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2년 2월에 수련을 시작한 대법제자로, 올해 65세이다. 수련 전에 나는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었으며, 집안에서 나의 말은 곧 법이었다. 특히 남편에 대해서는 (사실 모두 생활 속 사소한 일이었지만) 내 마음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를 나무라고 원망하며 얕잡아 보았다. 나는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이전에는 닦을 줄을 몰랐고 심성이 제고되지 않아 여전히 속인의 마음으로 사람과 일을 대했다. 나는 대량의 법공부를 통해 수련이란 반드시 자신의 안을 돌아봐야 하는 것이며, 외부에서 원인을 찾거나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Ⅰ. 더는 나무라거나 원망하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다
1. 남편은 식사를 마친 뒤 종이로 입을 닦을 때마다 늘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찢어 사용한다. 그러나 반 장으로는 입을 깨끗이 닦을 수 없어 손이 더러워지고, 그 손으로 물컵을 만지다 보니 컵까지 더러워졌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종이 한 장을 다 써야 해요. 반 장으로는 깨끗이 안 닦여요.” 하지만 남편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했다. 나는 결국 화가 나서 그를 나무랐다. “당신이 아무리 절약하려 해도, 고작 종이 몇 장 아끼자는 건데 왜 고치질 않아요?”
그러고 나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남편의 행동에 화가 난 이유는 내 안에 더러움과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마음, 타인을 얕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공인은 외부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자신을 닦아야 한다. 남편은 이미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쉽게 고칠 수 없는 상태였고, 또 몸에 병이 있어 내가 자꾸 지적하면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낼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집착심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물컵이 더러워지면 자주 씻으면 될 일이었다. 나는 남편을 나무라고 원망하는 마음을 없애기로 했고, 그 뒤로는 더 이상 그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이 어떻게 하든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그런 모습을 봐도 화를 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2. 남편은 요독증에 걸려 혈액 투석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물을 많이 마실 수 없었지만, 그는 유독 물 마시기를 좋아했고, 특히 아주 차가운 물을 즐겨 마셨다. 이는 모든 투석 환자에게 금기 사항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을 조금만 마시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도 화가 났고, 혹시 그가 물을 너무 많이 마셔 위험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법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속인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사부님께서 늘 그를 보살펴 주셨고, 그의 몸 상태로 보아 속인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99년, 중공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나는 베이징으로 가서 법을 실증했다. 40여 일 동안 집에 연락하지 않았고, 떠날 때 남편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남편은 조바심을 내며 화를 내고는 나를 찾아 베이징까지 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해 남편은 고혈압이 악화되고 당뇨병까지 생겼다. 2017년, 내가 감옥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요독증을 얻었고, 심부전도 심해져 계단도 오르지 못할 정도였다. 그 후 7년 동안 투석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전염병이 유행하던 시기에는 바이러스에도 감염되었으니,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그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중공의 박해를 받으며 감옥에서 10년을 보냈고, 남편은 줄곧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해 복을 받았다. 나는 늘 그에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당신을 보호해 주신 거예요. 당신이 투석을 받은 7년 동안 수많은 환자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들 중에는 당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도 있었고, 아무도 당신만큼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았어요.” 남편도 사부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했다.
남편은 또 내 몸이 매우 건강한 것을 직접 보았다. 나는 온갖 집안일을 다 했고, 25kg짜리 쌀이나 가스통이 문 앞에 놓여 있으면 혼자서 부엌까지 옮겼으며, 장 보기, 요리, 청소도 모두 도맡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이렇게 건강한 거예요. 예전에 관절염, 치질이 그렇게 심했는데, 당신도 다 봤잖아요? 지금은 다 나았어요. 그리고 내 성격도 많이 변했어요. 예전처럼 뭐든지 내 말대로 해야 하고, 안 들으면 화내는 그런 내가 아니잖아요.” 남편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인정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이렇게 좋은 대법을 왜 당신은 배우지 않는 거예요?” 남편이 요독증에 걸렸을 때, 나는 “책 좀 봐요”라고 권했고, 그는 한 번 건성으로 읽은 뒤 더는 보지 않았다. 나는 늘 그가 대법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계속해서 법공부를 하면서, 나는 그 원인이 내 안의 강한 ‘자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고, 상대가 따라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하는 것, 이것은 중공이 주입한 당문화였다. 남편이 대법을 수련하길 바라는 마음 역시 ‘정(情)’에서 비롯된 집착이었다. 사람마다 수명이 다르고, 모든 일은 사부님의 안배에 따라야 한다. 나는 이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3. 남편은 때때로 화장실에 제때 가지 못해 대변을 속옷에 묻히곤 했고, 나는 예전엔 늘 그를 나무라고 원망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 속엔 이기심, 더러움과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속옷이 더러워졌을 때, 남편은 이미 스스로를 몹시 자책하며 자신이 너무 쓸모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또다시 그를 나무라고 원망한다면, 그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고 상처받았을까? 결국 화병까지 생기지 않았겠는가? 수련하는 사람이 어찌 이토록 선하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내 번거로움만 줄이려 했고, 남편의 감정은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누구에게나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가족에게조차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은 곧 대법에 먹칠을 하는 일 아닌가? 그래서는 안 되었고, 반드시 고쳐야 했다. 그 뒤로 비슷한 일이 다시 생겼을 때, 나는 재빨리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갈아입으면 돼요.” 나는 남편을 다정하게 위로했고, 마음의 짐을 느끼지 않도록 도왔다.
