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제 곁에 계십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젊을 때 저는 몸이 허약하고 질병이 많았습니다. 편두통, 허리다리 통증, 위장병, 정맥류 등 각종 질환이 있었습니다. 이런 병들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 치료도 받아보고 민간요법도 써봤지만 돈만 적지 않게 쓰고 도리어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병원 갈 돈도 없어 그냥 참고 견디며 살았습니다.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우리 마을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저는 40대였는데, 계속 몸이 안 좋아서 누군가 파룬궁을 권해줬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빌려서 읽어보니 정말 좋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신론 교육을 받았지만, 어른들이 부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늘 들어왔기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부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책에서 말씀하신 이치가 제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쉬운 말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셨고, 사람이 병에 걸리는 건 생생세세 지은 업 때문이라 하셨으며, 인생의 참다운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하는 것이고 파룬따파가 바로 수련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나도 수련하고 싶다!’ 그때 기쁜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운이 좋아서 이런 좋은 공법을 만날 수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사부님께서 제 몸을 깨끗하게 정화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앓던 온갖 병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농사일할 때 온몸에 끝없는 힘이 솟아나서, 저보다 젊은 사람도 저만큼 일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혼자만 얻으면 안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얻게 해야 합니다. 그때는 주변 마을이나 읍내에 장이 서거나 절에서 모임이 있으면 홍법하러 가서, 더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알고 법을 얻어 수련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깊이 있게 법공부를 하고 일상에서도 진선인 법리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대법의 내포가 계속 드러났고, 제 인생관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시시각각 사부님의 광대한 불은(佛恩) 속에 흠뻑 젖어 지냈습니다.

1999년 7·20에 장쩌민이 대법 사부님에 대한 질투로 전국에서 파룬궁 박해를 일으켰습니다. 중공은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 모든 국가 기관을 동원해 대법을 중상모략하고 누명을 씌우며 모함했습니다. 한순간에 악이 세상 구석구석을 가득 채웠습니다. 자비하신 사부님이 누명을 쓰시고 신성한 대법이 왜곡됐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법 진상을 알게 하고 사부님의 누명을 벗겨드리고 싶었고, 양심이 제가 집에만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법 수련으로 받은 혜택을 각급 정부에 알려서 박해가 잘못됐다는 걸 말해야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음력 동짓달 25일에 몇 명의 수련생이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청원길에 올랐습니다. 길에서 검문이 있어 수련생과 헤어졌는데, 제 솜옷이 그 수련생 자전거에 있었습니다. 밤에 잘 곳이 없어서 길가 밀밭에서 옥수수대 몇 개를 찾아 땅에 깔고 누웠습니다. 당시 밀밭에 눈이 쌓여 있었고 솜옷도 없어서, 옥수수대 위에 누우니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사부님 보호로 어느새 말할 수 없이 편안한 상태에 들어갔고, 온몸이 따뜻해져서 조금도 춥지 않았습니다. 직접 대법의 위대함과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베이징에 도착해서 청원실을 찾지 못한 채 순경에게 잡혔고 현지 파출소로 끌려가 15일간 불법 구류됐습니다. 불법 구류 기간에는 죄수 식사량의 절반만 주면서 우리를 마당으로 끌고 가서 얼렸습니다. 한번은 제 양손에 수갑을 채워 가로대에 달아맸는데, 외투는 못 입게 하고 스웨터만 입게 했습니다. 그때 저는 ‘대나한(大羅漢)에게 어찌 춥고 더운 구별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연공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고, 다시 형언할 수 없는 매우 편안한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한번은 파출소에서 소장이 저를 불법 심문했는데 저는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소장이 한 경찰에게 제 뺨을 때리라고 했습니다. 좌우로 번갈아가며 팔을 힘껏 휘둘러 때렸습니다. 맞는 동안 제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아픈 느낌도 없었습니다. 저를 때린 경찰은 오히려 견디지 못해서 한쪽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고 소리쳤는데, 얼굴이 아파서 일그러질 정도였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시고 업력이 가해자에게 전해진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한번은 소장이 저를 밖으로 불러내더니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두꺼운 밑창의 경찰 장화로 제 정강이뼈를 심하게 걷어찼습니다. 딱딱 소리만 났을 뿐 저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사부님 보호로 또 하나의 재앙을 넘겼습니다.

불법 구금 중에 바람이 세게 부는 겨울날, 그들은 제 솜옷을 벗기고 양손에 수갑을 채워 차 난간에 매달았습니다. 양쪽에 경찰 한 명씩 세우고 온 향(鄕)을 돌며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차 양쪽에는 “악패를 타도하고 사교(邪敎)를 다스린다”는 푯말이 걸려 있었습니다. 차가 한 시장 옆에 도착했을 때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둘러서서 구경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푯말을 걸었지만 나는 죄수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안 했으니 이 푯말은 나와 상관없다!’ 그래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는 길에서 강도질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으로,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경찰들이 말하지 못하게 했지만 저는 협조하지 않고 계속 외쳤습니다. 그들 둘이 제 머리를 눌러서 확성기에 세게 부딪혔습니다(차 앞 난간에 큰 확성기가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생사를 내려놓고 반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고가 날까 봐 5~6번 부딪힌 후 그만뒀습니다. 그들이 뭘 외쳤냐고 물어서 저는 “아무도 제가 뭘 하는지 모르니까 자기소개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시 철제 큰 확성기에 부딪혔지만 솜더미에 부딪힌 것처럼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위대한 사부님께서 바로 제 곁에 계시며 항상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사부님께서 저 대신 실질적인 업력을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또 한번은 구체적인 시간은 기억 안 나지만, 베이징 청원을 갔다가 현지로 돌아온 후 한 달간 불법 형사구류를 당했습니다. 한 달 후에도 집에 못 가게 하면서 저를 강제노동시키려고 정신병원에 데려가 신체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가서 피를 뽑아 검사했더니 제가 B형 간염 말기라고 해서 노동수용소에서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병업 가상을 연화(演化)하시어 다시 한번 제자가 박해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조건 없이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여정을 돌아보면, 수련을 시작한 이후 매 걸음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아직도 많이 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어떤 건 시간이 불분명하고 어떤 건 이미 잊어버렸습니다.

오늘 용기를 내어 제가 직접 겪은 일들을 적어내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오늘까지 걸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 자신과 수련생들이 모두 이 만고의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겨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으며,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굳게 믿어서 법리를 명확히 하고, 법에서 수련해 원만에 이르기를 희망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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