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관건적인 순간에 확고하게 선택하다

—28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걸어온 수련의 길

글/ 중국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중국 법회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수련 이래 처음으로 여러 해 동안의 수련 과정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수련 체득을 교류하기 위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수련한 지 오래됐지만 아주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한 제자로서, 글쓰기에 매우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펜을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수련이 너무 형편없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법회의 장엄하고 신성함을 깨닫고 저의 수련 경험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저에게는 어느 한 가지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서 사부님께 태연하게 보고드릴 수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제가 ‘더 이상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되겠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수련이 어떻든 사부님께 답안지를 제출하기로 결심했으며 동시에 부족한 점을 찾아 착실하게 수련하기로 했습니다.

1. 대법을 얻어 행복하게 수련하다

저는 1997년에 친했던 중학교 동창을 통해 기쁘게 대법을 얻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무신론 교육을 받아와서 늘 각종 기공을 비웃었지만 동창이 저에게 대법을 소개해 주었을 때 왠지 모를 호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날 바로 《파룬궁(法輪功)》 책을 집으로 가져가서 며칠 만에 다 봤습니다. 이 공법은 사람들에게 선(善)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 원리까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어서 정말 좋다고 느꼈습니다. 귀신을 모시고 미친 듯이 돈을 모으는 엉터리 기공들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당시 저는 젊어서 인간 세상의 일로 바빴기에 잠시 수련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이 좋다는 씨앗은 그때 이미 조용히 심어졌습니다.

1998년에 또 다른 대법 수련생인 동창과 교류할 때 그가 말했습니다. “나 법을 열심히 배워야겠어. 이 법이 너무 좋잖아. 너도 착실하게 수련해야지!” 저는 왜인지 모르게 스스로 정말 수련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스무 살의 저는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 후 저는 법공부 팀에 참여해 수련생들과 함께 법을 배우고 연공했습니다.

1999년 박해가 발생하기 전 이 1년 동안의 수련 속에서 저는 이전에 게으르고 잠이 많던 나쁜 버릇을 고쳤습니다. 매일 5시가 넘으면 일어나 연공장에서 아침 연공을 한 후 간단히 식사를 하고 출근했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는 대법 책을 들고 법공부 팀으로 가서 법을 배웠습니다. 평소 학교에서 엄격하게 심성(心性)을 요구했으며 매 수업을 진지하게 하고 반의 모든 학생을 선하게 대했습니다. 우수하고 착한 학생이든 장난꾸러기 문제 학생이든 저는 진심으로 그들을 잘 대해주었습니다. 저는 반에서 아이들에게 대법을 홍보하고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가르쳤으며 연공 동작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저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학부모 총회에서 정(鄭) 씨 성을 가진 학생의 어머니가 특히 흥분해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번 학기에 특별히 많이 달라졌어요. 아주 철이 들었어요.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대법을 가르쳐주시고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주시며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고 말하더군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다시는 엄마 속을 썩이지 않겠다고 했어요. 예전에는 저와 아이 아빠가 이혼했기 때문에 아이가 매우 예민했고 자주 성질을 부렸는데 지금은 정말 철이 들었어요. 지금은 방과 후에 집에 돌아와서 숙제하고 집안일만 해요.”

이 1년간의 안정적인 개인 수련은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충실하고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비록 법을 깊이 배우지 못했고 수련도 막 시작했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아름다움은 제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2. 피바람 속에서 가족 정의 흔들림에도 굳게 대법을 수련하다

상황이 급변해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대법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발동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대법제자가 집을 잃었고 무수한 중생이 해독을 입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수련을 절대 그만두라고 엄숙하게 말씀하셨으며 울면서 이불을 덮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가족 정으로 저를 흔들려 하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TV에서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 대법은 절대 우리에게 자살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고 약을 먹지 말라고 한 적도 없어요. TV에서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에요.”

