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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십 년 만에 다시 일어나 명리를 내려놓다

글/ 광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이전에 나는 늘 인생의 의미와 우주의 신비를 탐색했는데, 현존하는 인류의 지식 속에서는 찾지 못했고, 현실 사회의 각종 혼란한 상태도 나를 막막하게 했다. 부모님은 늘 내가 사회에 뛰어들지 않는다며 나의 사회생활을 걱정했다. 부모님의 걱정을 덜기 위해 나도 스스로 세상에 뛰어드는 노력을 했고, 대학교 때부터 기관에 배치되어 일했다.

기관에 들어간 후에는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거짓말을 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자료를 적을 때 항상 거짓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의 그런 고통과 시달림을 말할 곳이 없었고, 말할 사람도 없었다. 사직하여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아직 어렸고, 가정에 부담이 늘어나는 게 걱정되어 단념했다.

1. 십 년 세월을 보내고 마침내 회귀하다

커다란 고통 속에 하루를 일 년처럼 정신적인 타격을 받으며 출근하던 시절에 나는 인연이 닿아 대법을 얻고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의 느낌은 정말 미묘하고 놀라웠으며, 마음속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이어 수련에 공을 들이고 싶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는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아주 얕았다. 그래서 1999년 7월 이후의 거대한 마난 속에서 관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초기에는 힘들게 버티면서도 타협하지 않았지만, 이후 중공의 세뇌반에서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쓰고 말았다.

이후 마음속으로 거대한 고통과 아득함을 느꼈다. 내심으로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았으며, 대법과 사부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를 몰랐다. 동시에 중공의 박해와 가족이 연루되는 것 등등에 대해 강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지내면 나의 생명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속인의 욕망 속에서 발버둥 치는 동안 신체는 좋지 않게 변했으며, 기분도 가라앉고 성격도 나빠졌다. 바로 그렇게 정신 나간 듯이 약 십 년을 보냈다.

그동안 장과 위가 나빠지고, 수면이 나빠지고, 정신도 나빠져 매일 잠자는 시간이 아주 길었지만 늘 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업무의 압력이 큰 가운데 부화뇌동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속인의 이익을 잃기가 두려워서 날마다 득실을 걱정했다. 한번은 여름에 한 동창과 탁구를 해 온몸이 땀에 젖었다. 동창이 생수를 가져왔고, 그가 마실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내가 몇 모금을 마시자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찾았다. 매년 몇 차례 심한 감기를 앓았고, 나으면 기침을 했는데, 한번 시작하면 며칠을 계속했다. 기침하느라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2011년에 한 차례 감기를 앓은 후, 저녁에 또다시 기침했다. 나는 아내의 휴식에 영향을 줄까 봐 서재에 갔는데, 누우면 기침이 나와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예전에 수련하면서 병업관을 넘길 때는 연공만 하면 아주 빨리 사라졌지.’ 곧 침대 위에서 결인하고 가부좌하자 즉시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졌고, 아주 빨리 목구멍이 간지러워지면서 기침이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략 20분 동안 가부좌를 한 후, 새벽까지 잠을 잤다. 기침도 점점 좋아졌다.

그때 다시 대법을 수련하겠다는 생각이 생겼다. 이후, 사부님께서는 예전의 수련생을 만나게 하셨고, 나는 대법 책을 다시 구해 수련의 길로 돌아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사부님께서 나를 포기하신 적이 없고, 항상 나를 보호해주시면서 나를 일깨워주셨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나를 꼬박 10년 만에 대법 수련의 길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으니 제자는 너무나 송구스럽다!

다시 대법을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신체를 여러 차례 청리해 주셨다. 한번은 바로 설날 연휴였는데, 갑자기 열이 났다. 당시 마침 나 혼자 집에 있었지만,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청리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연공을 견지한 다음 잠을 잤다. 이튿날 아무 일도 없었고, 집안 모임에 참석했는데, 식구들은 아무도 몰랐다.

