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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수련 일화에서 구세력을 부정하는 것을 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신기한 대법 수련 일화를 하나 교류하겠다. 중국 농촌에 여위고 허약한 부녀자가 있었는데,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십악독세(十惡毒世)한 세상에서 늘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다. 이 부녀자는 우연한 기회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웠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녀는 문맹이었는데 수련생들은 그녀를 가족처럼 대하면서 법 공부할 수 있게 글자를 가르쳐주었다. 서서히 스스로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홍음(洪吟)’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풍운이 돌변했다. 1999년 7월, 중공 사당(邪黨)이 파룬궁에 대해 미친 듯이 모함과 탄압을 시작한 것이다. 이 농촌 부녀자와 수련생들은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다가 붙잡혀있다 돌아왔다. 악한 경찰(악경)들은 이 부녀자를 피범벅이 될 정도로 구타했는데,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나온 후에 그녀는 계속해서 진실을 말하고 진상을 알리는 스티커를 붙이고 진상자료 등을 배포하다 수차례 붙잡혀 구타당했지만,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다. 향촌의 일부 간부는 중공이 날조한 소문을 믿고는 그녀를 죽도록 미워하고 고집스럽다고 여겼다.

한 차례 박해 행동 중에 그녀는 또 붙잡혔다. 악질적인 그런 향촌 간부들은 악경들에게 그녀를 때려죽이라고 지시했다. 이에 악경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팔뚝보다 굵은 큰 몽둥이로 때렸다. 여위고 허약한 농촌 부녀자이니 얼마 견디지 못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못 하게 된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겨우 약간의 숨만 남았을 때, 그녀는 ‘이번에는 못 버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다가 ‘장애가 있는 몸이 이렇게 좋은 대법을 얻었으니 죽는다 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했다.

악경들은 때리다 지쳤고, 그녀가 곧 죽을 듯하자 잠시 쉬었다. 이때 한 경찰이 악의적으로 그녀에게 “죽어도 똑똑히 알고 죽어야지. 어떤 간부가 당신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곧 당신을 화장터로 보내 화장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자기가 곧 죽을 줄로 알았다. 그녀는 딸(파룬궁 수련생)이 생각났고, 한동네의 많은 수련생이 모두 그토록 좋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나는 죽을 수 없다. 대법이 이렇게 좋고, 여전히 진상자료를 배포해 더 많은 사람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는 움직일 수 있었고 힘도 생겨 기어서 일어났다.

이 부녀자는 정말로 기어 일어났다.

악경들은 그녀가 일어난 것을 보고 ‘정말 운 좋네’라고 생각하고는 또 빙 둘러서서 더 미친 듯이 때렸다. 큰 몽둥이가 부러질 정도였지만 그녀는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맞을수록 편안했다. 악경들은 놀라서 멍해졌고, 감히 때리지 못했으며, 그녀를 ‘때려도 죽지 않는 철괴리(鐵拐李, 쇠목발을 짚고 다녔던 신선)’라고 했다. 물론 사람도 놓아주었고, 그때부터 사람들도 그녀를 ‘때려도 죽지 않는 철괴리’라고 불렀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사부님 은혜의 호탕함과 대법의 신기함’을 깊이 느끼고, 수련생 정념(正念)의 위대함에 감동한다.

이 이야기로부터 깨우침을 얻고 생각했다. 정법(正法)시기에 반(反)박해하며 수련하는 중에서, 사악한 세력의 박해에 직면해 자기가 수련인이라는 생각만으로는 관(關)을 돌파하기에 부족하다. ‘철괴리’라고 불린 이 농촌 수련생처럼, 대법의 은혜를 입고, 수차례 붙잡혀 구타당해도 절대 타협하지 않고, 시종일관 자신을 한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면 몇 번은 가까스로 관을 넘을 수 있긴 하다. 최후 한 차례 사악(구세력)이 정말로 그녀의 육신을 앗아가려 할 때, 거대한 감당 속에서 그녀는 생사에 대한 집착이 없이 탄연했다. 사악(구세력)에 구타당해 겨우 한 가닥 숨만 남았을 때, 사악(구세력)도 그녀가 이 관을 넘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마음을 바꿔 ‘나는 죽을 수 없다. 대법이 이렇게 좋고, 나는 여전히 진상자료를 배포해 더 많은 사람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라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대법의 힘을 얻었고, 기적이 일어났다. 왜일까?

생각해보자. 대법제자의 사명은 ‘조사정법(助師正法), 구도중생(救度眾生)’이다. ‘조사정법, 구도중생’의 의의는 개인수련의 의의보다 훨씬 더 크다. 개인수련이 성취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신이지만 ‘조사정법, 구도중생’은 무량무계한 중생과 신을 구도해야 하는 것으로, 양자는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철괴리’는 앞서 그저 개인이 육체적으로 감당한 것인데, 기점은 개인수련에서의 감당이었고, 성취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이는 개인수련 시기의 수련 개념이다. 개인수련에 대한 안배는 구세력의 특기로서, 역사적으로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를 포함한 많은 각자(覺者)의 성취과정(박해를 당하는 과정)도 모두 이렇지 않았던가?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개인수련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 그것들은 대법제자에게 이러한 ‘성취의 길’을 걷게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정법시기에 여전히 이런 이념에 따라 수련하면 자기도 모르게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걷고, 구세력을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해내지 못한다.

‘철괴리’는 나중에 ‘나는 죽을 수 없다. 대법이 이렇게 좋고, 나는 여전히 진상자료를 배포해 더 많은 사람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는데, 이 기점이 바로 ‘조사정법, 구도중생’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 이념에 있는 것이다. 구도하려는 것은 무량무계한 중생과 신이며, 설령 구세력이 ‘철괴리’가 윤회 역사상 얼마나 되는 목숨을 빚졌거나 어떤 신에게 빚졌다는 것을 빌미로, ‘철괴리’에게 육체로 목숨의 빚을 갚으라고 한다 해도, 양자 간에는 상호 관계가 없는 것이다. 육체로 목숨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이 요구는 아주 하찮아 보인다. 그러므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정법시기의 수련 개념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정념정행할 때 구세력의 안배를 전반적으로 부정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존의 요구이다!

이 20여 년간의 반박해 수련 중에서 사악(구세력)의 박해는 틈만 있으면 파고들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나를 포함한 많은 수련생이 비틀거리며 지금까지 걸어왔는데, 부득불 차분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수련생은 사악(구세력)의 박해에 대해 ‘어쩔 방법이 없다’, ‘대책 없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른다. 생각해보자. 아직도 개인수련 시기의 수련 개념으로 잘못 빠져들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개인의 얕은 깨달음으로서, 잘못된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19/42221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3/21/1915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