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관하여

글/ 중국 대법제자 추실(秋實)

[명혜망] 두려움은 아마 삼계(三界) 내의 한 생명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에게 집착하는 생명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생겼을까요? 저는 천목(天目)을 닫고 수련해서 모르지만, 그것에 조종당할 때 몹시 당황하고 추하다는 것은 압니다. 그저께 저는 어느 직장에 가서 한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얼마 전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저와 이야기할 때 매우 긴장하며 종이에 글로 써서 제게 보여줬습니다. 저 역시 3년간 불법 감금을 당했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저의 방문이 수련생에게 압력을 주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생의 그런 모습을 보고 저는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제가 불법 감금됐던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현지의 많은 수련생이 정법(正法)이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초의 기세등등했던 정념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큰 부족함은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뭘 두려워할까요? 구치소에 갈까 봐, 감옥에 가서 고생할까 봐, 자유가 없을까 봐, 가족을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집에서 열심히 법을 외우고 구색만 갖춰 사람을 구하는 일을 좀 하면서 정법이 끝나 사부님을 따라 하늘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립니다. 많은 수련생이 사부님의 말씀을 빌려 말합니다.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자체가 바로 사악에 대한 가장 큰 타격이다.”(각지 설법10-명혜망 10주년 법회 설법)

그 때문에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는 진상 알리기 전단조차도 더는 대규모로 배포하지 않게 됐습니다. 변호사 몇 분이 중공 악당의 각 부서를 뛰어다니며 수련생을 위해 고소할 때, 저는 수련생과 교류하고 정체(整體)를 형성하여, 점으로 면을 이끌어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구하며 현지 환경을 바꾸고자 했으나, 수련생들은 모두 피하며 제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몇 수련생은 “우리도 다 알고 발정념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수련생을 직접 만나서 교류한 후의 발정념과, 말만 듣고 하는 발정념은 효과가 다릅니다. 대리 고소를 맡은 변호사 두 분 모두 중공 악당에게 중점적으로 박해받고 자격증까지 박탈당한 분들이었기에, 그들과 협력하는 데 저 역시 압박감을 느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여쭈었습니다. ‘위험한지요?’ 그러자 저는 꿈을 하나 꿨습니다. 저와 그 박해받은 수련생의 친척(그녀 역시 수련생이며 저와 협력하는 사이)이 교류하고 있었는데, 옆에 우물이 하나 있었고 우물에서 문어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 무언가가 기어 나오자 수련생이 그것을 때려죽였습니다. 저는 수련생 안전을 위해 그녀를 친정으로 보내 숨겨주었습니다. 그녀는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대법서적이 들어 있었고, 그중 한 권인 ‘전법륜(轉法輪)’은 표지를 여러 겹으로 쌌으며 표지마다 그녀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방금 수련생과 이야기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 우물가에는 여전히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꿈속에서 제가 경찰 주의를 끌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옆에서 총을 메고서 오가며 순찰하던 병사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잠에서 깬 후 저는 깨달았습니다. 수련생을 친정에 보냈으므로 그녀는 안전하며, 때려죽인 괴물은 해체된 사악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것은 법(法)에 기점을 둔 것이므로, 변호사와 협력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20여 년간 사부님 정법을 돕고 비바람을 겪으면서, 중공 악당에게 박해받지 않은 수련생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두려워하는 마음을 닦아 없애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관념이 형성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거리 가득한 감시 카메라가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수련생이 다른 방면에는 아주 잘 수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가죽 표면의 이 물건, 바로 두려움(사심)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수련을 얼마나 잘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대법제자와 어떤 생명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수련하며 대법에게 올바른 위치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비록 누락이 있지만 그것은 수련 중에 바로잡아야 할 것이지 남에게 보일 수 없는 부끄러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중공에게 잡혀가 구치소와 감옥을 한 바퀴 돌며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등 악당 인원들과 가까이 접촉해 보니, 도리어 이런 곳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제 신분증을 가지고 그들에게 모두 진상 편지를 우편으로 보냈고, 다시 그들을 만나면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진상을 알리기 위해 그들이 집에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이웃과 친척,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사람들에게 제가 방금 감옥에서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감옥에 다녀왔다고 하면 일반인은 아주 호기심을 갖습니다). 제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해서 박해받았기 때문이라며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때로 수련생들이 제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일깨워주는데, 사실 저는 안전에 매우 주의하며 의심스러운 사람이 보이면 제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건넵니다. 그저께 저녁, 길목에서 붉은 완장을 찬 사람을 보고 제가 다가가 물었습니다. “두 분은 어두운 밤중에 여기서 무얼 하시나요?” 그들이 말했습니다. “사거리에 지전(종이돈)을 태우는 사람이 없나 감시하고 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무슨 정책이 이래요. 서민들이 폭죽도 못 터뜨리게 하더니, 이제는 지전도 못 태우게 하고, 몇백 년 된 오랜 전통을 다 없애버리네요.”

저는 어떤 환경에서든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곧 진정으로 사악에게 박해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 있든, 잡혀갔든, 병업이 나타났든지, 수련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면, 설령 육신을 잃는다 해도 우리는 우주대법을 얻은 생명이므로 그 생명은 우주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은 난관에 직면했을 때 법의 지도하에 앞으로 한 발 내디뎌야만 영혼이 진정으로 사부님 보호와 생명의 승화를 느낄 수 있으며, 그래야 점점 더 믿게 됩니다. 어떤 수련생이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 분명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에는 서로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무엇이 제고된 것입니까? 바로 사부님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또 명망이 아주 높은 수련생이 사적으로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보세요, 그녀는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또 저런 일(박해받는 수련생 구출을 지칭)을 하네요. 얼마나 위험해요, 그녀를 멀리하세요.” 그 수련생은 저를 매우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그만하세요, 겉만 닦았군요.” 옆에 있던 한 수련생이 혼잣말로 했습니다. “그녀가 안 하면 당신이 할 건가요?” 저도 이틀 동안 침체된 상태로 생각해봤습니다. ‘확실히 내가 다른 수련생보다 수련을 잘 못 해서, 몇 년 사이에 연속 두 번이나 박해받고 감옥까지 갔지. 수련생이 하지 말란다고 내가 안 하고, 수련생이 수련하지 말란다고 수련을 안 할 것인가?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해.’ 저에게도 두려움이 있고 때로는 아주 심합니다. 제가 법공부를 할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마음속으로 알고 있으면 된다. 마음속에 법이 있으므로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면 곧 무엇을 해야 하며, 대법이 수요하므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하면 된다.”(각지 설법7-미국 수도법회 설법) 그 법이 제 마음 깊은 곳에 닿았을 때, 저는 그것이 사부님께서 제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금 명혜망 보도를 보면 전국 여러 지역의 수련생들이 대규모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납치되는데, 많은 수련인의 소극적 감당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조심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사악이 당신을 놓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법에 동화됨과 동시에 대규모로 사람을 구하고 대법제자의 위엄을 드러내야만 사악을 해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숨어서 집에서 자신만 잘 수련한다면, 그것은 사사로움(私)이며 대법제자의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주 중 정(正)과 사(邪)의 대결이며, 이것은 또한 정법(正法) 과정 중에 건드려진 그러한 이기적이고(爲私) 자신만을 위하는(爲我) 변이된 생명과 정법 자체가 진행한 대결이었다.”(각지 설법7-미국 수도법회 설법) 어떤 수련생은 너무 이기적이어서 변이된 생명과 한패가 된 것은 아닐까요?

최근의 얕은 인식이며 깨달음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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