이전에는 내가 중공의 박해와 가족의 두려움과 압력 속에서 감히 연공을 하지 못했지만, 이때부터는 대법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히고 점차 식구들 앞에서 연공을 했다. 가족들은 내 몸이 이전보다 나아진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나는 늘 가족들에게 파룬따파 수련 이야기를 했다.

얼마 동안 시각이 흘렀고, 사부님께서는 내가 대법에 대해 더욱 견정해진 것을 보시고 또다시 나의 신체를 청리해 주셨다. 이번에는 갑자기 배가 부풀어 전신이 힘들었고, 오한이 들었다. 내가 재빨리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하자 단번에 입에서 침이 흘러나오고, 배가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으며, 괜찮게 느껴졌다. 비록 나중에도 여러 차례 배가 당기고 몹시 견디기 어려웠지만, 나는 신체가 청리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법공부와 연공을 강화하자 삼 일째에 증상이 사라졌다. 이번의 청리를 통해 나의 장과 위의 상태가 철저히 변화되었다. 정신적으로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수련하지 않는 아내는 텔레비전과 신문의 거짓말을 받아들여 회의적인 태도가 있었지만, 나의 신체가 청리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현재는 태도를 바꾸었다. 어머니도 연공 후에 나의 신체가 갈수록 좋아진 것을 인정한다.

2. 모순을 풀어 가정이 화목해지다

수련하지 않은 10년 동안 나의 심성은 몹시 떨어졌고 아내와의 관계도 갈수록 나빠졌다. 늘 작은 일 때문에 화내며 다투었고, 이후에는 곧바로 며칠 동안 냉전을 했으니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나중에는 심지어 이따금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내를 때렸다.

비록 그전에 수련해 스스로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장기간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안을 향해 찾을 줄을 몰랐다. 모순이 발생하면 상대방을 보기만 했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상대방에 관한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늘 참아내지 못했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천천히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는 것과 모순이 나를 제고할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순이 발생하면 억지로 참으려 해도 참지 못했고, 나중에 후회했다. 하지만 법공부를 함에 따라 점점 아내에게 사과하게 되었고, 내가 잘못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내가 대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나의 나쁜 행동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나는 늘 사과를 하면서 대법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대법에 따라 하지 못한 것이며, 나 자신이 잘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사과할 줄도 알았지만, 가정생활에서 시시각각 해낸다는 것이 사실상 몹시 어려웠다. 아내는 매일 나와 함께 생활했고, 마치 농구 할 때처럼 주시했다. 나는 시시각각 실수하지 않아야 했다. 정말 해내기 어려웠고, 바로 심성을 높여야 했다.

나는 자신을 향해 찾기를 시작했고, 나에게 가족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가족이 나보다 똑똑하지 않고, 나보다 많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며, 남성 우월주의에 빠져 마땅히 아내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험한 말을 썼고, 가족의 약점 들추기를 즐기고, 다른 사람과 동떨어져 군림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명령하고 지휘하는 어투를 썼다. 그렇게 가정생활을 하면서 비일비재하게 충돌했고, 조그만 일이 생겨도 다투었으며, 매번 내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면서 반드시 내가 이겨야만 그만뒀다. 그것은 강렬한 쟁투심이며 승부욕이었다. 그렇게 지냈는데, 가정에 어떻게 편안한 날이 있었겠는가?

나는 나의 그런 좋지 못한 마음을 닦아버리기로 했다. 나는 마음을 집중해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1] 법으로 자신을 지도하면서 먼저 태도를 낮추었고, 스스로 군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동시에 내 생각과 부합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와 아내에게 불만스러워 마음속으로 화가 나고 원망이 올라올 때는 즉시 그것을 억제하고 제거했다. 그렇게 하자 큰 효과가 있었다.

