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마난(魔難)에서 벗어나 생명이 법에서 승화하다

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반평생 고생을 하면서, 특히 법을 얻은 후 20여 년 동안 비바람을 헤쳐가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깨닫게 됐다. 생명을 더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게 됐으며, 얼마 남지 않은 정법(正法) 수련의 길을 더욱 잘 걷자고 자신을 격려했다.

2018년 봄, 나는 바쁜 와중에 언니를 도와 일주일 동안 사과 봉지를 씌웠다. 그때 우리 집에도 십여 묘(畝: 중국식 토지 면적의 단위) 땅이 있고, 세 가지 일도 잘해야 했기에 언니를 도와줄 시간과 능력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언니는 생활이 확실히 어려웠다. 형부가 병에 걸려 장기간 침대에 누워 있어 돌봐줘야 했고, 언니도 몸이 좋지 않아 늘 주사 맞거나 약을 먹거나 병원에 입원했기에 형편이 아주 어려웠다. 평소 언니는 내가 바쁘다는 것을 알고 별로 부탁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버티기 힘들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에 몇 번 언니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늘 제대로 알리지 못해 이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싶었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언니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렸고, 그가 제기한 질문도 제대로 설명해주었다. 이렇게 언니는 대법을 신뢰하게 됐고, 나도 마음이 정말 뿌듯했다.

집에 돌아온 후 며칠 뒤에 자료를 만드는데 양손이 저리고 움직이기 힘들었다. 나는 요 며칠 너무 피곤했기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 그때 낮에는 봉지를 씌우고, 저녁에는 집안일을 하고 법공부, 연공을 했기에 휴식시간이 아주 적었고, 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로 생각하고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며칠 후 낫기는커녕 점점 심해졌다. 사지가 무기력해져 평소 하던 집안일도 할 수 없었고, 밥을 먹기만 하면 토해서 먹지도 못했지만, 이 상태에서 억지로 참고 밀을 수확하러 나갔다. 그때 대법제자에게는 병이 없고,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난 건 사악의 교란, 소업의 요소가 있기에 법공부와 발정념을 많이 하고, 안으로 찾아 법에서 제고한다면 모두 넘어갈 거로 생각했다.

하루하루 흘러 몸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했다. 음력 7월에 이르러서는 온몸이 무기력하고 너무 아파서 밥 한 술도 뜨지 못했다. 또한, 앞가슴, 등, 목, 머리에 딱딱한 혹이 가득 생겨 저녁에 잘 수 없었다. 옆으로 누우면 혹이 눌려 아팠고, 반듯하게 누우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이럼에도 간신히 참고 땅콩을 수확하러 다녔다. 그때 나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았고, 사람 마음과 집착도 적지 않게 찾아내 발정념하여 제거했지만,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아침 연공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는데 벨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속으로 사부님께 일어나 연공 하겠다고, 집착이 있어도 법에서 바로잡고 구세력이 강요한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일어나지 못했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연공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그들이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해주고 나도 발정념을 강화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후에 신체가 갈수록 나빠졌다.

타지에서 돌아온 아들은 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기어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나는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해 대법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할까 봐 아들과 함께 타지의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았다. 진단결과는 폐암이었다. 재검사해보니 간, 신장, 위, 창자, 목, 머리, 뼈에, 즉 전신에 재발성 암이 퍼졌다. 의사는 나 몰래 아들에게 “이런 경우는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괜히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했다. 후에 아들의 고집을 못 이겨 병원에 입원했고, 아들과 의사가 하는 말을 우연히 듣고 내 상황을 알게 됐지만, 아들에게 묻지 않았다. 그때 아들이 많이 괴로워하고, 밤낮으로 나를 돌보느라 많이 수척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15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며느리가 나에게 “어머님, 얼마나 더 버티실 수 있겠어요?”라고 묻자 나는 말했다. “사람의 인생은 길고 짧음에 있지 않아. 백 보도 인생, 만 보도 인생, 백만 보를 가도 인생이야. 관건은 일생을 얼마나 값지게 살았는지에 달렸지.” 며느리는 나에게 이번 생을 값지게 살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왜 값지냐고 묻자 나는 말했다. “사람의 각도에서 볼 때 나는 아들딸을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고, 둘 다 대학을 졸업시켰기에 에미로서 책임을 다했다. 다른 각도, 가장 중요한 각도에서 볼 때 이번 생에 가장 소중하고 만고에 얻기 힘든 고덕대법(高德大法)을 얻고, 인생의 참뜻을 깨달았지. 그래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란다.” 내 말을 듣고 며느리는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뒤, 며느리는 갑자기 말했다. “어머님은 대법을 수련하시잖아요. 그럼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빌어보세요.” 나는 말했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수련만 관여하시고, 속인 중의 생로병사는 관여하지 않으신단다.” 그때 속으로 만약 내가 수련 가능성이 있다면 빌지 않아도 사부님께서 관여하실 것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빌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느리는 수련하지 않고, 나도 이 생사고비를 꼭 넘어갈 수 있다고 100%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넘어가지 못하면 대법을 파괴하거나 가족이 대법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커다란 난은 사람 신체에 체현될 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오는 거대한 압박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높은 층, 낮은 층, 많은 공간에서 나는 하나 또 하나의 관문을 뚫고 나갔다.

