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웨이팡(濰坊)시 린취(臨朐)현 71세 파룬궁수련자 저우구이화(周桂花)가 강제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2025년 9월 5일 린취현 법원, 공안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법제대대’ 인원에 의해 지난(濟南) 여자 감옥에 구금됐다. 구금 기한은 2년이다.
저우구이화는 2016년 1월 공원에서 진상을 알리다 납치돼 현지 공안과 검찰, 법원에 의해 모함받아 2년의 억울한 판결을 받고 떠돌이 생활을 강요당하다 2019년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돌아온 후 현지 법원, 베이관(北關) 파출소, 린취 국보는 계속해서 박해했다. 여러 차례 감옥으로 보내려고 건강검진을 시켰지만 그때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실패했다.
저우구이화는 1954년 1월생으로 여러 차례 불법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고, 세뇌반과 파출소에 각각 한 차례, 구류소에 두 차례 구금됐으며, 불법적으로 1년 강제노동 판결을 받았다. 그녀의 남편 마롄쥔(馬連俊)은 직장 보위과장이었는데, 탄압이 있기 전에는 같이 연공을 했다. 하지만 박해 이후 연공을 그만뒀고, 공안 경찰이 계속해서 괴롭히고 가택수색을 하는 바람에 지병이 재발해 2003년 사망했다.
저우구이화와 남편은 모두 몸이 안 좋았고, 여러 가지 질병 때문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하기 전에 병원에 가서 검사받았을 때 의사가 자궁종양, 임파선종양, 좌골신경통 등 저우구이화의 병은 치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술할 돈이 없어서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죽기를 기다렸다. 병의 고통은 그녀를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게 괴롭혔다.
1997년 8월, 다른 사람들이 연공하는 것을 보고 저우구이화도 따라서 수련했는데,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심신이 정화돼 모든 질병이 사라졌다. 이 변화는 정말 신기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항상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에게 엄격히 대했고, 몸이 건강해져서 국가와 자녀들의 의료비도 절약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녀의 몸이 변하는 것을 보고 1998년 수련을 시작했고, 이전의 고지혈증, 고혈압, 관상동맥질환이 모두 나았다.
베이징에 진상 알리다 박해받아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이후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에 대해 전면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저우구이화는 대법의 혜택을 받았고 정부를 믿었기 때문에 2000년 3월 베이징에 갔다. 그녀는 파룬궁 수련을 통해 심신이 좋아지고 도덕성이 향상된 진실한 상황을 정부에 설명해 파룬따파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톈안먼(天安門)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그녀가 파룬궁을 연공한다고 말하자마자 차에 끌려가 파출소에 구금됐다. 이튿날 린취 경찰에게 끌려가 난관 파출소에서 이틀 밤낮으로 팔을 뒤로 해 철의자에 수갑 채워진 채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을 당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야 집으로 풀려났다.
2000년 10월, 린취 공안 경찰이 자주 집에 찾아와 괴롭히자, 대법의 공정함을 찾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저우구이화는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이번에는 베이징 경찰에게 납치돼 톈안먼 파출소에 구금됐다가 린취 공안에게 끌려가 불법적으로 12일간 구류됐다. 남편이 보석으로 그녀를 데려온 후, 남편의 직장인 린취 건설은행은 남편의 출근을 막고 그녀를 감시했다. 만약 다시 청원하러 가면 남편과 아들을 함께 해고하겠다고 말했다.
