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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 일념을 수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2010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올해 59세입니다. 11년의 수련 과정에서 온갖 관과 마난을 겪었습니다.

처음 입문했을 땐 정말로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법공부 면에서 돌파가 매우 빨랐습니다. 저는 그것이 법을 늦게 얻어 회한하는 저에게 사부님의 자비하신 점화라고 압니다. 대법을 읽었을 때 매 한 구절의 법은 모두 저에게 굳게 믿게끔 했으며, 어서 빨리 법공부하지 않으면 생명이 곧 시들 것 같고 법은 마치 제 생명을 연장해 주는 원천과 같았습니다.

미혹 중에 있어 비록 처해 있는 고달픈 경우를 보지 못하지만 수련인의 이치가 일반인의 이치와 반대인 것을 알았으니 고생을 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며 더 나아가 고생을 낙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수련에서 일사 일념이 모두 매우 중요하고 이는 저에게 수련 과정에서 많은 이치를 깨달을 수 있게 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생활 중에서 부딪친 일부 사소한 일에 대한 몇 가지 수련 이야기를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교류하겠습니다.

1. 집안에서 모순이 있을 때 안으로 찾다

어느 하루, 저는 만두를 빚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사람을 만나러 고향에 내려가야 해서 점심은 집에서 먹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제 동서와 남편 형제가 함께 가는데 저 혼자 집에서 시아버지를 돌봐 드려야 했습니다. 저는 들으면서 마음이 평형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간 후, 저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만두 빚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조금 지나고 저는 문득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수련인이 아닌가? 일반인과 같으면 어떻게 하는가? 이는 질투심이 나온 것이 아닌가?’ 또 남에게 무시당할까 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등 많은 사람 마음이 나왔습니다. 이때 저는 얼른 저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만두를 더 많이 빚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식사를 끝내자마자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다녀오셨어요, 앉아서 좀 쉬세요. 만두를 삶아올게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척 보니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아닙니다, 당신이 멀리까지 차 타고 고생했잖아요, 내가 곧 삶아올게요.” 이 몇 마디로 비위를 상하지 않았기에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전 같으면 저는 이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집에 와서 말을 하지 않거나, 물건을 세게 내려놓거나 내던지는 등 눈에 거슬리는 행동들로 저희는 한바탕 싸웠을 것입니다. 이는 예전에 자주 있었던 일입니다.

이번 일은 비록 매우 사소했지만, 저를 더욱 깨닫게 했습니다. 매 하나의 사람 마음, 자신의 생명 중에 가지고 있는 특성과 사유 습관을 포함해서 그것이 건드려졌을 때 곧바로 자발적으로 이를 수련해 닦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아직 수련의 길에 있는 한 이는 모두 소중한 수련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그것을 닦아내는 과정에서 환경이 나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저는 수련생 집에 갔다가 밤 9시가 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열쇠를 차고 안에 두고 잠가 버려서 저에게 전화를 10통 넘게 했지만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핑계를 찾아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남편은 술을 좀 먹어 저를 막 때리려고 했습니다. 이번에 남편이 뭐라고 해도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강변(強辯)에 부딪혀도 다투지 말지니 안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수련이라 밝히려 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마음 비워 집착 없으면 명견(明見)이 나온다네”[1]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제가 법공부를 한 것이 헛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차고를 열어 자전거를 세웠는데 그는 발로 제 자전거를 한 번 찼습니다. 이번에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가 법공부를 막 마쳤으니 사부님께서 저보고 심성을 제고하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선 그는 마치 미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얼른 자전거를 세워놓고 계단을 올랐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 곧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정법 구결을 외웠습니다. 사부님께 그가 화를 내지 말도록 가지 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계단을 오르고 그는 또 발로 저를 한번 찼습니다. 이때 그는 머리를 돌리고 곧 가 버렸습니다.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자기 방으로 갔습니다. 조금 지나고 저는 물을 주려고 가보니 이미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알았습니다. 수련인의 생활 속에서 우연한 일은 없고 마주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두 관을 넘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였으면 저는 그와 쟁론할 거고 며칠 동안 시끄러웠을 것입니다. 이후에 제가 핸드폰을 챙기든 말든 그는 더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가 법공부할 땐 전화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관을 넘는 고험에서 저는 일사 일념이 모두 법에 있으면 넘어가지 못할 관이 없을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2. 이익을 담담히 보다

저희 고향 집에는 시부모님이 소유하신 여덟 칸짜리 집이 있습니다. 형제 둘이 있는데 이치대로라면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재산을 분배할 때 반반씩 나눠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아버님은 토지 소유권을 몰래 앞당겨 모두 둘째 아들한테 주었고, 여덟 칸짜리 집은 조카에게 줬습니다.

