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05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이후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불법 박해를 당해 감옥에 납치됐습니다. 감옥에서 어쩔 수 없이 본심과 다른 글을 썼습니다. 출옥 후 수련에 대한 믿음을 잃고 몇 년간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사부님의 자비로 다시 돌아올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의 수련 체험을 이야기해 대법(大法)을 실증하고, 사부님께 보고드리며,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득법(得法)의 기쁨
2005년, 가족이 우연한 기회에 파룬궁을 알게 됐고, 제게 얼마나 좋은지 알려줬습니다. 이전에 고향을 떠나 생활에 바빴고 정보에 어두워 파룬궁에 대해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정부가 탄압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 중공(중국공산당)이 박해를 위해 구실을 찾아 퍼뜨린 거짓말은 전혀 몰랐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얻은 후 저는 아무런 방해 없이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전법륜》을 몇 번 본 후에야 이것이 사람에게 수련을 가르치는 책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뻤습니다. 책에 나오는 “속인 이 층차 중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전법륜)라는 구절은 당시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마침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간 세상이 저의 집이 아니라고 항상 느꼈습니다.
수련 후 인생에 희망이 생겼고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가정도 화목해졌고 몸도 건강해져 다시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아이 공부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오히려 점점 더 잘했습니다. 나중에는 명문대에 합격하고 만족스러운 직장도 찾았습니다.
막 법을 얻었을 때 저는 가부좌를 매우 좋아했는데, 보통 30분 정도 가부좌를 한 후부터 고요해지기 시작했고 매우 편안했으며, 자주 입정(入定)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어느 해, 저는 저희 집 거실 창문 유리에 우담바라꽃 몇 송이가 활짝 핀 것을 발견하고 기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 수련을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진상을 알리며 기적이 나타나다
득법과 동시에 저는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중공 악당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제자들을 이토록 심각하게 박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너무나 사악하다고 느껴 반드시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자발적으로 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며 진상을 알리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몇 가지 일이 있었는데,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한번은 밤에 농촌에서 자료를 배포하는데 거리를 걷는 동안 주변은 조용했고 마을에서도 개 짖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한 농가 대문 앞에 막 도착했을 때, 갑자기 머리 위 대문 상단 평평한 지붕 위에 큰 개 한 마리가 서서 “멍!” 하고 크게 짖었습니다. 저는 당시 두려워하지 않고 재빨리 개에게 “짖지 마”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개는 ‘낑’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숙이고 즉시 짖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개는 계속 짖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농가 문 앞에 이르자, 통통한 강아지 두 마리가 작은 꼬리를 흔들며 소리 없이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몸을 숙여 문틈으로 자료 한 부를 밀어 넣었는데, 큰 개 한 마리가 나지막이 ‘킁’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개가 문 안, 문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개는 자료를 봤지만 짖지 않았고, 마치 단지 ‘받았다’는 표시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비해 처음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을 때를 기억해보면, 겁에 질려 문틈에 자료를 밀어 넣자마자 문 안의 큰 개가 펄쩍 뛰며 미친 듯이 짖어대 근처 다른 농가 개들도 모두 크게 짖어댔고, 저는 너무 놀라 손을 잽싸게 움츠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됐을 때 개들도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수련생과 함께 정부 가족 아파트 단지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습니다. 그 아파트 단지는 경비가 매우 삼엄했습니다(당시 도시 곳곳에 지금처럼 감시 카메라가 많지 않았지만, 그 단지에는 거리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거리에도 행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들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들어갔고, 거리를 다니며 건물 앞 우편함에 진상 자료를 넣었는데, 감시 카메라는 피하지 않았지만 가능한 한 행인을 피했습니다. 그 안에서 한 시간 정도 돌아다니다가 대문으로 돌아와 나가려 했을 때, 순찰차 한 대가 제복을 입은 경찰 네 명을 태우고 문 앞에 도착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제야 이 안에 계속 순찰이 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찰이 차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더니 “모니터에서 본 두 사람은 어디 갔지?”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은 이 말을 듣고 경험이 많아 반응이 빨랐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 멀리 걸어갔는데 저는 아직 뒤에 있었습니다. 경찰이 정신을 차렸을 때 제가 막 대문을 나섰는데 그들이 저를 에워쌌습니다. 그중 한 명이 제 가까이로 와서 제 가방을 뚫어지라 쳐다봤는데, 제 가방 안에는 아직 다 배포하지 못한 진상 자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두려움이 없었고 마음속으로 즉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부님, 저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뒤따라 나오던 경찰 세 명은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갔고, 제 앞에 있던 경찰은 제 가방을 노려보며 제게 “당신이 자료 배포하는 사람인 줄 모를 줄 아느냐”라고 말하더니 몸을 돌려 다른 경찰들과 함께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번 위기는 해제됐는데, 정말로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션윈(神韻) DVD 한 보따리를 들고 수련생과 함께 한 아파트 단지에 배포하러 갔습니다. 그때 수련생은 마침 건물 앞에 앉아 있던 주민에게 DVD 한 장을 건네주고 있었고, 저는 멀지 않은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제 뒤에 키 큰 젊은 경찰이 수련생의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파출소에 전화해 “여기 파룬궁수련생 두 명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을 부르며 동시에 이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파룬궁 박해는 장쩌민(江澤民)이 일으킨 것으로 불법이니 당신은 참여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좋지 않습니다.” 속으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손에는 아직도 이렇게 많은 DVD가 있는데, 이 경찰에게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마치자마자 저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 밖 큰길로 걸어갔습니다.
