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태만에서 벗어나 초심으로 돌아가다

글/ 한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대법제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20대에 법을 얻어 40대 중년이 된 지금, 대법제자의 길을 걷게 해주신 사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소중한 시간을 빌려 비학비수하고자 합니다.

무한한 자비 아래 입문하다

어릴 때 우연히 신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고 수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하게 됐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자연스레 우주의 비밀이나 사전문명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생 시절 집안에서 연이어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터지고 건강도 악화되어 1년간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잘됐다 싶어서 각종 서적을 보는 등 진리를 찾아봤지만 답답함만 늘어났습니다. 복학을 앞둔 겨울, 주변의 권유로 기공 수련을 해보기로 하고, 같이 살고 있던 친구와 함께 가난한 고학생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공이 없을까 찾아보았습니다. 밤늦게까지 인터넷 검색을 하던 친구가 새벽에 혼자 불쑥 공원에 다녀오겠다고 나갔습니다. 늦잠꾸러기였던 친구가 새벽에 다녀온 것도 믿기지 않았는데 친구의 상기된 얼굴로 드디어 찾아냈다고 말하길래 저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다음날 새벽 4시에 같이 집을 나서 연공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법공부를 시작하고 9일강의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는 달리 전법륜을 읽고 9일강의를 들어도 어떤 구절은 귀에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알아듣기 힘들고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5장 공법을 연마하던 중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달걀 껍질에 들어가 있는 상태를 경험하고, 또 한 날은 잠을 자다가 몸이 뜨거워서 일어나니 몸 전체가 관정이 되고 있었던 일 등등, 법을 읽고도 이해가 더딘 제게 사부님께서는 여러 가지를 직접 겪을 수 있게 해주셨고 신심을 굳게 가지고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길에 들어서다

법공부를 하다 보니 나도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진상 알리기 활동은 서울 소재 대학교에 홍법 포스터를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포스터를 붙이다가 고단해서 계단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친구와 저는 동시에 파룬이 눈꽃처럼 내리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평소 천목이 닫혀 수련했기 때문에 파룬을 그렇게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사부님께서 진상 알리는 것을 얼마나 격려해주시는지 깨달았습니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발정념하는 것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첫날 발정념을 하려니 차소리는 시끄럽고 행인들의 시선은 부담스러웠습니다. 눈을 감고 정념을 시작하자 잠시 후 등 뒤에 집채만큼 큰 사람이 서 있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사부님의 법신이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몸 전체에서 공이 뿜어져 나와 대사관에 퍼붓기 시작했고, 이후 어디를 가던 발정념이라는 무기가 있다는 사실은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이후 의욕이 커지면서 누구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쟁투심, 그로 이한 질투심, 그리고 내 생각이 더 좋다는 생각이 줄곧 따라다녔습니다. 한 수련생과 쟁투하고 제고했다가도 또 다른 수련생과 다투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를 점차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사부님께서 『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신 부분을 읽고서부터입니다.

“그들은 어떤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수련과정 중에서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점차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도달하려 하고 있다. 어떤 신(神)이 방법을 제출했을 때, 그들은 급급히 부정하거나, 급급히 자신의 것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방법이 가장 좋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른 신이 제출한 방법의 최후 결과가 어떠한지를 먼저 본다. 길은 같지 않으며 매 사람의 길은 모두 같지 않은바, 생명이 법 중에서 깨달은 이치는 모두 같지 않다. 그러나 결과는 틀림없이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결과를 보며, 그의 결과가 도달한 것, 정말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모두들 동의하는데, 신(神)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조건 없이 묵묵히 보완해주어 그것이 더욱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문제를 처리한다.”

그때부터 인터넷 닉네임도 ‘묵묵히 보완’으로 바꾸고 질투심과 쟁투심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고 차츰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나자 일종의 군체(群體)적 사회관계가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 사람들은 아마 사심(私心)이 증가됨으로써 그들의 층차가 서서히 낮아져 이 한 층차 중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생과 잘 협력하는 것이 군체적 사회관계에서 사심이 없는 상태이며 반본귀진하는 하나의 힌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당시의 수련생들을 만나뵙게 되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느낍니다.

