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본귀진 수련의 길을 걸으며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9년 초,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듣게 됐고 그때부터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 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26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26년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있었고 사존에 대한 끝없는 감사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절약을 배우다

저는 동북의 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로 오빠 둘과 언니가 있고 저는 집에서 막내입니다. 집안 형편은 몹시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편식을 했다는 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에는 집집마다 생활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겨울이 되면 어느 집이나 떡과 찹쌀떡을 많이 만들어 두었고 매 끼니 그것을 데워 먹으며 좁쌀로 묽은 죽을 조금 끓여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떡과 찹쌀떡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밥을 먹을 때면 죽 속에 들어 있는 좁쌀만 골라 먹었고 그마저도 양이 적어 늘 배를 채우지 못한 채 굶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늘 걱정이 많으셔서 매번 밥을 짓기 전마다 혼잣말로 “우리 막내한테 뭘 해 먹여야 하나…”하고 중얼거리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배불리 먹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는데 말입니다. 설이 되면 외삼촌 집에 며칠 가 있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촌 오빠는 저에게 ‘죽만 먹는 애’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저는 먹지 않는 음식이 많았고 결혼 후 시어머니 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가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한 끼에 네 가지 음식을 차려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1999년 초, 저는 다행히 파룬따파를 얻게 됐고 제 인생은 그때부터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의 변화를 통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제가 더는 잘난 체하고 거만하지 않게 됐고 사람들에게 온화해졌으며 생활 속에서 절약을 배웠다는 점입니다.

막 법을 얻었을 무렵, 한 아주머니가 자주 저희 직장에 생활용품과 속옷을 팔러 오셨습니다. 저는 매번 보기만 하면 사고 예뻐 보이면 사서 집에 잔뜩 쌓아 두곤 했습니다. 법공부를 한 후 저는 제가 너무 낭비하고 비교심이 강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는 함부로 물건을 사지 않게 됐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이상하게 여겨 동료에게 “요즘 아무개 씨는 왜 물건을 잘 안 사요?”라고 물었고 동료는 “그분은 파룬궁을 수련한 뒤로 사람이 완전히 변했어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나중에 저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면 어떤 사람이든 다 좋아질 수 있겠네요. 파룬궁이 좋다는 건 믿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저희 집에 며칠 머무르셨다가 집에 돌아가 큰언니에게 “셋째가 변했더라. 이제 편식도 안 하고 뭐든 다 먹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그토록 편식하던 막내딸이 더는 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후 어머니도 대법을 수련하게 되셨습니다. 나중에 수련생들이 쓴 ‘사부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시리즈 글을 읽었는데, 사존께서 법을 전하실 당시 밥에 들어 있던 한 톨의 곡식에서 껍질을 벗겨 드셨다는 이야기, 동북의 겨울에 집집마다 절임 배추(酸菜)를 담글 때 사모님이 배추 겉잎을 버렸는데 사존께서 그것을 다시 주워 와 절임 배추를 담그셨다는 이야기를 읽고 저는 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사존께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 이후 저는 더는 음식물을 낭비하지 않게 됐습니다. 절임 배추를 담글 때면 늘 사존을 떠올리며 배추의 겉잎을 따로 떼어 데쳐 냉동해 두었다가 겨울에 찌개로 끓여 먹습니다. 농촌에 사는 큰언니는 제 변화를 보고 믿기 힘들어했고 제가 이렇게 절약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존의 이야기를 언니에게 들려주었고 지금 언니도 사존의 설법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비록 제가 번 돈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제 것이 아니라 대법의 자원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더는 함부로 돈을 쓰지 않고 향락을 추구하지 않으며 명품을 사지 않습니다. 같은 연배의 동료와 동창들은 모피 옷을 입고 차를 몰며 미용실과 맛집을 다니지만 저는 걸어서 출근하고 겨울에는 패딩 하나, 여름에는 거의 청바지와 티셔츠만 입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저는 사무실과 화장실을 하나하나 돌며 쓰지 않는 불을 끕니다. 화장실이 더러우면 말없이 솔로 닦아 깨끗이 합니다. 사실 한 층마다 청소 직원이 3~4명씩 있지만 저는 스스로를 수련인이라 여기며 이런 일들은 손만 뻗으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하시는 분들도 무척 힘드니까요.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해 오면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대법제자가 하는 모든 일이 미래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질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으니 마음이 무척 충만해졌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에서 법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일할 때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일이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으며 자주 초과근무를 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을 잘 닦아야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법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속세에 미혹된 중생들을 볼 때마다 저를 선택해 제자로 삼아주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만약 제가 대법을 듣지 못했다면 이 독한 세상에서 어떤 생명이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진상을 알리고 싶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듯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이 세상에 왔기에 반드시 진상을 들을 수 있게 해야 하며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사명입니다.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우다