이때 마침 택시 한 대가 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손을 흔들자 택시는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습니다. 저는 뒤에서 경찰에게 진상을 이야기하던 수련생을 불렀고, 뒤따라오던 경찰에게도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 일에 관여하지 말고 동료에게 가서 그 두 사람이 도망쳤다고 말하세요.” 이 경찰은 이 과정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멍하니 서서 우리를 막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택시에 탔고 그가 동료에게 전화하며 “그 파룬궁수련생 두 명이 도망쳤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수련생과 제게는 여전히 정념(正念)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해야 할 몇 마디 말을 했고, 언행으로 박해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부님의 보호 아래 우리는 또 한 번 위험을 무사히 넘겼습니다.
박해를 겪다
법공부가 부족했고 법공부 할 때 마음을 다하지 않았으며, 수련하는 법을 몰랐고 발정념(發正念)을 할 때도 고요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하는 상태였습니다. 대면 진상 설명도 잘하지 못했고 특히 친지들에게는 더 잘하지 못했습니다. 해이해질 때면 꿈속에서 집을 찾지 못하거나, 시험을 보지 못하거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는 꿈을 꾸곤 했는데 사부님께서 저를 걱정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수련을 진지하게 대하고 기회와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가족이 자료를 배포하다가 구치소에 납치된 후, 저는 무의식적으로 정(情)에 깊이 빠졌고 두려움도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정념을 잃은 것입니다. 법공부를 강화하고 자신을 수련하지 못했으며, 무감각한 상태로 수련생과 함께 자료를 배포하러 갔습니다. 결국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해 신고를 당했고 경찰에게 납치됐습니다. 저는 이번 자료 배포와 납치 과정에서 멍하니 행동했고, 당시 주이식(主意識)이 강하지 않았으며 사부님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박해에 반대하지도 못했습니다.
감옥에서 두려움 때문에 강요당해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심각한 교훈이 있습니다. 저는 사부님과 대법을 항상 마음속에 단단히 간직하지 못했고, 오히려 사악한 강요 아래 마음속으로 먼저 대법을 제쳐두고 사악한 ‘전향’ 자료를 보았습니다. 마음에 대법이 없으니 힘을 잃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악한 ‘전향’ 자료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내용에 미혹되기도 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저는 모든 면에서 수련이 매우 부족했고 진상 설명도 어려웠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수련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대법 책을 대충 한 번 본 후 다시는 보지 않았고, 겉으로는 수련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암에 걸린 후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다
출옥 후 주변 환경이 나빠졌고 가족들은 제가 대법을 배우거나 대법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심했고 마음속으로 억울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는데 누명을 썼다고 생각했고 항상 마음속으로 불평하고 우울했습니다. 제가 구치소에 막 들어갔던 몇 달 동안 가족이 생활비를 주지 않은 것은 가족이 고의로 한 행동이었는데, 출옥 후 이 사실을 알고 매우 원망했습니다. 대법의 지지가 없으니 인생에 희망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암에 걸렸습니다.
