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사부님의 당부를 잊지 않다 (下)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전편에서 계속) 현지 사악을 폭로하고 현지 진상 자료를 제작하는 것은, 첫째는 현지의 악인과 악경(惡警)을 강력하게 제압하고 제지하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 이곳의 비교적 느슨한 수련 환경을 개창한 것이며, 셋째는 가장 관건적인 것으로서 중생이 대법(大法)을 이해하고 진상을 알게 한 것이고, 넷째는 악인과 악경의 범죄 사실을 인간 세상에 대량으로 폭로함으로써 그들의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그들의 악행과 추한 일을 알게 하여, 다른 측면에서 그들이 계속해서 대법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말하면 이 역시 이런 무리에 대한 일종의 특수한 구원입니다.

한번은 파출소의 어느 경찰이 파룬궁을 박해한 것을 폭로하는 글이 명혜망에 발표됐는데, 글에서 언급된 한 악경의 아버지가 그것을 보고는 매우 창피하게 여겨 마을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는 파출소의 상급 기관인 공안국을 찾아가 지도자에게 “내 아들이 당신들 따라 공산당 일을 하다가 이 지경이 됐으니 우리가 분풀이라도 좀 하게 해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지도자는 “에휴, 우리를 욕하는 사람은 더 많아요. 각자 알아서 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화가 치민 노인은 공안국 마당에서 “앞으로 누가 또 파룬궁 일에 관여하면 그놈은 X자식이다!”라고 크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한 악인의 동서는 우리 수련생에게 “그 사람도 당신들의 악인 명단에 올랐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중공(중국공산당)이 중국 국민에게 명혜망을 보지 못하게 하지만, 그들 자신은 다 임무로 보고 있으며, 전 세계가 명혜망을 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현지 사악을 폭로함에 있어 저는 추적 속도가 매우 빨랐습니다. 일단 박해 소식이나 업보를 받은 일을 듣기만 하면 저는 쫓아가서 상세한 상황을 파악했고, 명혜망에 폭로한 뒤 다시 현지 진상 자료로 제작했습니다. 이렇게 일한 것이 바로 20년의 연마였습니다. 그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가장 큰 수확은 이 점에 있어서 사부님의 정법(正法) 노정을 따라갔다고 느껴지는 것인데, 적어도 이 점에서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를 힘껏 실천했습니다.

5. 의외로 얻은 것

사부님께서는 “대법을 배우는 자체가 곧 복을 받은 것”(북미 제1기 법회 설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법(法)을 얻은 지 얼마 안 돼서, 사부님의 9일 학습반을 따라다니셨던 노부부 수련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더블 데크 녹음기 구매를 논의할 때 그분들은 제게 두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첫째, 대법에 사용하는 물건을 살 때는 무조건 가장 좋은 것을 사고 돈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둘째, 사부님께서 하라고 요구하신 것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 그리하여 저는 나중에 현지 시중에서 가장 좋은 일본산 ‘아이와’ 더블 데크 카세트 라디오를 찾아 900여 위안(당시 한 달 월급)을 주고 사서 전문적으로 사람들에게 테이프를 복사해 주었고, 또 일본산 소니 비디오 녹화기를 사서 전문적으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틀어주었습니다.

다년간 사부님의 가르침을 저는 줄곧 마음에 새겼고, 노수련생의 당부를 줄곧 수련 길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중에서 저는 줄곧 사부님의 가르침인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처음 시내에 가서 소모품을 구매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와 아내(수련생)는 스스로 규칙을 세웠습니다. ‘구매하는 소모품 외에 기타(참여한 다른 수련생 포함) 모든 비용(식사, 차비 등)은 전부 우리가 지출하며, 절대 중생을 구하는 수련생들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는다.’ 나중에 우리집에서 차를 사니 더 편해졌습니다. 저는 운전할 줄 모르지만 일이 있어 말만 하면 아이들이 즉시 우리에게 처리해주었습니다. 20여 년간 저는 매우 자부심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생을 구하는 돈은 오로지 그 용도로만 사용했고 저는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길은 반드시 바르게 걸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017년 말, 저는 여러 수련생들도 기본적으로 성숙해졌으니 각자 진정으로 자신의 수련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들과 상의하여 자료점의 수련생마다 소모품은 자기가 쓰는 만큼 각자 사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 동의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 수련생은 수입이 없어 혼자 사기 어렵다’고 제기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모든 소모품은 제가 무료로 공급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동시에 가족들에게 “○○가 우리집에 와서 무슨 물건을 가져가든 그냥 그에게 내드려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듬해 그 수련생이 안정적인 수입이 생길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십몇 년간 단체 구매를 했기에 이렇게 바뀐 것에 대해 여러 수련생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지퍼백이나 양면테이프 등을 아무도 사지 않고 예전처럼 모 수련생 집에 가서 마음대로 쓰곤 했는데, 저는 묵묵히 채워 넣었습니다. 2년 뒤에야 비로소 수련생들이 이 일을 생각하고 스스로 구매하러 갔지만 제 마음은 아주 담담했습니다.

