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협력으로 중생을 구하다

글/ 한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주에서 수련하고 있는 수련생입니다. 2014년에 심득교류 문장을 썼었는데 11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수련에 큰 진전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부족하지만 그간 체득한 일들을 글로 써내고 더 정진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1. 스승을 찾아 헤매다

저는 불교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 부처의 존재를 믿으며, 부처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평범한 듯했던 저의 삶은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면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안양에서 학원강사를 할 때의 일입니다. 주중 바쁠 때는 못 느꼈지만 주말이면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이 공허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돈을 벌고, 차를 사고, 사람들을 만나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그때뿐이었고, 집에 돌아오면 늘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친한 강사들 몇 명과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직장 동료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고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는 점차 직장 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두 달쯤 고민을 하다가 2001년 가을, 도(道)를 닦아 깨달음을 얻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그때 나이 스물여덟이었습니다.

처음에 절에 들어가서는 생활환경이 완전히 달라져 고생스러웠지만 구도심으로 수행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1년, 2년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 형식화되고 세속화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불교의 모습이 아니야. 이래가지고 이 시대의 중생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는 저를 이끌어줄 스승을 찾고 싶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유명하다는 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그중에는 비범한 분도 몇 있었지만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은 못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2006년 대구 동화사에 있을 때 우연히 ‘진정한 건강의 길 파룬궁’이란 소책자를 보게 되었고 대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련서인 ‘전법륜’을 구해서 논어 첫 문장을 읽는데 온몸에 전율이 오면서 눈이 번쩍 뜨였고, ‘이 책은 기공책이 아니라 불법(佛法)이다’라는 인식이 들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저의 가슴은 설레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쉬운 구어체 형식으로 쓰여 있었는데 저를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있었고, 책을 쓰신 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위치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각지 설법을 읽고 나서는 사부님이 어떤 분이신지, 왜 이 말법시기에 오셔서 법을 전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고, 더는 스승을 찾아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련 초기에는 몇 차례 관정(灌頂)을 해주시는 것을 느꼈고, 수련한 지 3년째 되는 해에는 책에서 말씀하신 대주천(大周天)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대법을 만났음에도 오성이 부족해 아직 배우지 못한 불경에 대한 호기심, 조용한 환경에 대한 집착, ‘환속하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되나’ 하는 일종의 두려움 등으로 절에서 몇 년을 더 머물렀습니다.

2010년부터는 울산 수련생들과 인연이 되어 왕래하다가 한 수련생의 권유로 2012년 중국인 진상활동을 위해 처음 제주도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제주 노수련생의 도움으로 공항 진상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공항 진상을 다녀온 첫날 꿈을 꾸었습니다. 기차역에서 중생들을 가득 실은 기차가 어디론가 가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중국인 진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밀려오는 중국인들을 보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고 2013년에는 방을 구해 제주에 정착했습니다. 또한 진상활동 중에 말을 걸어오는 중국인들이 많아 그들과 소통하고 싶어 중국어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 수련의 기초가 없으면 관을 넘지 못한다

2015년 가을, 사정이 있어 미국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욕행 직항 티켓은 140만 원이나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140만 원은 큰돈이었기에 더 저렴한 표가 없나 검색하다 보니 98만 원에 갈 수 있는 표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비행기는 베이징을 경유해서 가는 항공편이었는데, 저는 별 생각 없이 하루 저녁 공항에서 쪽잠을 자고 환승을 하면 40만 원을 절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비행기로 예약했습니다.

베이징 공항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 9시 뉴욕행 비행기를 타려고 탑승구에 줄을 섰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다 보니 제일 마지막에 서 있었는데 비행기 탑승구 바로 앞에서 공항 경찰 8명이 2인 1조가 되어 가방을 검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공항 경찰이 가방을 내려놓으라고 해서 저는 별 생각 없이 탁자 위에 가방을 놓았습니다. 경찰이 가방을 열자, 안에는 중문 전법륜과 한글 전법륜 각각 1권이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베이징 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로 환승하니까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행기 안에서 보려고 책을 가방에 넣었던 겁니다.

