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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발정념하는 것을 이성적으로 인식하자

글/ 다롄지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 개인적으로 ‘발정념’ 내용을 편집하는 것은 본 지역에서 이미 몇 년간 지속됐다. 매번 모두 이메일 혹은 구두로 각 법공부 팀, 혹은 개인에 전달됐다. 통지 범위는 시내뿐만 아니라 외진 시골에도 전달됐다. 거의 매년 몇 번 전달된다. 일부 수련생의 잠재의식에 이런 발정념 방법은 거의 고정적인 형식으로 변했다.

법공부를 깊이 하지 않아 어떤 수련생은 법에서 인식하지 못했고 이미 자신도 모르게 일종 관념이 형성됐는데 협조인도 포함한다. 발정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인식됐다. 시련을 만나면 능력 있는 수련생을 찾아 발정념 내용을 편집하게 하고 시련을 만나면 협조인 수련생이 통지한 내용에 따라 발정념을 하고 법의 요구에 따라 발정념을 하지 않는다.

사존께서 명시하셨다. “내가 공을 가르침에 한꺼번에 제대로 다 가르쳤다. 목적은 바로 수련생이 제멋대로 고칠까 봐서이다. 기제(機制)가 일단 형성되면 도무지 고칠 수 없다.”[1] 발정념의 내용을 고치면 사실 바로 법을 고친 것이다. 만약 자신 개인의 행위가 법에 있지 않으면 자신 한 사람에 영향 주지만, 만약 여러 사람을 이끌어 이렇게 하면 한 지역 수련생에게 영향을 준다.

법에서 빗나간 발정념 내용을 편집, 전파한 수련생에 건의하는데 이전에 누구에게 알려줬으면 바로 잡아주는 것이 좋고, 만나거나 이메일로 통지해 수련생에게 법의 요구에 따라 ‘발정념’ 내용을 하라고 알려주고 수련생이 바른길을 걷게 해야 한다. 수련은 엄숙하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다. 특수한 상황에서 일념을 넣는 것은 단지 일념일 뿐이다. 매번 발정념을 할 때 다 넣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일념을 넣지 않아도 공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2] 우리는 “나는 이것만 가지고 이것과 저것 다른 것은 가지지 않는다”로 고친다. 예를 들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홍대한 우주를 주셨는데 우리는 오히려 하나 또 하나의 작은 상자에 들어가 부둥켜안고 놓지 않는다. 이는 빗나간 것이 아닌가? 어떤 수련생은 발정념 하는 ‘내포’와 발정념 ‘내용’에 얽혀있는데 이것도 쇠뿔 끝을 파고드는 것이고,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면 눈앞에 있는 거대한 태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一葉障目, 不見泰山)인데, ‘태산’을 빌어 말하는 것도 작게 말한 것이고 너무 작은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금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논어’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10/4293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