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광둥 대법제자
[명혜망]
근 1년 동안 연이어 세 가지 사람 마음을 연마하는 고비가 발생했는데, 결국 저는 소침해지지 않고 오히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와 사부님에 대한 정신(正信)을 확고히 했습니다.
1.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나자 정념으로 혈육의 정을 대하다
1) 저와 어머니는 모녀의 정이 깊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일찍이 근심스레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 늙은 어미가 아직 세상에 있고 고향에 있으니 네가 갈 곳이 있지만, 내가 죽고 나면 너 혼자 타지에서 오랜 세월 말동무도 없이 어떡하니?” 어머니는 제가 중년을 넘겼지만 여전히 홀로 지내는 것을 보시고 자연스레 걱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제가 시종일관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업무와 생활 태도를 유지하고, 젊은 시절 짧은 결혼 생활의 변고로 인한 그늘을 남기지 않았으며, 일과 생활을 사랑하는 것을 보시고는 비교적 마음을 놓으셨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딸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생활한 지 여러 해가 됐는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명절이나 휴가 때마다 고향에 돌아가 가족을 보았습니다. 특히 몇 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저는 더욱 어머니의 생활을 마음에 두었고, 비록 곁에서 일상생활을 챙겨드리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한 계획을 잘 세워 딸로서 효심을 다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고향에 있는 제 새 아파트에 모셨는데, 집이 두 오빠의 집과 매우 가까워 오빠들이 어머니를 돌봐드리기에도 편했습니다. 이것이 저와 가족 간의 정의 축소판입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작은 손가방에 늘 파룬따파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넣고 다니셨고, 평소 언행에서 대법과 대법 사부님을 매우 존경하셨습니다. 제가 늘 어머니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잊지 말고 외우시라고 알려드리면, 어머니는 “매일 외우고 있다. 마음에 기억해서 잊지 않을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80대 노인이신 어머니는 여러 차례 대법의 은택과 보호를 받으셨습니다.
2) 어머니에게 갑자기 뇌졸중이 발병한 후
2024년 말 어느 날, 어머니에게 갑자기 광범위한 뇌졸중이 발병해 위급했습니다. 어머니가 고령이시라 병원에서는 보존적 치료를 했고 결국 이번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번 뇌졸중 발작은 어머니의 지능과 사고에 영향을 주었고, 마치 낡은 컴퓨터가 멈춘 것처럼 사람과 사물에 반응하지 못해,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유창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반(半) 자립 상태가 되어 예전처럼 혼자 생활하실 수 없게 됐고 곁에서 누군가 돌봐드려야 했습니다. 정상적인 소통과 교류가 안 된다는 것은 저와 어머니가 다시는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고, 서로 희노애락을 하소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2025년 설 연휴 기간 저는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 곁에서 정성껏 돌봐드렸습니다. 눈앞의 어머니를 보는데 마치 어머니가 이미 저를 멀리 떠나신 것 같았습니다. 강렬한 무력감이 제 공간장을 가득 채웠고, 저는 매우 괴롭고 슬펐지만 하소연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3) 주의식을 강화하고 정념으로 혈육의 정과 내세의 사명을 인식하다
어머니의 상황은 제게 큰 충격이었고, 무력감으로 나태해져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상심하고 괴로워 정진하기 어려웠고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 법력이 있는 보물)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법공부를 잘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고요히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억지로라도 ‘주의식(主意識)이 강해야 한다’, ‘마음이 반드시 발라야 한다’는 이 두 절의 법 소제목을 반복해서 외웠고, 다시 이 두 절의 법을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법의 힘으로 제 주의식(主意識)이 강화됐고 저는 조금씩 변했습니다. 저는 제 주위의 사람과 일이 모두 자신의 거울이며, 또한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고 심성을 제고하는 사다리이기에 마땅히 큰 좋은 일로 여겨야 함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어수선한 환경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세상에서 누구에게 아무리 잘해주더라도 다 속인 사회라는 큰 염색 항아리 속에 있는 것으로 사람을 초월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저는 사람의 인식에서 뛰쳐나와야 하고 사람의 이치로 문제를 봐서는 안 되며, 정법(正法)의 이치로 주위의 사람과 일을 대해야지, 인간 세상의 표상에 입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틀린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법에서 볼 때 고생을 겪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며, 고생을 겪어야 업을 없앨 수 있고 업력을 없애야 비로소 좋은 미래가 있습니다. 생명이 창세주와 같은 시대에 공존할 기회가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미 생명의 더없는 영광이자 영예입니다. 이것을 인식하자 저는 마음에 덮여 있던 한 겹의 무거운 물질이 제거되는 것을 확실히 느꼈고, 심정이 일시에 가벼워졌으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심태가 평화로워져, 어머니의 건강 문제를 대함에 상서로움과 자비가 가득 차게 됐습니다.