여러 해 동안 한 수련생이 저에게 진상 소책자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몇 해 전 그 수련생이 구세력(舊勢力)의 교란으로 신체에 문제가 생겨 더는 자료를 공급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후 또 다른 수련생이 매주 스무 권씩 주었지만 연락에 휴대폰을 쓸 수 없어 매우 불편했고 수량도 부족했습니다. 아직 진상을 모르는 중생들이 그렇게 많은데 저는 마음이 무척 조급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료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그래도 사람을 구할 것인가?’ 제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구한다.’ 그래서 저는 사존께 향을 올릴 때마다 법상(法像)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는 평생의 노력을 모두 수련에 쓰고자 합니다. 사부님, 꼭 저를 도와주세요.”

며칠간 고민한 끝에 저는 스스로 자료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직 집의 여건이 완전히 갖춰지지는 않았지만 준비를 시작했고 어떤 프린터를 살지도 알아보았습니다. 마침 프린터를 어디에 둘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가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문간에 서서 웃으며 “엄마, 우리집에 프린터 하나 사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 벌떡 일어나 “정말 잘됐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아직 말 못 했어. 다만 바른 일에 쓰려고 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적극 지지했고 다음 날 바로 프린터를 샀습니다. 다음 날 저녁 퇴근 후에 그는 저를 도와 프린터를 집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사실 그는 원래 프린터를 사서 자기 공부 자료를 출력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작은 프린터를 하나 더 구입해 그것은 자신의 학습 자료만 출력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저희 집의 이 ‘작은 꽃’은 사부님의 가지(加持) 속에서 피어나게 됐습니다. 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정말로 마음먹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수하고 바른 마음으로 자료를 만들다

제가 직접 자료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돕는 일이며 가장 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더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 사람에게 의지하면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때로는 제때 되지 않거나 불편하며 공급이 끊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 성장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직접 하기로 했고 어떠한 후원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으니 우리도 중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소모품 시장에 가서 자료 제작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고 가격을 물었습니다. 이후 큰 매장의 판매원에게서 전화가 왔고 저는 직장 전화로 그녀와 연락을 했습니다. 그녀는 저를 창고로 데려가 종이 등 여러 물품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가장 좋은 것을 원한다고 했고 그녀는 몇 가지 고급 브랜드의 종이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중 우리에게 적합한 한 가지를 골라 가격을 최저가로 협상했습니다. 그녀는 집까지 배송해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직접 가져가겠다고 하며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2024년 10월, 아트지를 찾으러 갔을 때 모든 소모품이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그날 그곳에는 물건이 없어 직원이 컴퓨터로 재고를 조회했는데 계산대 옆에 새로 설치된 카메라가 보였습니다. 결제하는 사람의 얼굴이 정확히 보이도록 설치된 것으로 이전에는 없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직원과 함께 대형 창고로 가서 물건을 찾았고 그 직원은 저를 배웅하며 “구매량이 많으니 앞으로는 여기로 바로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그 장소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깨우쳐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그곳에 갈 때는 전 과정에서 마스크와 야구모자를 착용했습니다. 이후 한 수련생과 상의해 그녀가 이용하는 소모품 매장을 통해 물건을 들여오게 됐는데 가격도 훨씬 저렴해지고 거리도 가까워졌습니다. 참으로 사부님의 신묘한 안배에 감사했습니다.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개인 정보도 남기지 않았고 전화도 지니지 않았으며 차도 이용하지 않았고 모든 물건은 검은 봉투에 포장했습니다.

