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존께서 우주 중생과 여러 신들에게 신성하고 아름다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가져다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우주의 중생과 여러 신들에게 생명이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1996년 6월 하지일 저녁, 저와 남편이 동시에 한 목소리로 “서점에 가볼까?”라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우리집 근처에 임시 서점이 있었습니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제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앞줄 책상 위에 놓인 파란 표지의 ‘전법륜(轉法輪)’이었습니다. 아! 책을 들고 보니 사부님의 법상이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친숙했고, ‘논어(論語)’는 명확하여 한 문장 한 문장이 제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보서(寶書)를 모셔와서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절반을 읽었고, 다음 날 낮에는 출근한 뒤 저녁에 다시 8시부터 12시까지 읽어 첫 번째 완독을 마쳤습니다. 책을 덮으니 흥분과 평온함이 번갈아 찾아왔습니다. 아, 내 생명의 기다림, 평생의 찾음, 수련의 소원이 모두 이 책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더 천천히 읽으며 책에서 깨달은 법리와 비교하여 제 안의 좋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살펴보고, 이런 나쁜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주 후 저는 연공장을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본성으로 돌아가는 수련의 길, 불광(佛光)이 비추고 보호하는 광명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이후로 저와 제 가족, 나아가 가문 전체가 큰 변화를 겪었으며, 물욕이 넘치고 도덕이 무너지며 온갖 혼란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역류에 맞서 전통으로 돌아가, 자녀는 효도하고 며느리는 현명하며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1. 남편이 나를 도와 연공장을 찾다
저는 연공장을 찾기로 했고, 남편은 그의 공장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다음 날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공원에서 연공장이 설립될 것이라고 알려주며, 또 다른 파룬따파 서적인 ‘파룬궁’과 사부님의 경문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책의 그림을 보며 하나씩 연공 동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동했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도움을 주었으니, 이것이 수련의 내포 중 하나가 아닐까요? 숙연한 마음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2. ‘응석받이 딸’에서 수련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저는 부모님 슬하의 막내딸이자 오빠와 언니들 곁의 ‘막내 여동생’이었습니다. ‘사랑받는 존재’로 자라며 이기적이고 질투심이 강하며 교만해졌고, 타인을 아끼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장해서 결혼했는데, 남편에게는 세 명의 남동생과 세 명의 여동생이 있었고 그는 장남이었습니다. 거기에 시부모님까지, 이런 대가족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억지로 시집을 갔습니다. 다행히 저는 친정에서 전통문화의 모습을 일부 보았기에, 큰 올케언니와 둘째 올케언니가 저를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하며 저도 그렇게 시댁의 시동생과 시누이들을 대했습니다. 파룬따파를 배우고 진선인(眞·善·忍)에 비추어보니, 제가 이전에 했던 일들이 얼마나 작은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겉으로는 행동했을지 몰라도 마음속의 ‘선(善)’이 부족했고, 자주 자신의 입장에서만 행동했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 때로는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진선인에 따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3. 파룬따파가 나를 이끌어 진선인을 실천하게 하다
시댁에서 세 명의 여자아이가 잇달아 시집갈 때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둘째 손녀에게 혼수 이불을 주고 싶어하셨고 저와 상의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모든 아이에게 혼수를 마련해줄 형편이 안 되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상의한 후,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저희가 이 일을 준비하겠습니다. 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고 시어머님 명의로 각 아이에게 혼수 이불을 한 채씩 드리겠습니다.” 전통에 따라 용·봉황·쌍희·백자 무늬로 수놓인 비단 이불 겉감, 부드러운 순면 솜, 줄무늬 안감, 그리고 진홍색 실크 실로 정성껏 지은 매듭 없는 혼수 이불은 아름다움과 선함, 밝은 기운을 가득 담아 마치 촛불처럼 신혼부부와 신혼집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예상 밖에도 이런 제안에 시어머니도 기뻐하고 세 신부도 기뻐했으며, 모든 가족이 행복해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직업병을 앓아 오랫동안 요양원에 계셨고, 남편은 매일 그분을 돌보러 갔습니다. 저는 시아버지께 스웨터와 털바지를 떠드리고, 비단 솜 바지를 수선해 드리고, 여름용 시원한 이불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시아버지는 요양원에서 항상 저를 칭찬하시며 제가 이치를 잘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파룬따파를 의사에게 소개하셨으며, 의사가 대법 서적을 보고 싶어하자 남편에게 저한테 책을 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는데, 우리는 시어머니와 따로 살았습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손녀가 안 입는 옷을 입고 계신 것을 보고, 연세가 많으셔서 스스로 옷을 사지 못하실 거라 생각하여 시어머니께 옷을 사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속옷부터 겉옷까지, 상의부터 신발과 양말까지, 비단·면·모·마에 이르기까지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을 모두 갖춰드려 어느 계절에도 입으실 수 있게 했습니다. 낡은 솜을 새 솜으로 교체하고 침구류도 모두 새것으로 갖추었습니다. 가족 모임이나 외출 시에는 계절과 상황에 맞게 시어머니의 품위에 맞는 외투와 옷을 마련해 드렸는데, 이는 어른의 자비로움과 존엄을 보여주는 동시에 후배의 효도와 공경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시어머니는 혼자 사셨는데, 장마철에 쌀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용히 좋은 쌀로 바꿔드렸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님 댁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우리가 잘 돌보지 못한 탓이에요. 반드시 그럴 거예요.”
