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단둥시 파룬궁수련자 판징(潘晶)은 2022년 9월 19일 경찰에게 납치돼 단둥시 전안(振安)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그녀는 불법적인 3년형을 선고받았고, 항소 후 단둥 중급법원에서 불법적으로 원심이 유지돼, 2023년 2월 21일 랴오닝 여자감옥 12구역으로 끌려갔다. 판징은 감옥에서 이른바 ‘전향’을 거부하다 감옥 측으로부터 강제 세뇌, 수면 박탈, 화장실 금지, 야만적 음식 주입, 강제로 대변 먹이기 등의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다.
판징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20여 년간 수련했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일을 처리했고, 일언일행에 모두 남을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판징은 시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성껏 돌봤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판징은 매일 시아버지에게 점심과 저녁 두 끼 식사를 챙겨드리고 시댁을 청소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친정어머니를 돌봤다. 나중에 시아버지가 병으로 입원하자 그녀는 홀로 병원에서 시아버지를 모셨고, 노인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켰다. 판징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효녀이자 효부로 알려졌다. 그들은 모두 판징이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불평 없이 고생을 감당할 수 있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판징은 진선인 신념을 견지하다 중국공산당(중공) 당국에게 여러 차례 납치, 감금을 당했다. 그녀는 두 차례의 불법 강제노동과 한 차례의 정신병원 박해를 당했다. 2022년 그녀는 불법적인 3년형을 선고받고 랴오닝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받았다. 판징은 2025년 10월 4일 부당한 옥살이를 끝냈다.
다음은 판징이 랴오닝 여자감옥에서 겪은 박해 사실을 자술한 것이다.
나는 판징이고 랴오닝성 단둥시 사람이다. 2022년 10월 20일 오전, 랴오닝성 단둥시 전안구 법원 판사 왕샤오페이(王曉菲)가 내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8시까지 법원에 와서 재판을 받으라고 했다. 나는 “제가 파룬궁을 연마해 죄가 없으니 재판에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절차에 따라 법원에 왔으니 재판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저는 파룬궁을 연마해 좋은 사람이 됐고 죄가 없습니다. 집안의 노인들을 돌봐야 해서 갈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사람을 보내 데려와야 할까요?”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남편이 퇴근해 집에 와서 “법원에서 당신에게 전화했어?”라고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묻자 남편은 “그들이 당신한테 전화하고 나서 내게 전화했어. 내가 같이 갈게”라고 했다.
1년 전, 나는 랴오닝성 단둥시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와 단둥 터우다오 파출소에 의해 납치와 가택수색을 당하고 단둥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15일 후, 나는 불법 처분보류로 집에 돌아왔다. 나중에 파출소와 검찰원에서 나를 불렀고, 나는 가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이유, 연공 후의 커다란 심신 변화,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 중국 현행 법률 어디에도 파룬궁이 유죄라는 조항이 없으며 파룬궁 연마가 위법이 아니라는 것, 파룬궁이 현재 4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파된 것 등을 말했다. 검찰원은 뜻밖에도 사건 기록을 법원으로 넘겼다.
2022년 10월 21일, 나는 남편과 함께 단둥시 전안구 법원으로 갔다. 법정에서 나는 스스로를 변호했다. 재판석에서 나를 반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마지막에 검찰관이 내 어머니가 90세 고령으로 돌봄이 필요하다며 재판장에게 선처를 요청했다. 재판 후, 법원 경찰이 나를 집에 보내주지 않고 강제로 공안병원으로 데려가 신체검사를 하게 했고, 이후 나는 단둥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한 달여 후 나는 영상으로 전안구 법원으로부터 불법적인 3년형을 선고받았다. 나는 즉시 항소장을 작성해 단둥 중급법원에 항소를 신청했다. 한 달 후 중급법원은 원심을 유지하는 불법 판결을 내렸다.
나는 구치소에서 법원의 불법 판결에 항의해 단식했다. 소장 천윈잉(陳雲穎)은 재소자에게 지시해 내가 신는 솜신발 바닥에 사부님을 모독하는 말을 쓰게 했고, 재소자 몇 명에게 지시해 내가 화장실에 갈 때 나를 발길질하고 주먹으로 때리게 했다. 부소장 취퉁(曲桐)은 재소자 6~7명에게 지시해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을 자행했다. 그녀들은 나를 구석으로 몰아붙였고, 한 명은 내 코를 쥐고 다른 한 명은 반으로 자른 생수병 입구를 내 입에 힘껏 쑤셔 넣었으며, 큰 주사기로 병 입구에 옥수수죽을 주입했다. 내가 삼키지 않자 다른 재소자가 무릎으로 내 위를 억세게 짓눌러 숨이 넘어갈 것 같았고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았다. 내가 힘껏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외치자 그녀들은 즉시 손을 놓았다. 그녀들은 그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세 번이나 했다.