진상 자료를 제작할 때 저는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하게 요구하며 마음을 순수하고 바르게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래야 만들어진 자료가 더 큰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완성된 자료는 항상 가부좌를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먼저 제가 한 번 읽어봅니다. 명혜망의 수련생들이 정성껏 편집한 진상 소책자는 정말 훌륭하며 특히 표지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해외 명혜망의 모든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길에서 우리는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매주 저는 수련생들을 위해 일부 자료를 만들어 줍니다. 저는 보통 여러 내용의 정기간행물을 한 묶음으로 포장한 ‘진상 꾸러미’를 만듭니다. 이렇게 하면 장을 보러 갈 때나 모임에서, 혹은 길을 걸을 때 언제든지 전할 수 있습니다. 고정된 장소나 노점의 경우에는 다시 찾아가 “보셨나요? 가족들에게도 보여 주세요”라고 물어보곤 합니다. 대부분 사람이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습니다.

저는 주로 아파트 건물 안에서 진상을 전합니다. 자료를 배포하면서 동시에 정념을 발해 중생의 머릿속에 공산 악당이 주입한 독소와 중생의 구원을 가로막는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합니다. 지금은 날이 거의 어두워질 때를 선택해 배포하는데 밤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집마다 불을 켜기 때문에 자료가 낭비되지 않습니다. 같은 동에서 두 개의 출입구를 연속으로 돌지 않고 배포한 곳은 기록해 두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갑니다. 이성적으로, 꾸준히, 조용히 하며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습니다. 주변 수련생들은 제가 자료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직 세 명만 알고 있는데 그들에게도 말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자료 배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머리카락도 다 젖어 있었습니다. 최근 제 마음 상태를 정리해 보니 계단을 오르는 피로가 주된 원인이 아니라 조급함, 빨리 끝내려는 마음, 그리고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료를 많이 메면 부담이 되고 적게 메면 충분히 나누지 못할까 아쉬웠습니다. 어느 집도 빠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 마음이 아직 충분히 순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어떤 사람의 마음도 지니지 않고 오직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안고 당당하게 나섭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시간이 되면 손에 들고 있던 일을 내려놓고 곧바로 사람을 구하러 나갑니다. 예전에는 사상 업력이 방해해 ‘오늘은 춥다, 내일 가자’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겨 며칠씩 미루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교란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늘 할 일은 오늘 합니다. 요즘은 배포를 마친 뒤에도 땀이 거의 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도 사라졌으며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잠시 정념을 발해 중생의 구원을 방해하는 악을 제거하고 사부님의 가지로 진상 정기간행물이 더 큰 역할을 하도록 기원합니다.

