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05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법광(法光) 속에 잠겨 많은 이로움을 얻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 가족과 친척, 친구들도 모두 혜택을 받았습니다.
1. ‘전법륜’을 읽고 고집 센 팔순 노인의 마음속 얼음이 녹다
2010년 여름방학 어느 주말, 80세가 넘으신 이모님과 이모부님, 그리고 두 분을 모시고 온 사촌 언니와 동생이 갑자기 우리집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그 가족과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상을 알리고 각종 진상 자료를 전달하며 가장 좋고 귀중한 것을 나누고 그들도 하루빨리 복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체제 내에 계신 이모부 가족은 중공(중국공산당) 악당의 거짓말에 깊이 중독돼 있었고, 제 수련 층차도 높여야 했기에 이 화제만 나오면 격의 없이 대화하던 친밀한 관계가 깨지곤 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이 화제를 꺼내기만 해도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낼 정도가 됐습니다.
그때는 제가 불법 구금됐다가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이모네 가족 5명은 소식을 듣고 저를 ‘구출’하기 위해 성도(省都)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단단히 준비하고 왔습니다. 저는 그들의 방문 목적을 알았고 누구도 서로를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틀 뒤 사촌들은 출근 때문에 먼저 귀가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됐고 저는 사업으로 바빴는데, 제 아이가 중고등학교 시절 성도에서 공부할 때 이모님 댁에서 기숙했습니다. 이모네 식구들은 제 부모님이나 가족처럼 조건 없이 아이를 돌봐주셨고 주말마다 빨래며 학부모 회의 참석까지 챙겨주셨습니다. 그들은 저의 친척이자 은인이기에 저는 내심 그분들을 부모 형제처럼 여겨왔습니다.
이모부는 평생의 취미가 학습과 시 쓰기였습니다. 80이 넘었음에도 매일 책과 신문을 보시고 독학으로 컴퓨터, 영어, 러시아어를 공부하셨으며, TV 뉴스를 수년 동안 거르지 않고 시청하시는 그야말로 사당(邪黨)에 세뇌된 전형적 ‘라오펀훙(老粉紅, 맹목적 애국주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방문은 집안 친척들의 의도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은혜를 베풀고 가장 위신이 있는 두 어르신을 모셔와 저를 설득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를 “사악한 길에서 벗어나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여, 이 좋은 나날을 망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은 바로 법을 위해 온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상황을 이용해 이모부께 말씀드렸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우선 우리 사부님의 주요 저작인 ‘전법륜(轉法輪)’ 이 보배로운 책을 먼저 한번 보세요. 꼭 배우시라는 게 아니라 우선 알아보시라는 겁니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하셔도 이치로 사람을 설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이모부님은 마지못해 책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전법륜’을 한 번 다 읽으신 후, 중공에 중독됐던 이모부님 마음속의 얼음벽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떠나기 전 그분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네 사부님께 죄송한 일이다.”
이모님은 고도 근시로 책을 보기 불편하셔서 저는 TV를 통해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틀어드렸습니다. 이모님은 영상을 보시다가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의아해하셨습니다. “왜 갑자기 소변이 잦지? 예전에는 전혀 없던 현상인데.”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에요. 인연이 정말 크시네요. 우리 사부님께서 보살펴주시는 거예요. 이건 몸을 정화해 주시는 정상적인 반응이니 계속 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이모님은 이해하신 듯 계속 사부님의 설법을 보셨고, 다음 날 그런 증상은 사라졌습니다.
사촌 동생에 대해 말하자면, 동생은 성격이 참 순수하고 착해서 누가 어려우면 반드시 도와줬습니다. 절에서 행사가 있으면 어디든 참석했고,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는 뭐든 믿었습니다. 심지어 붉은 천이 매달린 나무에도 절을 할 정도였고, 절이 보이면 반드시 들어가고 시주함이 있으면 꼭 돈을 넣으며 스스로 매일 착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동생이 참 가엽게 느껴졌고, 정법(正法) 사부님의 인도를 받는 우리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가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동생을 만나 한 부를 주었습니다. “한번 읽어봐. 이건 우리 사부님께서 작년 섣달그믐 전날에 세상의 모든 중생과 너를 포함해 하신 말씀이야.” 동생은 그것을 읽고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꿨습니다. “원래 대법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사람 구하고 계셨구나. 다음에 또 새로운 말씀이 나오면 잊지 말고 나에게 줘.” 저는 기회를 봐서 USB 하나를 건넸습니다. “여기 이미 다 준비해 뒀어. 네가 갈망하며 알고 싶어 하던 모든 것이 들어있단다.”