2022년 명혜망에 ‘《9평 공산당》 고화질 컬러 선장본(전 9권)’에 관한 글이 실렸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전에 널리 배포할 때 빠뜨렸던 구역에 다시 한번 배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려면 수련생마다 1000여 권의 《9평》 책이 필요했습니다. 두 수련생이 자금난을 겪고 있어서 저는 무료로 인쇄 용지를 제공했고, 또 한 수련생은 직접 자료를 만들지 않아서 제가 그에게 완성된 책을 제공했습니다.

또 한 농촌 지역 수련생은 예전에 교류할 때 《9평》의 작용에 매우 공감했는데, 그는 “《9평》을 본 사람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면 거의 100% 탈퇴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그와 교류하자 그도 인정하며 《9평》을 배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문제없습니다. 당신은 여러분을 조직해 잘 배포하기만 하십시오. 제가 매달 당신에게 《9평》 책을 제공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1년여의 노력을 거쳐 그들 지역에 한 차례 널리 배포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깊은 산간 지역의 수련생에게 수백 권의 《9평》 책을 제공했습니다. 저의 사명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것이며, 저의 능력은 대법의 자원이고 자금 역시 대법의 자원입니다.

저의 가정 자료점은 20여 년간 안정적으로 운영됐는데 컴퓨터는 5대를 썼고, A3용 엡손 1390 모델만 3대를 썼으며, CD 복사 타워 2대, 각종 레이저 및 잉크젯 프린터 30여 대를 썼습니다. 그리고 대소형 카드 절단기 2대, 재단기 2대(868 두꺼운 층 재단기 1대 포함), 코팅기, 철사 제본기, 그리고 직접 제작한 기타 공구 등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중공 악당에 박해받은 지 1년 남짓 지난 후, 직장 상사가 제게 “당신은 그냥 집에서 근무하시오. 직장에 나올 필요 없소. 월급은 그대로 줄 것이고 남들에게 주는 건 당신에게도 다 주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저의 기동성은 더 커졌고, 온 마음을 다해 중생을 구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구세력의 박해를 이용해 절묘하게 내게 해주신 일종의 안배이며, 더욱이 의외로 얻은 것[偏得]이다.’ 저는 직장에 출근할 필요 없이 전념하여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수 있었고 후환에 대한 걱정도 없었습니다. 정말 사부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아내(수련생)는 늘 저를 전수(專修) 제자라고 말합니다. 제가 악당에 20여 년간 박해받아 직장에서는 저를 출근하지 못하게 했지만, 저의 월급과 각종 복리후생은 조금도 줄지 않았고 매년 연말 보너스까지 지급했습니다. 첫해에 제가 연말 보너스를 받았을 때 저는 눈물을 흘리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 상금은 내 것이 아니에요. 박해받는데도 복지와 보너스를 주는 걸 어디서 봤어요? 이 돈은 사부님께서 주신 거예요. 우리는 감히 쓸 수 없으니 이 돈으로 중생을 구하게 해야 해요.”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것 역시 사부님께서 우리 심성이 도달한 것을 보시고 나를 격려해주신 것이겠지.’

중공 악당이 저를 20여 년간 박해했지만, 도리어 제 생명에서 가장 빛나는 20여 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사부님과 함께 있고 정법과 함께 있으며, 자신의 오래된 서약을 실천하고 있고 전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 악당이 저를 박해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부님께서 저를 관할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 역시 자신이 정말 온 마음을 다해 대법 실증 속에 뛰어들었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줄곧 자신에게 요구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것은 반드시 해내야 하며, 게다가 부정적인 사고를 하지 않거나 적게 하고, 오로지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러 가기만 한다.’ 그래서 어떤 항목에 들어가야 하면 저는 스스로 서둘러 가서 필요한 물건을 샀습니다. 또한 저는 줄곧 한 가지 원칙을 따랐는데, 대법에 필요한 것이라면 가장 좋은 것을 사고 절대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막 자료점을 세웠을 때 기술 수련생이 저에게 “무슨 책이든 책이기만 하면 반드시 레이저 프린터로 인쇄해야지 잉크젯 프린터를 써서는 안 됩니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줄곧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2007년이었는데 시내 수련생이 《전법륜(轉法輪)》 책을 만드는 수련생이 무척 바쁘니 당신들이 직접 만들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우선 반드시 A3 프린터 한 대를 사서 책 표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즉시 3천여 위안을 들여 엡손 1390 프린터 한 대를 사서 책 표지용으로 썼고, 대형 재단기와 코팅기 등 소모품을 사서 수련생을 청해 제작 방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절실히 체험했습니다.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라면, 중생구도에 필요한 것이라면 나는 오로지 하러 갈 뿐이다. 생각을 간단히 할수록 성공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기왕 이 일을 하게 된 이상 그것을 잘해야 한다. 고층 생명도 늘 나에게 말하는데, 당신들이 여기에서 대법을 위해 공헌을 할 수 있는 이것은, 당신들의 미래 생명에, 상당히 긴 이후의 역사 시기에 아주 좋은 기초를 다져주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도 당신들을 부러워하는데 그들은 이런 일을 할 기회가 없다.”(창춘보도원법회 설법)

