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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법공부 교류에 관한 한 점의 깨달음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는 단체 연공, 단체 법공부가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우리의 수련 제고를 촉진하는 일종 형식임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 중에 각 지역에서는 모두 보편적으로 일부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단체 법공부를 마치면 바로 가버리고 교류하지 않는다. 혹은 교류해도 피상적이고 깊이가 없어 수확이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법공부만 하고 극히 적게 교류하는 것으로 변했고 천천히 많은 사람은 단체 법공부의 효과가 혼자서 법공부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면서 참가하지 않는다. 나는 그 속의 한 분자로서 어떤 마음이 있어서 이러한 수련환경을 공동으로 촉성시켰는지 가끔 생각해본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1] 그러나 나 자신의 아주 많은 사람 마음은 이미 자연적인 것으로 형성된 것을 수시로 발견할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표현되는 것은 바로 밖으로 보는 것이고 정념이 부족한 일부 사상이며 아주 속인적인 행위까지 있었다. 바로 이런 사람 마음과 행위는 정체 수련환경에 크거나 작게 부채질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1.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다

수련생들과 교류할 때 큰 모임이든 작은 모임이든지 간에 많은 경우 나는 늘 아주 적게 말했다. 그 원인을 파보면 자신의 본래 성격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이유의 배후에 일종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불쾌감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며 사건을 두려워하고 안일함을 추구했다.

다시 아래로 깊이 파보니 이 마음 배후의 요소는 업력이 죽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단 내가 상처를 입으면 업력은 소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 바로 그것이 그것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고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반영해주는 것은 한 가지 가짜 감각 ‘나는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였다. 사실 업력은 그것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철저히 소멸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상처 입는 것은 좋은 일이고 자아를 보호하는 것은 반대로 수련인에 대해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나도 유의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말하지 않는다. 수련생들의 논란거리가 되고 싶지 않고 사람들의 과녁이 되고 싶지 않았으며 이로써 체면과 자존심이 상처받고, 타인으로부터 말을 듣거나 깔보일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배후에 체면, 허영심, 명리심 등등이 숨어있었다. 가끔 또 자신의 문제를 말하지만 심각한 것은 피하고 가벼운 것만 말했으며 자신의 아주 좋지 못한 사람 마음에 대해 가볍게 말하거나 살짝 스치듯이 거론하면서 깊이 은폐된 사람 마음을 건드리지 않는다.

사람 몸에 있는 좋지 못한 것, 사람 마음은 사실 폭로를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일단 그것이 폭로되면 숨을 곳이 없고 즉시 소멸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착을 은폐하는 것은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고 은폐할수록 더 강대해진다. 폭로를 두려워하는 사람 마음일수록 반대로 더욱 그것을 폭로해야 한다. 동시에 일단 자신의 집착심을 폭로하면 자신에게 후퇴할 길이 없게 한다. 수련에서 장기간 반복적으로 넘지 못하는 사람 마음들은 아주 많은 시기에 모두 나에게 너무나 많은 후퇴의 길을 남겼다. 일단 사람 마음에 후퇴의 길을 남기지 않으면 주왠선(主元神)은 더욱 정신을 차리고 이 사람 마음을 중시하게 된다. 주왠선이 더욱 강대해지면 이 한 개의 턱을 더 쉽게 넘을 수 있다.

아주 많은 사람 마음은 한 개의 창호지에 불과하다. 보기에는 강대해 건드리지 못할 것 같지만 살짝 뚫으면 곧 뚫어진다. 그러나 일단 그것을 뚫으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극력 반항하고 그것은 내 머릿속에 ‘자신을 폭로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영한다.