저는 그들이 모두 사부님의 친척이며 이번 생에 법을 위해 왔음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사부님 법이 사람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제도받은 생명을 보며 마음 깊이 위안을 느꼈습니다.
2. 탑승구에서의 작은 이야기
올해 설날 전에 비행기를 타고 타지로 가던 중 탑승구에서 한 중년 남성을 만났습니다. 대기하는 동안 우리는 중공 통치하의 현 상황에 대해 대화했습니다. 독재자들이 지주, 자본가, 지식인 박해, 덩샤오핑, 류샤오치 숙청, 산아 제한, 89년 학살, 파룬궁 모함과 박해, 최근의 전염병 봉쇄 등 각종 운동을 벌인 것을 이야기하며 대화할수록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그는 제가 근대 중공의 폭정사를 조리 있게 정리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기회를 봐서 그에게 ‘9평공산당(九評共産黨, 이하 9평)’을 추천했습니다. 때마침 그가 USB를 가지고 있어서 제 노트북에 저장된 진상 내용을 복사해 줬습니다. 대화 도중 그가 교육 기관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돼, ‘9평’ 오디오 및 텍스트 버전,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인류 사회는 왜 미혹(迷) 사회인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인터넷 봉쇄 우회 소프트웨어 등등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복사해 주었습니다.
복사하는 도중 제가 탈 비행기 탑승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파일 용량이 크고 그의 USB가 2.0이라 속도가 매우 느렸습니다. 탑승구의 긴 줄은 이미 사라졌고 복사는 아직 30%가 남아있었습니다. 우리는 공항 직원 앞에서 기다렸고, 안내 방송은 이번 항공편 마지막 승객은 빨리 검표하라며 비행기가 곧 이륙한다고 여러 번 재촉했습니다. 복사는 계속되어 18, 15, 10, 7%… 저는 복사하는 동안 그에게 대법이 해외에서 널리 퍼지는 성황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크게 고무돼 배우고 싶어 했고 책도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법교육 영상, 설법 녹음, ‘전법륜’을 한꺼번에 복사해 줬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제게 돈을 주려 했지만, 저는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비용을 받지 않고 무상으로 공법을 전수하게 하십니다”라며 거절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 속에 무사히 복사를 마치고 서둘러 기내로 들어갔습니다. 중생에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이 분초를 다투는 치밀한 안배를 해주셨습니다. 전체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편안하게 대화했고, 그는 제가 알려준 천기와 진상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시간이 제한적이라 그는 연락처를 물었지만 안전 문제를 고려해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3. ‘9평’을 듣고 고집스럽고 경직된 사고를 바꾼 남편
수년 동안 제 남편은 사당의 고압적인 통치 아래 제가 전해주는 진상을 항상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습니다. 그는 ‘지금 즐기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향락형 사람이었습니다. 날마다 식사 후 걷거나 자전거 타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재작년 현지 자전거 동호회원들과 한 달간 자동차 여행을 다녀온 후 고혈압이 생겼고, 작년에는 오토바이 여행을 한 달 다녀오더니 당뇨병을 얻어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입원 치료를 받게 된 그는, 평소 음식과 여행을 즐기던 취미를 잃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입맛만 다시며 무기력하게 지냈습니다.
그의 집안에는 ‘급사’ 내력이 있었습니다. 큰아버지, 아버지, 사촌 형, 친형이 모두 다 고혈압이나 뇌출혈로 급사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몇 번이나 사후 절차를 당부하곤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엉뚱한 생각 하지 말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어봐요. 대법 사부님께서 당신을 구해주실 수 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논어(論語)’와 사부님의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등을 반복해서 외워주었습니다. 그는 “당신 정말 대단하다. 끈기가 있네, 어떻게 이걸 다 외워!”라며 감탄했습니다.
