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이명(聞以明)
[명혜망] 중국은 예로부터 ‘신주(神州)’ 대지로 불리며 풍부하고 다채로운 신전(神傳)문화를 연출해왔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사찰, 도관, 교회는 ‘문화관광 프로젝트’가 돼 각종 기발한 방법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어떤 곳은 온 산에 각종 기이한 신상(神像)을 세워놓고 관광객과 사진을 찍으며 각종 명목으로 돈을 거두어 명산대천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예전의 속세와 동떨어진 청정한 수련 장소는 오늘날 ‘돈 찍는 기계’와 중국공산당(중공)의 정치 도구로 변했다. 인터넷과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수련’이라는 단어를 비웃거나 멋 부리는 데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상 수련의 신성함을 모독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 승려와 도사,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장소마저도 온갖 거래의 대상과 장소가 됐지만, 1949년 이전만 해도 이 천백 년 된 고대 사찰과 도관은 여전히 불도(佛道)를 닦는 자들이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해 나아가며 마음을 맑게 하고 집착을 버리는 정토였다. 오늘 우리는 수련의 진정한 내포라는 이 거대한 주제를 논하지 않고, 역사와 문화의 관점에서 ‘수련’이라는 두 글자가 담고 있는 무게를 살펴보려 한다.
수련의 연원을 찾아서
《장자 외편·재유》에는 약 5000년 전 중화민족의 시조 황제(黃帝)의 수련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공동산(崆峒山)에 광성자(廣成子)라는 은자가 살고 있었는데, 황제(黃帝)는 이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지고한 대도(大道)를 수련하는 요결이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광성자는 처음에는 대꾸하지 않았으나 황제가 석 달 후 다시 지극정성으로 도를 묻자 광성자는 “지극한 도의 정수는 고요하고 어둑하며, 지극한 도의 극치는 흐릿하고 침묵 속에 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며, 정신을 고요히 품고 있으면 형체가 저절로 바르게 되고, 반드시 고요하고 청정해질 것이다. 네 몸을 피곤하게 하지 말고, 정신을 흩뜨리지 않으면 비로소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극한 도의 최고 경지는 마음이 텅 비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상태다. 정신을 집중하고 고요히 수련하면 육체는 자연스럽게 바르게 되며, 몸은 청결하고 마음은 맑아진다. 몸을 지치게 하지 않고 정신을 분산시키지 말아야 비로소 장생할 수 있다.
황제는 광성자의 깨우침을 받고 또 다른 도를 닦는 고인을 찾아가 정성껏 수련하며 도를 닦는 좋은 방법을 남겼다. 《황제내경》은 후인들이 황제와 기백(岐伯)이 인체와 우주의 오묘함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해 만든 전적이다.
동주 시대가 되자 또 한 명의 수련계 핵심 인물이 등장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5천 자를 남겼는데, 그중 많은 논술을 오늘날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다. “도가 도라 할 수 있으려면 평상의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수련에 대해 노자는 핵심을 곧바로 지적했다. “재주를 끊고 이익을 버려라”, “소박함을 보고 순수함을 지켜라. 사심과 욕심을 줄여라.”
이 시기는 인류 문명의 ‘축의 시대(Axial Age)’라고도 불린다. 기원전 600년부터 기원전 300년까지를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라고 불렀다. 서양에는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탄생했고, 동양에는 노자, 석가모니, 공자가 잇따라 탄생했는데 이들 세 성인의 출생 연월은 전후 차이가 20년을 넘지 않았다. 이로써 수련 문화의 세 가지 축이 완전히 형성됐고, 도가의 노자, 불가의 석가모니, 유가의 공자는 이후 2천여 년 중화문명의 주맥이 됐다.