시어머니는 큰딸이 그리워 종종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큰 딸네 집에 다녀왔니?” 한번은 제가 큰 시누이 집에 갔을 때,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드릴 죽순 말린 것 한 봉지를 맡겼는데, 살펴보니 이미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큰 시누이는 평소 생활이 소박해서 아마도 오래 두어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었지요. 저는 받긴 했지만 곰팡이 핀 죽순을 시어머니께 드릴 수 없어서 대형 마트에 가서 비슷한 규격의 좋은 죽순 말린 것을 골라 시어머니께 전해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큰딸의 ‘죽순’을 보시고 마음이 편안하고 달콤해하셨으며, 저는 그들의 모녀 간 깊은 정에 행복했습니다.
큰 시누이가 골절상을 입었을 때 찾아가 위로하며 시어머니의 안부도 전했습니다. 큰 시누이는 제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제 앞에서 ‘너희 큰올케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고 하셨어요.” 큰 시누이는 이어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딸 앞에서 며느리를 칭찬한다면, 더 말할 필요 없이 이 며느리는 분명 좋은 사람일 거예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주택 유산 분할 문제가 생겼고, 막내 시동생의 주거 상황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큰형이 아버지를 대신하고, 큰형수가 어머니를 대신한다’는 책임감으로 도덕과 인의의 차원에서 결정했습니다. 우리의 상속 몫을 막내 시동생에게 양보하기로 한 것입니다. 곧 모두가 합의에 이르렀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두 시누이를 제외한 다른 형제자매들도 모두 막내 시동생에게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막내 시동생은 그 어려움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은 말했습니다. “큰형과 큰형수는 사심이 없고 일 처리를 믿을 수 있어요.”
4. 불광(佛光)에 잠긴 지적장애를 가진 셋째 오빠
시댁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친정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시댁에서 우리는 장남과 큰며느리로서 아래에 세 명의 남동생과 세 명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반면 친정에서 우리는 막내딸과 막내사위로, 위로 네 명의 오빠와 두 명의 언니가 있었습니다. 역할이 바뀌니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일 처리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시댁에서는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했지만, 친정에서는 오빠들의 지시에 따라야 했습니다. 처음 들으면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결정을 이해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손에 닿으면 매우 간단해졌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중간 거점 같아서 오빠들과 언니들이 우리에게 일을 맡기곤 했는데, 매번 그들을 매우 만족시켰습니다. 그들이 가장 만족했던 일은 셋째 오빠가 우리와 함께 30년을 산 것입니다.
셋째 오빠는 어릴 때 두 번의 불행을 겪었습니다. 한 번은 고열이 내리지 않았고, 다른 한 번은 교통 사고로 뇌가 손상되어 발육이 지연되고 지능이 저하되어 말을 잘하지 못하고 숫자를 세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셋째 오빠는 며칠만 학교에 다니다가 그만두었습니다. 1991년부터 그는 우리와 함께 살았습니다.
