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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별 피하기(중국풍습)’에 대한 생각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 본토 사람들은 설을 쇨 때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섣달그믐 밤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많은 풍속은 정말 상대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희 고향의 예를 들면 신불 공양하기, 여러 신 모시기, 향 피워 올리기, 소지 올리기, 신령 배웅하기 등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별 피하기’라는 것을 말해봅시다. 일반적으로 사람마다 별(星辰)이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서 모두 피하는 것이 가장 좋다며, 별이 좋지 않을 때면 반드시 피해야 하고 그럼 그 해의 나쁜 운세를 깰 수 있다고 합니다.

일반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수련하는 사람에게 이는 정말 불이법문(不二法門)의 큰일입니다. 만약 피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기분은 좋지 않으며 순조롭지 않은 일이 있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가족들은 당신에게 아무 말도 못 하게 합니다. “어때요? 별을 피하지 않으니, 맞았죠?” 자칫하면 모순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별 피하기’에 대해 말하자면 작게 말하면 고향 풍속이고 크게 말하면 구세력의 함정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고 어떤 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어떠한 우연도 없고 모두 구세력이 배치해 놓은 것입니다. 이런 고향 풍속에 섞인 세간소도(小道)는 가장 주의하기 어렵게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인정하게 만든 후, ‘불이법문(不二法門)’의 혐의로 당신을 다스립니다. 정말로 주의해야 할 일입니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관할이고 ‘별 피하기’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가족들의 권유를 견디지 못하거나 가족들이 화를 내면, 명절 분위기를 생각해 스스로 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지역의 어떤 수련생도 이렇게 손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수련생의 아이가 수련생을 심하게 괴롭혀[사실 그녀의 씬씽(心性) 제고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깨닫지 못하고 ‘잘 아는 사람’이 말해준 방법을 따랐습니다. “별을 피하고 모모에게 보이도록 해. 그 사람은 해결해 줄 거야.” 결과적으로 이 수련생은 십수만 위안(약 2000만 원)을 내서 별을 피하고 돈도 썼지만 아이는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수련하는 사람이 ‘별 피하기’를 한다는 것은 오점이 아닙니까?

설이 다가오자 아내는 수련하지 않아 매우 바빴습니다. 그녀는 이런 것들을 믿습니다. 제가 별을 피하지 않으면 얼굴색이 변하고 기분 나빠하곤 했습니다. 왕년에 제가 이치에 근거해 힘껏 주장한 결과, 그녀는 이 문제에서 더는 저를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지켜야 하는 풍속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섣달그믐 저녁은 미신이 아주 많습니다. 상추(돈이 생긴다는 중국어와 음이 비슷함), 생선(풍요를 상징), 밤(이익이 오는 것을 상징), 파(순조로움을 상징), 무(일 처리가 순조롭고 소인배에 걸려들지 않는 것을 상징)……. 먹고 싶든 안 먹고 싶든 조금이라도 먹어야 했는데 먹지 않으면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곤 했습니다. 원칙적인 일이 아니니 저는 아내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그냥 아내의 생각에 따라 했습니다. 저는 일상 속에 소소한 일들에서도 수련인의 경지가 드러나는 거로 생각합니다.

설날 신불에 공양하고 조왕신, 재신, 천지를 모시고 밤중에 소지를 올리거나 폭죽을 터뜨리고 공양하던 신위에 소지를 올리고 향을 올리고 절을 하는 등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절하지 않고 소지도 올리지 않는데 여기에는 불이법문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허스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묵념합니다. 다른 공간의 중생들에게 ‘9자진언’을 기억하라고 하는데 이는 그들이 구도받을 수 있는 근본입니다. 하지만 설날 절하는 것이 속인의 상태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수련생도 있습니다. 저는 “맞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대법제자가 사부님께 절을 올리는 것을 제외하고 누가 그럴 자격이 있습니까?

설날 아침에는 만두를 먹습니다. 만두가 끓어오르면 아내는 제게 반복해서 묻습니다. “풀었어요? 풀었어요?(만두를 풀었다는 것은 돈을 벌었다는 것을 의미)” 저는 “풀었어요, 풀었어!”라고 합니다. 아내가 기뻐하는 얼굴은 마치 꽃 핀 찐빵 같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말합니다. “참 잘했어요. 올해는 큰돈을 벌 거예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장난하나.’

공물을 올릴 때도 각별히 조심해서 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땅에 떨어뜨리면 안 되고 선향이 가지런하지 않으면 불길하며 선향 한 대가 불이 꺼지면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고 순조롭지 않은 것이 조금만 있어도 모두 좋지 않은 징조라는 것입니다……. 만약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거나 이것을 믿는다면 마음을 조금 움직여도 좋지 않은 결과가 당신을 기다릴 겁니다. 하지만 만약 법에서 본다면 일반 사람이 참 불쌍히 여겨질 겁니다. 그것이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까. 고향에 옛말이 있습니다. “섣달그믐에 당나귀 한 마리가 죽은 것을 두고 ‘좋지 않아도 좋다.’”

저는 또 설 인사말 때문에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대법제자는 천리를 압니다. 말을 할 때 수구(修口)해야 하지만 ‘설 인사’의 핵심은 돈, 복이 빠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설에 ‘내년에 때가 되어 좋은 운이 돌아오고 부자가 되실 거예요’라고 축하해 주면 그는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의 명 속에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그의 운명이 바뀝니까? 어르신께 인사할 때 ‘오래오래 백 세까지 사세요’라는 ‘좋은 말’을 하지만 그분의 수명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백 세’라고 하는 말에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인사할 때 설령 뇌혈전에 걸려 의식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내년에 반드시 나아지실 거예요’ 등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아질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업력은 누가 갚습니까? 수련하는 사람이 말하는 데 있어서, 말을 하지 말거나, 한다면 참된 말을 해야 하고 원칙적인 문제가 있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련의 길이 비록 매우 좁지만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말에는 곧 힘이 있습니다. 말을 가려서 하지 않으면 사람의 일을 배치하는 신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고 본의 아니게 일부 일들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저의 체득은 마음이 자상하고 봄바람같이 선량하며 중생을 마음에 담아 사람을 살리는 일에 최우선을 둔다면, 비록 한 마디 간단한 인사라도 중생의 눈빛이 모두 당신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당신이 주인공이고 과장된 인사말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들으면 매우 듣기 좋고 기분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는 말이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말이기 때문에 명백한 일면이 당신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인사할 때 당신이 너무 ‘세간에 부합해야 한다’며 해야 할 일을 잊고 하나하나 구도할 기회를 놓치면 손실이 너무나도 큰 것으로서 아무리 많은 인사말을 하더라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이 무의미할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짧은 견해였습니다.

 

원문발표: 2021년 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2/14/4205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