탁상달력 만들기를 배우다

2023년, 한 수련생이 제게 “탁상달력 제작을 도와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만들고 나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완성되면 바로 가져가서 전달해야 하고 집에 둘 수는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잠시 생각한 뒤 저는 “그럼 너무 번거로우니 제가 직접 만들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묻자 그녀는 펀치와 재단기를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재단기가 있었기에 다음 날 펀치와 달력 거치대를 사 와서 직접 탁상달력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직접 인쇄하고 자르고 제본해 완성한 달력을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예전에는 늘 수련생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부담을 나눌 수 있게 돼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열몇 권을 완성한 뒤에는 그것을 메고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직접 만나 나누어 주었습니다. 총 500권을 만들었고 그중 거의 400권을 제가 직접 배포했습니다. 탁상달력을 나누는 과정 자체가 마음을 닦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받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한 번은 모녀가 저를 꾸짖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돌아와 자신을 돌아보며 정념을 더 많이 발했습니다. 이후 몇 가지 특히 감동적인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시장 길가에서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저는 길가에 서 있던 그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 새해 선물 하나 드릴게요. 대법제자가 자비로 인쇄한 길상(吉祥, 행운) 아기 탁상달력인데 이 달력은 보통 달력이 아니에요. 매달 뒤에는 모두 실제 이야기가 하나씩 담겨 있어요.” 제가 여기까지 말하자 그녀는 곧바로 “너무 좋네요! 얼른 주세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젊은 여성이 스쿠터를 밀고 오다가 오가는 차량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쪽으로 달려오며 “잠깐만요, 잠깐만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녀는 제 앞에 와서 숨을 헐떡이며 “저도 한 권 주실 수 있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까 그 여성이 말했습니다. “이 애는 제 딸이에요. 한 권 주세요.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 아이가 없거든요. 아이를 하나 얻게 해주세요.” 그 순간 저는 잠시 멍해졌다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안 되고요, 이건 제 사부님께 빌어야 해요.” 모녀는 함께 “그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럼 이 달력을 잘 보세요. 이 길상 아기 정말 예쁘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많이 외우세요. 저도 집에 가서 제 사부님께 부탁드릴게요.” 그 모녀는 이미 삼퇴를 한 상태였고 기쁘게 달력을 들고 떠났습니다. 멀어져 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그들의 순박함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중생들이 정말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파룬따파 사부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매우 기뻤고 진상을 알리다 보면 정말 어떤 일도 만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이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약속한 대로 가장 먼저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이 일을 말씀드리며 이 선량한 모녀를 도와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또 한번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멀리서 한 여성이 고개를 숙인 채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녀에게 다가가 “물건을 좀 건질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저를 쳐다봤는데 눈빛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40세쯤 돼 보였고 얼굴은 부어 있고 창백했습니다. 저는 마음에 연민이 생겨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중한 선물 하나 드리고 싶어요. 대법제자가 자비로 인쇄한 탁상달력인데 매달 뒤에는 실제 이야기가 하나씩 있어요. 다 보고 나면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던 매듭이 풀리고 마음도 편안해지고 몸도 점점 좋아질 거예요.” 그녀는 달력을 받아 들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성을 묻고 소선대나 공청단에 가입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소선대만 가입했었다고 하며 성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럼 아무개라는 이름으로 소선대를 탈퇴하세요. 신과 부처님이 당신을 지켜주실 거예요.” 그녀는 “알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는 옆으로 빠르게 걸어갔습니다. 알고 보니 손에 더러운 쓰레기 봉투를 들고 있었고 바닥에는 깨끗한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깨끗한 봉투를 집어 들고 저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저 이제 집에 갈게요. 걱정 마세요. 이 달력은 꼭 침대 머리맡에 둘게요. 당신은 제 은인이에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은 정말 너무도 자비로우시다. 이렇게 절묘한 안배로 한 생명이 불과 몇 분 만에 이렇게 크게 변하다니.’ 그날 오후 내내 저는 강대한 자비 속에 감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탁상달력 아홉 권을 가지고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여덟 명을 탈퇴 권유에 성공했고 한 명은 아무 조직에도 가입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실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말 몇 마디 하고 다리로 조금 움직인 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였습니다. 이로써 구원받은 중생들을 대표해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감동적인 일들을 만났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하나하나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사부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십니다. 저를 끝까지 보호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는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부님에 대한 감사함을 정진의 동력으로 바꾸어 세 가지 일을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잘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사부님의 손을 놓지 않겠다.’ 사부님의 가지 속에서 저는 지금까지 모두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법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안으로 찾을 줄도 몰랐으며 다시 말해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부족함을 찾을 줄 알게 됐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을 후회합니다. 이제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제자는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연장해주신 이 시간을 반드시 소중히 여기며 세 가지 일을 잘 해내겠습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6년 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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