1996년 7월, 당시 파룬따파 연공장에서 수련생들이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볼 수 있도록 우리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직장인, 주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오후와 저녁 두 번, 때로는 오전에도 한 번 더 보았습니다. 셋째 오빠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기뻐했으며, 자발적으로 문밖에 서서 모두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9일 동안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9일째 되는 날 오후, 셋째 오빠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3일 동안 대변을 못 봤어. 배가 딱딱해.” 제가 물었습니다. “불편해?”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불편하지 않아.” 10일째 셋째 오빠는 변을 보기 시작했고, 연속 3일 동안 많은 양을 보았지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로 새로운 수련생이 우리집에서 대법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볼 때마다 셋째 오빠는 한 번씩 많은 양을 배설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1997년 4월 어느 날, 셋째 오빠가 기쁘게 신 수련생들과 함께 대법 사부님의 공법 교육 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 저는 문득 깨닫고 말했습니다. “매번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볼 때마다 사부님께서 오빠 몸을 정화해 주시는 거야. 사부님께서 오빠를 돌보고 계셔!”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있어.” 제가 물었습니다. “뭐가 있다는 거야?” 그가 말했습니다. “나 파룬(法輪)이 있어.”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알았어?” 그는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 파룬이 몸에서 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1997년 여름, 둘째 언니가 해외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날 아침 일찍 우리집에 왔는데, 저는 공원에서 아침 연공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둘째 언니는 이미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저를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셋째가 어떻게 이렇게 대화를 잘하게 됐어? 우리 둘이 한 시간 넘게 대화했어.” 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어요. 셋째 오빠는 대법에서 혜택을 받고 있어요.”
2003년 초여름 어느 아침, 셋째 오빠가 화장실에 가려다가 부주의로 넘어져 윗입술이 철판에 1센티미터 길이로 베였고, 바닥에 피가 많이 흘렀습니다. 저는 두 손가락으로 상처를 꼭 잡고 셋째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 우리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사부님이 곁에 계셔.” 셋째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두렵지 않아.” 바로 그 순간 피가 멈췄습니다. 당시 둘째 오빠가 우리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는 해외로 돌아갈 예정이어서 지혈 테이프를 갖고 있었고 그것을 꺼내 셋째 오빠에게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지혈 테이프를 사용하자 피가 계속 배어 나왔습니다. 저는 셋째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지혈 테이프가 소용없네. 떼어버려. 우리에게는 사부님이 계셔.” 그가 말했습니다. “좋아.” 지혈 테이프를 제거하고 제가 다시 손가락으로 상처를 누르자 피가 다시 멈췄고, 잠시 후 갈라진 피부와 살이 붙었습니다. 그날은 묽은 국물만 마시고 나흘째 되는 날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오빠는 파룬따파 연공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제가 연공하는 모습 보기를 좋아하며, 션윈(神韻) 공연 보기를 좋아하고, ‘연화송’을 부를 줄도 알며, 자주 대법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습니다.
어느 해 어느 날, 이웃이 우리집에 와서 셋째 오빠를 보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오빠가 변했어요. 예전에는 몸이 약간 뻣뻣했는데, 지금은 훨씬 편안해 보여요.” 이웃의 이 말을 듣고 과거와 현재의 셋째 오빠를 비교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예전에는 밥을 먹을 때 그릇을 들면 손이 떨리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지 못해 한 끼 식사에 그릇을 몇 번이나 내려놓곤 했는데, 어느새 이런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옷을 입을 때 지퍼를 사용할 줄 몰랐는데 이제는 잘 다룹니다. 예전에는 숫자를 셀 줄 몰랐는데 이제는 스스로 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말을 잘 못했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오빠의 진실하고 선한 본성에 파룬따파는 그에게 특별한 지혜를 부여했습니다. 그는 정의를 실현할 줄 알고, 바늘에 실을 꿸 줄 알며,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관심을 갖고 도울 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식사할 때 아주 작은 땅콩들을 하나씩 자신의 작은 그릇에 담으면서 모두에게 이 땅콩들이 곰팡이가 피어 먹을 수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고 자신은 모욕을 참아내며, 다른 이들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고 결코 다른 사람의 실수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즐겁게 지내며 슬픔이나 우울함을 모릅니다. 그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주변의 만물을 적시고, 시간처럼 조용히 빛나는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바쳤습니다.