당시 저는 신수련생이었고 수련생들과의 교류도 부족해서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단지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았고 TV가 흑백을 전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누가 수련하지 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에 마을 위원회에서 저희 집을 찾아왔고 교장 선생님도 저희 집을 찾아왔지만 마침 제가 모두 집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두려워하셨지만 지혜롭게 응대하셨습니다. 제 호적이 마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마을 위원회의 소란을 면했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저희 집안 형편이 가난한 것을 보고 동정심이 생겨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당시에 박해가 심했다면 수련 근기가 아직 얕았던 저는 감당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의 심성에 따라 조용히 저를 보호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저는 오늘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수련생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저는 ‘내가 뭔가 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접착성 스티커 용지를 사서 마커 펜으로 대법 진상 내용을 썼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와 정법구결을 썼습니다(나중에 정법구결은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점심 휴식 시간을 이용해 전봇대나 벽에 붙였습니다. 나중에 진상 자료가 생겼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각 가정의 문밖에 배포했습니다(나중에 이는 법을 존중하지 않는 표현임을 깨닫고 지퍼 파우치에 담아 배포했습니다).

가족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습니다. 밤에는 몰래 대법 책을 꺼내어 열심히 읽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수련생들처럼 들끓는 분위기 속에서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을 지지하는 장엄한 행동은 하지 못했습니다. 선천적으로 담이 작고 겁이 많았으나 대법을 굳게 수련하는 마음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3. 어려움 속에서 돌아와 착실하게 수련하다

그리하여 저는 어머니 몰래 법을 배우는 한편 조용히 진상 표어를 붙이고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사악한 박해는 제가 수련을 포기하게 만들지 못했지만 인간 세상의 정(情)이 저를 미혹하게 했습니다.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됐고 몇 번의 만남 끝에 현재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대법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갖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법에 대해 정념(正念)이 있었고 박해받고 있음을 믿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순리대로’ 그와 결혼했습니다.

속인의 정에 미혹돼 저는 서서히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법도 배우지 않고 진상 표어도 붙이지 않으며 속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는 여전히 대법제자의 기준으로 저를 요구했습니다. 한번은 교장 선생님이 저에게 구(區) 정협(政協) 위원으로 가라고 해서 교육국에 갔는데 그곳에서 파룬궁수련생이 아니며 대법에 대해 악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보증서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비록 법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대법의 씨앗은 시종일관 제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문득 이것이 사부님의 시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법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법에 대한 정념이 남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마을의 아주머니 수련생과 우연히 만나게 해주셨고 그리하여 저는 다시 수련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그때가 2008년 초여름이었습니다. 제가 두 손으로 수련생이 건네준 대법 신경문을 받아 들었을 때 사부님의 자애로운 부름이 담긴 구절을 하나하나 읽으며 저의 눈물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 불충한 제자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때부터 저는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을 걷게 됐습니다.

(1) 안으로 찾다

수련으로 돌아온 후 저는 마치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아이처럼 잠시도 대법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법공부 팀에 가서 법을 배웠고 고비를 넘고 있는 수련생들과 함께 법을 배웠으며 당시 매우 착실하게 수련한다고 생각되는 팀을 찾아가 법공부를 했습니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있으면 절대 낭비하지 않고 대법 책을 들고 마치 목마른 듯이 배웠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배우고 싶어졌고 배우면 배울수록 더 명백해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법공부의 긴급함을 깨닫고 여름 방학을 이용해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잠이 많았던 저는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치고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단락을 외우는 데 두 시간이 걸렸지만 나중에는 10여 분 만에 한 단락을 외울 때도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법리가 저에게 층층이 펼쳐졌고 심성이 빠르게 제고됐습니다. 그 기간에 법의 지도 아래 그리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한 관(關) 또 한 관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1) 갈등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태연하게 사과하다

저는 속인 속에서 부딪히는 것을 특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남편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어서 저는 자주 남편과 다투었고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법을 깊이 배우면서 저는 이 마음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늘 좀 마지못해 제거하는 것 같았고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책임이 저에게 있지 않은 사소한 일 때문에 남편이 또다시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고 당장이라도 집을 뒤집어엎을 듯이 했습니다. 저는 즉시 참을 수 없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저팔계야, 적반하장의 능력이 대단하네. 게다가 이 사소한 일 때문에 화낼 가치가 있어?’

제가 분개하며 그와 맞서려 할 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니다, 나는 수련인인데 어떻게 그와 똑같이 행동할 수 있지!’ 하지만 마음속의 그 화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진정한 저는 이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야, 넌 반박하지 않으면 죽니? 너는 수련인이 될 것을 선택할 거니, 아니면 속인이 될 거니? 스스로 선택해.’ 저는 굳게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련인이 될 것이며 오늘 이 관은 반드시 넘어야 한다. 이 갈등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절대로 그것을 원치 않는다.’