경찰이 전법륜 책을 꺼내며 “이것은 무엇인가? 파룬궁?”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황해하며 “나는 한국인입니다. 중국을 가는 것이 아니고 미국을 가는 것이니 문제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순간 두 명의 경찰들도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경찰 6명도 “무슨 일이냐?”며 몰려와 일이 커졌습니다. 총 8명이 저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고 발정념을 계속했지만 저의 정념은 강하지 못했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양복을 입고 명찰을 찬 한 중년 남자가 오더니 무전기로 누구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비행기는 그냥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무척 당황했고 그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뉴욕행 비행기가 저를 태우지 않고 그냥 출발한 것입니다.

당황해하는 저를 보며 그 중년은 “당신은 가지 못한다. 날 따라와” 하고는 저를 사무실로 데려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어느새 저의 여행용 캐리어도 가져다 놓았습니다. 사무실 안에는 세관직원 둘이 있었는데 저의 모든 짐을 다 꺼내게 하고 제 얼굴, 여권사진, 전법륜, 제 물건들을 사진 찍고 저의 직업, 왜 미국에 가는지 등등 신상 정보를 물었습니다.

저는 당시 토산품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 방문차 여행을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파룬궁은 좋습니다. 나는 한국인이고 미국에 가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등등 짧은 중국어로 몇 마디 말했지만 그들은 못 들은 체했습니다.

그때 저는 ‘설마 나를 구치소로 보내는 건 아니겠지?’ 하며 순간 두려운 마음이 일었고, 발정념을 하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때 그들은 전법륜 책 두 권은 압수한다고 하고 저를 항공사 프론트에 데려다주었습니다. 항공사 여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비행기표를 달라고 하자 여직원은 “정부가 한 일이기 때문에 항공사와는 무관합니다. 비행기표를 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다가 미국을 갈 수 있게 도와준 부부 수련생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 수련생은 “동수님, 갈 수 있어요. 당당하게 비행기표를 달라고 요구하세요. 갈 수 있어요.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니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련생의 정념이 있는 짧은 몇 마디 말에 저의 정념은 강화되었고, 항공사 직원에게 다시 가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당신 사장에게 전화하세요. 나는 뉴욕에 가야 합니다. 비행기 티켓을 주세요.” 그러자 항공사 직원은 당황해하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1분 정도 통화를 하더니 전화를 끊고 “좋아요, 비행기표를 한 장 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비행기를 타고 뉴욕을 예정대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 일에서 저는 두 가지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든든한 수련의 기초가 없으면 관이 왔을 때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과 신(神) 사이는 바로 그 일념(一念)의 차이다. 그러나 그 일념의 차이라, 말하기는 쉬워도, 그것은 깊고 든든한 수련기초를 거쳐서야만 비로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공력을 들여서 법 공부를 한다면 당신은 해낼 수 있다.”(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당시 저는 수련의 기초가 약했고 법공부도 부족했기에 제 힘으로는 관을 넘지 못해 책을 빼앗기고 제가 예약한 비행기를 타지 못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 수련생의 정념이 실린 교류는 어려움에 처한 수련생을 일깨우고 정념을 가지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소침해하고 있을 때, 다른 수련생의 정념이 실린 교류는 저의 정념을 가지하여 구세력이 배치한 관을 돌파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3.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겪은 일들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을 많이 겪게 되는데, 그중 인상적인 일들 몇 가지만 교류하려 합니다.