2. 대가족 분쟁 속에서 득실을 담담히 보고 당문화 요소를 똑똑히 인식하다
1) 어머니가 실지(失智)하신 후 재무 분쟁에 직면하다
고향에는 두 오빠가 있는데 두 올케언니가 번갈아 어머니를 돌봅니다. 어머니는 제 새집에 사시는데 새집은 생활 시설이 편리해 습관이 됐고, 올케언니들도 어머니 곁에 와서 돌봐드리려 했지만 제 태도가 어떨지 몰랐습니다. 저는 즉시 오빠와 올케에게 “어머니의 뜻을 존중합니다. 어머니가 제집에 사시면서 오빠네 돌봄을 받으실 수 있다면 저도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라고 밝혔습니다.
그다음 오빠들이 상의하여 어머니의 매월 연금에서 정해진 액수를 인출해 두 집이 어머니를 돌보는 인건비로 쓰고, 자투리 돈은 어머니의 연금 계좌에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저도 즉시 찬성했고 이견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생활을 어떻게 돌볼지는 대체로 이렇게 정해졌습니다.
약 3, 4개월 돌본 후 한 올케언니가 연금 계좌의 자투리 돈을 다시 일부 인출해 그들 두 집의 인건비로 나누자고 제안했습니다. 대략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째, 연금 계좌에 남겨둔 돈은 장차 노모가 돌아가신 후 유산이 될 테니 다른 자식들과 똑같이 나눠야 하고, 그러면 그들 두 집이 실제로 갖게 되는 몫이 적어지니 차라리 지금 그들이 어머니를 돌보는 인건비로 더 많이 챙기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둘째, 어차피 시누이(저를 지칭) 주머니에 노모의 비상금이 있으니 분명 적지 않은 돈일 거라는 겁니다. 말속에 뼈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제게 보관하게 한 돈이 그들이 아는 액수보다 많을 테니, 그렇다면 어머니 연금 계좌에 굳이 돈을 남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은퇴하셨는데 한결같이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셨고 이익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며, 자식들을 다 후하게 대하셨고 남을 많이 배려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일찍이 자식들에게 돈을 좀 나눠주어 아랫사람들이 돈이 가장 필요할 때 도움을 주려고 계획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이번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기 전, 한 올케언니가 반복해서 재촉하는 바람에 그때 이미 자식들에게 돈을 좀 주셨고, 당신의 비상금을 제게 좀 남겨두었다고 모두에게 알리셨는데, 고향 어르신들 말로는 ‘관재(棺材) 값’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세상에 계시는 한 이 비상금은 어머니의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손대서는 안 된다고 이해했습니다. 만약 이 손댈 수 없는 돈이 있다고 해서 어머니를 위해 돈을 좀 남겨두지 않는다면 바른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2) 분쟁 배후에서 사람 마음의 집착과 당문화 요소를 찾다
(1) 이익 득실에 대한 집착
두 오빠와 올케언니들이 어머니 연금 계좌의 돈을 거의 ‘다 써버린’ 것은 다소 제 마음을 불평하게 했습니다. 즉 제 마음이 움직였고 ‘가족끼리 왜 이렇게까지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매우 억울했으며, 가슴에 두터운 물질이 막혀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것들이 모두 불공평하다는 마음, 질투심, 이익에 대한 마음, 쟁투심의 물질 요소임을 알았고, 이 사람 마음들을 찾아내 힘껏 배척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제게 이런 집착이 있어서 이런 표현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집착의 근원을 건드리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또 무슨 집착이 있는 것일까요?