중국을 다녀오다

한 책임자분의 권유로 친구와 저는 여름방학에 중국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중국에 자료점을 만드는 것을 도와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늦은 밤 중국의 한 공항에 내렸고, 한 수련생의 안내로 거점이 되는 다른 수련생의 댁으로 향했습니다. 집안이 어두컴컴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을 켜지 않은 채 교류를 하고 발정념을 같이 했습니다. 자료를 만들기 위해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수련생이 공안의 감시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전기 사용량이 많아지면 의심을 받을 수 있어 냉장고나 밥솥 전등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낮에는 가져간 노트북과 CD복사기를 설치해 사용법을 알려드렸고 밤에는 수련생과 함께 사부님께 예를 올린 후 밖으로 나가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온몸의 세포까지 다 깨어나 정념을 집중했습니다. 진상 영상을 담은 CD를 제작해 가방에 담은 뒤 수련생과 작별인사를 하고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푼 뒤 낮에는 중국의 주요 장소를 다니면서 마음속으로 발정념을 하고 밤에는 CD를 배포했습니다. 자정 즈음에는 천안문 광장 한 쪽에 앉아 마음속으로 발정념을 했습니다. 해외 수련생들이 파룬따파하오를 외치다 체포된 천안문 광장이라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 무거운 공기와 적막, 당시의 긴장감과 결의는 아직도 생생한 기억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중국에서의 경험은 큰 동력이 되었고 이후 많은 난관을 만날 때도 중국 수련생들께서 저렇게 고생하고 계시는데 겨우 이깟 일로 물러날 수 없다는 마음에 이를 악물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신 사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당시 굳은 결의와 정념을 보여주신 수련생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중생을 구하는 길

중국에 다녀온 후, 여러 항목에 참여해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대법에 대한 독해가 많았기 때문에 곳곳에 진상을 알려야 할 일들이 그야말로 끊임이 없었고, 눈코 뜰새없이 수년이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처음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중점을 두다가 점차 한국인들에게도 진상을 알리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외에서 연공장을 개설하고 홍법하는 일도 규모가 커지고 체계를 갖춰갔으며, 모의재판과 혹형전시회, 이후 진선인 미술전 등 여러 일이 생길 때마다 수련생들이 합심해서 첫 시작의 험난함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수련생들과 함께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은 한 편의 영화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대법제자들이 만든 미디어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또 다른 수련의 장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 때 법을 얻은 이후 줄곧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몰랐기에, 기업의 형태를 띠고 세인에게 통용되는 방식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긴 호흡으로 진상을 알리는 것은 생소하고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후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저녁에는 기사를 쓰고 매체에 관한 일을 하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밤을 새는 일이 잦아지고 일이 바빠지면서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는 핑계로 연공장에 소홀해졌던 일은 지금도 후회로 남습니다. 한두 시간 자고 연공하면 다음날 근무할 때 피곤하다는 관념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며, 연공은 가장 좋은 휴식이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누락은 긴 시간이 지나서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션윈 공연을 취재하는 팀에 합류하여 취재를 하던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공연을 취재할 때는 언제까지 몇 개의 기사를 완성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션윈은 사부님께서 직접 관장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고 싶었습니다. 한 날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마음을 졸이다가 가까스로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기자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새벽에 잠을 청하려고 보니 방에 어떤 곳은 보일러가 들어오고 어떤 곳은 냉방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만 이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을 따뜻한 곳에 주무시게 하고 저는 냉방에 이불도 없이 누웠습니다. 작으나마 조사정법을 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눕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차갑고 딱딱한 방바닥이었음에도 사부님의 배려로 태어나 가장 포근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한 날은 부모님 댁에 갔다가 펄펄 끓는 큰 솥을 다른 한 분과 같이 옮기게 되었는데, 장갑을 받아서 끼고 무심결에 들었더니 엄청나게 뜨거웠습니다. 솥을 갑자기 놓자니 다른 사람들에게 물이 쏟아질 상황이라 꾹 참고 솥을 옮겼습니다. 장갑을 벗어보니 이미 손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고 찬물에 담그고 있으면 통증이 덜해졌지만 꺼내면 다시 아파져서 도저히 참기 힘들었습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짜증과 원망이 몰려왔습니다. 왜 이렇게 얇은 장갑을 줘서 화상까지 입게 한 거지…. 곧 정신을 차려 물에 손을 담근채 생각해봤습니다. 지금 왜 내가 이 일을 겪게 되었을까? 손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손가락이 성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부터 일을 할 수도 없고 더 큰 문제는 기사를 작성하기도 힘들텐데, 소업이라 생각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낡은 세력의 교란인 것일까?