남편은 지금 걷는 것이 무척 힘들어서, 내가 휠체어를 밀고 병원에 데려간다. 그는 늘 내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자신이 참 좋은 아내를 만났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릴 적 이웃이었던 류(劉)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은 약간의 신통력을 가진 분이었는데, 어린 남편에게 “너는 커서 좋은 아내를 얻게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 말이 정말 영험했다”고 감탄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예요. 내가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당신을 돌보긴 했겠지만, 당신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아마도 매일 당신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을 테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편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나는 또 말했다. “당신은 대법과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해요. 내가 이렇게 바뀌고, 당신을 진심으로 돌볼 수 있게 된 건 모두 대법 덕분이니까요.” 그러자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Ⅱ. 보답을 바라는 마음,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버리다
외손녀는 전염병 시기에 중학교 3학년이었고,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나면 딸과 사위의 퇴근이 늦어 늘 내가 데리러 가곤 했다. 그런데 아이는 매번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도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나는 몹시 서운하고 속이 상했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철이 없을까? 내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매일 같이 데리러 오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고, 내가 말을 걸면 귀찮아하니 참 속상하네….’
길을 건널 때 내가 아이의 손을 잡으면, 아이는 길을 다 건넌 뒤 곧바로 손을 빼며 나와 전혀 친하지 않은 듯 행동했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내게 묻곤 했다. “러러(樂樂, 외손녀의 아명)는 당신하고 친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하지 않아요. 나한테 말도 안 걸어요.” 나는 딸에게 물었다. “아이가 왜 나랑 친하지 않을까?” 딸은 이렇게 답했다. “엄마가 10년 동안 집에 없었고, 아이랑 함께 있지 않았잖아. 정이 생길 시간이 없었지.” 나는 다시 딸에게 말했다. “그래도 아이가 예의는 있어야지. 고마운 마음도 알아야 하고, 그런 건 가르쳐야 하는 거야.”
그러다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의 무뚝뚝한 태도에 마음이 상한 건, 결국 내 안에 구하는 마음,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니 명예심도 있었다. ‘내가 널 데리러 오는데, 네가 나한테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 내 기분이 좋지.’
이런 생각들은 모두 인간적인 마음, 수련자가 마땅히 제거해야 할 집착이었다. 어쩌면 아이가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도, 이전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수련자는 모든 일을 속인의 이치가 아니라 비범한 법리로 가늠해야 하며, 고정된 관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내 관념을 바꾸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심성도 함께 제고되었다. 아이와 대화를 하든 안 하든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고, 아이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떤 기대나 요구도 하지 않게 되었다.
방학이 지나고 아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느 날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아이는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고,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 며칠 후 학교 일정이 조정되어 하교 시간이 늦춰졌고, 아이의 부모가 데리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데리러 갈 필요가 없어졌다. 외손녀 덕분에 나는 내 안의 좋지 않은 마음들을 발견하고 제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아이에게 감사해야 했다.
Ⅲ. 맺는말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다. 모순에 부딪힐 때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늘 남을 원망했으며, 어떠한 집착심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 채, 속인의 마음으로 일들을 처리하곤 했다.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점화해 주셨지만 나는 깨닫지 못했고, 결국 사악한 요소들에게 틈을 주어 두 차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며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법공부를 따라가지 못했고, 법을 배우고도 진정으로 법을 얻지 못했으며, 법리에 대해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법 인식도 없이 속인의 관념으로만 사물을 대하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낸 뒤로 나는 법공부를 더욱 강화하였고, 법을 중시하며 자신의 심성과 수련 상태를 제고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진정으로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 자신을 돌아봐야 하며, 자신을 제대로 수련해야만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고,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비롭게 구도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시각각 제자를 보살펴 주시고 깨우쳐 주시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나태해지지 않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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