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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제자,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다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2015년에 법을 얻은 젊은 대법제자입니다. 올해 31세로 이미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둥베이(東北)의 어느 한 외진 산골 마을에서 자랐는데 그곳은 인가가 드물고 소식이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전해 들은 것은 사당(邪黨)이 대법을 박해한 후였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반에서 파룬궁(法輪功)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때부터 파룬따파는 곧 저의 마음속에 뿌리내렸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타지에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온 가족들이 산둥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후의 날들은 비록 인생 목표 때문에 속세에서 바쁘게 살아갔지만, 마음으로는 법을 얻어 수련할 기회를 늘 희망했습니다.

2015년 6월, 저는 마트에서 진상을 알리는 지역 대법제자를 만났습니다. 저의 마음은 매우 격동됐습니다. 법을 얻고 싶어하는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사부님께 감사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역시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 저의 생명이 존재하는 의미이고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것은 제가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수련 상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법 외우는 것을 견지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저는 더욱 법의 진귀함과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하는데 늘 생각이 집중되지 못하고 딴생각을 했습니다. 한 강을 다 읽어도 머릿속엔 크게 기억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을 외우기로 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저에게 세워둔 계획은 두 달에 ‘전법륜’을 한 번 다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저는 보통 아침에 하루 세끼를 다 먹을 수 있게 요리를 많이 해 놓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식사합니다) 식사하고 청소를 마치면 곧 법을 외웠습니다.

그때 큰딸이 태어난 지 1년 6개월이 됐는데, 제가 법을 외울 때 아이는 항상 기특하게도 혼자 잘 놀았습니다.

처음에 법을 외웠을 때 저는 매 한 마디를 두 번 읽고 두 번 외웠습니다. 이렇게 한 단락 한 마디를 모두 다 외우면 곧 이 단락 전체를 연결해서 총 두 번을 외웠습니다. 법을 외울 때 속도를 요구하지 않고 그저 착실하게 정확하게 마음에 새겨놓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이전에 많이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이 법을 외우면서 갑자기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心性(씬씽) 관을 넘을 때도 법이 생각나고 법의 요구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가끔은 그렇게 잘하지 못했지만 제가 달라진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고, 또한 저 자신에게 제고하고 또 제고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법을 외우다 보면 어려움에 마주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머리가 흐리멍덩하고 마음이 번거로워 정신이 산란하면 한 단락이 어떻게 해도 외워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려워도 끝까지 버텼습니다. 두 번을 외워 외워지지 않으면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외웠습니다. 견지하기만 하면 반드시 외울 수가 있었습니다. 법을 외우면서 저는 아주 명확하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일종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직 법을 외운다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온몸의 세포가 마치 즐겁고 명쾌한 음표와 같았습니다.

‘전법륜’ 전체를 한 번 외우는 데 한 달이 걸렸습니다. 이어서 또 두 번 세 번을 외웠습니다. 네 번째 외울 때 저는 매 소절의 내용을 모두 연결해서 외웠습니다. 외우는 과정에서 또 매 단락의 끝과 다음 단락의 시작을 연결해서 반복해서 두세 번을 외웠습니다. 이렇게 외우면 한 소절을 쉽게 외울 수 있었고 한 단락을 외우면 다음 단락이 생각나지 않는 일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한꺼번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외워야 합니다. 저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법을 외우는 것을 계속 견지해 왔습니다.

이 기간에 남편은 저에게 ‘전법륜’을 외워 보라고 세 번 시험했습니다. 남편은 책을 들고 정말로 외울 수 있는지를 점검해 줬습니다. 현재 법을 외울 때 사상도 비교적 청정해졌고 사상 업력이 교란하는 일도 더 없었습니다.

제가 법을 외우는 것에 교란이 비교적 큰 것은 핸드폰이었습니다. 어떤 때 법을 외우다 힘들면 잠시 핸드폰을 보고 휴식하려고 했습니다. 연예 뉴스를 보면 30분이 훌쩍 지나가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인터넷에서 여러 군데서 비교하고 고르다 보면 또 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어떤 때는 위챗(Wechat, 微信) 펑유취안(朋友圈, 위챗의 공유 플랫폼)에 어떤 새로운 일이 있는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아무튼, 핸드폰을 열기만 하면 항상 모르는 사이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더는 이렇게 핸드폰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핸드폰을 보면 자신의 사상 속에 많은 명(名), 리(利), 정(情), 색(色) 등 더러운 물질들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집착을 없애기 위해 저는 2015년 연말에 스마트폰을 폴더폰으로 교체했습니다. 난잡한 정보들의 교란이 없어서 사상이 많이 청정해졌습니다. 그 후에 법을 외우는 것도 더욱 잘 기억할 수 있으며 효율도 더욱 높아졌습니다.

