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자아와 집착을 내려놓음에 대하여

글/ 지린(吉林)성 대법제자

[명혜망] 어떤 사람은 대법수련생과 접촉하고 또 사부님의 법을 보면서 수련의 아름다움을 느껴 수련 단체에 남았다. 그는 법이 자신에게 아름다움을 가져다주고 모든 괴로움을 해결해 줄 것이란 생각으로 법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지금까지 따라왔고 세 가지 일도 하고 있지만 기운을 내지 못하고 할수록 힘이 빠진다. 사실 여전히 법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기에 정념이 부족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더 높은 법리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수련생들을 보거나 자신의 느낌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교류하고자 한다.

1. 자신의 느낌에 집중한다

수련 과정에서 보이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에는 사람들에게 의심과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미혹이 있으며 깨달아야 할 부분도 있다. 사실 이것 역시 수련의 한 형식이다. 대부분 사람은 점오(漸悟) 속에서 수련하며 느낌을 갖게 되지만 집착이 있는 사람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신경 쓴다.

이런 수련 과정에서의 느낌들, 예컨대 오늘은 머리가 아팠는데 발정념(發正念)으로 나았고, 내일은 다리가 아팠는데 집착을 찾아 나았다는 식에 몰입해 느끼면서 좋아지면 기뻐하고 나빠지면 괴로워한다. 신체의 좋고 나쁨, 회복의 빠르기로 발정념 효과를 검증하고 건강 상태로 자신이나 타인의 수련 층차와 진정한 수련 여부를 가늠한다. 사실 이는 여전히 법 속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는(인간 세상의 복과 이득을 갈구하는) 마음이다.

진정한 수련 여부는 이런 것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며 주로 법에 대해 올바르게 깨달아 이해한 후 어느 정도까지 실천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정법 시기에는 세 가지 일을 잘하는지, 안으로 찾으며 자신을 수련하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병업 고비를 한 번도 넘지 못하고 매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체적 느낌만 이야기한다면 그것이 수련을 잘하는 것이겠는가? 그 느낌 자체가 진짜인지조차 말하기 어렵다. 수련 중의 다양한 느낌은 법(法)과 공(功)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가져다주는 것이지 어떠한 표준이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여전히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

2. 다른 사람을 본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은 수련자의 큰 금기 사항이다.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으면 자신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보고 법으로 다른 사람의 심성을 가늠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찾고 자신을 법에 비춰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이 이해한 법리로 다른 사람에게 비춰볼 때 사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상대를 수련시키는 것이다.

매번 갈등이 생겨 고비를 넘어야 할 때면 먼저 상대방이 얼마나 법에 있지 않고 얼마나 수련인답지 않은지를 본다. 그러면서 자신은 영원히 참고 인내하는 쪽, 손해 보는 쪽, 상처받는 쪽이라고 여긴다. 그런 상태에서의 ‘제고’에는 얼마나 많은 억울한 눈물이 섞여 있으며 억지로 참는 상태에 머물러 있겠는가.

당신은 법 속에서 자신의 불순함을 수련해 없애러 온 것이지 법 속을 유람하며 온갖 ‘아름다움’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수련을 잘해 집착이 하나도 남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당신 자신의 심성 변화와 본체(本體)의 승화를 대신할 수는 없다. 처음에 대법의 아름다움에 연연했던 생각은 이제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돼야 한다.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실질적으로 사적인 마음을 품은 것이다. 당신은 그런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바쳤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한결같이 얻으려고만 하고 밖으로만 찾으면서 수련의 실질이 집착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아름다움을 만들어 주는 것임을 잊었다. 시간이 오래되면 안으로 찾는 것조차 조건부가 된다. 남이 찾으면 나도 찾고 그마저도 형식에 그친다.

자신의 근본 집착을 제거하지 않기에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갈수록 멀어지고 심지어 볼 수 없게 돼 소문으로만 들어야 한다. 그리고 눈과 귀가 닿는 곳마다 온통 불만스러운 일뿐이다. 수련인답지 않게 잘못하는 사람들을 구세력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당신이 집착할수록 그것이 당신에게 연화(演化)돼 각종 충돌, 각종 갈등, 각종 문제가 나타나는데 대부분 풀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단번에 통과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당신도 책을 보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 당신의 집착을 강화하고 당신의 생각을 가중시키며 오래된 일까지 잊지 못하게 한다. 당신은 평소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일만큼은 꼭 기억하게 만든다. 구세력이 악랄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들은 바로 당신 자신의 집착이 불러온 것이다! 당신은 왜 냉정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가? ‘법’은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데 왜 이러한 일들은 매번 ‘생각’할 때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또렷한가?

자신을 수련하지 않을수록 이런 속상한 일들을 더 많이 보게 되고 그런 일을 마주치고 겪게 된다. 사실 이때는 사부님께서 이런 마음과 근본적인 집착을 제거해 주시는 때이다. 만약 법공부가 적고 안으로 찾지 않으면 수련해 나아가기 매우 어렵다. 오랫동안 이렇다면 당신이 보는 소위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람 마음으로 대하게 돼 부정적인 사고가 당신을 통제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심지어 가아(假我)에 빠져 모든 것을 판단하고 어떤 말도 듣지 않게 된다. 흔한 표현 중 하나는 자신을 찾으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두 마디도 못 가 분개하며 불평하는 것이다.

나는 수련하면서 오늘날의 수련은 이전과 다르며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이 밀접하게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정법을 앞에 두고 모든 일에서 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동시에 개인 수련을 다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상 알리기와 발정념도 잘할 수 없다. 우리 자아를 잠시 내려놓으면 자아에 가로막혀 사물의 진상과 수련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개인의 현 단계의 얕은 깨달음이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10/5013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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