수술 후 의사는 6번의 화학요법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화학요법은 신체에 너무 큰 손상을 줬습니다. 한 번의 화학요법을 채 마치기도 전에 저는 몸이 무너져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죽은 후에 좋은 귀착지를 얻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저는 여전히 연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대법은 계속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 복용을 중단하고 다시 연공을 시작했으며 대법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수련생들이 제게 준 도움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수련생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심성 향상 체험을 이야기해 주었고, 제 믿음을 강화해 주었습니다. 저는 연공 후 건강을 회복했고 다시 출근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제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반대했지만, 제가 확고하게 배우려 하고 몸도 좋아지는 것을 보고 더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다시 대법을 배우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드린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던져 버렸고(어머니는 《9평》을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이전부터 보지 않고 진상 자료를 버렸습니다), 화가 나서 제게 죽으라고 저주했으며 제 남동생과 함께 저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주로 악당의 재박해를 두려워해서 그러는 것이며, 이것이 그들의 배후에 있는 사악한 요소의 조종과 발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또한 저의 두려움을 제거할 기회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 태도는 몰래 배우던 것에서 당당하게 배우는 것으로 바뀌었고, 경찰과 주민위원회를 대할 때도 피동적으로 박해를 감내하던 것에서 박해에 반대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여전히 매주 친정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돌봤는데, 아버지는 저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것조차 거부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편지 한 통을 써서 아버지 침대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내용은 명혜망 기사 ‘세기를 넘는 억울한 사건’을 전문 그대로 사용했으며, “딸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로 시작했습니다.
점차 제가 다시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아버지는 변해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직접 차를 끓여 미소 지으며 제게 와서 마시라고 권하셨습니다. 나중에는 그 편지를 매우 정중하게 제게 돌려주었습니다. 물론 제게 아직 남아 있는 원망하는 마음, 억울한 마음, 두려움 때문에 아버지의 태도가 때때로 반복되기도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자신을 수련할 것이며, 가족을 선하게 대하는 것을 바탕으로 정법 수련의 위엄을 보여 이 모든 부정한 것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이번에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언제 다시 돌아왔을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기회를 놓치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저의 숙원입니다.
사악한 박해를 겪었고 온 가족이 큰 정신적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입었지만, 저는 수련의 엄숙함을 깨달았고 저의 수련 부족함을 분명하게 인식했으며 그때부터 정법 수련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법공부를 진지하게 하도록 요구하고, 수련생들과 함께 《전법륜》, 《홍음(洪吟)》 등을 암송하며, 고난을 견디는 능력을 단련하고, 두려움과 각종 사람마음(人心)을 제거하며, 열심히 안으로 찾아 심성을 수련하고 자신을 향상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건성으로 하는 버릇을 고치고 《9평》,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을 진지하게 반복해서 읽고 암송하며, 진상 자료를 보고 암송해 진상 설명을 잘하지 못했던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이제는 점차 두려움을 극복하고 과감히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 설명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직장에서 초등학생이 진상을 이해하도록 돕다
작년 겨울방학에 한 고용주가 저를 그의 집으로 초청해 5학년 딸의 수학 숙제를 봐달라고 했습니다. 이번 5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그 아이는 60점을 받았는데, 이것은 이미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결과였고 이전에는 더 나빴습니다. 처음 저는 ‘아마도 아버지의 교육 방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행복 교육’이라고 해서 아이가 평소에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됐고 숙제 연습장이 많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은 엄격하지만 아이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는 아이를 교육하는 데 전혀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딸의 수학을 걱정하며 초조해져서 가정교사를 고용한 것입니다.
그가 저를 찾았을 때 90점에 도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시도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학원비를 이야기할 때 그는 가정교사 비용을 매우 낮게 책정했고, 아이 한 명을 가르치기로 했는데 수업을 시작할 때 그의 아내가 4학년 아들도 추가했습니다. 저는 그가 말한 대로 ‘운영하는 회사가 최근 몇 년 동안 돈을 벌기 어려워졌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아서, 그에게 따지지 않았고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딸을 지도하는 틈틈이 아들도 봐주었습니다.
고용주는 처음에는 매우 오만했는데 “제가 드리는 비용이 적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그냥 옆에서 봐주는 사람일 뿐입니다” 등등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제 득실심(得失心)이 매우 강하고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법제자이고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마음들을 억누르려 노력했고 제거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따지지 않았고 이미 왔으니 아이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으며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잘해줬습니다.