이렇게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니 마음이 점점 평온해졌고 마침내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진심으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에게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화내지 마세요, 건강에 좋지 않아요.” 남편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소리 지르지 않았으며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놀란 듯이 말했습니다. “당신 왜 나한테 소리 안 질러? 오늘 왜 잘못했다는 거 알아?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아?”

저는 말했습니다. “알아요, 저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어요. 앞으로 당신이 저에게 지적해줘요.”

남편은 좀 이해하지 못했고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으로 찾아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갈등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면 안 되며 그래야 비로소 수련생이고 그래야 심성을 높일 수 있어요.”

남편은 웃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와 남편 사이에 이와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고 저는 모두 하나하나 평온하게 그 관을 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한번은 남편이 화를 낸 후 제가 일하고 있는데 남편이 스스로 사과했습니다. “오늘 화내면 안 됐어. 내가 잘못했어. 나도 당신처럼 안으로 찾고 제고해야겠어!” 우리 둘은 즐겁게 웃었습니다.

2) ‘내연녀’를 태연하게 대하다

한번은 남편이 밤에 당직을 섰고 다음 날 아침 그가 막 집에 도착했는데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여보, 어젯밤 잘 잤어요?” 순간 저는 청천벽력 같았고 눈물이 참지 못하고 흘러내렸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저는 말했습니다. “문자를 보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이게 누구인지는 저도 모르겠네. 분명히 잘못 보낸 걸 거야. 안 믿기면 내가 전화를 걸어볼게.”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 분명히 그 여자랑 짜고 날 속이겠죠. 절대 안 믿어요!” 그리고는 계속 울었습니다. 남편이 한참을 달래도 달래지지 않자 저는 그에게 나가라고,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당신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저는 말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저는 이상한 생각 안 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일부러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그 여자는 자신의 동생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다가 잘못 보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믿지 않았고 이어서 또 울었습니다. 울다가 갑자기 멈추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이 일이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다. 만약 진짜라고 해도 이 일 때문에 수련을 그만둘 거니? 너는 수련인을 선택할 거니, 아니면 속인을 선택할 거니?’

그리하여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혜주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다가 문득 며칠 전 어느 수련생과의 교류가 생각났습니다. 그 수련생의 남편에게 실제로 내연녀가 있었고 여러 해 동안 양쪽을 오갔는데 이 수련생은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남편에게 내연녀를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도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이 선량함에도 사(私)적인 요소가 숨어 있음을 깨달았고 남편에게는 되도록 빨리 이러한 관계를 끊는 것이 좋다고 권했습니다. 내연녀에게도 좋지 않고 남편 자신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이 수련생의 선량함에 깊이 감동받아 결국 부적절한 관계를 끊고 가정으로 돌아왔으며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는 이 수련생의 수련 경험을 되돌아보며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속으로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오늘 나는 반드시 이 일에서 수련을 잘 해내고 떳떳한 수련자가 될 거야.’ 저는 눈물을 닦고 불안해하는 남편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는 제가 아무렇지도 않고 더 이상 울지 않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저는 평온하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오늘 이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더 이상 따지고 싶지도 않아요. 만약 거짓이라면 더 좋고 만약 사실이라면 저도 화내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수련인이기 때문이에요. 모든 것은 인연 관계가 있어요.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인식하고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이 일을 잘 처리할 것이라고 믿어요.”

남편은 매우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과거 보통 사람일 때 울고 소란 피우던 제가 이런 일을 겪고도 이렇게 냉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당황했고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정말 좋아!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 있어!”

저는 즉시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좋은 것이 아니라 이 대법이 좋은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대법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이 일을 대하고 당신을 쉽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응, 이 대법은 정말 좋아!”

