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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절된 발이 나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3년 2월 12일 오후는 우리 법 공부팀 법 공부 시간이었고, 장소는 어머니 댁이었다. 어머니는 그 전 해에 남동생이 모셔갔기에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그날 이른 아침에 내가 미리 가서 집을 정리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우선 문과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거실과 화장실을 집중적으로 청소했다. 오전 내내 바쁘게 청소하고 마지막에 밖으로 나가 쓰레기를 버리는데,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문이 닫혔다.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때 뒷마당 쪽 문과 창문을 전부 열어둔 것이 생각났다. 뒷마당으로 들어가면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뒷마당에 가려면 담을 넘어야 했다. 나는 담을 따라 돌며 혹시 구멍이 있나 보았다. 벽돌담이라 단단했고 2m는 족히 되는 높이였다. 다행히도 담장을 따라 계단식 오르막이 있어 바닥에서 담장 꼭대기가 1.5m 정도밖에 안 돼 거기에서 분명히 담장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신발을 벗고 발돋움하여 두 손으로 벽을 짚고 온 힘을 다해 마침내 담장 꼭대기에 기어올랐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뒷마당 지면까지의 높이가 담 바깥보다 훨씬 높았다. 2m 이상인 것을 보고 허탈했지만, 법 공부 시간이 거의 다 돼 조급했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뛴다고 말했다면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뛰어 내려올 때, 오른쪽 발꿈치가 담 구석의 긴 벽돌 위에 겹쳐서 떨어졌다. 긴 벽돌은 반공중에 떠 있는 채로 구석에 비켜 놓여 있었는데 내 오른쪽 발이 닿자마자 벽돌이 뒤집혀 굴러떨어지면서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그렇게 발목뼈가 담장 가장자리에 부딪혔고 일시적으로 마비 증상이 나타났으며, 나는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가 엉겁결에 “아이고! 내 발……” 하고 외치다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다. 사부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괜찮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 안으로 들어가 앞문을 열려고 했으나 오른쪽 발을 땅에 대자마자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으며,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발은 완전히 발목부터 뒤틀려 복사뼈 아래가 덜렁거리고, 피부 한 겹으로 간신히 연결되어 있었으며, 발등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당시에 두렵지 않았고, 빨리 가서 앞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필사적으로 기어 일어났다. 왼쪽 발 하나로 뛰면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 실내로 들어가 앞문을 연 후에 거실로 돌아와 앉아 숨을 헐떡였다. 시간은 마침 오후 1시였다.

잠시 후 수련생 3명이 도착해 나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이미 고통에 두 눈을 꾹 감고 온몸을 끊임없이 덜덜 떨고 있었다. 자세히 설명할 힘도 없어 “묻지 말고 어서 발정념 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수련생들도 나와 함께 발정념을 해주었다.

발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렀고, 실내 바닥에도 이미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수련생들은 플라스틱 대야를 하나 찾아와서 피를 받았다. 이때, 나는 골절된 발목의 뼈에 구멍이 3개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피는 바로 이 구멍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중에 한 구멍은 바깥쪽 복사뼈 약간 위에 있었는데, 뼈는 이미 이 구멍 밖으로 뻗어 나와 구멍이 종이 담배꽁초만큼 컸고, 다른 한 구멍은 안쪽 복사뼈에 약간 붙어 있었으며 또 다른 한 구멍은 발등의 휘어진 부분에 있었다. 오른쪽 바짓가랑이를 전부 잘라보니 무릎 아래는 멍들어 종아리 전체가 새까맣고 빵처럼 부어 있었다.

오후 3시에 언니가 와서 내 발이 이 모양인 것을 보고 “이거 큰일이네!”라며 어쩔 바를 모르다가 지체해서는 안 된다며 즉시 병원으로 데려가 응급처치를 하려고 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진수제자이고, 수년간 수련했기에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알아. 사부님께서 관여해주시니 괜찮아! 안심해!”라고 말하며 절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언니는 진상을 명백히 아는 사람인지라 내 태도가 이렇듯 견정한 것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친 내 발을 싸맬 만한 것을 찾았다. 한참을 뒤져서야 기름으로 얼룩진 낡은 앞치마를 겨우 찾아내 몇 가닥으로 찢고 장작 몇 개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내외 복사뼈에 각각 장작 한 개씩을 꽉 붙이고, 종아리 앞쪽에도 한 개를 놓았다. 이어 발목을 대강 바로 잡고 나더러 두 손으로 잘 받치게 한 뒤에 골절된 발목뼈를 조각낸 앞치마로 싸매 고정했다. 다들 나를 도와주었다. 당시에 소독액으로 상처를 소독하거나 압박해서 지혈하지도 않았으며, 제 위치에서 벗어난 뼈를 어떻게 맞추는지도 모른 채 이렇게 변변찮게 처리했다.