애초에 내가 아내에게 청소부를 불러 집 안 청소를 시키자고 했지만, 아내는 줄곧 응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사람을 부르겠다고 하자 아내는 다른 사람이 집에 오는 것이 싫다고 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어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불편했고, 말까지 거칠어지자 아내는 듣지 않았다. 몇 년이 흘렀고, 이 일에도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나는 그 마음을 내려놓고, 청소부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좀 더 청소하고, 정돈했다. 그러자 아내가 주동적으로 한 사람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일부 일에 대해서도 아내의 감정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이전에 나는 그녀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대화를 아주 적게 했고, 시간이 있으면 서재에 들어갔는데,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않고 내 일을 하느라 바빴다. 아내도 원망하면서 내가 자신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중에 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있고, 아내 편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식사 후에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항상 거실에서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내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아내는 원망도 적어졌고, 대법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내는 ‘삼퇴’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생명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탈퇴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친정 식구들도 ‘삼퇴’하도록 도와줬다.

나는 아들의 진학 문제도 점차 수련인의 표준을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아들의 학업 성적이 괜찮아서 나는 내심 아들이 정상급 대학에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들은 컴퓨터 프로그램 디자인을 좋아했고, 그 분야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다. 나는 아들에게 잠시 프로그램 디자인을 내려놓고 대입 시험에 에너지를 집중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그 일로 크게 마음을 졸이며 화를 냈고, 심지어 큰소리로 꾸짖었다. 나중에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집착심이므로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태도를 바꾸어 아들을 지지하면서 더 관심을 기울여줬다. 나중에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시선을 보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아들이 어떻게 해서 좋은 대학에 이렇게 쉽게 합격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대법의 요구에 따랐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번거로움과 풍파를 겪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현재 이미 졸업해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나와 아들의 관계는 현재 비교적 평등하고 화목하다. 아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나와 의논하며, 나는 아들을 도와 분석하고, 주의시키긴 하지만, 내 말을 듣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나는 아들에게도 진상을 알렸고, 아들은 ‘삼퇴’를 했다. 대법 수련은 내가 가정의 화목과 화기애애한 느낌을 체험하게 했다.

3. 기관에서 일하며 명리를 다투지 않다

나는 ‘기관’에서 일하는데, 다시 수련하기 전에 나는 주동적으로 아무 권세가 없는 부서로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단지 이곳에서 편안하게 지내면서 연구 업무를 수행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현재는 사회 기풍이 날로 떨어져 뜻밖에도 이곳에도 다툼이 격렬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다툼에 참여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뒷골목 소식을 찾아 듣지 않았으며, 상사에게 가서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 맡은 일을 잘하면서 한 번도 회피하지 않았다. 동시에 최대한 거짓 문장을 작성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직장에서 농촌에 ‘부빈(扶贫, 빈곤 구제 담당)’을 파견했는데, 내가 ‘마을 주재 간부’로 선정되었다. 원래는 직장을 떠나도 되었고, 일하지 않아도 됐지만, 직장에 사람이 적었으므로 나에게 두 가지 일을 모두 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분주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한 몫의 임금을 받으면서 두 몫의 일을 했다. 나는 상사에게 불평하거나, 수당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여건이 되는 직장에서는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업무용 차량을 배정해 줬지만, 우리 직장에는 없어서 내 차를 이용해야 했다. 직장에서는 매월 기름값을 지원해 주었는데, 어떤 사람이 상사에게 지원금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바람에 상사가 줄이려 했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동의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릴 기회임을 알았다.

‘부빈’이 끝나고 업무가 완료되었다. 규정에 따라 나를 일급 승진시킬 수 있었고, 직장에서도 상부에 보고했지만, 위에서는 편제가 모자라 좀 어렵다고 했다. 선의를 가진 동료는 이 일에 연줄을 써야 하니 빨리 행동하라고 했다. 나는 하지 않았다. 현재 사회 기풍이 이렇게 나빠졌는데, 수련인이 이런 기풍을 조장해서 되겠는가. 결국, 끝내 발탁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대신해 불평했고, 상사도 내 기분이 나쁠까 봐 걱정했다. 나도 마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아주 빨리 억제해 불만을 품지 않았고 예전처럼 열심히 일했다. 직장의 상사는 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았고,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찾아 의논했다.