안으로 누락을 우선 찾아본 다음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할 업이 있다면 꼭 감당하겠습니다. 하지만 낡은 세력의 배치와 교란은 절대 승인하지 않겠습니다.’ 그제서야 마음을 내려놓고 물에서 손을 뺐습니다. 몇 초 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고 다음 날에는 물집도 완전히 가라앉고 약간의 붉은 흔적만 남더니 그마저도 곧 사라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도 그것을 승인하지 말고 당당하게 잘하도록 하라. 그것을 부정하고 정념이 충족하도록 하라.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

이때의 체험으로 사부님께서 우리를 관장하고 계시며 우리의 수련의 길은 온전히 사부님의 배치대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2006년부터는 중국에서 강제 장기 적출에 대한 제보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조사보고와 뉴스가 해외에서 쏟아졌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라는 것도 잠시 이를 통해서 빨리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기사를 쓰고 전단지를 만드는 등 급히 움직였습니다. 세상이 곧 뒤집어지고 이제 드디어 모두가 진상을 알게되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금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런저런 방법을 궁리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당시에는 그때 걷기 시작한 길이 오늘까지 이어질지는 몰랐습니다. 이후 점차 협력할 수 있는 소중한 수련생들을 한분 한분 만나게 되었고 제고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성과가 쌓이게 되었으며, 많은 세인에게 꾸준히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크게 넘어지고 단체 법공부로 일어서다

2010년경 수련생이었던 장인어르신께서 숨이 차다는 말씀을 부쩍 자주 하시더니 얼마 후부터는 거동이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수련생들이 집에 찾아오셔서 법공부를 같이 하고 발정념과 교류를 하면서 도와주셨고, 저는 낮에는 근무를 하고 밤에는 장인어르신을 돌보고 발정념을 하는 생활이 1년 정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장인어르신은 떠나시게 되었고, 일종의 허무함과 패배감을 느꼈습니다. 그깟 사악의 교란 하나 못 이겨냈다는 자책감이 들었고, 1년 가까이 이어진 고단한 과정에서 심신은 지쳤습니다. 당분간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고 조용히 수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침한 상태에서 연공장과 단체 법공부를 나가는 것도 꺼려했고, 그간 참여했던 진상 항목에는 체면 반 의무감 반, 계속 발은 담갔지만 진심으로 대법제자답게 마음을 담아 노력하지 않았으며 마치 또 하나의 직장에 출근해 최소한의 업무만 한다는 기분으로 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명리심이며 정에 빠진 것이며 안일함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방황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2011년 워싱턴특구법회설법」에서 “가장 좋기로는 당신은 시간을 짜내어 현지 법 공부에 참가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로서 사부님의 말씀을 도저히 어길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돌도 안 된 둘째가 칭얼거려 다른 분께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잠시 덮어두고 다시 보도소 법공부에 나갔습니다. 모든 것이 원래 자리를 차츰 찾아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매주 참가하는 보도소 법공부는 한 주의 시작이자 마무리이며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고향입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다

언제 정법이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뤘던 군 복무도 그제서야 하게 되었고,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로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환자를 돌보는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연공도 가르쳐 줄 수 있었습니다. 출장이 없을 때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기사를 쓰면서 매체에도 계속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대 후 서울로 돌아와보니 집안의 빚을 떠안아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었고 월세방을 얻기도 힘들 정도로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생업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었고 수년간의 고생을 지나 경제 상황도 점차 개선되었습니다. 무엇인가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게 되고 사회에 익숙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대법제자로서 소임도 그럭저럭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등, 모든 것이 별다른 문제없이 돌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단체법공부에서 조는 일이 잦아진다거나, 발정념을 하는데 더는 예전같이 강대한 신통과 공이 발휘되는 느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딴생각을 하고 손이 넘어간다거나, 진상을 알리는 것도 평소에 여유부리며 느슨하게 하다가 몰아서 반짝 구색을 갖추듯 열심히 한다거나, 5장 공법을 할 때 입정에 드는 것이 힘들다거나, 아내가 헌신적으로 감당하고 도와주는데도 내 생각만 한다거나, 아이들을 이지적으로 가르치기는커녕 신경질만 낸다거나, 여러 가지 일로 힘들게 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내려놨다 싶다가도 불쑥 화를 낸다거나, 잘 닦고 있다고 믿었던 색욕심 명리심 물욕 등등을 느껴도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다거나, 사부님께서 시간을 계속 연장해주시는 것 같아서 주기적으로 긴장감을 가졌다가도 안도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신경문에서 일깨워주셔도 경각심은 금세 사라졌고, 마치 대범한 대법제자라도 된 마냥 누락을 발견해도 겨우 요만한 집착과 누락은 언제든 제거하고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무료하고 지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진상을 기다리는 중생이 있음을 알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라 내일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어찌 되었든 간에 늦게라도 따라잡아서 해낼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것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이러한 상태는 짧지 않은 수련의 길에서도 정말이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으며 다른 공간의 신들과 생명들이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한 상황이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존경하는 한 수련생을 만나 오랜만에 긴 시간 교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초창기 함께 협력하며 진상을 알리던 그때처럼 여전히 법공부를 참답게 하며 사부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이따금 정공을 하면서 입정에 들지 못할 때면 집착을 하나라도 더 내려놓으려 노력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하고 단순한 대법제자간의 대화 속에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나 또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에 법을 얻었고, 밤새는 줄 모르고 읽었던 법을 통해 일생의 숙원을 이뤘으며, 작은 마음 하나하나 살피면서 심성을 제고하고 집착을 내려놓으며, 연공과 법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진심으로 중생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던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아니었던가.