저의 작은딸이 9개월이 되었습니다. 작은딸을 낳은 후, 생활환경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매일 12시간씩 출근했고, 저 혼자 작은딸을 챙기는 것도 버거운 데다 큰딸의 성격이 활발해서 집에서 날마다 시끄럽게 떠들고 하니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두 아이에게 제시간을 꽉 채웠는데 또한 밥을 차리고 기타 집안일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앉아서도 잠들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지만, 마음속에 제일 힘들었던 것은 법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법 공부 시간이 없어 여러 번 울었습니다. 힘들어도 저는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에 법을 외우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잘 외우지 못하더라도 중단된 적은 없었습니다. 이는 저 자신을 너무 게으르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큰딸이 학교에 다니게 됐고 낮에 작은딸이 잘 때 저는 조용한 환경에서 법을 외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더욱 정진해야겠습니다.

대법이 어린 제자에게 은혜를 주다

현재 대다수 가정에선 아이가 하나 혹은 둘 뿐인데 물질생활의 풍부함까지 더하니 아이들이 옷이 오면 손을 내밀고, 밥이 오면 입을 벌리는 어린 황제, 어린 공주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대가족의 총애로 아이들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랄 수 있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들은 또한 아주 제멋대로고 이기적이게 됩니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 자기의 생각이 있을 때면 부모들은 더욱 단속할 수 없게 되는 법입니다. 이때 또 문제에 부딪히면 부모들은 정말로 교육할 수 없어 보통 큰소리를 치게 됩니다. 가끔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며 심지어 욕하고 때리는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바꾸게 합니다. 하지만 총애를 받고 자란 어린 황제들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겁니다. 이렇게 오래되면 악순환이 되어 또한 아이들에게 반항심이 생기게 할 수 있습니다.

제 딸은 어려서부터 법을 들었고 세 살 때 ‘홍음’ 중에 많은 시사를 외웠고 다섯 살 때 사부님의 ‘논어’를 외울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듣고 외우는 법은 또한 마음에 새겨두었습니다. 한번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저에게 ”엄마, 선생님이 오늘 살생하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묻더니 딸은 “교실에 벌레 한 마리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죽였어요.”라고 했습니다. 또 한 번 아이의 외할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고 있었는데 싸움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아이는 외할머니에게 “사람을 때리면 안 됩니다. 사람을 때리면 덕을 잃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딸이 아주 어렸을 때 저는 딸이 스스로 옷을 입고 세수하며 밥을 먹을 수 있게 독립성을 키웠습니다. 세 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게 됐을 때 선생님들은 모두 딸이 아주 독립적이라고 칭찬해 줬습니다. 생활에서도 저는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딸에게 음식을 먹을 때 나눌 줄 알아야 하고 친구들과 놀 때 양보할 줄 알아야 하며 일하기 전에 먼저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지 나쁜지 먼저 생각하라는 등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하니 딸은 줄곧 아주 기특했습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갈수록 자기 생각을 하게 되고 가끔은 말을 안 들을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전염병 기간 유치원은 열지 않아 딸은 집에만 있었습니다. 작은딸을 챙겨야 해서 큰딸에 대한 교육이 많이 소홀해졌습니다. 어떤 때 큰딸의 표현은 아주 좋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생이 잠을 잘 때 음악과 동화 이야기를 아주 크게 듣는다든지 아주 큰 소리로 동생을 깨운다든지 마당에서 물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등이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큰딸을 훈계했습니다.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주 바빠 법 공부를 할 시간이 없고 씬씽(心性) 또한 잘 지키지 못해 문제에 부딪히면 아주 쉽게 화를 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큰딸은 훈계해도 별 소용이 없었고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나 저는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원망했습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말을 잘 들었는데 이제는 왜 이 모양이 됐을까?’ 딸이 말을 안 들을수록 제 마음속은 갈수록 짜증이 나서 악순환이 됐습니다. 그러나 수련인이고 문제에 부딪히면 반드시 법으로 가늠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단속하는 데도 화를 내며 그야말로 떠들썩한데, 당신이 자녀를 단속한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당신 자신은 진정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좀 이지(理智)적으로 자녀를 교육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녀를 잘 교육할 수 있다.”[1]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굳게 마음속에 새겨 두어 다시 화를 내고 싶을 때 곧 자신에게 화를 내지 말며 아이를 잘 교육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저의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더는 강압적으로 요구하기만 하지 않고 대신 그녀와 협상하거나 도리를 말했습니다. 어떤 때 제가 참지 못하고 화를 냈으며 일이 지나고 저는 모두 아이에게 사과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도 말을 들었으며 집안에 다시 지난날의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아이 또한 아주 기특하게 변해 어떤 때 제가 너무 피곤하여 점심에 잠들었다면 아이가 배고프면 혼자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밥을 데워 먹었으며 어떤 때는 자발적으로 저를 도와 바닥을 닦아 줬습니다.

