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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신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를 학습하다가 생각난 것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신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를 통해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며칠 전 법공부를 할 때 한 수련생이 앉자마자 말했다. “어떤 수련생에게 전화가 왔는데, 농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련생에게 물건을 보내려고 하니 사람들에게 돈을 걷으라고 했어요.” 나는 처음에 이 일에 대해서 듣고 “좋은 일이네요!”라고 말했다.

이 수련생은 말했다. “그녀는 집안이 너무 힘들어요. 손자가 네 명(쌍둥이 두 쌍)에, 아들은 우울증을 앓고 남편은 뇌경색을 앓고 있어요. 사람들이 도와서 어려움을 해결해 줬기에 그녀는 법공부하고 연공할 시간을 갖게 됐어요.” 나는 말했다. “그녀의 길은 사부님께서 잘 안배하신 것이 아닐까요? 왜 사람들이 그녀의 곤란을 해결해 줘야 합니까? 그 난은 그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녀가 이 난을 감당해야만 수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길입니다. 사부님께서 잘못 안배하실 리가 있습니까?” 내 말을 듣고 돈을 걷으려던 수련생은 돈을 걷지 않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다시 법공부를 할 때, 지난번에 왔던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에게 “시골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련생에게 물건을 보냈습니까?”라고 물었다. 다른 수련생이 대답했다. “보냈습니다. 쌀을 차에 실어 보냈습니다.” 당시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움에 참여한 수련생은 수십 명이 넘었고 한 무리가 아니었다. 10년 이상 지속됐고 적극적으로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어서 돈을 요구하면 줬다. 큰 차와 작은 트럭으로 물건을 보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느 해에는 방금 차 한 대를 보냈는데 사람들이 모르고 또 한 대를 중복해서 보내기도 했고, 성(省) 소재지 어느 곳에서는 매월 고정적으로 1천 위안(약 17만 원)씩 주기도 했다. 뇌경색을 앓는 노인이 우유를 마셔서 박스로 우유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은 햄, 소시지를 먹어서 햄, 소시지를 박스로 보내는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돼지 머릿고기, 화장지, 쌀국수, 식용유, 옷, 신발, 모자 등 있어야 할 것은 다 있었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생각했다. ‘수련에 소양이 있는 수련생이라면 이것을 수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행위는 다른 사람의 길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길도 파괴했다. 걷은 것은 돈이고 보낸 것은 물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업을 지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각자들이 보건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든지 그는, 겪는 고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빚을 다그쳐 갚는다고 여기는데, 그는 바로 이런 생각이다.”[1]

하지만 이 선량한 수련생들은 수련을 사람 마음으로 대하고 흔히 말하는 선행을 즐겁게 하고, 유위로 일하면서 사부님께서 제고를 위해 배치하신 난을 모두 ‘해결’해 주고 있었다. 이 곤란한 수련생은 이렇게 많은 물건을 받았는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양이 많아져 업을 갚지 못하고 또 새로운 빚을 지고 있었다. 게다가 수십 명이 관련되어 있는데 이것이 작은 문제인가? 하지만 교류를 통해 참여한 수련생들은 거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녀가 이렇게 힘든데 상관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별일 아니다. 깨달은 대로 하면 된다. 어느 세(世)에 그녀에게 빚을 졌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수련생들의 바람과는 반대였다. 이 집에는 원래 두 손자(쌍둥이)가 있었는데 사람들의 도움 때문에 이혼한 며느리가 돌아와서 또 둘을 낳았다.(역시 쌍둥이) 나중에 며느리는 사망했고, 지금 아들은 우울증에 걸렸으며 노인은 여전히 뇌경색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녀를 도운 것인가? 도울수록 일이 많아진다. 이것은 마(魔)가 사람 마음의 틈을 타고 있는 것이고, 돕고 싶어 할수록 마는 그녀를 더 번거롭게 만들 것이다. 이것은 마가 판 함정이고, 결국 모두 함께 안에 파묻힐 것이다.

그 해 직접적으로 대법을 반대하는 마에 직면해 확고한 대법제자들은 모두 인식하고 베이징에 가서 사부님과 대법이 결백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지금 얼굴을 바꾼 마에 직면해 확실히 분간할 수 없었다. 그해에 확고했던 수련생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돈을 달라고 하면 줬다. 여러 번 주고 여러 번 갔다. 다른 사람의 길을 망치고 자신의 길을 망쳤다. 이것이 바로 마가 원하는 것이다. 포악한 마든, 온화한 마든 목적은 한 가지다. 대법제자를 망치려는 것이다.

사정을 아는 수련생에게 알아보니 모두 여러 해 도왔다고 말했다. 나는 누가 시켰는지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가 전화를 해서 어려운 농촌 수련생에게 물건을 보내주자고 말했어요. 사람들에게 돈을 걷으라고 했어요.” 나는 누구의 지시를 전달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어쨌든 돈을 내라고 하면 내는 사람이 있었다.

이는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의 수련은 내가 배치했지, 그런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을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데, 그가 당신의 사부인가? 이것이 ‘사부를 믿는다(信師)’는 것인가?”[2]

누가 구세력이 안배한 사람인지 말하지 말고, 자신을 법에 대조하고, 설사 자신 사람의 일면이 명백하지 않더라도 당신이 처리한 이 일이 법에 부합하는지, 물결치는 대로 표류한 사람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큰 교란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자기는 아직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지적해도 듣지 못한다.

수련생들이 사부님의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경문을 많이 공부하기를 건의한다. 사부님께서 일본에 대해서만 말씀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구세력은 잠복한 사람들을 우리 곁에 배치하고, 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게 한다.

관련된 사람이 많고, 범위가 넓어서 일일이 교류할 수도 없다. 수련생과 교류한 후 이 일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사람을 구하는 시간이 촉박하므로 잘못된 길로 빠진 사람들이 인식해 돌아올 수 있도록 이 글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신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중의 한 단락으로 마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99년 ‘720’을 걸어 지나온 대법제자, 사부는 당신들을 모두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며, 무량한 뭇 신들도 당신들을 모두 아주 진중(珍重)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러나 당신들 자신도 응당 진중함을 알아야 한다. 깨어나라! 가장 어려운 길도 모두 걸어 지나왔는데, 최후에 시궁창에서 배를 뒤집지 말라.”[2]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원문발표: 2020년 8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26/4109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