다 싸맨 후에 언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얼마 동안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남편에게 알리지도 않을 거야. 나를 강제로 병원으로 보내면 안 되거든. 우선은 여기 엄마 집에 머물 거야. 다들 나한테 먹을 것만 좀 가져다주면 돼.”라고 했다. 언니는 잠시 정리해주고는 먼저 떠났다.

잠시 뒤에 남동생과 올케가 와서 상황을 보고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남동생이 나를 업고 차에 태워서 데려갔다. 동생 집에서 밤 10시까지도 계속 피를 흘렸다. 동생은 너무 걱정되어 언니와 통화했다. 언니도 안심이 안 되는지 그래도 우리 남편에게 알려,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우선 지혈이라도 하는 게 어떠냐고 동생과 상의했다. 나는 이를 듣고 즉시 남동생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해 누나에게 아무 일도 없을 테니 안심하고 지금 절대 남편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절대 걱정할 필요 없어. 흘려야 할 피를 다 흘리면 좋아질 거야! 괜찮아!”라고 했다. 내가 “다 흘리면 좋아질 거야!”라고 말한 그 즉시 피가 멈추고 다시는 흐르지 않았다! 이 피는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총 9시간 흘렀다.

안정된 후에 남동생은 또 상처를 살폈는데, 피는 확실히 완전히 멈춘 상태였다. 남동생은 피가 흠뻑 젖은 앞치마 천을 깨끗한 하얀색 천으로 교체해 다시 싸맸다. 이 외에는 다른 어떤 처리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통이 끊이지 않는 데다 지난날을 회상하고 앞날을 생각하느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은 분명 큰 사고야. 수련자에게는 우연한 일이 없어. 반드시 내 수련에 누락이 있는 것이니 안을 향해 찾아보자.’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하나 생각났다. 그날 나는 어쩌다 어머니가 발코니에 있는 칸막이 서랍에 넣어둔 대법 경문에 곰팡이가 핀 것을 발견해(발코니 천장에 습도가 높아 눅눅했다) 경문을 태워야만 했다. 대법 경서를 잘 보호하지 않은 것은 대법에 대한 불경인데, 죄과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었다. 내가 소홀하고 세심하지 않은 탓이었다. 나는 사부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으며, 이 일로 교훈을 얻고 사부님께 진심으로 참회하고 반드시 잘못을 고치겠다고 다짐했다.

골절된 후에 내 삶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불편이 따랐다. 매일 세 가지 일을 잘하던 규칙적인 수련생활이 중단되었고, 개인의 일상생활은 스스로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돌봐주어야 했다.

남동생 집에 있던 두 번째 날, 즉 발을 다친 이튿날, 나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목발 짚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다리로 서는 것과 걸음 옮기는 법을 연습하고, 양팔과 왼쪽 다리를 어떻게 움직이고 힘을 조절하는지를 배웠다. 그날 어머니와 법 공부, 연공을 했다. 오른쪽 발은 땅에 댈 수 없어 동공만 할 수 있었다. 오른쪽 발은 의자에 무릎을 굽혀 몸을 지탱하고, 왼쪽 발로만 선 자세로 연공을 했다.