서한의 한무제(漢武帝) 시기에 유교가 국교로 확립됐고, 동한 시기에는 도교가 흥기했으며, 한명제(漢明帝) 시기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됐다. 이 세 종교는 서로 흥망성쇠를 거치며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중점을 두면서 반복해서 연출되고 충분히 실천돼 중화 대지에서 무수한 중생을 일깨워 신전문화의 내재적 함의를 깨닫게 했다.
갈홍의 정의
위진(魏晉) 시기에 이르러 수많은 수진대도(修眞大道)가 나타나고 은일(隱逸)의 풍조가 성행했다. 갈홍(葛洪)은 이 시기에 태어났으며 스스로 ‘포박자(抱樸子)’라 칭했다. 갈홍은 득도한 수련자였으며 의학과 연단술에 정통했다. 갈홍은 윗세대를 계승하고 아랫세대를 이끌어 수련의 도에 대해 확실한 해석을 했으며, 《포박자》, 《신선전(神仙傳)》 등을 저술했다.
당시 많은 가짜 도와 사도(邪道)가 세상에 유행했는데, 갈홍은 많은 사람이 스스로 높은 명성을 자처하거나 소능소술(小能小術)을 사용해 세상 사람을 속이고 해를 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포박자》에서 갈홍은 “작은 술수를 빌려 앉아 있다가 바로 죽고, 형상을 변화시키고 모습을 바꾸며… 혹은 선량한 사람을 해치고 백성을 속여 재물을 탐하며, 돈과 비단이 산처럼 쌓이고 왕공에 비할 만큼 부유해져서 방탕과 사치를 마음껏 누린다”고 썼다. 어떤 사람은 신선을 가장해 백성을 해치고, 재물과 이익을 탐했으며, 그로 인해 수련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줬다.
이때 갈홍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나와서 혼란을 바로잡고 사실을 밝혔을 것이다. 갈홍은 “신선은 실제로 존재하며 신선의 도는 배울 수 있다”라고 말하며 최초로 수련자의 신분으로 수련의 역사적 근원을 확실하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갈홍은 “천지 사이는 밖이 없을 정도로 광활하고, 그 안의 기이한 것들이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 “신선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세상에 신선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우주 천지가 광활하니 사람이 아는 것은 매우 한정돼 있다. 신선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신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갈홍은 역사에 신선이 존재했다는 많은 기록을 예로 들었다. 유향(劉向)은 《열선전(列仙傳)》에서 70여 명의 신선을 언급했는데, 그는 학식이 풍부하고 정통한 학문을 배워 그의 기록은 믿을 만하다. 또한 많은 정사(正史)에 신선들의 행적이 기록돼 있다. “《후한서(後漢書)》에는 위상(魏尙)은 앉은 채로 바로 죽을 수 있고, 장개(張楷)는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만들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모두 양사(良史)의 기록으로 믿을 만하고 증거가 있다. 이런 술법은 모두 신선의 범주에 속하니 거짓으로 지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후한서》는 24사(史) 중 하나로 공식적인 정사다. 24사의 앞 두 편인 《사기(史記)》, 《한서(漢書)》에서는 줄곧 공자(孔子)의 “자(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따랐기 때문에 수련에 관한 일은 따로 기록하지 않고 간헐적으로만 등장했다. 《후한서》에 와서야 ‘방술열전(方術列傳)’이 시작돼 방사(方士), 의사, 신선 술사 등 집단을 집중적으로 수록했다. 이후 역대 사서(史書)는 이 과목을 유지했다.
《이십사사(二十四史)》는 총 글자 수가 천만 자 이상이며, 분량이 방대해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읽을 시간이 없다. 그러나 조금만 훑어보면 중국 역사가 기본적으로 ‘사람’과 ‘하늘’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를 저술한 기본 원칙이 “천인(天人)의 관계를 연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문인(文人)이었지 도를 얻은 수련자가 아니었다. 만약 수련자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해 신의 행적이 나타난다면 더 많이 기록되지 않았을까?
(계속)
원문발표: 2025년 9월 22일
문장분류: 천인(天人)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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