며칠 후, 감옥 의사와 남자 재소자 두 명이 들어와 강제로 내 양손을 벌려 침대 양쪽에 수갑으로 채웠고 감옥 의사가 콧줄을 끼웠다. 3일 후, 단단히 조여 있던 왼쪽 수갑의 나사가 갑자기 저절로 풀렸다. 재소자들은 모두 “신기해. 아무도 안 건드렸는데 열렸네”라고 말했다. 나는 단식한 지 거의 두 달 만에 구치소에서 랴오닝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나의 90세 노모는 오랫동안 누워 계셨지만 내가 정성껏 모신 덕분에 정신 상태가 줄곧 매우 좋았고, 병에 걸린 적도 없었으며 병원에 간 적도 없었다. 내가 납치된 후 오빠가 돌볼 시간이 없어 할 수 없이 노모를 요양원에 보냈는데, 어머니는 불과 4일 만에 신체 상황이 급격히 악화돼 혼수상태에 빠졌고, 두 달 후 치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랴오닝 여자감옥에서 ‘전향’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자는 모두 각종 고문을 당했다. 12구역 감옥경찰은 쑨샤오훙(孫曉紅)과 허단(何丹) 등의 재소자를 감시범(바오자)으로 지정했다. 그녀들은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며 욕설을 퍼부었고,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하고 왜곡하는 영상을 보도록 강요했으며, 내가 보지 않으면 소리를 아주 크게 틀었다. 또한 씻는 것과 화장실 사용을 제한했다. 내가 화장실에 가려 하면 그녀들은 갖은 핑계로 못 가게 했고, 나는 정말 참을 수 없어 속옷에 변을 봤다. 그녀들은 내게 대변을 먹도록 강요했고 내가 먹지 않자 대변을 내가 쓴 마스크에 발랐는데, 한 마음씨 착한 재소자가 몰래 마스크를 바꿔주었다. 그녀들은 또 나를 침대에서 자지 못하게 하고 4일 밤낮으로 서 있게 했는데, 발이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었고 종아리가 허벅지처럼 굵게 부었다. 한 재소자가 고혈압 증상 같다고 해서 혈압계로 재보니 저혈압과 고혈압 수치가 모두 잡히지 않았다. 감옥경찰은 그제야 재소자에게 지시해 나에게 시도하던 ‘전향’을 멈추게 했다. 나는 다리 부기가 빠지지 않고 혈압 비정상 증세가 나타나 병원 구역으로 보내졌다.
병원 구역은 사실 주로 정신병 범죄자를 가두는 곳이었고 나는 3층 1소대에 불법 감금됐다. 감방에 갇힌 사람은 기본적으로 모두 사형 유예나 무기징역을 받은 중범죄자였다. 내가 ‘전향’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지 않자 감옥경찰은 류옌(劉豔), 중밍허(鐘明鶴) 등 재소자 두 명에게 지시해 나를 감시하게 했고 나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우리 세 사람은 온종일 3층의 한 활동실에 머물렀는데, 감옥경찰은 그녀들에게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하는 소책자를 읽게 했다. 내가 그녀들에게 이런 것이 모두 날조된 것이라고 말하자 그녀들이 큰소리로 나를 욕했는데, 욕설이 지극히 저속했고, 3층의 재소자들이 아주 멀리서 문을 닫아도 들렸다고 했다.
그녀들은 처음에 서 있거나 쪼그려 앉게 했다. 며칠 지나서야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게 했는데, 아침부터 밤 9시까지 화장실 가고 밥 먹는 것 외에는 꼼짝도 못 하게 했다. 내가 여전히 타협하지 않자 그녀들은 종이상자에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하는 글을 써서 그 위에 앉게 했다. 나는 앉지 않았고 그녀들에게 “당신들이 이렇게 하면 당신들에게 좋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들은 듣지 않고 도리어 나를 욕했다. 나는 그녀들이 주의하지 않을 때 손으로 글자를 지워버렸다. 그녀들은 지금 감옥에서 인도적으로 관리해 재소자를 때리지 못하게 한다며, 만약 몇 년 전이라면 분명 때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들은 드러내놓고 나를 때리지 못했다. 한번은 남이 볼까 봐 나를 사물함 쪽으로 끌고 가서 사물함 문을 열어 가리고 나를 때렸다. 나는 큰소리로 “류옌과 중밍허가 사람을 때린다!”라고 외쳤지만 어떤 경찰도 와서 저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재소자 몇 명이 갑자기 내가 불법 감금된 감방으로 와서 내가 겨울에 입는 솜옷과 내복, 바지를 전부 빼앗아 갔다. 겨울의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창문이 얼어서 열리지 않자 그녀들 둘은 뜨거운 물로 녹여 창문을 열었고, 한참 만에야 창문이 열렸다. 그녀들 둘은 모두 솜옷과 솜바지를 입고 있었고, 내게는 얇은 외투와 셔츠, 속바지 하나만 입게 했다. 그녀들은 나를 창문 정면 위치에 앉히고 자기들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앉았다. 그 둘은 “얼마나 버티나 보자. 며칠 지나면 더 추워질 거야”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녀들 둘이 잇달아 감기에 걸렸다. 어떤 재소자는 그녀들 둘이 응보를 받았다고 했다. 어느 날 그녀들은 내가 주의하지 않을 때 찬물 한 병을 내 등 뒤에서 옷 안으로 쏟아부었다. 그녀들은 또 만약 계속 ‘전향’하지 않으면 내게 정신병 약을 먹이겠다고 협박했다.