셋째 오빠의 침대 주변에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습니다. 이미 겨울이 왔는데도 그는 가을옷만 입어도 되었습니다. 점차 그의 이불은 점점 더 얇아지고 옷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20여 년이 지나면서 셋째 오빠에게 일어난 신기한 변화는 매우 많았습니다. 보통 사람은 중년이 되면 신체가 쇠퇴하기 마련인데, 지적장애를 가진 셋째 오빠는 파룬따파의 불광 아래에서 많은 기적적이고 특별한 징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셋째 오빠는 75세 되던 해에 생명이 떠날 때가 되었고, 신께서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두셨습니다. 임종 직전 우리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가 여러 검사를 했는데 모든 지표가 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CT 결과가 나왔을 때 의사는 이해할 수 없어 했습니다. “좌우 대뇌가 모두 검은 그림자로 가득한데,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그러나 셋째 오빠는 아주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병원 간호실에서 조용히 떠났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불과 2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때 저는 셋째 오빠의 얼굴이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얗게 변하고,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젊어지고, 편안하고 친근해진 것입니다. 맞습니다. 입관하던 날, 셋째 오빠는 전혀 노인처럼 보이지 않고 젊은이처럼 보였으며, 피부가 매끄럽고 평온해 보였습니다. 셋째 오빠의 생명이 떠난 다음 날 아침, 제가 집에서 아침 연공 중 가부좌를 하고 있을 때 그가 저를 보러 왔습니다. 오른쪽 앞에 나타났는데, 모두 깨끗한 도가의 흰 옷을 입고 키가 크며, 뒤에는 두 명의 흰 옷을 입은 동반자가 서 있었습니다. 왼쪽 앞에서는 대법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단한 신이로다.” 파룬따파는 셋째 오빠에게 완전히 새로운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의 경지는 대법 속에서 높아졌고, 신체는 대법 속에서 변화됐으며, 생명은 대법 속에서 승화되어 신계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이 바로 생명의 진정한 귀속처입니다.
제 친정은 ‘조상들이 덕을 쌓아 후손들에게 복을 내린’ 대가족이었고, 셋째 오빠는 어릴 때부터 가족 중 어른들과 동년배들의 마음을 움직여 항상 모두의 특별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셋째 오빠의 돌봄 문제는 항상 가족 모두의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고,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으며, 셋째 오빠의 인생 후반 20여 년 동안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 모두가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진선인은 좋습니다(眞善忍好)!” 대법 사부님의 자비롭고 위대한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셋째 오빠의 삶은 우리 가족이 중화민족의 아름다운 전통 도덕 가치인 ‘진실함, 선량함, 관용, 겸손’을 가정 안에서 계승하면서도 세상에 펼쳐 보였음을 증명합니다.
5. 파룬따파의 은택과 축복은 모든 면을 포괄한다
파룬따파는 전 세계에 널리 전해져 중생에게 거대한 은택과 복을 가져왔습니다. 파룬따파가 세상에서 보여주는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과 신성함은 모든 영역을 포괄합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이후, 병약하고 연약했던 ‘임대옥(林黛玉, 소설 홍루몽의 연약한 주인공)’에서 생기 넘치는 ‘늘 푸른 소나무’로, 이기적이고 오만했던 응석받이 딸에서 마음이 선량하고 관용적인 수련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지금 저는 72세인데, 몸매가 단정하고 곧으며, 걸음걸이가 가볍고 민첩하고, 사고가 명확하고 순수합니다. 여름에는 얇은 비단옷을, 겨울에는 얇은 셔츠를 입으며, 눈썹은 자비롭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을 유지합니다. 직장 동료들은 제가 ‘환골탈태’했다고 놀라워하고, 상점의 중년 직원들은 저를 ‘누나’ 또는 ‘여동생’이라 부릅니다. 심지어 남편의 머리카락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했습니다.
파룬따파가 저를 이끌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올바른 길을 걷게 했고, 생명의 진정한 귀속처를 찾게 해주었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의 무한한 법력이 수많은 자비롭고, 선량하며, 사심 없고, 무아의 대법 수련인들을 성취시키고 있습니다. 파룬따파는 말겁(末劫)의 세계 중생들에게 생명이 구원받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영겁의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길 바랍니다.
사부님의 끝없는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사심 없는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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