사부님께서는 『2018년 워싱턴DC 설법』에서 “특히 그런 노(老) 대법제자들은 태만(懈怠)하지 말라. 당신들은 그처럼 어려운 세월 속에서 걸어 지나와 오늘까지 걸어왔는데, 얼마나 어려웠는가! 당신은 소중히 해야 함을 모른단 말인가? 나마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 신마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그러므로 응당 스스로 더욱 자기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엇이 대법제자인가』에서 “희망하건대 여러분이 정말로 협력을 잘하고 정념이 족하며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고 마치 막 수련에 들어왔을 때의 그런 열정이 있기를 바란다. 속인처럼 몇 분 동안의 냄비 식 열정으로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라면 모든 문제는 법공부를 참답게 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제고해야 할 때이건만, 오히려 마음에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법공부를 할 때 순간 다른 일을 생각하는데도 입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주의식이 흐릿하고 법공부에 전념하지 않은 증거입니다. 그때부터 전법륜을 읽을 때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짚으며 천천히 전념해서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생각이 들거나 졸리면 곧바로 첫 단락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습니다. 법공부하는 시간과 양도 대폭 늘렸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운전하다 정지신호를 만나면 홍음을 외웠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고 졸려도 사부님께서 하루에 한 강의씩 설법하셨는데 제자가 한 강의를 다 읽지 못하는 것은 죄송스럽다는 생각으로 꼭 한 강의를 정신을 차리고 읽고 잤습니다.

사부님께서는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에서 “당신의 매 한 가지 집착은 모두 당신을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매 한 가지 집착은 모두 당신의 신체에 상황이 나타나게 할 수도 있으며, 대법에 대한 견정한 신념에 동요를 조성할 수도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집착이 틈을 만들고 결국은 큰 기둥을 무너뜨렸음을 느꼈고, 크고 작은 집착을 가리지 않고 모두 버려야겠다고 다짐하고 매 순간 무엇이 불성이고 무엇이 마성인지 법으로 가늠해 생각하고 움직이려 노력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쓸데없는 기사를 본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한다거나, 좀 편하려 한다거나 등등 생활상에서 반복되는 집착의 실마리를 가벼이 보지 않고, 틈만 나면 법공부를 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는 핑계로 1시 발정념을 놓치는 일이 없게끔 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겨 진상을 알리고 마음을 담아서 중생을 구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은 이후 생활 전반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 보다 상화롭고 자비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심성 제고를 정확한 마음가짐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7~8년 전 근무지에서 인연이 닿았지만 진상을 알리지 못한 채 연락이 두절되어 마음 한편으로 불편했던 분들을 하나둘씩 정말 우연해 보이는 계기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지난 인생에서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을 다시 떠올려보고 앞으로 만날 인연들도 더욱 소중하게 여겨 다시 진상을 잘 알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사부님께서 주신 기회를 잘 살려 그들이 세상에 내려온 숙원을 이룰 수 있도록 꼭 돕겠습니다.

태만하기 그지없는 제자를 다시 일깨워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최후까지 세 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용맹정진하겠습니다.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한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0년 10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8/4134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