한번은 직장의 상사가 나의 특기를 이용하기 위해 나에게 직장의 서적 출판 일을 맡겼다. 나는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고 즉시 동의했다. 이후 3년 동안 내가 축적한 능력을 발휘하고, 학술계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비교적 순조롭게 책을 발간했다. 출판 후, 사회의 평가가 아주 좋았다. 나 자신도 그중 한 권의 집필을 담당했다. 애초에 나는 내가 비교적 바빠서 선배 학자 한 명을 찾아 집필을 맡기려 했다. 뜻밖에도 그는 나에게 일부 자료를 주면서 말하기를, 자신이 자료를 주고, 쓰는 것은 내가 하고, 나중에 가서 두 사람이 함께 쓴 것으로 하자고 했다. 나는 일부 자료를 더 찾아야 했고, 혼자서 편집을 완료했다.

책 출판을 앞둔 시점에 나는 그 선배가 일부 자료만 제공했고, 실제 집필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니 장래에 그를 심사위원으로 초빙하고 작가 명단에는 넣지 않으려 했다. 그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는 몹시 불쾌해하며 즉시 거절했다. 나는 조금 난처해졌고, 그것이 나의 명리심이 시킨 일임을 깨닫고 재빨리 바로잡았다. 새로 출판한 그 책에는 선배의 이름이 들어갔을 뿐 아니라 내 이름 앞에 들어갔다. 이후에 나는 또 원고료 전액을 그에게 주었다. 가족이 알고는 그에게 주는 것은 괜찮지만,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알릴 것은 모두 알렸다며, 지금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에게 원고료를 돌려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 선배는 은퇴해서 돈이 필요하며, 이전에 내가 연구를 할 때 그도 나를 도와주었으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치자고 했다.

서적 편찬자의 서열을 매길 때, 상사는 내 이름을 일반 편집인 중 두 번째로 배열했고,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인 한 명은 그 책의 출판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졌다는 것을 듣고는 나에게 이왕 상사가 이름을 그렇게 배치했다면, 내가 마땅히 상사에게 조건을 내놓고, 출판과 관련한 돈을 직접 배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속뜻인즉, 이익을 좀 가져도 된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저 웃어넘기기만 했다.

직장에서 간부를 뽑을 때, 작은 조직들이 분쟁을 일으켰다. 나는 업무에 두각을 나타냈고, 학력도 높았으므로 이치에 따르자면 마땅히 발탁되어야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그 자리를 뺏기 위해 상사와 공모해서 나의 대법 수련을 이용해 나를 인신공격했다. 없는 사실을 꾸며내어 나를 모함했고, 결국 내가 발탁될 기회를 잃게 했다.

그동안 나는 외부 압력과 이익 이중 고험에 직면했다. 나는 내심으로 흔들리거나, 고뇌하지 않았고, 사부님의 법을 떠올렸다. 다투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나의 일을 계속 평온하게 잘했으며, 이지적으로 동료와 상사에게 진상을 알렸다. 심지가 선량한 한 동료는 나를 위해 대신 불평했다. 나는 기회를 이용해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고, 대법의 법리도 말해줬다. 나중에 그녀는 ‘삼퇴’했다. 다른 한 동료는 기독교도였는데, ‘삼퇴’는 하지 않았지만, 나의 사람됨을 충분히 인정했고, 내가 자신이 본 사람 중에서 소양이 높은 사람이라며 칭찬을 했다.

넘어지고 부딪힌 수련의 일은 며칠 밤낮이 걸려도 다 말하기 어렵다. 수련하는 세월에 비록 마난과 고생이 있었지만, 수련은 내 생명의 방향이며, 대법이 내 생명의 지표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나는 반드시 견정하게 걸어갈 것이며, 자격을 갖춘 대법제자가 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5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5/25/4260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