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공부 중 법을 얻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70년대생으로 1995년에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30년 수련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위대함을 목격했다. 오늘 나는 수련 중 법공부에 대한 인식을 수련생들과 나누려 한다.

사실 모든 수련생은 한길을 걸어오며 크고 작은 고비와 시련을 겪었다. 각자 생명의 근원, 특징, 업력의 크기 등이 달라 복잡한 수련 상황이 조성됐다. 어떤 수련생은 매우 어렵게 걸어가고 어떤 수련생은 갈수록 평온하고 편안하게 걸어간다. 많은 수련생이 오랫동안 각종 시련 속에 처해 빠져나오지 못하고, 또 많은 수련생이 사악에게 생명을 빼앗겨 큰 손실을 초래했다.

정말 이런 고비와 시련이 그렇게 거대하고 그렇게 넘기 어려운 것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설법 중에서 답을 주셨다. “법리는 당신의 일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스위스법회 설법)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위의 몇 단락 설법을 통해 나는 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법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법공부에서 문제가 나타났고, 법공부를 잘하지 못했으며, 법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고, 법을 얻지 못했기에 사악한 생명에게 빈틈을 이용당해 고비와 시련이 커지고 고비를 넘는 난도가 증가한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이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각한 박해를 당한 수련생 중에는 법공부를 매우 적극적으로 해 매일 견지하고, 심지어 법공부 양도 많으며 세 가지 일도 빠뜨리지 않아 매우 정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련생이 많다. 그러나 이런 수련생들과 법공부 문제에 대해 깊이 교류해 보면, 그들이 비록 법공부 양은 적지 않지만 법공부 상태와 법을 얻는 효과가 좋지 않고 단지 일종의 법공부 형식을 견지하고 있을 뿐, 법공부할 때 완전히 법 속에 녹아들지 못했으며, 법공부할 때 법리가 전개되는 것도 비교적 적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해 전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나는 법공부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 이후로 법공부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법 중에서 말씀하신 법공부에 관한 각종 설법과 수련생 교류 문장 중 법공부에 대한 심득, 느낌, 체득 등을 모두 주목하고 진지하게 읽었다. 여러 해 법공부와 교류를 거쳐 점차 법공부 문제에 대해 나의 어떤 인식과 심득을 갖게 됐고, 또 법공부 중 오랫동안 수련생들에게 소홀히 여겨졌지만 수련생의 법공부 효과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보게 됐다. 이에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부 수련생이 법공부의 양을 매일 법공부를 잘했는지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매일 법공부를 임무를 완수하는 것처럼, 오늘 얼마를 공부해야 하는지 정하고 공부할 때는 시간을 다투어 읽거나 베끼거나 외우며 빨리 오늘 정한 양을 끝내려고 생각할 뿐, 법공부할 때 진정으로 마음에 들어오는지, 법 속에 녹아드는지를 중점으로 삼지 않는다. 법공부를 일종의 임무로 여겨 형식에 치우친다. 이런 상태로 법공부를 하면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고 법 속에 녹아들 수 없어 법을 얻는 효과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친다. 여러 해 관찰을 통해 이런 방식으로 법공부를 하는 수련생들은 자주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이 문제를 만나면 법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정념이 부족하며, 자신의 수련 상태도 좋지 않고, 사람 마음이 많다.

많은 법공부 팀도 이렇게 법공부를 한다. 나는 일부 팀 법공부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법공부 속도가 빨라 끝나고 나면 희미하게 공부한 느낌이고 공부한 내용을 이미 떠올리지 못했다. 다른 수련생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느낌을 받았다.

초기 신수련생이 이렇게 법공부를 하는 것은 문제가 크지 않지만 층차가 끊임없이 제고되면서 수련 표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는데, 계속 이런 방식으로 법공부를 하면 고층차의 수련 요구를 만족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법공부를 하면서도 수련 상태에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수련생도 있다. 이런 수련생들은 자주 하루에 6, 7시간, 심지어 더 많은 시간을 법공부를 할 수 있어 대량의 시간을 법공부에 써서 학습 방법이 가져온 부족함을 보충했다. 이것은 사실 ‘노력은 많이 들이고 효과는 적은’ 방법으로 법공부 효율이 낮다.

다시 두 번째 문제를 말하겠다. 내가 보기에 이것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법을 얻는 데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많은 수련생은 성격이 비교적 급해 무슨 일을 하든 매우 서두른다. 이런 성격은 법공부에도 나타나 법공부를 할 때 속도가 매우 빠르다. 속도가 너무 빨라 가져오는 직접적인 영향은 법공부할 때 마음을 완전히 고요히 할 수 없고, 또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매 구절 법의 내포를 진지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공부할 때 표면에 떠 있어 한번 스쳐 지나가며 법의 내포를 깊이 깨달을 수 없다. 최종적으로도 법 속에 녹아들 수 없어 득법 효과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친다.

이 현상에 대해 나는 일부 수련생들과 교류한 적이 있는데 여러 해 형성된 습관이라 그들은 이런 습관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다. 사실 ‘급함’도 일종의 집착이다. 이런 수련생들이 법공부에서 만나는 문제는 바로 어떻게 이 ‘급함’의 마성을 제거하고 속도를 늦추며 마음을 고요히 해 법공부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한 노(老) 대법제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법을 매우 숙련되게 외웠지만 오랫동안 심각한 병업 교란을 받았고 스스로도 어쩔 수 없어 했다. 교류를 통해 그가 법 외우는 속도가 매우 빨라 완전히 법이 마음에 들어오는 데 전혀 이를 수 없고, 더욱이 법을 외울 때 매 글자가 모두 머리에 나타나는 데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염불할 때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염(念)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대뇌의 기타 부분이 모두 염(念)해 마비됨으로써 아무것도 모르며, 일념(一念)이 만념(萬念)을 대체하여, ‘아미타불’의 매 한 글자가 눈앞에 모두 나타날 수 있다.”(전법륜)

돌이켜보면 법공부 속도가 느린 수련생들은 고요히 마음을 다해 법공부를 해 보편적으로 수련 상태가 안정적이며 심각한 박해나 교란을 받는 현상이 매우 적게 나타난다. 내가 아는 일부 수련생들은 교류를 거쳐 법공부 속도를 늦춘 후 곧바로 자신의 수련 상태 변화를 느꼈다. 정념이 강해지고 교란이 줄어들어 효과가 뚜렷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문제를 말하겠다. 수련생들, 특히 시련에 처해 있는 수련생들은 주의해야 한다. 추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공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시련에 처해 있으면 매우 고통스러워 법공부할 때 쉽게 ‘서둘러 법공부를 하고 빨리 고비를 넘어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이 생겨 자각하지 못한 채 ‘추구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기점이 바르지 않아 역시 법 얻는 효과를 교란해 오히려 시련을 없애고 고비를 넘는 시간을 늦춘다. 교란 중에서 자신의 수련상의 부족함을 의식하고 이에 ‘이로부터 자신의 수련 상태를 개선한다’는 태도로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

앞에서 말한 몇 가지 문제는 내가 생각하기에 수련생의 법공부를 교란하는 비교적 큰 몇 가지 문제다. 물론 수련생들의 법을 얻는 데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기타 일부 문제는 많은 수련생의 교류 문장 중에서도 많이 언급됐기에 여기서는 다시 말하지 않겠다.

이상은 최근 몇 년간 법공부 방면에서의 일부 심득과 얕은 생각이다. 접촉하는 수련생이 제한돼 있고 층차가 제한돼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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