저는 더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가 그동안 큰딸에 대한 배려가 너무 적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이 아이에게 많은 상처를 줬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갈수록 아이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아이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날마다 작은딸이 잠들었을 때 큰딸을 데리고 법 공부를 했습니다. 사부님 또한 딸에게 지혜를 열어주셨는데, ‘전법륜’의 대다수 글은 그녀는 모두 알며 모르는 것도 두세 번 알려주면 곧 기억할 수 있었으며 평범하지 않은 기억력을 가졌습니다. 큰딸하고 ‘전법륜’을 한 번 함께 공부하는 데 두 달이 걸렸습니다. 큰딸이 발정념을 할 때 사부님께서 큰딸을 격려해 파룬과 연꽃을 보게 했습니다. 법의 지도로 큰딸은 또한 갈수록 성숙해졌습니다.

딸은 사부님의 보살핌으로 몸 또한 아주 건강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약을 먹은 적이 없었고 몸이 불편할 때 곧 법을 많이 듣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습니다. 그러면 금방 나아지곤 했습니다. 올해 큰딸의 목 앞에 선(癬) 같은 것이 생겼는데 빨갛고 달걀만 한 크기였습니다. 아주 가려워서 아이는 늘 긁곤 했습니다.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매우 조급해했으며 피부병이라고 아주 심각해 재빨리 치료해야지 온몸으로 펴지면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병원에 갈 거냐고 물으니 아이는 절대 안 간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아이 할머니는 또 오셔서 아이에게 약을 발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약을 안 바를 거예요. 절대 안 바를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할머니가 이 말을 듣고 화가 났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피부병을 치료하는 연고는 대다수 호르몬 성분이 있어서 의뢰하기 쉽고 피부에도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지만,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금방 나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걱정되시지 않도록 저는 또 아이와 협상했습니다. “아니면 병원에 한 번 가 보자. 약을 바르지 않고.”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을 거예요. 이것은 소업(消業)하는 것이고 법 공부하면 곧 나아질 거예요. 사부님께서 반드시 저를 도와주실 거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날마다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백 번을 외웠으며 자주 법을 듣고 법공부를 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목의 피부가 곧 모두 나았습니다. 저희는 아이 할머니에게 아이가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 지금은 이미 다 나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 할머니도 아이가 정말로 나은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이에게서 가족이 한 번 더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인증했고 아이의 아빠 또한 사부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명을 완수하여 중생 구도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대법이 박해받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제가 아직 수련하지 않았을 때도 진상을 알리는 것은 저의 책임이라고 여겼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중에 사이가 좋은 동창에게 모두 진상을 알렸으며 삼퇴(중공 당원·공청단원·소선대 탈퇴)하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기차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계속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아마도 진상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 기차에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진상을 알려줬습니다. 한번은 둥베이에 초등학교 선생님을 뵈러 가다가 열차에서 7~8년 동안 보지 못한 중학교 친구를 만났습니다. 저는 바로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줬습니다.

