찰도 수십 명 있었습니다. 쉴 때 제가 연공을 시작하자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나중에 저는 강제로 제지를 당했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연공했는데, 매번 그런 환경에서 연공을 하면 아주 오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기묘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제1장 공법 ‘장지건곤(掌指乾坤)’을 연마할 때, 몸이 떠오르더니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갔고 날고 또 날아서 연공하면서 날아가 저희집 거실로 날아갔습니다…. 얼마 안 되어 저는 노동수용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기간에 비록 때때로 우여곡절이 있었고 힘든 경험을 했지만,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 걸어 넘어왔습니다. 박해 속에서 저는 파룬궁수련생이 해야 할 일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연공과 법공부를 하며 법을 실증했습니다. 사악한 박해로 인해 제 신체는 심각한 손상을 입어 몰골이 말이 아니게 여위었고 걷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몸이 빠르게 회복됐습니다. 저는 법을 실증하는 또 다른 항목의 거센 흐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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