나중에 감옥경찰 리산산(李閃閃)은 내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기에 재소자가 가는 화장실이 있고 경찰이 가는 화장실이 있는데, 네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니 네가 갈 화장실은 없어”라고 말했다. 그 둘이 내가 화장실에 못 가게 지키는 바람에 나는 설사가 나올 것 같았지만, 방법이 없어 그냥 활동실 바닥에 변을 봤다. 나중에 나는 밥을 먹지 않았고 소변이 마려워도 그녀들이 못 누게 해서 바지에 보았다. 며칠 후 리산산이 나에게 “밥을 먹으면 24시간에 두 번 화장실에 가게 해줄게”라고 말했다.
면회일이 돼 나는 가족에게 감옥에서 날 어떻게 박해했는지 모두 말했다. 가족은 경찰 리산산에게 따져 물었다. “당신들 그녀에게 약을 먹였어요?” 리산산은 “아니요”라고 했다. 가족은 “화장실에 못 가게 하는 건 위법이에요. 이건 인간의 기본 권리이고, 살인범이라도 화장실에 못 가게 한다는 말이 없어요. 당신들이 그녀를 화장실에 못 가게 하면 고소할 거예요”라고 했다. 당시 리산산은 나에게 정상적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상적으로 화장실에 가게 했다. 그녀들 둘도 다시는 내게 정신병 약을 먹이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3층의 활동실은 재소자들이 TV를 보고 오락을 하는 곳인데, 나중에 감옥경찰은 재소자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게 했고, 3층 재소자들의 모든 오락 활동을 중단시켰다. 어떤 재소자는 욕설을 퍼부었고 한 재소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죄를 인정하지 않아서 우리가 활동실에 못 들어가고, 당신이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서 TV를 못 보잖아. 당신들 파룬궁은 선(善)을 닦는 거잖아. 선한 마음을 좀 내서 시키는 대로 해.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나는 이렇게 말했다. “파룬궁은 사교(邪敎)가 아니고 저는 죄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게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들이 연좌제로 여러분을 협박해 날 타협하게 하려는 것이지, 제가 선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리산산은 USB를 가져와 그 둘에게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하는 영상을 틀게 했다. 내가 방송 중단을 요구했지만 그녀들은 듣지 않았고 나는 단식으로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 리산산은 그녀들 둘과 저우리리(周麗麗)라는 재소자에게 지시해 날 감옥경찰 사무실 바닥에 짓누르게 했다. 한 명은 힘껏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고 다른 재소자는 내 얼굴을 꼬집었으며, 또 한 명은 코를 쥐고 숟가락으로 내 입에 음식물을 주입했다. 나는 숨이 넘어갈 뻔해서 “사부님 구해주세요!”라고 크게 외쳤고, 그녀들은 모두 즉시 손을 놓았다. 또 한번은 리산산이 류옌과 중밍허에게 지시해 소변을 섞은 분유를 주입하게 했다. 나중에 병원 구역의 성이 선(申)씨인 부원장이 여러 차례 나를 찾아와 면담하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밥을 먹으면 더는 뭘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걸 중단할 거야.” 나중에 한 재소자가 내게 말했다. “그녀들이 그렇게 악독하게 당신을 대하는데 제가 보기에 당신은 늘 낙관적이네요. 신앙이 있어서인가요? 특히 당신은 단식하고 물도 안 마셔서 피골이 상접했고 각종 수치가 다 비정상이었는데, 밥을 이틀만 먹으니 신체의 각종 수치가 다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이건 너무나 특별해요. 감옥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거예요. 이 공법은 정말 대단해요.”
전체 박해 과정에서 여자감옥 측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내게 가한 비인간적인 고문에 대해 나는 수련인의 정념으로 대하는 외에 늘 사부님께서 경문 ‘정진요지-경지’에서 하신 말씀을 자신에게 요구했다. “선자(善者)는 늘 慈悲心(츠뻬이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2025년 10월 4일은 내가 출소하는 날이었다. 수속을 끝내고 감옥 정문에 이르렀을 때 무장경찰이 물었다. “당신 죄명이 뭐야?” 나는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죄가 없는데 여기 왜 왔어?”라고 했다. 나는 “나는 불법 감금과 불법 판결을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려면 돌아가”라고 했다. 병원 구역 감옥경찰이 내게 말했다. “곧 가족을 만날 텐데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죄명 하나만 말하면 돼, 죄를 인정하라는 것도 아니잖아.” 나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나는 1시간 넘게 대치하며 죄명을 거부했고 무장경찰은 나를 출소시켜 주었다.
(중공에 의한 판징의 박해와 관련해 더 많은 사실은 명혜망 기사 ‘강제노동과 정신병원 박해 겪었던 랴오닝 수련자 판징, 감옥서 단식 항의’, ‘딸이 납치된 지 1년 후 90세 어머니가 고통 속에서 사망’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28/5042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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