마침 이때, 남편이 나와 함께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뜻밖에도 나와 이혼하겠다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그 이유는(사실은 핑계임) 내가 낙상한 후에 그에게 즉시 말하지 않은 것은 내가 그를 불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 남편에게 설명하고 잘못도 인정하고 사과도 하면서 양해를 구했지만, 그는 전혀 듣지 않고 나를 보러 오지도 않았다. 또한 전화도 받지 않고 꺼두거나 친정 식구들과도 전혀 만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단호했으며 사이가 완전히 뒤틀렸다.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은 정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낙상한 초기 한 달 넘게 남동생 집에서 올케의 보살핌을 받았다. 나는 대법제자라 장기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되었기에 남동생은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우리 집은 2층에 있어 혼자 가기가 불편했다) 남편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듣거나 물어보지도 않은 채 자기 일만 하고 나를 낯선 사람 취급했다. 나는 상처를 참고 목발을 짚으며 일상생활과 청소에 최선을 다했다. 얼마나 어려웠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끝장을 보려는지 남편은 마침내 면전에서 정말로 이혼을 요구했다. 그는 내가 수련을 견지해서 (박해가 발생한 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원래 정상적이던 생활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납치, 감금, 공직 제명, 실형 판결받는 등의 위협에 직면해서 이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늘 처하게 했는데, 그는 이미 재앙을 당했고 딸이 더는 연루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남편은 내게 두 가지 선택을 주었다. 이혼하든지 수련을 포기하든지.

말이 여기까지 나온 김에 나는 진지하게 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어떤 심태로 이 문제를 사고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다시 사부님의 설법을 복습했다. 사부님께서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1] 라고 말씀하셨다. 지난 한 동안을 회상해보니, 나는 ‘발이 다쳐 움직일 수 없는 이 중요한 시기에 수년을 부부로 지낸 남편이 이혼을 거론하다니, 내가 이렇게 되니 나와 이혼을 한다고? 참으로 박하고 의리가 없구나.’하고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원한이 되었으며 스스로 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때, 나는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고려하고 입장을 바꿔 남편이 수년간 어떤 마음이었을 지를 생각했다.

99년에 중공이 전국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억 명에 달하는 대법제자와 가족이 장기간 모함, 모욕, 무시, 감시당했고, 수백만의 수련생이 납치, 감금, 판결받고 고문당해 사망했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박해로 산산조각이 났는가. 우리 이 가정도 하루가 편할 날이 없었다. 각종 박해가 끊이질 않았다. 남편도 늘 나 때문에 걱정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우리 가정을 위해 애태우고 근심했다. 남편은 매우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게 지냈다. 그는 속인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는 두렵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 것이다. 이것을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경이 얼마나 험악하고 압력이 얼마나 심하든지 나는 절대로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이혼하지 않겠다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나는 단지 남편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잘 지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남편에 대한 원한도 사라졌고 그를 탓하지도 않았으며, 이 모든 것은 사악이 조성한 죄업이라는 것을 분명히 생각했다. 내가 남편에게 나의 사고 과정과 이혼에 동의한다는 결정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사람이라면 양심이 없어서는 안 된다며 반대로 나를 위로하며 “내가 나쁘고 속이 좁았어. 무서워서 일시적으로 충동이 일어났어. 화내지 말아줘.”라고 했다.

골절된 오른쪽 발은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매일 이 상처난 발을 마주하며 나의 사상은 잠시도 조용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거의 매일 후천적으로 형성된 속인 관념과 외래의 불량한 정보에 대항했는데, 부지불식간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심하게 다쳐서 발목도 끊어졌는데, 병원에도 가지 않고 스스로 나을 수 있을까?’ 잠시 뒤에는 또 ‘안 나으면 어떡하지? 감염되면? 궤양이 생기면? 곪으면? 잘라내면? 불구가 되면?’ 생각할수록 두려웠다. 잠시 뒤에는 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골절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문제없어. 완전히 좋아질 수 있어! 아주 간단해! 왜 굳이 억지로 버텨야 해?’, ‘좋아질 수 있을까? 지체하지 말고! 신중히 생각해야 해!’ 다행히도 나는 장기간 사부님과 대법을 믿었다. 나는 1993년에 운 좋게 대법을 얻어 사존께서 구이양(貴陽)에서 펼치신 제1기와 제3기 학습반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고작 32세였다. 수년간 앓던 유주성 류머티즘 관절염과 위장병 때문에 고통을 겪었는데, 수련하고 일주일도 안 돼 갑자기 나았다.