(2) 남들이 저를 좋게 말해주길 바라는 집착
대가족의 이익 측면에서 과거를 보면 저는 득실에 명백히 집착하는 표현이 없었고, 그들과 따지려 하지 않았으며 저를 위해 뭔가를 쟁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오빠들을 위해 생활상에서 미력이나마 다하려 노력했고, 기꺼이 그들을 위해 돈과 힘을 썼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고 싶다’고 한 것이 사실 이미 집착이었고, 유위(有爲)적인 마음이었으며 또한 정(情) 속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족을 도우려 한 것은 타인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남들이 저를 좋게 생각해주길 바란 것으로, 출발점이 여전히 위사(爲私, 사사로움을 위함)였습니다. 이 집착을 찾았지만 법리를 체득한 후의 그런 심신의 시원함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의식하지 못한 어떤 집착이 또 있는 것일까요?
(3) 당문화의 ‘통제(控)’ 요소
저는 끊임없이 법을 외웠고 법공부를 통해 수련상의 병목을 점차 돌파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믿고 재무 관리를 맡기셨고, 저도 어머니에 대해 딸로서 도리를 다했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실지하여 스스로 생활을 주관할 능력을 잃으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치대로라면 큰오빠가 어머니의 일상을 책임져야 하고, 당연히 어머니의 연금 사용 계획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제 통제 밖에 있게 되자, 이런 불편함이 제게 일종의 상실감을 주었고 앞서 말한 그런 무력감도 여기서 비롯된 것 같았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것이 근본적으로 당문화의 ‘통제’임을 문득 인식했습니다.
어머니는 안심하고 제게 재무 관리를 맡기셨고, 저도 어머니의 신임에 부끄럽지 않다고 자임하며, 재무를 쥐고 어머니와 똑같이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어머니의 발병으로 깨지자 저는 습관이 안 되고 불편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역시 자신이 먼저 사람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공간장이 먼저 순수하지 못하게 됐고, 구체적인 일에 반영되어 이런저런 교란이 나타난 것입니다. 자신의 사람 마음이 이런 국면을 초래한 것입니다. 저는 정신과 물질이 일성(一性)임을 체득했기에 수련인은 시시각각 자신 마음의 움직임에 주의해야 합니다.
(4) 혈육의 정에 대한 재인식
그 단계에서 저는 법 암기와 수심(修心)을 강화했습니다. 법을 외우다 보니 문득 사부님 설법 중의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전법륜)라는 말씀에 대해 예전과 다른 이해가 생겼는데, 당시의 느낌을 사람의 언어로 정확히 묘사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인간 세상의 사람과 사람의 각양각색 관계, 형제자매 등등 일체가 다 업력과 전생의 인연으로 촉성된 것임을 체득했습니다. 업력이 없고 빚이 없다면 아무도 누구를 알지 못합니다. 순식간에 저는 사람 마음을 교란하던 그 혈육의 정이 제게서 뿌리를 잃은 것을 느꼈고, 곧이어 그렇게 괴롭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이번 분쟁은 나쁜 일 같았지만 지금 보니 정말 큰 좋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인간 세상의 정이 믿을 수 없음을 체득했고, 오히려 정에서 벗어난 일종의 홀가분함이 생겼으며, 가족 구성원 관계에 대해 담담한 느낌이 들었고, 중생이 인간 세상의 미혹 속에서 살아가는 고초를 느껴 저도 모르게 자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3. 법에서 정념을 얻어 허황된 사람의 정을 닦아버리다
1) 오해가 심적 불평형을 초래했으나 결과는 모두 가상
우연히 얻은 소식으로 저는 오랫동안 서로 신뢰하던 친구가 제 몰래 우리 우정에 해가 되는 일을 했다고 단정했고, 이로 인해 분하고 불만스러워 원망심이 생겼으며 감정 기복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인이기에 속인과 따져서는 안 되고 따질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체면을 고려해 참고 발설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게 좋다고 여겼습니다. 이 과정은 매우 힘들었고 선하게 대우받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고려심에 집착한 참음은 당당하게 참은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상대방이 이상하게 여기고 영문을 몰라 하며 제가 보여준 불선(不善)과 감사할 줄 모름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게 했습니다.