올해 초 크루즈가 들어온 어느 날 신라면세점 앞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피켓을 들고 있는데 한 중년 중국인이 다가와서 “당신은 왜 공산당을 반대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파룬궁 박해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은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옆의 중국인이 끼어들었습니다. “공산당이 돈을 주지 파룬궁이 돈을 줍니까?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변의 중국인들 대여섯 명이 그 말에 동조하며 저를 에워싸고 “맞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이 없다”라며 다들 오른손을 치켜들고 “공산당 만세!”를 여러 번 외쳤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을 차분히 하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까 생각하다가 다른 피켓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그 피켓은 ‘중국은 중공이 아니다. 애국은 애당이 아니다. 도둑을 아버지로 삼지 말고 당과 국가를 혼동하지 말라. 중국인은 신의 자손이지 마르크스 자손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피켓을 들고 정념 상태를 유지하며 서 있었는데 피켓을 보던 중국인들이 한참을 보더니 하나둘 흩어졌습니다.

마지막에는 처음에 말을 걸었던 중년 남성만 남았는데 그는 저에게 다가와 “정말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면 재난이 올 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질문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순간 ‘이 중생은 확신을 얻고 싶어서 이렇게 다가왔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성심껏 ‘파룬따파하오’를 염한다면, 당신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일행들을 따라갔습니다. 그 중년 남자의 진지한 얼굴 표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2023년 봄,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중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엔 제주에 들어오는 중국인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10월 말부터 진상 장소를 교란하거나 파괴하는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상 장소 파괴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저는 심리적으로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한국에서 파룬궁 진상 장소를 파괴하는 장면을 중국 관광객들이 보게 되는 것이라 영향이 좋지 못했고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현행범으로 붙잡으면 그래도 좀 나았지만 도망친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붙잡더라도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작성해야 하고, 후속 조치 신경 써야 해서 몸도 마음도 무척 번거로웠습니다. 당시에는 진상 장소를 지키는 수련생들한테서 전화가 오기만 해도 ‘또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사주를 받아서 진상 장소를 파괴하는 듯한 정황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불학회 책임자와 소통하며 대책을 마련하던 중 불학회에서 2023년 11월 28일 제주중국총영사관 앞에서 ‘파룬궁 진상 장소 파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고, 170여 명의 육지 수련생들이 동참했습니다. 영사관 앞에서의 기자회견은 중국영사관 배후 사악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오전에는 수련생들이 구역을 나누어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와 공산당이 제주도에 침투하는 것을 폭로하는 전단지를 배포하여 제주도민들을 일깨우고 공간장도 청리(淸理)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학회 측의 후속 조치도 이어졌습니다. 제주에 오는 중국 관광객에 비해 수련생 수가 현저히 적어 여건이 되는 육지 수련생들이 와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학회에서는 공동숙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수련생들이 중국인 진상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만불학회 측에도 협조를 구했습니다. 대만 수련생들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여 숙소를 마련했고, 신청 인원이 많아지자 1년 후에는 추가 숙소까지 마련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만 외에도 동남아, 유럽, 북미 등에서도 여건이 되는 수련생들은 제주도에 와서 진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 수련생 수가 늘어나서 인원을 배치해야 하고 숙소까지 관리해야 해서 제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늘어났습니다. 때론 제 용량의 한계를 느꼈지만, 그것은 협조인으로서 제가 반드시 수련해내야 할 부분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문제가 발생하면 수련생들과 교류를 통해 각자 안으로 찾고 단체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하면서 중생구도를 위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자 진상 장소는 점차 안정되어 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말후(末後)에 정법(正法)이 사람을 구하는 이 중대한 역사적 시각에, 나타나는 모든 문제를 더더욱 수련인의 심태로 대해야 하고, 법을 최우선으로 보아야 하며, 대법 항목을 잘 수호함으로써 그것이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잘 발휘하도록 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생각할 것이고 해야 할 것이다.”(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4. 담당 경찰의 태도 변화

진상 장소 파괴가 자주 일어나던 시기, 하루는 알고 지내던 경찰청 외사계 간부가 차 한 잔 하자며 전화가 왔습니다. 왜 만나자고 하는지 대강 짐작이 가서 이 기회에 심도 있는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저는 어떤 각도에서 말해야 경찰 측에서도 공감을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그동안에는 파룬궁 진상 중심으로 알렸는데 이번에는 중국공산당이 우리나라 안보를 위협하는 자료들을 준비했습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 김치와 한복을 중국 것이라 우기는 문화공정, 차이나타운, 코로나 바이러스 유포, 첨단기술 탈취, 스파이 기관인 공자학원, 비밀경찰서 등의 뉴스자료를 요약해서 준비했습니다.