그 기간 저는 남편과 함께 진상 영상물인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을 뒤흔든 이야기’, ‘파룬궁은 중국인의 양심을 대표한다’, ‘1400 사례 가짜 뉴스를 간파하셨나요?’, ‘박해 반대가 정치질인가요?’, ‘파룬궁은 왜 청원했는가’, ‘4.25 청원 진상’ 등을 봤습니다.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로 주입된 독소들이 영상 보는 동안 조금씩 무너졌습니다. 남편은 영상을 본 후에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사실 파룬궁은 아무 문제가 없네. 진선인(眞·善·忍)이 얼마나 좋아. 당 매체가 선전한 것과 다르구만. 만약 장쩌민이 이 박해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중국이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텐데…”
그의 각성은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전에 수면 장애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개선됐습니다. 잠들기 전 저는 그에게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왜 중생을 구도하는가’, ‘보도(普度)’, ‘제세(濟世)’ 등을 들려주었습니다. 가장 현저한 변화는 잠을 잘 자게 된 것이고, 고혈압과 당뇨병에 대해 아무런 약도 먹지 않았는데 측정 수치가 정상이 된 것입니다.
현재까지 남편은 ‘9평’을 한 번 다 들었고, 사부님의 광저우(廣州) 설법 비디오도 보았으며 공법도 배웠습니다. 그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아직 수련의 길로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당신들은 너무 바르게 행하고 요구치가 높아서 내가 하기는 어렵네”라고 합니다. 저도 집착하지 않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사부님 안배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제 수련의 요소가 있다고 믿습니다.
4. “누이동생, 나를 구해줘서 고마워”
저는 그를 ‘유재(有才, 재능이 있는) 오빠’라고 부르는데, 본명이 아니라 다들 그의 재능을 높이 봐서 붙인 별명입니다. 그와는 2016년 봄에 알게 됐습니다. 당시 우리 일행이 구이저우(貴州)성을 지날 때 제가 핑탕(平塘)현의 ‘장자석(藏字石)’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차 3대에 총 14명이 갔었는데, 관광지로 가는 길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주제는 자연스럽게 ‘장자석’이 됐습니다. 입장권 내용 소개 등을 통해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란 여섯 글자 중 간체와 번체 설명을 곁들였는데, 일행 중 그 부부만이 즐겁게 들었고 큰 의미가 있다며 입장권을 소중히 보관하겠다고 했습니다.
구이저우성에서의 만남 이후 어느덧 2021년이 됐습니다. 하루는 제가 병원의 광장에서 진상을 알리고 있었는데, 아들이 미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당시 그는 고개를 떨구고 침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유재 오빠, 어찌 된 일이에요?” 그는 발음이 어눌하고 멍한 눈빛으로 저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들이 옆에서 설명하기를, 갑자기 뇌경색이 와서 입원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습니다. “몇 년 전, 구이저우성 관광지에서 알려드린 아홉 글자를 기억하세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며 기억난 듯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온 가족이 함께 이 9자진언(九字眞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곧 회복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올해 설 기간에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누이동생, 나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제가 말했습니다. “절대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오빠를 구한 것은 우리 사부님이십니다. 감사 인사를 하려거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 하세요!”
그는 병이 난 다음 날 운 좋게 저를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건 오빠가 대법과 인연이 있어 제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안배하신 겁니다.” 그는 같은 병실의 환자 중에는 이미 사망했거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 지팡이를 짚는 사람,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를 살펴보았습니다. 병원에서 만났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뇌경색을 앓았던 흔적이 없었습니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처럼 정신이 맑고 깔끔한 모습의 그가 병원에서 만났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의 아내(재혼한 젊은 아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병이 난 다음 날 병원에서 당신을 만난 건 정말 기적이었어요. 병원에서 보름만 입원했다가 집에 왔는데, 매일 그 글자들을 외웠거든요. 처음에는 기억력이 없어서 금방 잊어버리길래 제가 계속 일깨워줬죠. 퇴원할 때 의사들도 ‘당신은 정말 기적을 만들었네요. 이렇게 빨리 퇴원하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의사들은 그가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어 우리 사부님께서 구해주신 것임을 알 리가 없습니다. 아내는 89년 학살(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했었고 외가가 지주 집안이라 중공 악당의 추악한 면모를 이미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당신은 우리 남편의 생명의 은인이자 귀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사부님이 생명의 은인이시고, 두 분도 사부님의 가족이십니다. 사부님께서 제 입을 빌리셨을 뿐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그들에게 진상 USB를 주면서 TV와 휴대폰에서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보물을 얻은 듯 즉시 가부좌를 틀고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저도 이 귀중한 두 생명이 구원받은 것에 기뻤습니다! 위대하신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와 제자 및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대법에 감사합니다!