당시 제가 이 소식을 알았을 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전부 제가 두 분을 돌봐드렸는데 어찌 이렇게 배분하실 수 있을까? 남편도 자기 아버지에게 한번 여쭤보라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비록 화가 났지만 저는 선의적으로 한번 여쭤보았습니다. 하지만 시아버님은 오히려 제 남편이 안 가지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듣고 남편은 안 가지겠다고 한 적 없다고 하며 크게 화를 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생각해 보니 이 일은 저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수련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당신이 보기에 그 물건이 당신의 것이며 남도 당신에게 이 물건은 당신의 것이라고 알려주지만, 사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2] 저희는 마땅히 포기해야 하고 쟁탈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과 여덟 칸짜리 집이 아닙니까?! 저희에게 준다고 해도 가져갈 수 없지 않습니까. 내려가서 살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번엔 제가 오히려 그들을 설득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도 남편을 이해합니다. 남편은 시부모님께 효도를 많이 했는데 제가 가지지 않겠다고 말을 안 하면 남편이 어찌 안 갖고 싶겠습니까? 결국, 아버님의 친아들이지 않습니까! 이 일은 제 마음속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저 또한 이 도리를 깨달았습니다. 수련인은 속세의 것을 구하면 안 됩니다. 이제 저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수련은 곧바로 모든 사람 마음을 닦아내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선의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면 보기엔 하늘과 같이 커다란 모순과 마난도 순식간에 풀릴 수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사부님께서 저의 용량을 넓혀 주셨다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이익 속에 빠져 사람의 도리를 따지면 어떻게 생각해도 내가 맞고 남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이 관을 아직 돌파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표면적인 옳고 그름에 빠지면 안 되고 반드시 관념을 바꾸어 수련인의 바른 도리로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수련인은 곧바로 세상에 와서 고생하고 업을 갚는 것이 아닙니까? 이 생각을 하면 반드시 잘할 수 있습니다.

3. 법을 얻은 전후 변화

제가 법을 얻기 전에 남편과 자주 싸웠는데 이웃들을 모두 불안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112, 119도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어떨 땐 한번 싸우기만 하면 며칠이나 가는데 토라져서 반 개월, 20일이나 냉전을 벌이고 정말로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어떨 땐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고 자주 이혼을 염두에 떠올렸습니다. 남편을 죽도록 저주하는 등 나쁜 생각들은 무엇이든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부끄럽습니다. 큰일도 아니고 모두 매우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대법을 얻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바꿀 수 있었을까요? 그런 강압적이고 일리가 있다고 지나치게 몰아붙이고 승부욕이 강한 마음 등등…. 법을 배운 후에 모두 제 머리 뒤로 던져 버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순 앞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보증코 다른 광경이다.”[2]

집착심이 나올 땐 누구든 괴롭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인이니까 이러한 마음들을 마땅히 닦아내야 하지 않습니까? 대법을 수련하는 길이 비록 매우 좁지만, 수련에서 고생을 낙으로 삼고 일사 일념을 수련할 수 있다면 이 길은 밝고 탄탄하게 걸어나갈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수련하면 곧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할 것이고 곧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문제와 마주칠 때 타인을 고려하고 곳곳에서 좋은 사람과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되고, 명·리·정을 누락 없이 닦아낼 수 있습니다. 비록 가끔은 안 좋은 염두들이 뛰쳐나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는 이웃들이 모두 저를 부러워합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자식들은 효도하고 남편도 부지런해졌는데 집안의 힘든 일은 대부분 남편이 합니다. 수련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이런 큰 변화와 이런 좋은 환경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수련한 십여 년 동안 대법 속에 있으니 사부님의 보호 아래 성격이 나쁘고 이기적이던 제가 평화롭고 행복하고 남을 이해하고 고려할 수 있는 수련인이 되었습니다. 사부님께 감사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이 지적해 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3-논쟁하지 말라’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4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4/4/4229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