아주 면목 없는 일부 일들을 한 제자에 대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자신이 행한 좋지 못한 일을 수련생 속에서 폭로해야 비로소 그 난을 돌파할 수 있고 그 그림자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생각했는데 만약 자신의 집착심, 폭로를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 마음을 감히 꺼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면 아주 빨리 그것을 돌파하고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본다. 신께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더러운 사람 마음을 폭로했는지 보시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얼마나 많은 집착을 제거했는지 보신다. 늘 집착을 안고 내려놓지 않으며 숨기고 끼고 있으면 표면적으로 잘했어도 신께서 보시면 모두 수치스러운 것이다. 아울러 나는 자신의 집착심을 과감히 폭로하는 사람일수록 수련의 길에서 묵묵히 더 용맹정진하는 것을 발견했다. 반대로 자신의 사람 마음을 안고 숨어버린 사람일수록 더욱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늘 제거하지 못하고 철저히 제거하지 못했다. 수련의 길도 갈수록 험난해졌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에게 경고했다. 자신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노력해 극복하고 더욱 솔직하게 수련생들과 교류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하려고 시도한 후 나는 자신이 더욱 쉽게 안으로 찾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단점을 더 많이 찾고, 더는 쉽게 밖으로 남의 단점에 시선을 모으지 않았으며, 점차 남에 대한 질책과 원망이 적어졌고, 타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남을 생각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자신이 더욱 겸손해짐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수련의 부족함이 일단 폭로되면 자연스럽게 교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단지 실질적으로 수련해 집착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가끔 또 일종 관념이 장난을 치는데, 나는 자신에게 무슨 집착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에 넣고 그것을 닦아서 제거하라고 시시각각 일깨워주고 수련생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보기에는 무슨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 배후에는 여전히 자신의 집착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어있었다. 동시에 이 또한 수련인의 당당함, 자신에 대해 높은 표준으로 요구하는 문제가 체현된다. 질서 있게 수련하는 사람은 오로지 당당할 뿐이고 마음을 열고 말하지 못할 것이 없다. 또 사부님께서는 단체로 연공하고 법공부하며 교류하는 형식을 남겨주셨는데 우리가 서로 교류하는 것을 통해 더 빨리 제고하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한 사람이 혼자서 수련하면 수련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고가 상대적으로 아주 느리다. 하지만 수련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가 높은 사람은 수시로 용감하게 자신의 사람 마음을 폭로해 그것이 후퇴할 길을 조금도 남겨주지 않는다. 나는 이 또한 용맹정진의 일종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신수련생이 이 한 점을 행하는 것이 항상 나보다 아주 많이 좋다고 느낀다. 그들은 반대로 아주 잘 내려놓고 자신의 집착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신수련생이기에 집착이 있는 것은 남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수련생은 반대로 점차 수련에서의 능구렁이가 됐고 교활해졌으며 또 체면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심지어 자신의 자태를 아주 높이 놓고 있다. 자신이 이렇게 오랜 세월 수련했는데 만약 아직도 과시심, 명리심, 질투심, 색심 등등이 있다고 말한다면 체면이 깍일거라고 여긴다. 병업관을 잘 넘지 못해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자신이 법공부와 연공을 적게 한다는 등등을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이는 명을 구하는 마음이고 허영심이다. 남들이 깔볼까 봐 두려워하는 등 사람 마음이 장난을 치는 것이며 동시에 법리에 대해 이해가 투철하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을 얼마나 오랫동안 했어도 원만하기 전 일각까지는 좋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 오랜 세월 수련했다고 무슨 사람 마음도 모두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데, 그럼 더 수련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홍법하고 진상을 알리는 각종 일에서 노수련생들 사이에 많게 적게 모두 일부 모순과 간격이 생겼고 심지어 매우 첨예하고 서로 간에 상대방의 단점을 공격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집착심을 자발적으로 폭로하지 못하는데 아마도 상대방에 의해 덜미를 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보세요. 그 자신도 무슨 무슨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고 인정했어요. 어떠어떠해요.” 그리하여 자신을 잘 보호하고 자신을 잘 숨겨서 더욱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 한다. 반대로 말해서 다른 수련생의 안으로 찾고 스스로 분석해낸 집착심을 갖고 그를 공격하거나 조롱하는 행위와 심리는 수련인을 놓고 말할 때 가장 더럽고 비열한 것이다. 이는 인간 세상에서 이 가장 신성한 안으로 찾는 수련행위를 더럽히는 것이고 안으로 찾는 수련환경과 분위기를 파괴하는 것이다.

만약 안으로 찾는 이런 마음, 환경, 분위기가 없다면 법공부를 더 많이 했어도 단지 표면에서 배우고 실질적인 것은 오히려 개변하지 않는 것이다. 진상 알리는 일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단지 표면이 움직이는 것이고 심지어 속인이 대법 일을 하는 것과 같다.

2.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을 방패로 삼다

나는 또 발견했는데, 내가 자신의 단점을 폭로하고 싶지 않거나 교류하고 싶거나, 혹은 교류하지 않으면 안 될 때 항상 일부 허울 좋은 것을 찾아서 크게 부풀렸다. 왜냐하면 속인 중의 일을 말하기만 하면 수련생들이 자연스럽게 모두 제지하기에 수련의 일부 중요한 일로 이를 대신해 발휘한 것이다. 혹은 자신이 이런 중대한 일에 대한 인식이 아주 똑똑하고 아주 높다는 것을 표현하거나, 혹은 자신이 수련에서 매우 정진하고 사람을 구함에 있어 매우 적극적이고 힘을 쓴다는 등등을 표현하려 했다.