2015년에 진정으로 법을 얻은 후에 저는 곧 전기 자전거를 타고 딸을 데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거리 저 골목을 돌아다니다 가끔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는 작은 좌석에서 엎드려 잠이 들곤 했습니다. 때로는 겨울에 나가는데 날씨도 몹시 추웠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아주 기특해 봄·여름·가을·겨울은 물론이고 데리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데 한 번도 울고 소란을 피운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때 제가 진상을 알리고 나면 그녀는 또한 아주 예의 바르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한번은 거울에 저는 아이를 데리고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가 겸사겸사 마트에서 물건들을 샀습니다. 나가는 길에 바닥에서 지갑을 하나 주웠는데 안에 카드와 몇백 위안(몇만 원) 현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갑 안에 지갑 주인의 전화번호를 발견하여 저는 곧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저는 수시로 진상 음성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지갑을 주웠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영화가 곧 시작돼서 4층 영화관 쪽으로 갖다 주면 안 되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와서 아이는 차에서 잠들었고 저 또한 마트에서 물건을 많이 사서 올라가기가 정말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 마트 문 앞에 그를 기다렸고 조금 후 젊은 청년 세 명이 나왔습니다. 저는 지갑을 돌려주면서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고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지갑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주웠으면 돌려줄 확률이 아주 낮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공산당 역대 운동에서 많은 사람을 살해했고 지금 또 불법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박해한다고 알려줬습니다. 또 그들에게 구이저우(貴州) 장자석(藏字石)에서 천연으로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產黨亡)’이라는 여섯 글자가 형성된 것을 알려주면서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그 중의 청년 한 명이 그도 공산당을 안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도와 삼퇴한 후에 그들은 기쁘게 영화 보러 갔습니다.

하루는 저녁에 저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서둘러 집에 가고 있는데 아저씨 한 명이 길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차에서 내려 걸어가서 그에게 진상을 알리려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기차역에 기차를 타고 집에 가서 설을 보내려고 했는데 지갑을 다른 사람이 훔쳐가 집도 가지 못하고 식사할 돈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정말로 불쌍하다고 여겼습니다. 현재 사람들이 사당의 무신론 세뇌로 인과응보를 믿지 않고 개인의 이익 때문에 나쁜 짓에 스스럼없고 타인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시에 돈을 안 갖고 있어서 아저씨에게 그 자리에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집에 가서 200위안(3만4천 원)을 챙겨 갖다 드렸습니다. 그는 매우 감사했으며 신분증과 시계를 제게 주면서 나중에 돈을 갚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는 반복해서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저는 저에게 감사하지 말고 대법 사부님께 감사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큰딸이 유치원에 다니게 된 후에 저는 곧 수련생들과 협력해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번은 어떤 아저씨가 인도에 쪼그리고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서 그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말해 준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아무런 관련 없다고 생각해 제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당신과 전혀 안면이 없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한 푼도 달라고 하지 않고 오직 평안을 당신에게 가져다주고 싶을 뿐입니다. 현재 사회의 사람들이 자신의 명예와 이익 때문에 어떤 나쁜 짓이든 감히 합니다. 독이 탄 분유, 쌀, 콩나물, 심지어 독이 있는 백신까지 있습니다. 자신이 챙길 이익이 있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생사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수련하는 사람은 오히려 정반대로서 중생이 겁난에 마주한 것을 보고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얼마나 희생하고 힘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이 평안히 겁난을 넘어갈 수 있기만 하면 뿌듯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한 그에게 기독교가 박해를 300년이나 받아 결국 하늘이 전염병을 내려 강대한 로마제국 사람 중 4분의 3이 죽었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역사에서 바른 믿음을 박해하는 사람은 모두 하늘의 엄격한 징벌을 받았습니다. 과거 공산당은 역대 운동에서 8000만 명을 살해했고 지금 또 수련하는 사람을 불법적으로 박해하는데 하늘의 이치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학교 다닐 적에 소선대와 공청단에 가입했을 때 모두 공산주의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나중에 하늘이 공산 사당을 멸할 때 맹세한 것 때문에 그에게 매장당하면 안 됩니다. 하늘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덕을 가지고 있어 현재 우리가 오직 마음속으로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를 탈퇴하면 하늘이 착한 사람들에게 평안하게 겁난을 지나갈 수 있게 보호해주실 겁니다.

어르신은 제가 말한 것을 듣고 기쁘게 삼퇴했고 제가 잘 말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신 것을 압니다. 오직 우리가 사람을 구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곧 우리에게 모든 길을 깔아주셨습니다.

우한 폐렴(중공 바이러스)이 폭발한 후에 중생이 이미 위험의 가장자리에 선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두 아이를 돌봐야 하지만 수련생을 협력해서 힘이 닿는 일을 했습니다. 가끔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 저는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하룻밤에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저는 진상 자료를 챙겨 나가서 배포했습니다. 돌아올 때는 벌써 11시 반이 다 됐습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이 크게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저를 매우 지지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별로 원망하는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을 압니다. 아직도 쟁투심, 질투심, 조바심, 안일심 등이 있습니다. 저는 더욱 정진하도록 저 자신에게 엄격히 촉구할 것입니다. 또한, 미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수련생들과 함께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5/4195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