5. 중생의 갈망
지난겨울 어느 아침, 인도 위에 한 시골 아주머니가 왼손에는 무거운 큰 자루를 들고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등에도 무언가를 짊어진 채 힘겹게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인연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른 다가가 가장 큰 자루를 들어주었는데 몇 걸음 못 가 너무 무거워 저도 들 수가 없어 함께 멈춰 쉬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참 좋은 분이시네요. 보통 도시 사람들은 우리 같은 시골 사람을 보면 피하기 바쁜데, 싫어하지 않고 친절하게 도와주시다니요. 어디 사세요? 어디서 뵌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아주 낯이 익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인연이지요.” 그러고는 아주머니에게 9자진언,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알려주며, 정성껏 외우면 복을 받고 위급할 때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졌습니다.
아주머니가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자료를 줄 생각은 없었으며, 당이나 단에 가입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그 글자들을 제가 기억 못 하니 좀 적어주세요. 집에 가서 아이에게 읽어달라고 할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얼른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전하고 그 위의 아홉 글자를 짚어주었으며, 진상 자료도 한 부 주면서 읽어본 뒤 친척들에게도 보여주라고 당부했습니다. 가족 중에 당이나 단에 가입한 사람이 있으면 탈퇴해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본인도 당에 가입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마터면 짐승의 표식(獸記)을 지워줄 기회를 놓칠 뻔했습니다! 학교도 안 다녔는데 어떻게 당원이 됐느냐고 물었더니 마을에 사람이 적어 거의 다 가입했으며 마을 간부가 위에서 내려온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많은 진상을 알려주었고 아주머니는 모두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마을에 와서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해 달라고 몇 번이나 청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제가 가려 하자 몇 번이나 붙잡으며 더 듣고 싶어 했고, 다음에 언제 또 만날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제게 나누어 주며 꼭 마을에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헤어질 때 아주머니는 짐을 내려놓고 저를 한참이나 배웅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인생의 미혹을 풀어줄 진상을 계속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제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인내심 있게 답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짊어진 사명이 신성하고도 막중하며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멀어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반드시 자신을 잘 닦아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6. 특별한 생일 잔치
한 달 전, 많은 친척과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인생 처음으로 특별한 ‘생일’을 보냈습니다. 사실 생일잔치라기보다는 가족 모임이었습니다. 설을 타지에서 보내고 온 뒤라 다들 모일 구실을 찾은 것뿐이었는데, 속세에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가족들에게 협조해야 했습니다.
원래는 타지에서 생일을 보내고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제 내심은 어떠했을까요? 원인을 파헤쳐 보니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번거로움을 피하려 할수록 누군가 번거로움을 만들어 그 마음을 닦게 합니다. 사돈댁은 전화로 계속 재촉하고 조카들은 계획을 세우고 자녀들도 차례로 의견을 물으니, 남편은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비행기 표를 예매해 버렸습니다. 저는 생일잔치를 위해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납치’당한 것 같아 화가 났지만 곧바로 그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가? 수련인은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속인이 되고 싶은가, 수련인이 되고 싶은가?’ 답은 확실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부님 안배에 따라 마음을 내려놓고 순리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잔치의 주인이 되어 상황을 주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남편과 상의하여 돌아온 이상 제가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첫째, 부조금을 받지 말 것. 둘째는, 크게 벌이지 말고 가족끼리만 모일 것이라고 하자. 남편은 “당신 바보 아니야? 그동안 낸 부조금이 얼만데”라고 했지만, 저는 “맞는 말이지만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타락한 세상 기준으로 따지겠어요. 요즘 사람들은 걸핏하면 잔치를 열어 돈을 거두려 하지만, 대법 수련자는 세상의 도덕 하락을 막아야지 휩쓸려서는 안 돼요”라고 답했습니다. 남편은 묵인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속인 사회 상태에 부합해야 했고 자식들에게 효도를 가르쳐야 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제 생각을 전했고 자식들도 지지와 이해를 표했습니다.