(2) 발정념으로 사람 마음을 해체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니 인간 세상의 모든 가상이 사라지다

수련이 끊임없이 깊어지고 층차가 제고되면서 심성도 제고됐습니다. 한 번은 사부님의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을 배웠는데 처음에는 저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시련을 하나하나 넘으면서 저는 사부님의 법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게 됐습니다. 저는 저의 층차에서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 마음과 정념 앞에서 우리가 사람 마음을 확고하게 제거하고 정념을 확고하게 선택하며, 대법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헤아릴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1) 질투심, 원망심을 정념으로 해체하니 남편의 직위가 해결되다

남편은 군 복무 후 현 직장으로 전역해 왔기 때문에 줄곧 정식 직위가 없었고 일반 노동자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정식 직위는 사악한 공산당 정부에 의해 각각 10만 위안의 가격으로 그해 졸업한 돈과 연줄을 이용한 대학생들에게 팔렸습니다. 한동안 사악한 공산당 정부는 이 퇴역 군인들이 더 이상 청원하지 못하게 하려고 가짜 시험 방식을 통해 이 퇴역 군인들의 정식 직위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남편의 부서에만 통지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동안 월급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남편의 월급은 늘 제자리걸음이어서 갈수록 적게 느껴졌고 저는 갈수록 불평등하다고 느꼈습니다. 남편이 능력이 없다고 원망했고, 남편이 이 일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는다고 원망했으며, 남편이 돈 벌 방법을 모른다고 원망했습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제가 주도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더욱 심해져서 매일 머릿속에는 남편의 각종 단점만 가득했고 마음속에는 그를 무시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오랜 기간 법을 배우면서 저는 조용히 변화했고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저는 이것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장난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 마음을 따라가지 않기로 확고하게 결심했습니다. 저는 남편을 탓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감사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저녁에 법을 배우고 집에 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여러 해 동안 경제적 박해를 받은 것이 그의 잘못도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사악한 공산당의 잘못인데 내가 왜 그를 원망하는가! 나는 그를 동정해야 한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남편이 여러 해 동안 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지지해준 것은 가장 소중하고, 그는 귀한 생명인데 어떻게 그를 싫어할 수 있을단 말인가? 이것은 무슨 마음인가, 맞다, 원망심, 질투심이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수련인이므로 대법제자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그때부터 원망심, 질투심이 다시 올라올 때마다 저는 발정념을 했고 그것을 따르지 않기로 확고하게 결심했으며 그것을 제거하고 해체하여 법을 따르기로 확고하게 선택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의 월급은 적어도 3000위안은 돼야 할 것이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편과 부서의 퇴역 군인들이 함께 청원하러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더 이상 남편을 싫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을 격려하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는 매우 큰 자신감을 얻었고 정념이 충만해 사악한 공산당 정부와 정당하게 논쟁했습니다. 결국 남편의 월급은 1000여 위안에서 3000위안으로 인상됐습니다.

나중에 저는 저의 정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 집안의 돈은 대법의 자원이며 대법제자가 잘 사는 것은 법을 실증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5000여 위안인데 그는 3000위안에 불과한가,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부족했던 돈도 반드시 보충해주어야 한다. 구세력의 박해를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또다시 신기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월급은 동급과 동일한 수준으로 인상됐고 한 푼도 부족하지 않았으며, 여러 해 동안 부족했던 20여만 위안을 한 번에 모두 보충받았습니다.

저는 대법의 신기함에 깊이 감탄했고 안으로 찾는 것의 신기함에 감탄했으며 정념의 신기함에 감탄했습니다. 이때 저는 사부님의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중 그 단락의 법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음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2) 쟁투심, 부녀의 정을 정념으로 해체하고 사위와 장인이 화목해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줄곧 저희와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주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매우 민감하셨습니다. 시간이 오래되자 사소한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임대 아파트에서 가구를 옮기러 갔는데, 갈등의 표면적인 이유는 아버지가 남편에게 장갑을 끼라고 건네주자 남편이 가구를 옮기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했고, 아버지가 그 태도가 불친절하다고 느껴 참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즉시 집으로 돌아와 저에게 크게 화를 내며 사위의 각종 단점을 마구 질책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장 남편과 함께 일하던 시아버지까지 전화로 불러들였고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다는 기세였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남편에게 큰 손찌검을 했지만 다행히 남편은 화내지 않고 아버지께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격노하며 질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멍해졌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이래야 하나? 뭘 하시려는 거지?’ 갑자기 발생한 갈등 앞에서 저는 아버지의 기세에 겁이 나서 울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일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분명히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일까?’ 아버지가 저렇게 싸우는 모습, 눈을 크게 뜨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쟁투심 아닌가? 이것이 바로 나의 쟁투심과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 꿈에서 베개 속에 콩이 가득 찬 것을 보았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 마음에 모두 ‘투[鬪, 싸움, 역주: 콩(豆)과 투의 중국어 발음이 같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사악한 공산당 문화 아닌가? 안 된다, 나는 이 쟁투심을 원치 않는다.’

