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을 직접 뵈었던 한 막 한 막의 광경을 회상하는 수련생들의 글을 보며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 역시 당시 제가 보고 들은 것을 써내어 수련생들과 공유하려 합니다.
1994년 여름, 저는 어느 작은 현(縣)의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현지 사람들에게 6월 11일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허난성 정저우(鄭州)에서 공법을 전수하고 설법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정저우에 가서 파룬궁을 배우기 위해 상사에게 휴가를 신청했습니다. 상사는 저에게 “마침 허난으로 가는 차가 있으니 그 차를 타게”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남동생은 그 화물 겸용 승용차를 타고 10여 시간을 달려 한밤중에 허난 신샹(新鄕)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차는 우리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정저우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로 갈아탈 때 제 마음속은 줄곧 ‘파룬궁’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렸을 때 사부님 전수반 접수처가 보였습니다. 등록 후 10일간의 학습비 50위안을 냈는데, 기존 수련생은 절반인 25위안이었습니다. 현에서 학습반에 참가하러 일찍 온 고향 사람들이 이미 우리가 묵을 숙소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범을 보이시고, 매사에 남을 먼저 생각하시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쓰신 마이크는 임시로 전선을 끌어온 것이었습니다. 첫날 오전 설법 때 마이크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해서 때때로 수련생들이 명확히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후 설법 때는 마이크 소리가 잡음 하나 없이 매우 선명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설법을 똑똑히 듣고 법을 얻을 수 있도록, 오전 설법의 피로를 안으신 채 점심 식사도 거르시고 낮잠도 주무시지 않으며 무더위를 무릅쓰고 묵묵히 마이크 음향을 조절하셨습니다. 규정상 설비는 현지 기공협회에서 책임지고 제공하고 수리해야 했지만, 사부님께서는 피곤하신 상황에서도 현지 기공협회를 번거롭게 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묵묵히 설비를 고치셨던 것입니다. 오후에 사부님께서는 다시 자비로운 모습으로 강단에 앉아 수련생들에게 설법해 주셨습니다.
현지 기공협회 책임자는 사부님의 자비에 감동해 학습반이 끝나는 날 격앙된 목소리로 수련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사부님께서는 그날 점심 식사도, 휴식도 하지 않으셨고 저희에게 알리지도 않으신 채 마땅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직접 하셨습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매사에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시며 마음속에는 언제나 타인뿐이셨습니다. 사부님의 언행은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본보기가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전하신 것은 고덕대법(高德大法)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실 때마다 상의 주머니에서 A4 용지 한 장을 꺼내셨는데, 그 위에는 그날 강의할 내용이 띄엄띄엄 몇 줄 적혀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많은 천기(天機)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 저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선타후아(先他後我)’, 즉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사심 없이 나를 내세우지 않으며 온전히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또한 ‘진선인(眞·善·忍)’이라는 매우 엄격한 심성 기준을 제시하시며 이것에 따라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는 제 영혼을 뒤흔들었고 제 인생의 수많은 의문이 한순간에 풀렸습니다. 마음이 점점 넓어지고 안목이 확 트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속인이 참을 수 없는 일을 참을 수 있게 되고 속인이 겪을 수 없는 고생을 겪을 수 있게 됐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게 됐으며, 늘 자신을 반성하며 정진하려는 마음을 북돋우게 됐습니다.
저에게 사부님이 계시고 고덕대법을 얻게 된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며 제자에게는 정말로 큰 행운입니다. 저는 불법(佛法)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깊이 알았기에 계속해서 사부님의 전수반을 따라갔고, 이어서 산둥성 지난(濟南)에서 열린 전수반에도 참가했습니다.
법공부 후 수련생들의 심성이 제고되다
정저우에서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 장소는 폐기된 경기장이었는데, 비바람에 낡아 창문에 유리조차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첫날 설법을 들으러 갔을 때 저는 사부님을 기다리며 일찌감치 강단 앞에 앉았습니다. 제 고향 사람들 중에는 여관 담요를 가져와 바닥에 깔고 앉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잠시 후 강단 앞은 수련생들로 가득 찼고, 때때로 “밀지 마세요”, “맡은 자리예요” 하며 시끌벅적하게 다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강단에 오르시자마자 아래의 수련생들은 조용해졌고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 수련생들의 신체를 정화해 주신다며, 병이 있는 사람은 병이 있는 곳을 생각하고 병이 없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지 중 아픈 곳이 있는 사람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나는 병이 없는데 큰언니가 심장이 안 좋으니 언니의 심장을 생각하자’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로 큰언니의 심장은 좋아졌고 사부님께서 깨끗이 제거해 주셔서 다시는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에도 저는 일찍 경기장 주변 스탠드에 앉았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사람들의 심성이 제고돼 더 이상 여관 담요를 방석으로 쓰는 사람도 없었고 자리다툼을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서로 양보하며 늦게 온 수련생들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전 수련생들이 주운 물건들을 강단 위에 올려두고 잃어버린 수련생이 찾아가게 하셨는데, 그중에는 현금과 금은보석 등 귀중품도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으며 파룬궁은 정말로 정토(淨土)였습니다.
오늘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퍼졌으며 풍파 속에서도 30여 년을 걸어왔습니다. 이 소중한 경험을 회상하며 저는 무한한 행운을 느끼며 제 책임이 중대함을 깊이 체감합니다. 앞으로 저는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바짝 따르며, 대법제자의 사명을 완수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50291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50291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