6. 뒷바라지를 잘하고 짐꾼 역할을 잘하다

정법 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여러 수련생들의 심성이 모두 제고됐고 작은 꽃들이 점차 피어났습니다. 우리 이곳은 노년 여성 수련생이 대다수라 수련생들에게 필요한 소모품은 다년간 줄곧 제가 구매, 보관, 공급을 책임졌습니다. 누가 무엇이 필요하면 제게 와서 가져갔습니다. 안전 각도에서 말하자면 저는 이런 방식이 대형 자료점의 운영 패턴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안전 측면의 문제가 있다고 줄곧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해 불쾌한 일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차례 이런 국면을 바꿔보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수련생이 줄곧 직접 구매하기를 원치 않았고 여전히 이런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왜 자신은 늘 힘만 들고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고 생각할까요? 조화롭지 못한 음표가 나타나는 것은 저의 어떤 마음을 겨냥해서 온 것이 아닐까요?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라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저는 여러 차례 자신의 부족함을 찾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확실히 자신의 많은 문제를 찾았습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갈등 속의 상대방만 보았다는 것입니다. 늘 ‘이런 일은 본래 당신들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인데 내가 당신들을 대신해서 했으니, 당신들의 감사를 바라지는 않지만 나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는 말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100명의 마음을 맞추기 어려워 제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칭찬하는 말 듣기를 좋아하고 다른 의견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잠재된 과시심, 허영심 등이 있었습니다. 인식한 이후 나중의 수련 중에서 이런 좋지 않은 마음도 점차 많이 수련해 버렸습니다.

저는 소모품 구매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운반, 상하차 등 육체노동도 합니다. 한 해는 달력 거치대 10여 상자를 사 왔는데 한 상자에 350개가 들어 있어서 정말 너무 무거웠습니다. 차가 골목 어귀에 섰는데 수련생 집까지는 아직 멀었고, 그때 저도 60세가 넘은 사람이었습니다. 운전기사가 상자를 트럭 적재함 가장자리로 옮겨 제 등에 올려주면 한 수련생이 제 뒤에서 부축했고, 저는 입으로 “뤄한뻬이산(羅漢背山)”(대원만법-2. 동작도해)을 외치며 억지로 한 상자씩 마당으로 져 나른 뒤 다시 방 안으로 옮겼습니다.

또 제가 돌이켜보니 왜 당시에 자료를 만들기 시작할 때 협조인 수련생이 저에게 단독으로 구매하라고 했는지, 이것은 아마도 사부님께서 제 수련 길에 대해 질서 있게 안배하신 것일 겁니다. 어쩌면 그때 바로 사부님께서 저를 단련시켜 앞으로 계속해서 구매를 잘하도록 길을 깔아주신 것일 겁니다. 사부님의 안배임을 인식한 이상 그것은 사부님께서 제게 하라고 하신 것이니, 저는 하지 않거나 잘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구매원, 보관원, 공급원 노릇을 잘해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책임자 역시 소집인(召集人)으로서 역시 수련 중의 보통 일원이며 여러분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고 대가를 더 많이 치르는 사람이다.”(각지 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저도 줄곧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노력하며 이렇게 해왔습니다.

맺음말

20여 년간 사부님을 따라 수련하면서 제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 일체의 근본이라는 점입니다. 절실하게 ‘법을 스승으로 모심’를 해내고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를 실천하는 것이 수련의 길을 잘 걷는 보장입니다. 마지막에 이를수록 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이 우주 제일 칭호의 무게를 더욱 느낄 수 있습니다. 십몇 년의 수련 과정을 되돌아보면 그 속에 사존의 얼마나 많은 심혈이 녹아있는지 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가 홀로 앉아 조용히 생각할 때마다 사부님의 홍은(洪恩)을 떠올리면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집니다. 저는 무슨 호언장담할 것이 없고, 오직 사부님의 명을 저버리지 않고, 사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며, 책임을 잊지 않고,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사부님께 합격 답안지를 제출하겠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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