‘내 쟁투심이 늦게 제거돼 중생이 이렇게 표현하게 하고 고통받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 거울이 아닌가?’ 그리하여 저는 묵묵히 속으로 발정념을 하며 저의 우주 체계 공간장의 쟁투심과 쟁투심의 업력장을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또 저와 아버지 사이의 부녀의 정을 찾았습니다. 평소 남편이 아버지의 단점을 한마디라도 말하면 저는 즉시 반격해 남편을 설득하거나 억누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동시에 저의 우주 체계 공간장의 부녀의 정 집착을 해체했습니다. 한참 후에 저는 문득 아버지가 점차 냉정해지는 것을 발견했고 갑자기 사위를 때린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며 시아버지 앞에서 사위에게 사과했습니다. 남편은 화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버님, 괜찮아요. 저를 때려도 저는 화내지 않아요.” 시아버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제 자식이라도 한 대 맞는 것은 괜찮습니다.”

기세등등했던 가정 갈등은 쟁투심과 부녀의 정 집착을 정념으로 해체하는 과정에서 조용히 해체됐습니다. 나중에 저는 문득 이전에 발생했던 일들이 모두 제가 안으로 찾고 사람 마음과 대법의 정념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했기에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사부님의 법 속에서 깨달은 ‘선택’이라는 층차의 법리가 아닐까요?

저는 문득 깨달음을 얻은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리하여 평소 나쁜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정념으로 해체하고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을 원치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바로 정념을 선택하고 대법을 선택하며 그 더러운 사람의 마음을 결코 원치 않기로 했습니다. 한 달여 후 남편과 아버지의 갈등은 완전히 사라졌고,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잘 지냈으며 가정 분위기가 특별히 화목해졌습니다.

또 다른 한번은 딸이 자궁근종에 걸려 병원에 가서 반복적으로 검사하고 치료했습니다. 결국 저는 안으로 찾았고 저의 우주 체계 공간장의 색욕심을 정념으로 해체하며 그것을 제거하고 원치 않기로 확고하게 선택했으며 법을 확고하게 따랐습니다. 결국 검고 통통했던 딸은 건강하고 예뻐졌고 보는 사람마다 많이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 역시 제가 법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여 가져온 인간 세상의 변화가 아니겠습니까?

(3) 나 자신이 최고의 진상이 되게 하다

저는 사부님의 《북미 순회 설법》을 학습하면서 진상을 알리는 일이 대법제자가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 일 중 하나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반드시 잘 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끊임없는 법 학습 과정에서 저는 대법제자 자신이 속인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생들이 대법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법을 잘 모르기에 바로 대법제자 자신의 표현을 통해 대법을 이해합니다. 우리가 진상을 아무리 잘 이야기해도 평소에 행동이 형편없다면 중생들이 대법에 대해 나쁜 견해를 갖게 하여 중생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2008년 수련으로 돌아온 후 교사인 저는 교육 및 교수 기술을 열심히 연구하고 저의 교육 및 교수 수준을 향상시켰습니다. 동시에 모든 아이의 내면에 다가가 대법제자의 넓은 가슴으로 모든 아이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학부모들이 아이의 성적이 올랐는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지를 기준으로 선생님의 좋고 나쁨을 평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번 학년 꼴찌 반을 학년 1등으로 이끈 경험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일부 문제 학생들을 근면하고 진취적이며 감사할 줄 아는 예의 바른 아이들로 변화시킨 경험도 있습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지도자 모두에게 높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제 반에서 공부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고, 심지어 제 반으로 전학시키기 위해 연줄을 찾고 뒷문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지역 교육 연구실 주임은 저를 칭찬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학교를 다녀봤지만 선생님과 같은 이런 교육 및 교수 사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아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 제가 수련한다는 이유로 늘 이상한 눈빛으로 저를 보던 한 교사도 저를 정중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중생들에게 대법제자가 실패한 겁쟁이나 직장에서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엘리트임을 인식시키고 싶었습니다.

