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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의 뿌리를 제거해 진정하고 착실하게 수련하다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주셨다. 정말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전능의 법보다. 수련에서 이런 습관이 형성돼야 진수(真修)하고 착실한 수련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진정으로 집착심을 제거하고 층차가 제고되고 승화해 올라갈 수 있다.

한번은 남편이 나에게 100위안 5장 주었는데 내가 한 장 더 달라고 했다. 사실 충분했지만, 나는 한 장 더 가지고 싶어 한 장 더 달라고 했는데 그는 주지 않았다. 나는 순간 참을 수 없었다. 분노∙증오∙원망∙억울함 등 각종 사람 마음이 다 올라왔고 가슴은 무언가에 막힌 듯이 불편했고 기분이 나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범하게 주면서 나에게만 가혹하고 인색하다. 내가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100위안 가치도 없는가? 너무하다.’ 너무 화가 났다. 속으로 어떻게 한바탕 해볼 지를 생각하면서 기어이 남편을 다스리고 말 것이며 남편을 괴롭혀 평안하지 못하게 하리라 생각했다. 당신이 나를 괴롭히면 나는 당신을 더 괴롭히겠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옳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수련인인데 어찌 속인과 우열을 다투고 옳고 그름을 다퉈서 되겠는가? 이는 속인과 같은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속인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운다면 당신은 곧 속인이며, 당신이 그보다 더하다면 당신은 그 속인보다도 못하다.”[1] 내가 어찌 자신을 속인으로 낮출 수 있는가? 안 된다. 나는 속인보다도 못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수련인이 되어야 한다. 어쩌지? 사부님의 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2]

사부님께서 얼마나 분명하게 말씀하셨는가! 아직도 빨리 자신을 찾지 않고 뭐 하는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았다. 나는 원망∙분노∙이익∙비교∙ 비난∙불평∙억울함∙쟁투∙질투하는 마음을 찾았고 인격이 상처받은 등을 찾았다. 이런 좋지 않은 마음, 이런 나쁜 것이 어찌 나일 수 있는가? 나는 우주 대법에 동화해야 하고 진선인(真∙善∙忍)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 좋지 않은 생각은 나를 교란하는 것이고 모두 내 것이 아니다. 이런 집착심을 제거한다.

여기까지 생각한 후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그다지 들끓지 않았으나, 정서는 여전히 안정되지 않았다. 한번은 딸의 집에서 정공을 연마할 때 또 뒤집혀 나와 나도 모르게 실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딸이 볼까 봐 애써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너무 억울해 아무리 애써도 멈출 수 없었고 원망이 사라지지 않았다. 왠지 자신이 인격이 없고 낮으며 100위안 가치보다 못하다고 느껴져 그와 사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너무 완고해 배척할 수 없었고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결국, 딸이 알아차려 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딸은 얼른 나에게 2천 위안(약 34만9천 원)을 주면서 “엄마, 울지 마세요. 돈이 필요하면 나에게 달라고 하세요”라고 위로했다. 나는 딸의 돈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체면이 서지 않고 또한 덕을 잃는 일이라 나는 거절했다. 딸은 말했다. “서랍에 넣어놨으니 언제든지 가져가도 됩니다.” 또한 나에게 “엄마는 심성 관을 넘고 있는 거지요?”라고 상기시켰고 나는 “그래”라고 답했다.

나는 속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넘지 못했고 내려놓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거듭 외웠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3] 천천히 눈물이 멈췄다.

나는 생각했다. ‘다 제거하지 않았는가? 왜 또 나온 건가? 더 깊은 층의 집착을 발견하지 못한 게 아닌가?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게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왜 항상 사람 생각으로, 나는 자신이 어디가 옳지 않은지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쁘고 어떻게 좋지 않은지를 생각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안을 찾지 못했다. 갑자기 머릿속에 ‘자존심’이라는 일념이 스쳐 지나갔다. 맞다! 바로 그것이 장난친 것이구나! 나는 순간 내가 찾고 있는 걸 발견하고 마음이 탁 트였으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고 근원을 찾았으며 제대로 찾았다고 느꼈다.

이 자존심이 근원인 이유가 무엇일까? 인격이 없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느낀 건 바로 자존심이 건드려진 것이다. ‘자존’은 강력한 ‘자아’가 아닌가? 자아는 이기적인 게 아닌가? 이것은 대법의 바른 법리와 반대인 게 아닌가? 이것은 명을 구하고 체면을 중히 여기며 이익지심이 아닌가? 자존, 자아, 이기적인 마음은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을 불러일으켜 내 마음을 막고 있고 내 수련의 길을 막고 있다.

심각한 반성을 하고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단호하게 이런 집착심을 제거했더니 마치 껍데기를 벗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답답하지 않았고 온몸이 홀가분했으며 심신이 즐거웠다. 머리에서 맴돌고 지워버릴 수 없던 나쁜 생각이 싹 사라져 방금 일어났던 일을 돌이켜 보니 이미 나와 아주 멀리 떨어진 것처럼 매우 오래된 일 같았고 기억에서 사라졌다. 경지가 제고된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런 집착심이 있는 걸 보시고 이런 방법으로 폭로해 깨닫고 사람 관념을 바꾸고 정념으로 문제를 대하며 안으로 찾아 그것을 닦아버리라고 하신 건데, 나는 속인의 관념, 속인의 이치로 가늠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한, 어떻게 남편과 한바탕 해 그를 불안에 떨게 해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려 했다. 하마터면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잘못 걸을 뻔했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항상 보호해주시고 각 방면에서 점화해주셔서 나는 깨닫고 바로잡아 가정 모순을 피했다.

나는 ‘일마다 대조하여’[4]와 ‘시시각각 心性(씬씽) 수련하나니’[5]의 중요성과 심오한 함의를 깨달았다. 문제가 있기만 하면 대법에 비추어 시시각각 자신의 이 마음을 닦아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표면적인 집착을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인식했다. 진일보 깊은 층차에서 이런 집착심을 초래한 근원을 찾아야 진정하게 이런 집착심을 제거해버릴 수 있고 제고가 빠르고 승화해 올라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약간의 체험이니 적절하지 않은 점은 자비로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착실한 수련’
[5]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진수’

 

원문발표: 2021년 6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5/4241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