힘겨운 수심(修心)의 과정을 겪으며 마침내 이 고비를 넘긴 후, 또 한 번 친구의 비판을 받는 과정에서 저는 이번 갈등을 초래한 근원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 정말로 가상(假相)이자 ‘가상(假想)’에 속함을 문득 발견했습니다. 수련인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체는 모두 수련 제고를 위해 나타난 것으로, 일단 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그를 위해 설정된 고비가 순식간에 존재하지 않게 되어, 일체 또한 착력점(着力點)이 없어지고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일체는 정말로 실재하지 않으며, 이 환경은 사람을 수련시켜 천국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타인을 오해했음을 의식했을 때 저는 고개를 숙였고, 온 하늘의 신불(神佛)께서 저의 이 우스꽝스럽고 자질구레한 마음을 지켜보고 계신 것만 같아 정말 조마조마했습니다.
2) 법 속에서 확고한 정념이 생겨 진실하지 않은 정(情)의 허상을 닦아버리다
고비를 넘기는 중에 저는 줄곧 자신이 수련인임을 일깨웠고 수련인답게 행동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난이 올 때 저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고, 겉으로 드러난 것은 마치 정념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그랬지만 저는 제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곳에 대법 중에서 용련(熔煉)되어 나온, 깨뜨릴 수 없는 확고함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 확고함에 의지해 오히려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고, 저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겨, 다그쳐 법을 외우고 연공하며 조금씩 사람 마음과 사람의 생각을 돌파했고 온 힘을 다해 사람의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허무한 사건을 통해 저는 정의 요소가 다른 공간의 실재하는 물질이지 저 자체가 아님을 느꼈습니다. 심성이 제고된 후 오해가 풀리자 다른 공간에서 사람 마음을 교란하던 그 물질은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는데, 마치 본래 없었던 것 같았고 치통이 즉시 사라진 것처럼 1초 전과 1초 후가 크게 달랐습니다. 이로써 저는 사람의 정은 불안정한 것이고 자비만이 비로소 영원한 것임을 더욱 체득했습니다.
이 과정은 또한 제게 연공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의 이로움을 다시금 느끼게 했는데, 바로 자신의 공간장에 에너지가 충만해져 일이 바빠도 충족한 활력을 유지해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맺음말
저는 이 일련의 심성 시험을 사부님께서 제게 주신 방할(棒喝)로 여깁니다. 그 덕분에 저는 나태함에서 깨어나 다시금 정진하게 됐습니다. 저는 무너지지 않았고 대법 법리의 지도하에 걸어왔으며, 온몸에 업력이 가득한 ‘나’가 사라지고 진정한 제가 다시 태어남을 진실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정말 죄악이라고 생각하며, 반드시 가능한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며 연공해, 좋은 수련 상태가 있어야만 비로소 중생구도의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류 문장을 쓴 것은 자신의 수련을 다시금 자세히 살피기 위함이며, 현재 법리상의 체득 과정을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이것들은 현재의 제한적인 인식이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28/50265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28/50265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