오후에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외사계 간부는 한 젊은 경찰과 같이 나왔습니다. 그는 간단히 인사를 몇 마디 하고 “파룬궁 관련 사건 신고가 계속 들어와서 우리 경찰 측도 엄청 신경 쓰이고 파룬궁 측의 안전 문제도 있고 하니, 진상판을 줄이던가 시간을 좀 줄이던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약간 압박하는 어조로 들려서 저는 잠깐 멈칫했지만, 생각을 정리한 뒤 경찰 간부에게 말했습니다. “김 경위님, 파룬궁 집회는 파룬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공산당은 우리나라에 전방위적으로 침투하고 있고, 우리나라 안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경위님도 아시다시피 제주도에는 중국영사관이 있고, 공자학원이 있고 비밀경찰서도 있습니다. 이 자료들을 좀 보십시오.”

저는 준비해간 자료들을 보여주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대화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중국공산당의 폭정과 인권탄압을 중국인들에게 알리고 있다. 중국인들은 공산당은 위대하고 정확하다고 세뇌교육을 받아왔는데, 민주국가에 나와서 중국공산당의 살인 역사, 파룬궁 박해진상, 장기적출, 삼퇴 열풍 등의 내용을 보면 중국공산당은 위대하지도 정확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국민을 속이고 탄압하는 독재정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각성한 중국인들이 중국공산당 조직에서 잇달아 탈퇴하고 있고, 중국공산당은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공산당이 붕괴되면 우리에 대한 안보 위협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하는 집회는 단순히 파룬궁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안보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경찰 측에서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경위는 잠시 생각하더니, “좋습니다. 그러면 순찰차가 면세점 주변으로 자주 돌도록 조치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외사계 경찰은 파룬궁 진상판과 집회시간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만나자고 한 것인데, 결과는 파룬궁 진상장소 주변 순찰을 강화한다는 쪽으로 나온 것입니다. 경찰들과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저도 제가 어떻게 막힘없이 이야기했는지 신기했지만 이내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기동순찰차량이 수시로 면세점 주변 중국인 밀집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진상장 파괴 사건이 발생하여 신고하면 경찰 측에서는 예전보다 빨리 현장에 출동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들이 10명 안팎으로 왔습니다. 가해자가 저항하거나 파손이 심할 때는 수갑을 채워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중국관광객들도 놀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에서는 경찰이 파룬궁 수련생을 잡아가는데, 한국에서는 경찰이 파룬궁 집회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파룬궁 진상 장소를 파괴하는 중국인들을 잡아가니, 공산독재 국가와 자유민주 국가와의 차이를 확연히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서부경찰서의 한 젊은 경찰은 2년 전에 새로 집회담당 정보관으로 왔는데 이전의 정보관에 비해 아주 딱딱한 태도로 대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접촉할 때마다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파룬궁 관련 자료를 건네주면서 조금씩 진상을 알리자 서서히 태도가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년 3월에 치러진 천국악단 행사 이후에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올해 천국악단 행사와 퍼레이드를 준비할 때는 작년보다 훨씬 협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9월 탈당기념 퍼레이드 직후에 만났을 때는 집회 때문에 주말에도 못 쉬고 수고했다고 하자, 그 정보관은 괜찮다고 하며 “그런데 천국악단 음악 소리가 집에 가서도 귓가에 울리던데요.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파룬궁 수련하는 일만 남았습니다”라고 말해서 서로 한참을 웃었습니다.