2003년 음력 12월 7일, 린취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 두 명이 저우구이화를 현 610으로 오라고 했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차에 그녀를 끌어올려 웨이팡 당교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했다. 그들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아서 가족들이 며칠을 찾아 헤맨 후에야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줬다. 세뇌반에서 저우구이화는 24시간 감시를 당하며, 사부님을 비방하고 대법을 모함하는 영상물을 보도록 강요받았다. 또한 잠을 재워주지 않았다. 곧 새해가 다가오자, 그들은 가족에게 1000위안을 내게 한 후에야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잔혹한 박해
2009년 4월, 거짓말에 속은 사람의 신고로 린취현 국보대대와 난관 파출소 경찰이 저우구이화의 집을 가택수색해 컴퓨터, 프린터, 대법 서적 등 개인 물품을 빼앗았다. 현금 600위안도 사라졌다. 저우구이화는 난관 파출소로 납치돼 팔을 뒤로 한 채 철의자에 수갑 채워졌다. 잠, 음식, 물, 그리고 심지어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으며, 형사취조와 강요를 당했다. 당시 두 명의 경찰이 번갈아 가며 그녀를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발로 밟아 온몸에 상처를 입혔다. 이렇게 이틀 밤낮을 보낸 후, 그녀는 구치소에 구금돼 한 달 동안 불법 형사구류 처분을 받았으며, 불법적으로 1년 강제노동 판결을 받았다.
노동수용소에서도 저우구이화는 비인간적인 고문을 받았다. 작은 걸상에 앉아 오랫동안 잠을 못 자게 했고, 매일 대법을 모함하는 영상을 보도록 강요받았다. 또한 장기간 노예 노동을 당했다.
2016년 1월 7일 오전, 저우구이화가 손녀를 돌보며 공원에서 장촨쥔(張傳軍)에게 호신부(護身符)를 건넸다가 그의 신고로 린취현 국보대대와 베이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불법 가택수색으로 많은 개인 물품을 빼앗고, 저우구이화를 베이관 파출소로 납치해 불법 심문했다. 1월 8일, 그녀는 린취현 공안국에 의해 웨이팡 구치소로 납치돼 구금과 박해를 당했다. 10여 일 후 저우구이화는 박해로 인해 혈압이 200 이상, 심박수가 140 이상으로 치솟았다. 구치소에서 여러 차례 기절하자 가족이 변호사를 찾아 처분보류를 신청했다. 4월 8일 린취 검찰청에 의해 기소됐다.
세 차례 불법 재판
2016년 4월 27일 오전 9시경, 린취현 법원에서 저우구이화에게 첫 번째 불법 재판을 열었다. 재판에서 저우구이화는 “제가 몸에 불치병이 생겨 직장에서 해고됐는데, 파룬궁 수련을 한 후 건강해졌습니다. 저는 진선인에 따라 심성을 수양하고 선한 사람이 되고자 했는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변호사도 그녀를 변호했다. 기소장이 2000년 파룬궁 신앙 때문에 그녀가 15일간 구류된 것을 언급하자, 변호사는 “신앙은 무죄입니다”라고 했다. 또한 기소장이 불법적으로 1년 강제노동을 받은 것을 기소 이유 중 하나로 삼자, 변호사는 “강제노동 제도는 이미 현재의 사법 정신에 위배돼 폐지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적 한 장이 장촨쥔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며, 법정에서 즉시 부적과 다른 실물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재판장은 휴정을 선포했다.
2016년 5월 16일 오후 2시 30분, 린취현 법원에서 저우구이화에게 두 번째 불법 재판을 열었다. 베이징의 변호사가 무죄 변호를 했고, 저우구이화 자신도 무죄를 진술했다. 그녀는 “저는 선한 사람이 되려다 이런 박해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진상을 알고 시비를 분별해서 법에 따라 저를 무죄로 판결하고 즉시 석방해주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서면 진술서를 읽고 법원에 제출했다.
2016년 6월 7일 오전 10시, 린취현 법원은 파룬궁수련자 저우구이화에게 세 번째 불법 재판을 열고, 법을 어기며 그녀에게 유기징역 2년과 벌금 5000위안을 판결했다. 저우구이화는 법정에서 즉시 상소를 제기했다.
저우구이화는 유랑생활을 강요받다 2019년 집으로 돌아온 후 2년간 현 법원이 네 차례나 그녀를 감옥에 보내려 했지만 모두 건강검진 부적격으로 실패했다. 2021년 12월 9일 아침, 저우구이화가 등교하는 아이를 배웅한 후 다시 베이관 파출소 경찰 다섯 명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그녀를 웨이팡시 제2병원으로 끌고 가 건강검진을 받게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8월 말 저우구이화는 다시 납치돼 강제 건강검진을 받았고, 신체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2025년 9월 5일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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