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갈등을 마주할 때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해지고, 이런 불편한 마음으로 다른 수련생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다음 이 이야기를 들은 수련생은 또 다른 수련생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각 사람마다 사물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거나 개인 관념을 표현하기 때문에 결국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갈등이 오래 지속되면서 간격이 형성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 수련생과 대화하기 꺼려집니다. 만약 진정으로 담담하게 갈등이 생긴 수련생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말할 수 있다면, 갈등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과 말이 일치하지 않고, 집착을 숨기며, 자신의 관점으로 수련생을 대하면 무의식중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수련생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수련생과 교류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여 수련생이 잘못했다고 느껴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층차가 다르면 문제 인식에 대한 견해도 다릅니다. 모두 수련 과정 중에 있으니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고려하고, 경청하는 법을 배우며, 법에서 교류하되 수련생에게 변화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에 관한 저의 인식은 이렇습니다. 개인 수련은 자신을 잘 수련하여 자신의 제고를 위한 것이고, 정법 수련은 타인을 위한 것으로, 모두가 함께 제고해야 중생이 구원받을 수 있으며, 모든 것은 타인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어떤 수련생들이 갈등 속에서 제고했다고 매우 기뻐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최소한 이 문제에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이 점에 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더 나아지길 바라고, 집착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제가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으로 수련생과 갈등이 생겼다면, 수련생이 제 부족함 때문에 관을 넘지 못해 중생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이는 단순히 제가 개인 수련을 잘 하지 못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법 수련은 모든 것을 중생 구도(救度)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지, 개인의 제고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반드시 법 속에서 바로잡아야 하며, 제가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 때문에 중생이 구원받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떳떳하고 무슨 일이든 타인을 위한다면, 이러한 환경에서는 특무(스파이)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특무가 그 안에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에, 여러분은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특무도 구도한다고 했다.”(각지 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사부님의 법공부를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특무도 사부님께서 구하십니다. 우리가 더 잘해야만 특무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특무가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우리가 수련을 잘 하지 못해 그들에게 환경을 제공하고, 나쁜 일을 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사부님의 정법을 방해하면 구원받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잘해야 합니다. 대법제자가 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대법을 수호하면 사악은 두려워하고, 특무도 우리의 바른 장(場) 속에서 바로잡힐 것입니다. 바로잡히지 않으면 환경이 없어져 중생 구도에 손실을 가져올 것입니다.
마음 수련 과정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심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개인의 제고와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개인 수련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의 표면에서 문제를 보게 되고, 수련하고 수련해도 결국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정법 수련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대법을 수호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 심성 관을 넘을 때, 다른 사람이 저를 억울하게 대할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에 관해 말할 때, 저는 원망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법을 실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생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를 바랐고, 사건의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보려 하지 않았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태도가 어떤지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일이 발생했을 때 제가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만 보았고, 찾은 즉시 버리고 법 속에서 바로잡았습니다. 제가 바로잡히면 중생도 바로잡힙니다. 제가 바로잡히는 것은 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생이 구원받기 위한 것입니다. 중생들도 이 일 때문에 모두 대법이 좋다고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잘 수련한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수련생의 장점을 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야 합니다. 다른 수련생의 부족함을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찾지 않거나, 그 부족함을 수련생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만약 제가 이런 마음이 없다면 이런 일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수련생과 교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족함을 보았고, 안으로 찾아 법 속에서 바로잡았습니다.’ 수련생과 함께 제고하되, 안으로 찾지 않고 뒤에서 수련생에 대해 말하지 마십시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항상 한마디 말을 하는데, 만약 한 사람이 어떠한 관념도 없이, 개인의 이익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남이 좋아지도록 남에게 그의 부족함을 말해주거나, 혹은 그에게 어떤 것이 바른 것이라고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싱가포르법회 설법)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 중생의 태도가 좋지 않다면, 아마도 우리가 충분히 선하지 않고, 중생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했거나, 중생 구도를 방해하는 사악을 해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생이 다음에 다른 수련생을 만나 진상을 듣고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중생에게 정념을 보내고, 뒤에서 중생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 말며, 자신의 관점으로 중생을 대하지 마십시오. 세뇌를 당한 중생은 매우 가련합니다.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이 자료를 받지 않는 것은 중생이 좋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정념을 유지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어떤 수련생은 자료를 배포하며 잡담을 나누고, 어떤 수련생은 굳은 표정으로 자료를 배포합니다. 저는 자료를 배포할 때 계속 정념을 보내고 미소를 지으면 중생들이 모두 기꺼이 자료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다릅니다.
수련 중에 모든 사람이 넘지 못하는 관과 근본적인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때가 있으며, 사악이 강제로 가한 일부 요소들도 있습니다. 개인의 말을 조심하지 않아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해 수련생에게 교란을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 생명이 항상 법 실증을 제일 우선으로 둔다면 모든 집착은 뿌리가 없어질 것입니다. 자아가 없어지고 마음에는 오직 법만 있기 때문에, 법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은 법 속에서 바로잡힐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이 남겨진 의미입니다. 우리가 함께 제고하는 동시에 모든 중생이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인 작은 인식이니, 바르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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