예정된 연회장에 도착하니 원래 두 테이블 30여 명 규모였으나 몰려오는 손님을 막지 못해 결국 다섯 테이블, 70여 명이 모였습니다.
오기 전에 저는 ‘보도’, ‘제세’, ‘득도(得度)’ 등 대법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억지로 건네는 봉투를 거절하고 술을 권하는 것도 모두 사양하느라 원래 계획이 흐트러졌습니다. 잠시 정돈된 틈을 타 사부님의 가호를 빌며 기회를 잡아 말했습니다. “먼저 와주신 모든 분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세월 저와 고락을 함께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며, 여러분이 견뎌온 압력은 모두 복(福)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어서 말했습니다. “즉, 언제 어디서든 대법을 적대시하지 않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다면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관직에 계시든 어떤 부를 쌓으시든 도덕과 양심을 지키며 자신을 잘 다스리십시오.” 장내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말 한번 잘한다!”며 감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케이크 절단식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준비한 케이크 중앙에는 ‘쩐싼런하오(眞善忍好)!’라는 글자가 선명했습니다. 이 특별한 생일잔치에서 진선인의 빛이 모두의 마음속에 뿌리내렸습니다. 잔치 내내 스피커에서는 ‘보도’, ‘제세’, ‘득도’가 순환 재생됐고 신성한 선율은 손님들이 떠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날 하루 장내의 모든 사람이 성스러운 경지에 녹아 대법의 무량한 자비에 씻기는 듯했습니다! 평소 제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던 체제 안사돈도 생일잔치의 성대함과 가족들의 화목함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조카는 이날을 기념해 특별히 새 전기 스쿠터를 사 와서 생일잔치에 금상첨화를 이뤘습니다. (원래 제가 스쿠터가 작고 충전도 편하고 주변 다니기 좋아 사고 싶어 했는데, 조카며느리도 같은 생각이어서 회사 비용 처리도 할 겸 우리 부부의 편의를 위해 이날 사 온 것입니다.) 게다가 케이크 위의 ‘쩐싼런하오’도 대법에 대한 인정과 동의를 상징했습니다. 이 행동은 체제 내에서 확실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사돈과 벼슬길에 오른 사위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 줬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들은 중공 악당의 거짓말에 속아서 예전에 저의 수련을 매우 이해하지 못했고, 여러 차례 저에게 좋은 말과 충고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지 말라고 암시했고, 제가 한 진상을 무시했습니다. 나중에 점점 더 많이 접하게 됐고 저에 대한 끊임없는 이해를 통하여 점차 변화했습니다. 특히 이번 생일잔치를 통해 가족들의 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은 이미 그들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헤어질 때 사돈은 새 스쿠터 앞에 서서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사돈께서 세속 모든 것을 떠난 신선인 줄로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저는 “오해하지 마세요. 사실 밥은 다 챙겨 먹고 삽니다!”라고 했습니다.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한 조카들은 제 사업을 물려받은 뒤 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회사 직원이 휴가를 갔다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다행히 회사 밖에서 일어난 일이라 큰 위기를 넘긴 적이 있습니다. 도덕이 타락한 오늘날 만약 회사 내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면 그 여파가 어땠을지 다들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또 수년간의 전염병과 업계의 극심한 경쟁 속에서도 조카의 사업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대법을 인정한 덕분입니다. 비록 수련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사부님 경문 제목인 ‘부이유덕(富而有德)’을 표구해서 사무실 책상 맞은편 벽에 걸어두고서 좌우명으로 삼아 사람 됨됨이의 도리로 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위대하신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가 세상에 실현된 것입니다. 제 회사 출신 직원들 중 여러 명이 현재 큰 사장이 됐는데,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선택한 이들은 예외 없이 각기 다른 복을 받았습니다.
층차가 제한적이니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5년 12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31/50179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2/31/501792.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