또한 정보계, 외사계, 안보계 경찰들에게는 매체에서 보내준 ‘중국공산당의 한국 내 친중, 통일전선 조직도’를 전해주었는데 자료를 본 경찰들은 다들 깜짝 놀라며 이런 고급정보는 어디에서 났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런 기회를 이용해 우리 매체 에포크타임스를 소개했습니다. 또한 션윈 기간에는 션윈 관련 자료를 주거나 동영상을 보여주며 션윈을 홍보했습니다. 경찰들은 “파룬궁이 그냥 수련만 하는 단체인 줄 알았는데 영향력이 대단하네요” 하고 감탄했습니다.

5. 정체협력의 힘

불학회에서는 올해 9월 21일 ‘4억 5천만 탈당 기념퍼레이드’를 제주에서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엔 저희가 9월 20일 천국악단 행사만 요청했는데 21일 탈당기념 퍼레이드까지 하게 되어 제주도로서는 경사가 겹친 것이었습니다.

천국악단 단원만 해도 135명이나 되었고 국내외 수련생을 합치면 500명이 넘는 수련생이 참여하는 역대급 규모였습니다. 천국악단은 20일은 부두와 면세점에서 크루즈 관광객을 대상으로 연주를 했는데, 천국악단의 연주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관광객들은 에너지 마당에 동화되었고 손을 흔드는 수련생들에게 같이 손을 흔들거나 엄지척을 하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21일 삼다공원에 집결해 대법제자 몇백 명이 단체 연공을 하는 모습과 천국악단을 필두로 한 대형 퍼레이드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고 제주도의 공간장을 깨끗이 청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대형 퍼레이드를 진행하면서 큰 행사를 한번 치르는데 얼마나 많은 수련생들의 노고가 들어가는지 대법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모아 정체협력을 이루었을 때 얼마나 큰 힘이 발휘되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주도에는 면적에 비해 중국인 진상장소가 많은 편입니다. 공항, 부두, 면세점, 용두암, 일출봉 등 모두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어느 한 곳도 그냥 쉽게 얻어진 곳이 없습니다. 노수련생들은 많은 어려움과 교란을 극복하고 주동적으로 중생구도의 장을 개척했고, 국내 수련생뿐 아니라 해외 수련생들도 정체를 이루어 협력하며 그 장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간혹 인식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있고, 외부의 교란도 있었지만, 각자 안으로 찾고 법을 실증하고자 노력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맺음말: 갈수록 길은 좁고 표준은 더욱 높다

저는 자투리 시간에 유튜브를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작년 말 유튜브를 보는 집착이 커지자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사람들이 가득 탄 버스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로의 폭이 너무 좁아 아주 위태로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장면이었습니다. 직선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이 왼쪽으로 휘어져 있어서 차를 왼쪽으로 꺾었는데, 도로의 폭이 버스의 폭보다 좁은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좁아진 길 앞에서 버스를 멈추고 당황해하면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순간 저는 지금의 수련 상태로는 더는 앞으로 갈 수 없고 중생들도 구할 수 없다는 사부님의 일깨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꿈은 아주 선명해서 저에게 큰 방할이 되었고 자신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의 길을 여러분은 이미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아주 좁다. 당신이 약간만 빗나가도 당신은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되지 못한다. 오직 한 갈래 매우 바른 길만을 우리들이 갈 수 있으며, 조금만 빗나가도 안 된다. 그것은 역사가 요구한 것이고 그것은 미래 우주 중생의 생명이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우주는 여러분이 정법 중에서 누락이 생겨 약간만 편차(偏差)가 나도 안 되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매 한 걸음을 잘 걷는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200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법회 원고를 쓰면서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갔던 자신의 누락들을 많이 찾게 되었습니다.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부족함 똑똑히 알아 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26/5029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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