현 사회에서 교사가 학생 학부모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며 특히 제가 가르치는 이런 반의 학부모들 중에는 권력이 있거나 부유한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저는 매우 거부감을 느껴 대법제자로서 학부모가 주는 선물을 절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저의 신분을 밝히지 못해서 많은 학부모가 제가 선물 금액이 적다고 싫어하거나 자신의 아이에게 잘 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제가 중생들에게 제가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을 실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이런 고상한 도덕을 갖게 됐다는 것을 실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저에게 선물이나 사례금을 준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에둘러 부드럽게 이유를 설명하며 저의 인생 원칙은 ‘진실, 선량, 관용, 인내(진선인)’라고 말하고는 선물이나 사례금을 돌려보냈습니다. 학부모들은 당연히 그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 아이들에게 더욱 관심과 사랑을 베풀었고 학부모들은 안심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모두 특별히 감동했습니다.

한 폭력 조직 두목의 아들은 이전에 매우 장난스럽고 어떤 선생님이든 골치 아파했지만 제 반에 와서는 제가 엄격함과 사랑을 함께 베풀어 아이가 철이 들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으며 기말고사에서 94.5점을 받았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감사의 표시로 설날에 저에게 2000위안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아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저의 인생 원칙을 에둘러 말하고 사례금을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이 폭력 조직 두목은 감동하여 말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야!”

그리고 평소 자식의 잘못을 감싸주던 그가 아이에게 선생님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또 사례금을 가져와서 어쩔 수 없이 저는 아이에게 비싼 하이난 과일, 책, 옷 등을 사주어 학부모에게 되돌려 주었고, 결국 우리는 매우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렇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너무 에둘러서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늘 두려워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고 학부모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혹은 저를 신고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좋지 않은 마음임을 깨닫고 이 더러운 사람 마음을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 저의 일거수일투족이 최고의 진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학부모가 선물이나 사례금을 보낼 때 저는 직접 제가 대법 수련생임을 설명하고 대법 진상을 전면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한번은 반의 한 여학생의 외할아버지가 저희 집에 와서 건과류 두 상자와 500위안의 상품권을 가져다주시고는 미처 말할 틈도 없이 급히 떠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이의 학부모에게 진상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쓰지 말까, 아이의 아버지가 경찰이고 파출소장이나 부소장일 수도 있는데 만약 나를 잡아간다면 어떻게 하지? 만약 나중에 내가 그 아이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가 날 괴롭히러 오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마음을 돌이켜 생각했습니다. ‘아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가 소장이라고 한들 무슨 상관인가? 나는 마침 그에게 진상을 듣게 하고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주면 된다. 만약 그가 진상을 이해하고 앞으로 다시는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게다가 그는 나의 중생인데 어떻게 날 신고하겠는가? 써야 한다, 반드시 써야 하며 게다가 더 전면적이고 철저하게 써야 한다.’

그리하여 저는 파룬궁이 무엇인지, 대법제자가 어떻게 법을 배우고 마음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지, 사악한 장쩌민 집단이 어떻게 천안문 분신자살 가짜 사건을 조작해 파룬궁에 누명을 씌웠는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여 평안을 보장받는 것부터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진 상황까지, 그리고 대법제자가 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잡히거나 맞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하는지, 그리고 제가 평소 어떻게 대법의 기준으로 저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는지 등을 모두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에 관한 이 일에서 반드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선의로 알려주면서 360도 사각지대 없는 진상 대백과를 완성했습니다.

저는 대법의 역량이 충만한 이 진상 편지를 들고 제가 산 900위안 상당의 아이가 입을 옷, 책가방 등과 함께 이 아이의 어머니 직장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녁에 아이의 어머니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저는 지금도 그녀의 첫 문장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선생님,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의 이 편지를 다 읽었어요. 저는 이것(박해)이 음모라는 것을 알아요.”