저는 아이의 상황에 맞춰서 어떻게든 그녀를 지도하고 격려했으며, 엄격하게 요구하고 지식을 착실하게 조금씩 익히도록 했습니다. 매일 세 시간씩 지도했습니다. 열흘 후 저는 그녀에게 기말고사 시험지를 풀게 했습니다. 아이는 글씨를 매우 정성껏 썼는데 이번에는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적이 나왔는데 30점 이상 올랐습니다. 아이는 매우 기뻐하며 위층으로 달려가 부모님께 알렸는데, 이것은 아이가 이전에 계속 나빴던 성적과는 달리 전례 없는 좋은 성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에 베이징대에 다녔던 저의 조카가 아이를 지도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그는 오만한 태도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나중에는 제게 문자를 보내 “감사합니다. 말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이를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것은 저의 사부님과 파룬따파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딸만 집에 있을 때 저는 그녀에게 진상을 이야기해 줬습니다. 아이는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저는 그녀의 책을 뒤적이며 진상 설명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녀의 책에 수련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고 저는 “파룬궁도 수련이며 가부좌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저도 가부좌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파룬궁 진상을 자세히 설명했고, 악당이 자작극으로 꾸민 ‘천안문 분신 사기극’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에게 가하는 박해가 얼마나 잔혹한지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는 매우 놀라며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그들의 교과서에 나오는 중공의 항일 거짓말을 폭로하자 아이는 “역시 (중공이) 부도덕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그녀의 교과서를 뒤적여 공자(孔子)에 관한 그림을 찾았고, 이를 빌미로 마오쩌둥(毛澤東)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중공 문혁 위원회는 홍위병을 취푸(曲阜)로 보내 공자묘를 파괴하고 공자 가문 저택과 공자림을 훼손했으며 고서들을 불태우고, 공자의 묘비를 포함한 역대 묘비 거의 천 개를 부쉈으며 심지어 공자 무덤을 평평하게 만들고 공자를 ‘공노이(孔老二)’라고 욕하는 등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는 매우 놀라며 진지하게 들었고 질문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공산당은 너무 나빠. 봐, 이번에 발생한 대역병은 하늘이 공산당을 멸하려고 하는 거야. 그런데도 그들은 학생들을 속여 중공의 소선대(少先隊) 조직에 가입하게 하고, 학생들에게 붉은 스카프(紅領巾)를 강제로 매게 하며, 심지어 그들을 위해 평생을 투쟁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고 맹세하게 하지. 이것은 독한 맹세야. 독한 맹세를 폐지해야만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어.” 아이는 소선대 탈퇴와 독한 맹세 폐지를 선언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다음 날 제가 수업하러 갔을 때 아이는 제게 “선생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아이가 쉬는 시간이 되면 전념해서 독서했지만, 이제는 이야기책을 읽지 않고 제게 진상 설명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많이 염하면 된다고 말했고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은행 계좌에 5만 위안이 더 들어온 후
저는 이전에 아팠을 때 정부의 한 가지 사회보험 보조금을 신청했습니다. 저는 은퇴할 때가 가까워져 규정에 따라 5년 동안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수속을 마친 후 직원은 언제 보조금이 지급될지, 몇 달 치가 지급될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듬해, 신청 시점으로부터 1년 이상 지났을 때 계좌에 돈이 더 입금됐는데 일괄 환급이라고 했습니다. 3년째에는 두 번 입금됐는데 한 번은 일괄 환급, 다른 한 번은 사회보험국으로 표시됐습니다. 그때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모두 사회보험국에서 지급한 것이고 단지 다른 계좌에서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년째에는 세 번 입금됐는데 사회보험국에서 한 번, 일괄 환급 두 번이었습니다.
이 금액들을 모두 합치면 제가 받아야 할 금액을 초과했습니다. 그때는 모두 사회보험국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착오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들이 잘못을 발견하면 스스로 와서 요구하겠지, 나는 일부러 그들을 찾아가서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부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일반 개인이나 회사라면 저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즉시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고 제 것이 아닌 것은 절대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악한 정권에게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벌금 명목으로 불법적으로 돈을 갈취당했던 것을 생각하니, 제가 자발적으로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에 심리적으로 불균형을 느꼈고 마음속에 원망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설령 나에게 잘못 지급됐더라도 그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나에게 빚을 졌고 나에게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점차 일괄 환급과 사회보험국 보조금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제가 원래 모두 사회보험국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착각했을 뿐입니다. 일괄 환급금은 총 5만여 위안이 더 지급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사회보험 보조금이 규정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최저 기준에 따라 지급했을 뿐인데, 제가 납부한 사회보험 기준은 높았으므로 그들이 훨씬 적게 지급한 것입니다.