이 속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패였다. 대법제자는 정법시기에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모두 알고 있는데 그것을 논하면 누가 뭐라고 말하겠는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은 마땅히 교류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토론하기 시작하면, 교류하기 시작하면 안으로 찾고 마음을 닦는 것을 완전히 머리 밖으로 던져버리게 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수련을 대체할 수 없고 수련해도 사람을 구해야 하며 이 법리에 대해 평소에 아주 명명백백하지만 행동에서는 가끔 나는 오히려 양자의 관계가 모호했으며 사람을 구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사람 구하는 일을 말하기 시작하면 거침없이 말했다. 혹은 항상 남을 인도해 사람 구하는 것을 더 많이 중시하게 하려고 했거나 남들에게 마땅히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건의하려 했다. 이는 사실 늘 남을 개변하려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으로, 오히려 자신은 개변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숨어있었다. 동시에 말에서 이미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중에 수련 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보아낼 수 없었고, 심지어 자아에 집착하며 남과 쟁론해 많은 일을 흐지부지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또 발견했는데 무릇 말속에 ‘우리’, ‘모두’, ‘매 개인’ 등 단어는 아주 많을 때 모두 남을 말하는 것이고 남을 인도하거나 개변하려는 것이고 자신이 아니었다. 보기에는 말하는 것이 ‘우리’를 말해서 자신을 포함하는 것 같지만 사실 주로는 남을 말하고 싶고 남을 개변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일을 말할 필요가 없다.

3. 법리를 교류함을 방패로 삼다

교류에서 거침없이 말하고 법리를 탐구하는 것은 물론 수련으로 놓고 말하면 법리는 마땅히 똑똑히 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내 법리를 탐구하지 말아야 한다.

단체 법공부 교류에서 나는 또 자신에게 다른 일부 좋지 못한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1) 속인 중의 일을 신나게 말하다

속인 중의 명리정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신이 비교적 사회 형세에 대해 관심 두는 것이 비교적 두드러진 것을 발견했다. 정법형세의 변화, 대선 등 시사 정치, 사회의 난상, 인심이 타락한 현상 등이다. 이런 것들은 우연히 한두 마디 정도 논하면 그만이다. 과도하게 이런 속인 중의 일을 논하는 것은 마음이 이끌린 것인데 아주 불필요하다. 가끔 우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평론하는데 이는 더욱 마땅치 않다.

2) 남이 안으로 찾아 폭로한 집착심으로 남을 공격하고 조롱

이 한 점을 앞에서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수련생이 안으로 찾은 것을 자신이 그를 조롱하는 기회로 삼는다. 내가 자신에게 이런 마음과 행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장시간 부끄러움과 자책 속에 빠졌고 자신이 극히 좋지 못한 일을 했다고 느꼈다. 수련생에게 상처를 줬고 내부에서 안으로 찾는 수련환경을 파괴했으며 주변 수련생들이 감히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람 마음을 교류하고 폭로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사부님의 가르침을 저버렸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이를 빌어 남을 조롱하고 이렇게 신성한 행위를 모독했다.

3) 배척심

단체로 교류하고 남의 말을 듣는 과정 중에 나는 또 자신에게서 수시로 일부 좋지 못한 마음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수련생이 형세에 대한 이해, 진상을 알리는 일부 견해에 대해 유창하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있는 어떤 집착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을 때 나의 내심에서는 배척, 반감의 심리가 있었다. 비록 자신은 표면에서 볼 때 아주 평온하게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내심 듣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이 말한 것이 자신에 대해 도움이 되지 않고 감동이 없다고 느끼며 시간 낭비라고 생각됐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비록 자신에게 도움이 없지만 아마 다른 사람, 더욱이 신수련생에게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에게 계발을 얻고 수확을 얻겠다는 강한 추구하는 마음으로 교류회에 참가하지 말라고 일깨워줬다. 물론 동시에 반대로 자신을 일깨워줬다. 남에 대해 실제로 제고가 있고 도움이 있는 심득이어야 비로소 교류하고 혹은 진상 알림에 유리한 것이어야 비로소 가서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밋밋한 교류는 남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4) 질투심, 과시심 등등

교류과정 중에 정말 각종 사람 마음이 며칠에 한번 꼴로 폭로됐다. 아울러 이런 사람 마음의 반응은 아주 많은 시기에 단지 일사일념이었고 단지 자신이 안으로 찾고 잘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지 남은 느낄 수 없다. 일단 일사일념의 사람 마음을 느꼈다면 그것을 깊이 파보고 끝까지 맹렬하게 뒤쫓아 그것을 소멸해야 한다.

맺음말

자아를 보호하고 자신을 폭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마음이 있어 발언하고 싶지 않거나 비록 발언하더라도 늘 사람을 구하는 항목, 법리를 토론하는 등을 방패로 삼았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에게 교류가 효과가 없고 수확이 없으며 밋밋하고 마음이 건드려지지 않았다. 또 자신이 수련에서 안고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 건드려지지 않았고 수련해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방면에서 제고하지 못하고 도움이 안 됐다. 또한 갈수록 단체 법공부와 교류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모두 조금 진솔하고 실질적으로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하는 방면에 대해 더욱 중시하고 교류하면 단체 법공부도 더 많은 진수(眞修)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1/24/4190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