이어서 그녀는 정의감이 넘치는 말을 많이 했고 우리 대법제자에 대한 존경심을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경찰 남편이 이 편지를 보았을 때 역시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사악한 생각이 해체됐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저의 중생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것에 대해 위로와 행복을 느꼈고 저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더욱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제가 중생을 위해 한 이 작은 일은 법에 비하면 창해일속(滄海一粟)에 불과하지만 우리 사부님께서는 중생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습니까? 이것은 속인의 언어로는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저는 법을 떠났던 그 몇 년 동안 처음에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엄격하게 행동할 줄 알았고 학부모의 선물이나 사례금을 절대 받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제가 대법을 배운다는 것을 학부모가 알까 봐 두려워 흐름에 따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수련으로 막 돌아온 초기에도 때로는 학부모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받기도 했습니다. 이 선물과 사례금 중 일부는 나중에 제가 하나하나 돌려주었지만 잊어버리거나 두려워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게으른 마음 때문에 돌려주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부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후에는 이 방면에서 사람 마음 때문에 대법에 먹칠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4) 《홍음》을 암송하고 나가서 직접 진상을 알리다

저의 두려워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은 매우 무겁습니다. 특히 진상을 알리는 방면에서는 속인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속인이 저를 정신병자라고 말할까 봐, 신고당해서 잡혀갈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속인 속에서 낯선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교사로서 표현 능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극도의 사심(私心)으로 인해 생긴 것임을 알았고 여러 번 대량으로 법을 배워 이 관을 넘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시도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매번 법을 한참 배운 후에는 집에서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밖에 나가면 입이 마치 접착제로 붙은 것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번 매우 속상했고 속으로 저 자신을 욕했습니다. ‘○○야, 너 왜 이렇게 멍청하니, 왜 입을 못 열어, 네 입은 뭘 하는 데 쓰는 거니.’

아무리 자책해도 매번 지나고 나면 다음번에도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격려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첫걸음이고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것(두려워하는 마음)이 당신이 아니라고 부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고 여전히 그 두려움과 걱정을 자신으로 여겼습니다. 한 번은 제가 《홍음 4》를 외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매일 몇 수의 시를 외우면서 머릿속의 사악한 생각이 점점 줄어들고 정념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십여 수 정도 외웠을 때 저는 문득 자비심이 생겼고 더 이상 사심이나 중생이 고난을 겪는 것에 대한 무관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날 《홍음 4》를 외운 후 저는 자연스럽게 집 밖으로 나와 전기자전거를 타고 진상을 알리러 갔습니다. 마침 자전거를 탄 80대 정도의 할아버지를 마주쳤고 저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배추 가격을 물은 후 진심으로 그에게 사악한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하라고 권유했고 그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비로운 상태는 제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성공적인 경험은 제가 대법의 위력을 깊이 느끼게 했습니다. 법을 외움으로써 저에게 정념과 자비심이 가득해졌고 중생은 이 자비심을 느껴 자연스럽게 몇 분 만에 삼퇴를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개별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차를 운전하는 부부 수련생 두 분과 다른 몇 분의 수련생을 따라 장터를 찾아가며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알리면 알릴수록 더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알리면 알릴수록 정념이 생겼으며 알리면 알릴수록 자비심이 커졌습니다. 상태가 좋았던 한번은 제가 두 시간여 동안 19명에게 삼퇴를 시켰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지(加持)임을 알았습니다. 사부님의 가지가 없었다면 저는 구우주(舊宇宙)의 이기적인 특성을 가진 옛 자아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맺음말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수련하면서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습니다. 제가 사부님께 보고드린 것은 제가 비교적 잘했던 부분일 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에게는 아직도 많은 부족함이 있으며 각종 사람 마음이 자주 올라오고 많은 관을 잘 넘지 못했으며 심지어 매우 말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수련 상태도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었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도 매우 엄격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전염병(코로나19) 때문에 각종 종합 보고서를 작성해야 해서 부득이하게 다시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큰일이었습니다. 구세력의 함정에 빠져서 많은 시간을 휴대폰에 미혹돼 속인의 숏폼 영상을 보며 보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제가 착실하게 수련하려는 의지를 소모시켰다는 것입니다. 법을 배워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발정념은 산만하며 연공은 더욱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수련생 여러분께 선의로 일깨워 드리고 싶습니다. 휴대폰 중독은 정말 버려야 하며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수련이 정말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과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는 중생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저는 사부님께도 약속드립니다. 반드시 휴대폰 중독을 수련하여 제거하고 그 배후의 안일함과 ‘아름다운 생활’을 추구하는 마음을 제거하겠습니다. 동시에 저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상은 모두 개인적인 체득이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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