한번은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아들은 또 나를 병원에 보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십몇 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고통에 시달렸다. 의사는 낮은 목소리로 아들에게 안 될 것 같으니 모시고 돌아가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다. 침대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본 사람들도 모두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당신들은 모릅니다. 대법 사부님이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으시기에 나도 승인하지 않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이 고비를 또 넘었다. 그 후 우리가 병원에 다시 찾아갔을 때 의사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기뻐서 아이처럼 펄쩍 뛰며 아들에게 당신 어머니가 이렇게 잘 회복할 줄 몰랐다며 정말 기적이라고 했다.

나는 여태껏 길을 잃은 적이 없었지만, 상하이에 간 후 늘 동서남북을 구분하지 못하고, 버스 정거장을 찾지 못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2019년 봄, 나는 다시 아들에게 집에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아들은 나 혼자 돌아가면 시름이 놓이지 않기에 정말 가고 싶으면 날씨가 따뜻해진 후 그가 모시고 가 며칠 묵게 하겠다고 말했다. 얼마 뒤, 또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들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말 조급해졌다. 이미 반년 넘게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했고, 속으로 법이나 경문을 외우기만 했다. 그래서 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도와주십시오. 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사부님께 빌고서 다시 얘기를 꺼내니 아들은 흔쾌히 동의했고, 곧 비행기 표를 사주었다. 이렇게 나는 비행기를 타고 순조롭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와 며칠 안 돼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을 받았고, 조금 뒤에 ‘홍음5’도 받았다. 나는 목마른 사람처럼 공경한 마음으로 공부했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이 한 부의 법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사부는 일찍이 한 마디 말을 했는데, 나는 말했다. “당신이, 얼마나 높게 수련하고 싶으면, 당신은 과감히 하기만 하면 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수련은 정말 쉽지 않은데, 소업(消業)하고 관(關)을 넘으며, 心性(씬씽)상의 마찰에 부딪혀 넘어가지 못한 것이 얼마인가. 하물며 그런 큰 관들은? 어떻게 넘겠는가?! 이런 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사람은 생각만 해도 겁나하는데, 정말로 어렵고,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1] 이 부분을 읽을 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셨다. 어떤 사람은 생사고비라고 얘기하는데 생사고비가 다 무엇인가? 그건 정말 생사고비보다 더 컸다. 개인 수련을 놓고 볼 때 사람의 육신은 옷 한 벌과 같이 입거나 벗는 문제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고비는 무량한 중생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나아가 더 큰 우주 범위 내의 큰 문제와 연관된다. 지금 정법시기 대법제자에 대해 수련의 요구가 더 높고 엄격한데 그것은 대법제자의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사악한 구세력은 대법제자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2019년에 내가 자신이 겪은 과정을 써내려 하자 갑자기 검은 물질이 나를 향해 덮쳤고, 쓰러질 것처럼 1초도 버티기 힘들었다. 이 생사의 순간에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고,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2]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야말로 내 생명의 의의이고, 역사적 사명이다. 내 책임은 지금 육신을 포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즉시 일어났고,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지(加持)하에 또 한 고비를 넘었다.

이 고비를 넘으면서 나는 일반 수련, 예를 들어 개인수련은 육신을 포기하든 갖고 가든 모두 중요하지 않지만, 오늘날 대법제자에게는 요구가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대법에 대해, 중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여기까지 쓰면서 마난 속에 있는 수련생에게 말하고 싶었다. “수련생 여러분, 신체적 고통이 얼마나 크고 참기 어렵든지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히 믿고 쉽게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3]

그 1년 동안 사부님의 가지하에 나는 여러 고비를 넘어갔고, 2019년에야 진정으로 이 생사고비에서 뛰쳐나왔다. 1년 넘게 지속된 마난 속에서 체중은 50kg에서 30kg대로 줄었고, 정말 뼈만 남았었다. 그때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지금은 몸이 완전히 회복됐고, 얼굴이 발그레하다. 내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기적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서 대법의 신기함과 위대함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내 생명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정말 감개무량하다. 사람의 언어로는 사부님에 대한 끝없는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으며 오로지 정진하고 또 정진할 수밖에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두려울 것 뭐냐’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사도은(師徒恩)’

 

원문발표: 2021년 7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1/4272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