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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글/ 하얼빈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나는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다. 역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20여 년의 수련에서 역시 줄곧 문제가 존재한다. 자신의 마음이 개인의 관념과 호감에 더 많이 있는 것을 보았고 수련 속에 있지 않았다.

이것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문제다. 때로 우리의 표현이 아주 정진하는 것 같고 세 가지 일에서 많은 대가를 치렀지만 지금 마음은 개인의 관념과 호감의 비례가 더욱 많고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다.

생생세세 윤회에서 많은 사람은 수련에 호감을 갖고 인정하며 동경하는데 일종 관념이 형성됐고 수련에 대한 인정에 개인이 좋아하는 관념이 숨겨져 있다. 이런 관념이 형성된 후 수련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심지어 생명의 대가도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진수(眞修)가 아니고 개인의 호감을 위해 수련한 것이다.

이런 관념은 사람에 대해 말하면 아주 고상하지만 역시 이기심과 정이 숨겨져 있다. 왜냐하면 역시 수련에 대한 인정이기 때문인데, 심지어 모든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문제점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반대로 아주 정진한다고 생각하게 해 더욱 사람을 미혹한다.

미국 대선 후 내 마음도 줄곧 대선 결과에 따라 움직였다. 사태에 따라 기뻐하거나 소침했다. 나는 이런 상태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침의 배후에는 법에 대한 불신이 있다. 내 마음은 마땅히 법에 있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동요할수록 나는 더욱 믿었으며, 우리 마음이 법에 속하기만 하면 법에 대해, 사부님에 대해 믿음이 충만하게 된다.

이런 인식이 생긴 뒤 내 마음은 평온해졌다. ‘네가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면 표현하라. 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겠다.’ 내 마음은 더는 끌려가지 않으며 마음에는 법과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가득하고 더욱 태연해졌다.

뒤돌아 과거를 보면 마음이 이끌린 것은 개인적인 관념과 호감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마땅히 이러해야 하고 마땅히 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관념과 호감이 섞인 것일 뿐이다. 사실 이것은 극히 엄숙한 문제다. 우리는 조사정법하고 우리는 사부님의 인도 아래 새 우주를 만들고 정법에서 새 우주를 성취한다. 어떠한 사람의 관념과 호감도 절대 추가하면 안 되고 허용할 수 없다.

이때 나는 갑자기 정법시간 문제를 깨달았다. 우리는 줄곧 개인의 관념과 호감을 섞어 무의식중에 법에서 정법 종결 시간을 찾아 자신의 관념과 호감을 만족하고, 시간을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정법시간을 사용하지 않았다. 끝난다고 하면 기뻐하는 마음이 일어나는데 이런 마음을 계속 갖고 갈 수 있겠는가? 정법 중에 넣을 수 있겠는가? 정법 중에 일단 이런 것을 넣으면 나쁜 것도 따라서 오고 사악이 즉시 일어난다.

개인의 관념과 호감은 쉽게 마와 구세력에 이용당하고 수심이화(隨心而化)의 일부 가상은 집착할수록 진짜처럼 연화되고 당신이 가상에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이때 마음은 이미 어디에 있는가?

법에서 우리는 알게 됐는데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생명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층차가 높아도 알 수 없다. 정법 중의 일은 발생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의 생각과 호감은 표준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대법에 대해 사부님께 신심이 충만해야 하며, 우리의 마음은 단지 착실히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있어야 한다. 개인의 인식인데 부족한 점은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1/17/4186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