파룬궁이 얼마나 많은 불치병 환자를 구사일생하게 해주었는지, 그 기이한 효과와 진실한 이야기를 나는 수년간 정말 너무 많이도 들었다! 나는 대법의 진수제자로서 이번에 발을 얼마나 심하게 다쳤던지, 치료하지 않아도 반드시 나을 수 있고, 반드시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깊이 믿었다. 보기에는 그것이 사람을 위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부 가상이며, 내가 대법을 견정하게 믿는지 시험하려고 발생한 일이었다. 나는 자신을 일깨웠다. ‘주의식이 반드시 강해야 한다!’ 그래서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에 대고 “이건 내가 아냐. 이것은 외래의 불량한 정보이고, 마(魔)다! 나는 네가 안 무섭다. 네가 나를 위협하면 너를 배제하고 해체하겠다!”하고 말했다. 이 일념을 견지하자 서서히 이런 불량한 생각이 갈수록 적어졌다.

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며, 발이 다친 것을 자신을 제고하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그것을 담담히 보고 가볍게 보며 개의치 않고, 정말로 마음속으로 그것을 내려놓았다! 나는 다친 발을 제시간에 씻거나 소독하려고 고심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 단지 시간이 지나면 상처를 싸매 더러워진 천을 교체하기만 했다. 처음에 고정해두었던 장작도 제대로 된 부목으로 교체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거나 검사, 진단, 뼈 맞추기 등등도 하지 않았다. 어떤 전문가에게도 상담받지 않고 속인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은 더 듣지 않았으며, 친척과 친구에게 이 일을 최대한 거론하지 않았다. 어떤 약물도 복용하지 않고, 칼슘, 비타민 등 건강식품도 복용하지 않았으며, 사골국 등등도 먹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맡겼다.

이렇게 했지만, 상처는 감염되거나 염증, 궤양이 생기거나 곪는 등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어떤 이상 증세나 중대한 변화가 없이 순탄하게 정상적으로 매일 매일 좋아졌다. 목발을 뿌리치고 오른쪽 다리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막 회복되었을 때,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러 갔다. 많은 곤란에 부딪혔지만, 그것은 이미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가장 힘든 시기는 이미 지난 뒤였다.

내 오른쪽 발은 8개월 후에 마침내 완전히 정상이 되어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어떤 후유증도 남지 않았다. 골절된 발이 치료하지도 않고 나았다. 이것이 대법의 초범함, 신기함이다. 이것은 완전히 사부님의 보호 덕분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8개월이 지나 나은 것은 좀 너무 긴 시간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이것은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하고 정진하지 못해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치고 3일째 되던 날, 연공할 수 있었지만, 동공만 하고 정공을 하지 않은 것이다. 비교적 긴 기간 동안 정공을 연마하지 않았는데, 어떤 수련생은 동공과 정공을 다 연마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골절된 뼈이고, 이제 막 나무의 사개를 맞추듯이 이미 맞춰놓았는데, 가부좌하면 발목뼈가 팽팽하게 잡아 당겨져 막 맞춰놓은 뼈가 또 떨어질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속인의 견해였다. 우리는 사타구니뼈가 분쇄성 골절을 당한 수련생이 다친 후에 하루도 정공을 쉬지 않고 연마해 빠르게 회복한 것을 알고 있는데, 이와 비교하면 차이가 얼마나 큰지 나는 안다.

그리고 나는 수련이 발을 빨리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했다. 친척과 친구, 수련생들이 발이 나았냐고 물어볼 때, 나는 늘 “많이 좋아졌어요! 많이 좋아졌어요!”, “좋아질 거예요! 좋아질 거예요!”, “곧 다 나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좋아졌어요! 완전히 좋아졌어요!”라며 명쾌하게 긍정적으로 대답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내 발이 골절됐을 때 가장 처음 외친 소리는 “아이고!”였지 “사부님!”이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첫 번째 일념이 “괜찮아!”가 아니라 “내 발”이었던 것은 마음속으로 발에 ‘문제가 생겼다!’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당시에 움직인 것은 정념이 아니라 속인의 일념이었음을 증명하기 충분하다.

사람과 신은 일념에 달렸다! 사부님께서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1]라고 하셨다. 수련은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대가를 치른 만큼 얻는다. 이는 분명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612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6/12/407560.html