일괄 환급금은 더 많이 지급됐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돌려준다면 그들이 적게 지급한 사회보험 보조금은 저에게 줄까요? 사악한 깡패 정권은 분명히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수련생이 저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돈이 아니면 가질 수 없으며, 이 일괄 환급금이 어디서 온 돈인지 가서 명확히 물어보세요.” 저는 처음에는 듣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에게 보상해야 하는 돈일 수도 있다. 만약 그들의 업무 실수라면 내가 이 사악한 정권 사람들을 찾아가야 하는 건가?’라는 원망하는 마음,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이익을 취하려는 마음도 생겼는데, 이 5만여 위안을 돌려주면 그들이 적게 지급한 보조금은 분명히 주지 않을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주기가 꺼려졌습니다. 사람마음이 강해지자 저는 자신이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저는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으로 찾기와 반복적인 법공부를 통해 저는 이익심, 원망심이 있으며 스스로 균형을 찾고 손실을 보상받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내가 받아야 할 것인지 아닌지는 우주의 특성인 대법이 측정하고 균형을 잡아주며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관장하신다. 나는 스스로 균형을 찾고 손실을 보상받을 필요가 없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든 나는 바르게 행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른길을 걸어야 하고 일을 당당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득실심, 이익심, 원망심, 불균형한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마음이 즉시 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보험국에 전화해 돈의 출처를 문의했습니다. 그 결과 일괄 환급금은 사회보험국에서 준 돈이 아니며 계좌를 보니 은행에서 송금한 돈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다시 신분증과 은행 카드를 들고 은행에 가서 확인했는데 은행 직원은 확인 후 말했습니다. “이 몇 번의 일괄 환급은 저희 은행에서 고객님께 송금한 것입니다. 아마도 고객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예금하셨던 돈이 있었는데, 나중에 농협 은행에서 그 예금 방식을 취소하면서 고객님께 돈을 돌려드린 것 같습니다.”
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그런 예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직원에게 “잘못되지 않도록 자세히 확인해주세요, 혹시라도 은행에 손해가 가지 않도록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잘못될 리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결과는 제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안으로 찾아 자아(自我)를 제거하다
저는 이전에는 매우 자아가 강했고 독단적이었으며 다른 사람의 조언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많은 어려움에서 저의 독선적인 마음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집에서도 남편과의 관계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일을 항상 제 생각대로 처리하고 남편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한 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냈고 그의 단점을 지적하며 비난했습니다.
방학 때 아이가 집에 와서 저희를 관찰하고는 저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항상 트집을 잡고 아빠를 자극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전에는 친구들이 제가 유머러스하다고 했지만, 제가 대법을 배우고 안으로 찾아보니 이전에는 제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유머의 형태로 다른 사람을 풍자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해서는 그를 무시하고 그에게 온갖 단점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항상 제가 그보다 낫다고 여겼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불만을 표현하여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고쳤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남편이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제가 이것저것 잘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매우 화가 났고 남자가 집에서 잔소리하는 것이 매우 싫었고 때로는 말대꾸도 했습니다.
저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전법륜)는 것을 알았기에 나중에는 참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억울했습니다.
그 후 안으로 찾아보니 ‘내가 이전에 그를 비난할 때는 내 관점에서 문제를 봤는데, 지금 그가 날 비난하는 것도 고의로 트집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이 맞다. 그가 맞다고 하는 것은 내가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저는 저의 독선적인 마음, 너무 강한 자아를 깨달았습니다. 항상 자신이 옳고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으며 항상 남에게 제 요구대로 하라고 강요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남편에게 저에게 없는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제가 여러 면에서 그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또한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일 처리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고, 제가 독선적으로 제 생각대로 남에게 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관념이 바뀐 후 저는 갑자기 그를 포용할 수 있게 됐고 그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에게 부족한 점이 있어도 비교적 잘 참아줄 수 있었고 개의치 않았으며, 때로는 선의로 부족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집에서도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때때로 그는 “당신이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특별히 그에게 잘해준 것이 아니라, 대법의 요구에 따라 저 자신을 수련한 후에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었고 원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한번은 제가 꿈을 꿨는데 어떤 번데기들이 뾰족한 머리로 두꺼운 나무 탁자를 아래에서 빠르게 뚫고 나오는 것을 생생하게 꿈꿨습니다. 어떤 번데기는 한 번에 땅을 뚫고 나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게 용맹정진(勇猛精進)하라고 깨우쳐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전에는 법회 교류 원고를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글쓰기를 못하고 서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저는 이것 역시 저의 수련이 정진하지 못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압니다. 앞으로 수련의 길에서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람들을 많이 구하여 중생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개인적인 체험이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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